■다비트 힐베르트 미해결 수학문제 23개 발표      1900년

▲ 다비트 힐베르트

독일의 수학자 다비트 힐베르트(1862~1943)는 일생동안 한 분야를 연구하기도 힘든 대수학, 기하학, 해석학, 수리물리학, 수리철학 등 수학의 온갖 분야를 섭렵하고, 아인슈타인과는 다른 방식으로 상대성이론을 도출해 낸 ‘현대 수학의 아버지’다. 힐베르트가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2회 국제수학자대회에서 ‘'수학의 미래’라는 제목의 연설을 한 것은 1900년 8월 8일이었다. 힐베르트는 연설 후 20세기에 풀어야 할 23개의 문제를 제시했다. 산술과 대수학, 함수론 등을 망라한 이 23개의 ‘힐베르트 문제’는 수학자라면 한번쯤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는 난제들이어서 문제를 푼 수학자들은 학계에서 최고의 명성을 얻었다. 20세기 수학이 ‘힐베르트 문제’를 풀면서 시작되었다고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힐베르트 문제’는 많은 천재들의 노력으로 오늘날 20개가 풀린 상태다.
힐베르트가 20세기 벽두에 23개의 문제를 제기한 것은 19세기 말부터 수학에서 발견되기 시작한 각종 ‘역설’과 그로인해 수학에 위기가 닥쳐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힐베르트는 수학을 형식화하면 그 형식 체계에서는 모순이 도출되지 않는다는 것을 엄밀하게 증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과학의 중심은 수학이며, 인간의 지성에는 한계가 없다고 믿었던 힐베르트는 역설의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하기로 하고 이른바 ‘힐베르트 프로그램’을 추진했다. ‘힐베르트 문제’도 ‘힐베르트 프로그램’의 일환이었다.
힐베르트는 독일 괴니히스베르크에서 태어났다. 1884년 쾨니히스베르크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1886년 같은 대학의 교수가 되어 30년 가까이 유럽 수학자들을 괴롭혔던 ‘고르단의 문제’를 1888년 수학적 귀류법을 사용해 간단하게 해결함으로써 명성을 쌓기 시작했다. ‘수학적 귀류법’은 어떤 명제가 참임을 증명하고자 할 때, 그 명제를 거짓이라고 가정했을 경우 논리 전체가 모순을 보이는 것을 증명함으로써 그 명제가 참임을 증명하는 방법이다. 1895년 힐베르트는 세계 수학의 중심지인 괴팅겐대학으로 옮겨 현대 수학의 기초를 닦았다. 그가 재직하고 있는 동안 괴팅겐대학은 뜨거운 지성의 용광로가 되어 수학은 물론, 물리학, 화학 같은 자연과학의 신시대를 열었다.
그는 불편부당한 학자였다. 독일과 프랑스가 전쟁 중이던 1917년 프랑스 수학자 다르부가 사망하자 비난을 무릅쓰고 추도사를 썼고, 제자를 받을 때 국적과 신분, 성별을 따지지 않았다. 여성수학자 에미 뇌터에게 강사 자리를 주려는 것을 다른 교수들이 반대하자 “대학은 목욕탕이 아니지 않습니까?”라고 반박했다는 일화가 있다. 힐베르트는 1902년 ‘기하학의 기초’를 출간, 유클리드 기하학을 다시 한 번 체계화함으로써 수학적 형식주의의 기초를 닦았다. 1915년 아인슈타인이 장 방정식을 얻기 5일에는 변분법이라는 수학적 방법을 이용해서 아인슈타인과 동일한 중력장 방정식의 최종식을 얻어냈으며 1924년에는 수제자인 쿠랑과 함께 20세기 수리물리학 분야의 고전이 된 ‘수리물리학의 방법’을 출판했다.
이처럼 수학의 미래를 낙관하던 그의 믿음과 기대를 송두리째 앗아간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쿠르트 괴델(1906~1978)이라는 천재 수학자였다. 괴델은 1930년 9월 ‘불완전성 정리'를 발표함으로써 수학의 영역에서 ‘논리적으로 모순 없는 형식 체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힐베르트를 충격에 빠뜨렸다. 사실 ‘불완전성 정리’는 힐베르트의 선행연구와 개념규정이 있어 가능했던 것인데도 힐베르트는 한동안 깊은 좌절감에 빠졌다. 나치의 등장도 그에게는 또 다른 시련이었다. 2차대전 당시 독일 정부가 예술가와 과학자들의 이름으로 전쟁지지 선언을 발표할 때 그와 아인슈타인은 서명을 거부했다. 힐베르트는 반역자로 비난받았고 히틀러의 집권으로 동료들이 독일을 떠난 뒤에는 고독한 말년을 보냈다.
힐베르트가 ‘현대 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것은 그의 학문적 업적 때문만은 아니다. 힐베르트는 인간 지성의 발전 가능성에 대해 굳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고 제자들을 통해 “모든 수학 문제는 그것을 풀 수 있든지, 풀 수 없다는 증명을 할 수 있든지 둘 중 하나”라는 ‘힐베르트 정신’을 넘겨주었다는 것에 있다.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우리는 알게 될 것이다”라는 비문은 수학자로서의 그의 열정을 잘 웅변해주고 있다.

