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형 ‘역사속의 오늘’ 저자  gorome@hanmail.net

■가쓰라·태프트 밀약 체결   1905년

▲ 가쓰라 다로

러일전쟁의 전세가 일본으로 기울자, 초조해진 조선은 “제3국이 한쪽 정부에 부당하게 행동할 때, 다른 한쪽 정부는 즉각 이에 개입, 거중조정을 행사함으로써 한쪽 정부의 안보를 보장한다”는 조미수호통상조약(1882년) 제1조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었다. 조선의 첫 대미 특사는 이승만이었다. 이승만은 1904년 11월 미국 하와이를 거쳐 하와이 교민대표 윤병구 목사와 함께 1905년 8월 4일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을 만나 조선의 독립 청원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루스벨트는 공식 외교 경로로 독립 청원서가 들어오면 8월 10일부터 시작될 포츠머스 회담 의제로 제출하겠다고만 할 뿐 더 이상의 언질은 주지 않았다. 이승만은 워싱턴의 조선 공사 김윤정에게 독립 청원서를 요청했으나 김윤정은 고종으로부터 명령이 없다는 이유로 청원서 제출을 거절했다. 이승만은 훗날 “김윤정이 자신의 공사직 유지를 위해 일본에 협조하고 있었기 때문에 거절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설사 청원서가 제출되었다 한들 우리의 희망대로 될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당시 루스벨트는 미 육군성 장관 윌리엄 태프트에게 일본 총리 가쓰라 다로와 밀약을 맺으라는 지시를 내려놓고 있었고 실제로 태프트는 일본으로 건너가 1905년 7월 29일 이른바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체결했기 때문이다.

▲ 윌리엄 태프트

러일전쟁 초기부터 일본과 미국은 서로 신뢰하는 관계였다. 루스벨트는 동아시아의 국제정치적 역학관계를 고려할 때 러시아가 미국의 중국 진출에 장애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 따라서 조선을 속국화하려는 일본의 이권을 어느 정도 보장해주면서 일본을 러시아에 대한 방패막이로 삼을 수만 있다면 미국으로서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이런 미일간 우호관계 속에서 1905년 7월 29일 윌리엄 태프트가 일본 도쿄에서 가진 가쓰라 다로 총리와의 장시간 회담 끝에 밀약을 체결한 것이니 사실 놀라울 것도 새로울 것도 없었다. 밀약의 주요 내용은 3가지였다. ▲당시 미국이 점령하고 있던 필리핀에 대해 일본이 어떤 공세적 의도도 갖고 있지 않음을 확인한다는 것과 ▲일본측의 일본·영국·미국 비공식 동맹 제안에 대해 태프트가 미국 의회의 승인없이 ‘조약적 의무’를 갖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밝힌 것 ▲조선에 대한 일본의 지배권이 러일전쟁의 논리적 귀결이라는 일본의 의견을 미국이 인정한다는 것 등이다.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던 회담 내용이 세상에 공개된 것은 1924년 미국의 외교사학자 타일러 테넷의 논문에 의해서였다. 테넷이 미 국회도서관에서 발견한 가쓰라·태프트의 비공식 회담 기록 ‘합의된 비망록’을 토대로 쓴 논문이 1924년 8월 미국 정치학회에서 발표됨으로써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오늘날 이 비밀협상은 두 가지 논쟁점을 던지고 있다. 첫째는 미국과 일본이 한국과 필리핀을 상호교환하는, 이른바 외교적 주고받기 흥정의 의미가 협상내용에 담겨 있느냐는 점이고 둘째는 밀약을 단순히 양국 고위관료간의 의견교환 즉 각서로 볼 것인지 아니면  양국간 법적 의무를 지닌 협정으로 볼 것인지 하는 점이다. 문제는 이 비밀협상이  ‘외교적 주고받기의 흥정’이든 아니든, 비밀협상의 성격이 조약이든 각서든 일본은 영국과의 제2차 영일동맹(8월 12일)과 러시아와의 포츠머스조약(9월 5일)으로 열강의 승인 하에 조선에 대한 보호조약을 공공연하게 강요할 수 있게 되었고 11월 17일 회유와 협박으로 마침내 을사조약을 강제 체결했다는 점이다.