■파나마운하 개통     1914년
파나마 지협은 1513년 스페인의 모험가 발보아가 유럽인으로는 처음으로 이곳을 지나 태평양을 바라본 뒤 비로소 유럽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곳에 운하건설을 처음 시도한 사람은 이미 수에즈운하 성공으로 이 방면 최고전문가로 알려진 프랑스의 페르디낭 드 레셉스였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 파나마 운하(1907년 공사중인 모습)

홍수, 산사태, 열대병 등으로 8년 만에 손을 든 것이다. 불안정한 암반과 험악한 산악지대를 미처 고려하지 못한 탓이었다. 특히 공사중 2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황열병과 말라리아는 공사 기간 중 최대 복병이었다.
프랑스의 뒤를 이어 20세기 초 이 모험사업에 뛰어든 것은 미국이었다. 미국은 매년 통행료를 지불한다는 조건으로 콜롬비아와 운하건설 조약을 체결했으나 콜롬비아 의회가 조약비준을 거부하는 바람에 계획에 차질을 빚었다. 그들을 도운 것은 운하건설 무산으로 주요 수입원을 놓치게 된 콜롬비아 내 파나마주(州)였다. 분노한 파나마 주민들이 1903년 11월 3일 콜롬비아로부터 독립하겠다며 들고 일어서자 미국은 은밀히 그들을 도와 이권을 챙겼다. 미국은 신생 독립국 파나마와 1904년 2월 다시 조약을 체결했다. 4000만달러를 지불하고 매년 25만달러를 내는 대신 운하지대 주권을 미국이 영구히 갖는다는 내용이었다.
미국은 황열병과 말라리아를 먼저 퇴치한 뒤 공사를 시작했다. 그 결과 황열병은 자취를 감췄고 말라리아 발병율은 1906년 82%에서 1912년 11%로 크게 줄어들었다. 그 덕에 미국은 난공사를 마무리 지을 수 있었고 1914년 8월 15일 11년간의 공사 끝에 길이 81.6km의 운하를 완공할 수 있었다. 이로써 태평양과 대서양은 하나가 되었다. 뉴욕을 출발해 멀리 남미를 돌아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뱃길이 1만5000km나 단축된 것이다. 산업혁명 이래 가장 힘들었다는 대역사였다.

■미국 수정헌법 제19조 발효…미 여성에 투표권 부여       1920년

▲ 수전 앤터니

1868년에 발효된 미국의 수정헌법 제14조 제1항은 이렇다. ‘어떤 주도 합중국 시민의 특권과 면책권을 박탈하는 법률을 제정하거나 실시할 수 없다?’ 수전 앤터니는 1872년 이 수정헌법 제14조를 근거로 여성들에게도 시민의 특권인 투표권을 부여하라고 법원에 요구했으나, 법원은 “14조는 생명, 자유, 재산 그리고 공정한 재판의 권리와 행복을 추구할 권리만을 인정한 것”이라며 거부했다. 앤터니는 다시 ‘합중국이나 각 주는 합중국 시민의 투표권을 인종, 피부색 또는 과거의 신분을 이유로 거부하거나 제한하지 못한다’는 수정헌법 제15조 제1항을 내세워 참정권을 요구했다. 남성들은 그러나 ‘여성의 투표를 거부하거나 제한하지 못한다’는 조항이 없으므로 투표권을 내줄 수 없다는 논리를 폈다. 당시 미국 남성들 눈에 분명히 여성은 인간으로, 흑인은 노예로 비쳤을 텐데도 그들은 흑인에게는 투표권을 주어놓고도 여성들에게는 허용하지 않았다. 물론 흑인의 투표권도 명목상에 불과했다.
미국의 여성들이 여성참정권을 위해 맨몸으로 싸우는 동안 뉴질랜드(1893년), 호주(1902년), 핀란드(1906년) 등에서는 여성들에게 이미 투표권이 주어졌다. 남성들과 말이 통하지 않으니 미국 여성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곤 피켓시위와 단식투쟁을 벌이다 끌려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들의 끈질긴 노력으로 여성참정권을 인정한 헌법개정안이 몇 차례 의회에 제출된 적이 있었다. 결과는 남성들의 완고한 벽에 막혀 언제나 실패로 끝났다. 1918년에는 2표 부족한 상원의 부결로 또 한번 좌절을 겪었다. 그러나 역사는 조금씩 진보하고 있었다.
1890년 와이오밍주를 시작으로 1918년까지 콜로라도, 유타 등 15개주가 여성의 선거권을 인정했다. 남성 의원들의 인식에도 변화가 있었다. 1차대전 때 전시노동에 동원된 여성들의 역할을 인정해야 하는 데다, 1918년 가을선거 때 여성들이 여성참정권을 인정하지 않는 남성의원들에 대해 집단적으로 반대시위를 벌인 것이 주효한 것이다. ‘합중국 시민의 투표권은 성별을 이유로 거부되거나 제한되지 아니한다’는 수정헌법 제19조는 1919년 5월과 6월, 각각 하원과 상원을 통과한 뒤 각 주의 비준을 기다렸다. 1920년 8월 18일 테네시주의회가 헌법 개정에 필요한 36번째 주로 수정헌법을 비준함으로써 멀고 험했던 여성들의 투쟁사도 막을 내렸다. 8월 26일 국무장관이 서명하고 연방헌법 조항으로 공표한 것은 요식행위일 뿐이었다. 한 기자는 제19조를 ‘수전 앤터니 수정헌법’이라고 불렀다. 1979년, 미 정부는 앤터니의 초상을 1달러짜리 동전에 넣어 평생 동안 여성참정권 쟁취를 위해 싸워온 그녀의 업적을 기렸다.

■제시 오웬스 베를린올림픽 육상 4관왕에 올라     1936년

▲ 제시 오웬스

1935년 5월 25일, 제시 오웬스가 ‘빅 텐’(주요 10개 대학 간 경기)에서 불과 45분만에 3개의 세계 신기록과 1개의 세계 타이기록을 세워 일약 미 육상계 최고의 유망주로 떠올랐다. 이날 이후 오웬스는 ‘검은 탄환’으로 불리며 이듬해에 있을 베를린 올림픽 참가를 예약했다. 1936년의 베를린 올림픽은 히틀러가 아리안 민족의 우월성을 세계에 과시할 목적으로 치러진 대회였다. 유대인을 경멸하고 흑인들을 조소한 이 베를린 올림픽에서 오웬스는 4개의 금메달을 땄다. 100m(8월 3일), 멀리뛰기(4일), 200m(5일)에서 3개의 금메달을 따더니 8월 9일에는 400m 계주에서도 우승을 차지해 올림픽 역사상 육상부문 최초의 4관왕이 되었다.
오웬스는 미국 등 반 나치 블록의 환호 속에 반 인종주의의 상징이자 영웅으로 부상했다. 히틀러가 오웬스와의 악수를 피했다는 소문이 퍼진 것도 이 무렵이었다.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진 소문의 사연은 이랬다. 대회 첫 날인 8월 2일 오후, 히틀러는 독일의 육상 금메달리스트를 비롯 몇몇의 우승자를 VIP석으로 초대해 악수를 하고는 스타디움을 떠났다. 다른 스케줄 때문에 자리를 뜬 것이지만 미 언론들은 높이뛰기 정상에 오른 미국의 흑인 선수와 악수하기 싫어 자리를 떴다는 기사를 준비했다. 히틀러는 “올림픽 정신에 위배된다”는 올림픽위원회의 지적을 받고서 더 이상 선수들을 불러 악수를 청하지 않았으나 이것은 오웬스와 악수를 거절했다는 소문으로 증폭되었다. 훗날 오웬스가 자서전을 통해 “자신이 VIP석 앞을 지날 때 히틀러가 일어나 자신을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들어 자신도 히틀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고 밝혔음에도 소문은 오래도록 사실인양 돌아다녔다.
오웬스는 베를린 시민들로부터도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다시 돌아온 미국의 인종차별은 여전했고, 오웬스는 이미 이용가치가 없는 영웅일 뿐이었다. 호텔 환영식에 참석할 때는 화물 엘리베이터를 타야했고, 루스벨트 대통령은 백악관 초청은커녕 축하의 말조차 건네지 않았다. 영웅은 말, 개, 오토바이 등과 달리기 경주 흥행을 벌여 생계를 꾸려나갈 정도로 생활에 쪼들렸다. 흑인이 진정한 스포츠 영웅으로 평가받기까지에는 좀더 시간이 필요했다.