■히틀러 ‘나의 투쟁’ 출간  1925년
1923년 11월 8일 오후8시, 히틀러가 나치 돌격대원 300명을 이끌고 뮌헨 교외의 한 맥주홀에 난입, 천장을 향해 총을 쏘고는 큰 소리로 “혁명이 시작되었다”며 맥주홀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맥주홀에서는 바이에른주(州) 통감 카를이 군중 앞에서 연설 중이었다. 히틀러에게 바이에른 분리주의자 카를은 국민통합을 저해하는 암적인 존재였다. 따라서 카를은 제거되어야 할 인물이었고 주 정부는 전복되어야 했다. 그러나 감시소홀을 틈타 도주한 카를이 이틀 뒤 히틀러를 체포하는 바람에 히틀러의 계획은 무위에 그쳤다.
재판에 회부된 히틀러에게 수감 기간은 오히려 선전·동을 강화하고 입지를 강화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반역죄로 5년 금고형을 선고받고 란츠베르크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을 때도 자신의 궤변을 정리하는 호기로 삼았다. 그는 감옥에서 반(反) 유대인과 반 (反)마르크스주의의 논리를 가다듬었다. 히틀러에게 아리안족은 천재 민족이었고 유대인은 기생동물이었다.
1924년 12월에 출소했을 때 이미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른 히틀러는 자신의 생각을 비서 루돌프 헤스에게 받아 적게 했다. 그리고 1925년 7월 18일, 자서전 ‘나의 투쟁(Mein Kampf)’ 제1권을 출간했다. 원래 제목은 ‘허위, 우열, 비겁에 대한 4년간의 투쟁’이었으나 강렬한 인상을 주자는 출판사 사장의 권유로 제목을 바꿨다. 연말까지 팔린 책은 1만 여권에 불과했지만 히틀러가 권력을 장악하고 ‘나의 투쟁’을 나치의 바이블로 삼은 뒤부터는 거의 2000만부나 팔려 나갔다. “대중은 작은 거짓말 보다는 큰 거짓말에 더 쉽게 속는 법이다”. 그가 ‘나의 투쟁’에서 강조했던 말이다.

■만보산 사건과 화교 배척 폭동  1931년
1931년 7월 1일 아침, 400여명의 중국 농민과 200여명의 조선 농민이 중국 길림성 장춘 교외의 만보산에서 충돌했다. 그해 4월 만보산으로 이주해온 조선 농민들이 중국인 지주로부터 임차한 미개간지에 물을 대기 위해 송화강에서 물을 끌어오는 수로 공사를 하자 “땅이 갈라지고 수해가 예상된다”며 항의해온 중국 농민들이 물리력을 동원, 수로 공사를 저지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충돌이었다. 조선 농민들은 일본이 만주를 침략하기 전, 만보산 일대를 차지하기 위한 일제의 꼬드김에 속아 만보산으로 거처를 옮긴 이주민들이었다.
충돌이 있기 전부터 중국 농민들이 수차례 수로공사를 문제 삼았으나 조선 농민들이 공사를 부추긴 일본만을 믿고 공사를 강행한 게 문제였다. 충돌은 일본 경찰이 “조선인도 일본 국민”이라며 중국 농민들을 무력으로 물리치면서 일단락되었다. 인명피해는 없었다. 그런데도 국내 화교들에 대한 대규모 폭동으로 발전한 것은 일제가 충돌 사실을 왜곡·발표하고 이를 곧이 곧대로 믿은 국내 언론이 호외까지 발행하며 민심을 자극한데 원인이 있었다. 일본 영사관이 제공하는 정보를 만주 장춘 지역의 특파원이 사실 확인 없이 서둘러 타전하고 서울의 본사가 원고를 그대로 믿고 활자화한 것이 오보의 원인이었다.
국내 조선인들은 내막도 모른 채 기사를 사실로 믿고 화교들을 향해 분노를 폭발했다. 화교 습격은 7월 2일 늦은 밤 인천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화교가 운영하는 상점의 유리창이 모조리 깨지고 이에 놀라 뛰쳐나온 화교들은 구타를 당했다. 7월 3일 아침, 일제는 인천 전역에 비상계엄령을 내려 화교가 경영하는 상점의 영업을 중지시키고 시내에 흩어져 있는 화교들을 중국 영사관으로 대피시켰으나 폭동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인천에서 시작된 화교 배척 폭동은 7월 3일 서울로까지 번졌다. 4일까지 서울에서만 170건이 넘는 폭행과 기물파손 사건이 발생했고 중국 총영사관으로 피신한 화교만 4200명에 달했다.
가장 피해가 컸던 곳은 사망자와 부상자 대부분을 차지한 평양이었다. 7월 4일 밤부터 6일까지 계속된 평양 폭동은 “평양 시외에서 조선인 30명이 중국인에게 몰살되었다” “만주 장춘에서 60명의 동포가 학살되었다”는 등 근거 없는 유언비어까지 더해지면서 삽시간에 평양 거리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화교들의 상점과 가옥은 대부분 파괴되거나 불에 탔고 약탈과 폭행이 곳곳에서 자행되었다. 일본 경찰은 평양 시내가 무정부 상태에 빠진 폭동 초기에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다가 폭동의 기세가 한풀 꺾여서야 진압에 나섰지만 화교 거리는 이미 폐허로 변해있었다. 전국 400 여 곳에서 1주일 남짓 계속된 폭동으로 중국 국민당 정부 추산 142명의 화교가 죽고 546명이 다쳤으며 91명이 행방불명되었다. 조선총독부는 7월 16일 사망 97명, 부상자 118명이라고 발표하고, 국제연맹의 ‘리튼 보고서’에는 사망 127명, 부상 392명으로 기록되었다.
폭동은 뒤늦게 일본의 간계에 의해 일어난 사실을 알아차린 조선·중국의 지식인들과 언론이 사태수습에 나서면서 점차 수그러들었다. 동아일보는 ‘이천만 동포에게 고합니다-민족적 이해를 타산하여 허무한 선전에 속지 말라’는 7월 7일자 사설로 폭행을 중단하라고 호소했다. 조선의 각 단체들도 화교 피해자를 위문하고 성금을 전달했으며 서울의 화상총회는 길림성 정부에 만주 거주 조선인의 선처를 부탁하는 서한을 보내 사태 수습에 나섰다.
사태가 가라앉은 7월 18일 중국 국민당이 “만보산 사건은 일본의 계획적인 음모에 의한 것이고 조선인들의 국내 폭거도 일본의 사주에 의한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 ‘만보산 사건’의 진짜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분명히 했다. 화교 배척 폭동은 쇠퇴기에 접어든 국내 화교들이 조선을 완전히 떠나도록 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1930년 말 6만7790명이던 화교 인구가 1931년 말 3만6780명으로 감소했다는 한 조사통계에서 보듯 1년 사이에 3만 여명의 화교가 조선을 떠났다. 두 달 뒤인 9월 18일 일본이 만주사변을 일으켰다는 사실도 만보산 사건이 일제의 획책이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만주사변의 명분도 “중국 내 일본 국민의 신변이 위협받고 있어 보복조치가 필요하다”였다. 사건을 조사한 주일 중국 공사는 “만보산 사건은 한·중 사이의 민족감정을 자극해 두 민족을 분열시키고 만주사변을 일으키는데 이용하고자 한 고도의 계략이었다”고 발표했다. 그 근거로 사건을 조작·발표한 점, 폭동을 한동안 방치하고 수일동안 진압하지 않은 점, 일본인이 조선인 옷을 입고 폭동을 지휘한 점, 화교에 대해 교통·통신 기관을 폐쇄한 점 등을 들었다. 물론 신문의 오보와 유언비어만 믿고 폭동을 일으켜 무고한 화교들을 폭행·사망케 한 조선인들의 폭력적 행위 역시 지탄받아 마땅한 사건이었다.