■우키시마마루호 폭발… 귀환 징용자 몰사      1945년
1945년 8월 22일, 4730t급의 일본 해군 특별수송선 ‘우키시마마루(浮島丸)호’가 일본 아오모리현 오미나토항을 출항했다. 귀국선 1호였던 배에는 일본에 의해 강제로 태워진 7500여명(일본측 발표 3700명)의 한국인 징용자들이 승선해 있었다. 우키시마마루호는 부산으로 가지 않고 연안항로를 따라 남하했다. 이틀 후 귀국선이 도착한 곳은 예상치도 않은 마이즈루만이었다. 8월 24일 오후 5시경 원인모를 대폭발음이 일어났고 우키시마마루호는 침몰했다.

▲ 우키시마마루호

 
일본 정부는 미군측 기뢰에 의한 촉뢰사고 때문이라며 한국인 524명과 일본 해군 승무원 25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사건을 추적한 한·일 시민단체들은 촉뢰사고일 경우 나타나는 50∼60m의 물기둥이 없고, 육지까지 헤엄쳐 10분밖에 걸리지 않는 곳에 미군이 기뢰를 부설할 까닭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일본군에 의해 저질러진 계획된 만행”이라고 주장했다. 더구나 “폭발소리가 들리기 10분 전에 일본 해군 300여명이 구명보트를 타고 탈출했다”는 목격자들의 증언까지 나와 의혹을 더욱 부채질했다.
일본 정부는 일본인들에 대한 보상은 100% 완료하고도 한국인에 대해서는 1965년 한일기본조약에 의해 이미 한국인 징용자에 대한 보상이 이뤄졌고 더구나 사건이 1945년 8월 15일 이후에 발생했기 때문에 전쟁보상대상이 아니라며 줄곧 보상을 피해왔다. 일본 법원도 유족과 생존자 등 80명이 1992년 8월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 대해 2003년 4월 오사카 고등법원이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리고 2004년 11월 대법원이 2심 판결을 확정함으로써 유족들을 더욱 분노하게 만들었다.

■북한 8월 종파 사건… 김일성의 대숙청 성공      1956년
김일성에게 1950년대는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이었다. 자신의 오판으로 6?25 전쟁을 일으켰으나 유엔군의 참전으로 압록강까지 쫓겨났다가 중공군의 참전 덕에 겨우 기사회생했던 그는 자리 보전을 위해 누군가에게 전쟁실패의 책임을 물어야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1차 대숙청이다.

▲ 김일성 8월 종파 사건-1956년 6월 당시 44세의 젊은 나이였던 북한의 김일성 내각 수상 겸 노동당 중앙위원장(왼쪽에서 두 번째)이 소련을 방문해 TV 대담을 하는 모습

당시 김일성은 최고 지위를 차지하고는 있었지만 빨치산파(갑산파), 국내파, 소련파, 연안파 등이 여전히 건재해 북한에는 네 파벌이 적당히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빨치산파는 김일성을 포함한 항일유격대 출신들이었고, 국내파는 박헌영의 남로당계가 중심이었다. 소련파는 소련 공산당의 지원을 받고있어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으며 연안파는 중국 공산당과 손을 잡고 독립운동에 참여한 공산주의자들이었다.
김일성의 1차 표적은 연안파의 거두 무정이었다. 무정은 중공군의 참전으로 한숨을 돌리기 시작한 1950년 12월 평양을 방어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군복을 벗어야 했다. 다음 표적은 소련파의 대표적 인물이면서 당중앙위 비서 허가이였다. 그는 전선이 교착상태에 빠져있던 1951년 11월 당중앙위 제4차 전원회의에서 집중적인 비판을 받아 비서직에서 해임되고 농업담당 부수상으로 전직되었다가 1953년 7월 당 정치위의 출석요구를 거부하고 자살을 선택했다. 전쟁 막바지에는 이승엽·이강국 등 남로당 출신 핵심간부 12명이 반국가·반혁명 간첩혐의로 체포되어 그중 10명이 1953년 8월 사형 선고를 받고 처형되었다. ‘비운의 혁명가’ 박헌영 역시 ‘미제의 스파이’ 혐의로 체포되어 1955년 12월 재판을 받고 1956년 7월 19일 처형되었다.
1차 대숙청을 성공시켜 권력의 주도권을 장악한 김일성은 자신의 입지를 확고히 하기 위해 1956년 2차 대숙청을 감행했다. 2차 대숙청은 김일성이 먼저 시동을 걸진 않았다. 위기를 감지한 소련파와 연안파가 먼저 도전해옴으로써 자연스럽게 권력투쟁과 대숙청으로 이어졌다. 과정은 아슬아슬하게 진행되었다. 2차 대숙청은 이른바 ‘8월 종파 사건’에서 비롯되었다. 북한에서 종파란 ‘정치적 야심을 가지고 당에 도전하여 당의 노선과 정책을 무턱대고 반대하는 무리’를 가리킨다. 1956년 2월 흐루시초프가 스탈린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동유럽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가 확산되었을 때 여파가 북한에까지 미쳤다. 김일성이 전후복구를 위해 중공업 우선론과 농업집단화를 펼쳤을 때 연안파와 소련파는 “우선 인민들의 생활을 향상시키기 위해 경공업을 중시하고 사회주의 개조는 천천히 하자”며 반대했다. 또 권력구조와 정책결정 과정이 민주적이어야 하며 인민들의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김일성이 국내에 없는 틈을 타 김일성을 권좌에서 밀어내기 위해 음모를 꾸몄다. 평양 주재 소련대사도 연안파의 실력자 최창익을 불러 거사를 부추겼다.
김일성은 1956년 6월부터 50여일간 경제 원조를 위해 소련과 동구권을 방문하고 있던 중 쿠데타 음모를 전해 듣고 급거 귀국, 반격을 준비했다. 8월 30일 당중앙위 전원회의가 평양예술극장에서 열렸을 때 연안파의 최창익과 윤공흠, 소련파의 박창옥 등이 김일성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나 중앙위원 대부분이 이미 김일성 세력으로 채워진 상태에서 이들의 말발은 먹히지 않았다. 되레 김일성파의 조직적인 반격으로 수세에 몰렸다. 윤공흠은 발언이 끝나기도 전에 단상에서 끌어내려지고 회의가 끝나기도 전에 체포되었으나 감시소홀을 틈타 중국으로 달아났다. 최창익과 박창옥 등은 당직을 박탈당했다. 1라운드는 이렇게 김일성의 승리로 끝났으나 소련과 중국이 각각 미코얀 부수상과 팽덕회 국방부장을 평양에 파견, 김일성에게 8월 전원회의 결정을 취소하라고 압력을 가하면서 2라운드가 시작되었다. 김일성은 압력에 굴복, 9월에 당중앙위 전원회의를 다시 소집해 ‘8월 결정’이 신중치 않았음을 시인하고 출당자들을 복당시켰다. 김일성에게는 두 번째 위기였다. 그러나 미코얀과 팽덕회가 평양을 떠나자 김일성이 역습에 나섰다. 당시 소련과 중국은 자국 내 문제로 더 이상 평양에 간섭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니었다. 또 중국과 소련 사이에 갈등이 깊어지면서 양국은 서로 북한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고 했다.
김일성은 이같은 국제정세를 이용해 반대파들을 반당·반혁명 등으로 몰아세워 1958년 초까지 대대적인 숙청작업을 진행시켰다. 최창익과 박창옥 등은 국가반란음모죄라는 죄목으로 1957년에 숙청되었고 사건에 직접 가담하지 않았던 연안파의 거두 김두봉도 1958년에 쫓겨났다. ‘8월 종파 사건’이 이처럼 김일성의 완벽한 승리로 끝날 수 있었던 것은 김일성의 권력기반이 탄탄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충분한 사전 준비없이 외세의 도움을 빌려 권력에 도전하려한 반대파의 무모함도 주요 원인이었다. 결국 반대파의 섣부른 도전으로 오히려 김일성의 권력만 강화시켜준 꼴이 되었다.
1958년 3월, 김일성이 제1회 당대표자회의에서 “조선노동당에서 종파가 완전히 청산되었다”고 선언함으로써 ‘8월 종파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이로써 김일성은 소련과 중국의 입김에서 벗어나 유일지도체제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김일성과 함께 1930년대 무장투쟁을 전개했던 빨치산파(갑산파)는 ‘8월 종파 사건’ 때는 위기를 모면했으나 1967년 김일성 개인숭배가 노골화하고 1인 절대권력 체제가 확립되는 일대 소용돌이 속에서 모두 숙청되었다. ‘8월 종파사건’은 김일성 집권사에서 최대위기로 일컬어지는 권력투쟁사건이었고 북한역사에서 유일했던 조직적인 반 김일성 운동이었다.

■동독, 베를린 장벽 설치         1961년
1945년 종전 후, 패전국 독일의 영토가 잘리고 교류가 끊겼다. 서쪽은 서방의 연합국이 통치한 반면 동쪽은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진영에 소속되었다. 1949년 동서 양쪽에 각기 다른 정부가 세워지면서 분단은 현실이 되었다. 다만 동독의 한 가운데에 있으면서도 베를린의 서쪽은 서방 연합국의 지배지역이다 보니 갈등이 끊이질 않았다. 그래도 베를린에서는 최소한의 교류는 유지되었다.

▲ 베를린 장벽 공사

서베를린의 여성들은 서독 마르크를 동독 마르크로 바꿔 값이 싼 동베를린 미용실을 이용했고, 동베를린에 거주하는 목수, 미장이, 가정부 등은 낮에는 서베를린에서 일을 하고 저녁엔 동베를린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서독이 ‘라인강의 기적’을 일으켜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서베를린에 일터를 둔 동베를린 노동자들이 점차 되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늘어나고 서독으로 탈출하는 동독인들까지 급증하면서 동독은 대책마련에 부심해야 했다. 1949년 동독 정권이 수립된 이래 1961년까지 사선을 넘어간 사람이 273만명이나 되었다. 특히 교수,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과 숙련노동자의 탈출이 심각해 동독의 기술과 산업의 기반이 뿌리채 뽑힐 판이었다. 어떻게든 서베를린을 동독 영토로 편입시키지 않고서는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1948년 서베를린을 봉쇄했다가 실패했던 경험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소련은 다른 방법을 고안했다. 1958년 11월 소련의 흐루시초프가 “서베를린을 포함 베를린을 6개월 이내에 자치적인 자유도시로 전환시켜 두 독일을 포함한 어떤 나라도 이 도시를 간섭하지 않고 군대도 주둔하지 말자”고 제의했다. 베를린을 비무장 지대로 만들어 궁극적으로 동독에 편입하려는 의도를 모를리 없는 서독과 미·영·불 서방 3국은 소련의 제안을 거절했다. 이후에도 소련은 이런저런 방법으로 베를린 자유도시안을 관철시키려고 했으나 번번히 서방 연합국의 거절로 무산되었다.
1961년 6월 흐루시초프가 "베를린 문제를 빨리 해결하지 않으면 핵무기 사용도 불사하겠다"며 서방연합국에 최후 통첩을 보냈으나, 1961년 7월 케네디 대통령이 “미국은 전쟁을 원하지 않지만 이를 지키기 위해 필요하다면 군사적 대결도 불사하겠다”고 맞받아치면서 베를린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결국 서베를린을 지키려는 미국의 태도가 확고부동하다는 사실을 알게된 소련은 서베를린을 동독에 편입시키려는 계획을 포기했다. 1961년 7월 한달동안 3만명이 고향을 등질 정도로 서베를린으로의 탈출러시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동독은 감시 초소를 늘려 서베를린과의 경계선을 더욱 철저하게 감시했다. 이 조치로 탈출이 다소 줄어들긴 했으나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다.
결국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동독은 1961년 8월 13일 일요일 새벽부터  통행로를 완전 차단하고 철조망을 설치했다. 8월 23일까지 80여개의 통행로 중 73개를 폐쇄했으며 경계선에는 점차 블록과 콘크리트로 만든 높이 5m, 폭 2m의 견고한 장벽을 세웠다. 장벽 위 철책에는 전류가 흘렀다. 이것으로도 부족해 지뢰를 부설하거나 무장군인과 군용견을 배치해 철통같은 감시망을 폈다. 외견상으로는 서베를린에 담장을 둘러친 것처럼 보였지만 결과적으로는 자국민을 감금한 것이었다.
이후 베를린 장벽은 동서대립의 상징이자 독일인들을 갈라놓은 ‘벽’이 되었다. 장벽을 넘으려는 사람들은 누구나 국가반역죄로 가차 없이 처벌되었다. 그렇다고 목숨을 건 탈주가 멈추지는 않았다. 1963년에는 동베를린의 한 가정 화장실과 서베를린의 빵집을 잇는 145m의 터널을 뚫어 59명이 자유를 찾기도 했고, 자동차, 케이블카, 열기구 등의 기상천외한 방법으로도 장벽을 넘었다.  그러나 탈출을 포기하고 경제활동에만 전념하는 사람이 늘어나 동독을 안정시키는 데는 큰 도움이 되었다. 그래도 탈출은 끊이지 않아 이 과정에서 경비병에 사살되거나 사고로 죽은 사람이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까지 239명이나 되었다.

■추송웅 연극 '빠알간 피이터의 고백' 초연     1977년

▲ 빨간 피히터의 고백’에 출연할 당시의 추송웅

1977년, 한국 신극 70년 만에 새로운 이정표가 세워지고 한국 연극사에 새로운 신화가 탄생했다. 신화의 주인공은 기획·제작·연출·장치·연기의 1인 5역을 해낸 연극배우 추송웅(1941~1985)이었다. 경남 고성에서 태어난 그는 다른 형제들이 키도 크고 공부도 잘한 수재들인데 반해 키도 작고 사팔뜨기에 공부도 못하는 집안의 골치덩어리였다. 내성적인 성격에 신체적 콤플렉스를 원죄처럼 안고 살았던 그가 선택한 길은 배고픈 연극이었다.
연극인 생활 15년째, 추송웅은 변변한 수입도 집도 없었지만 아내의 곗돈 75만원을 쏟아부어 무대 데뷔 15년을 자축하기로 했다. 1963년 연극에 투신한 이래 1975년까지 벌어들인 58만8600원이 추송웅의 총수입이었다. 1976년은 그나마 얼굴이 TV에 알려진 덕에 그에게는 거금인 112만원을 손에 쥐었다. 프란츠 카프카의 산문 ‘어느 학술원에 제출된 보고서’를 무대를 올리기로 한 추송웅은 1977년 3월부터 6개월 동안 틈만 나면 창경원으로 달려가 원숭이를 멀뚱히 바라보며 자신을 원숭이 ‘피이터’로 탈바꿈시켜 나갔다. 그의 말마따나 “원숭이를 몸에 넣는 동화(同化)작업”의 연속이었다.
1977년 8월 20일, 추송웅의 모노드라마 ‘빠알간 피이터의 고백’이 객석 130석도 안되는 서울 삼일로 창고극장에 올려졌다. 연극은 첫날부터 대박을 터뜨렸다. 보름 만에 예매표가 1만장 이상이나 팔려 1000만원의 수입을 올렸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공연은 연장에 연장을 거듭, 무려 482회나 계속되어 15만2000명의 관객이 공연장을 찾았다. 그는 뒤이어 1인6역을 맡은 ‘우리들의 광대’를 제작, 1984년까지 512회 23만5000명의 관객을 모아 ‘1000회 모노드라마 출연’이라는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천의 얼굴을 가진 연기자’라는 찬사와 관객들의 환호와는 달리 평론가들로부터는 ‘상업주의 연극의 표본’ ‘관객의 거짓 욕망에 야합한 배우’라는 호된 비판을 받기도 했다. 자신의 삶의 에너지를 무대 위에 모두 소진한 탓일까. 1985년 12월 29일, 44세로 눈을 감았다. 묘비엔 이렇게 씌어있다. ‘빨간 피터, 우리들의 광대, 영원한 연극인’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