■로즈웰 UFO 추락사건   1947년
미국 뉴멕시코주 로즈웰에 살고있는 목장주 맥 브레이즐이 폭이 수십미터가 넘는 커다란 웅덩이를 처음 목격한 것은 1947년 7월 3일이었다. 그는 웅덩이 일대에서 회색빛의 파편을 수거해 이웃에 보여주었다. 그 이웃은 훗날 이렇게 증언했다. “우리는 한번도 보지 못한 나무 비슷한 파편을 불에도 태워보고 칼로도 잘라보았지만 타지도 긁히지도 않았다. 맹세코 지구상에 존재하는 물건은 아니었다.” 7월 6일 브레이즐은 자신이 목격한 내용을 그 지역 보안관에게 신고했고 보안관은 다시 로즈웰 육군항공대에 이 사실을 알렸다. 그 후 육군항공대가 이곳에서 파편을 수거하는 며칠동안 일대의 출입은 엄격히 통제되었고 첫 발견자 브레이즐은 1주일동안 구금되었다 풀려났다. 브레이즐은 1963년 사망할 때까지 이 사건에 대해 끝까지 함구했다.
7월 8일 로즈웰 육군항공대의 한 장교가 “추락한 비행접시를 회수했으며 상부기관에 이관되었다”고 공식적으로 발표를 했고, 이후 전세계에는 UFO 신드롬이 일어났다. 마침 10여일 전인 6월 24일 케네스 아놀드라는 사람이 자가용비행기를 직접 운항하다 “미국 워싱턴주 레이니산 상공에서 시속 1000마일이 넘는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디스크 모양의 9개 금속성 비행물체를 보았다”는 소문까지 전해진 터여서 괴소문은 빠르게 확산되었다. 그러나 공식발표가 있었던 그날 오후에 미 국방부가 “잔해는 비행접시가 아니라 단순한 기상관측용 기구”라고 번복 발표하면서 ‘미 역사상 최대 은폐사건’으로 기록된 로즈웰 UFO 추락사건은 시작된다.
이후 UFO 소문은 억측만 무성한 채 눈덩이처럼 부풀려 입에서 입으로 전파되었다. 여기에 사막에서 외계인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소문과 로즈웰 육군비행장에서 외계인의 시신을 보았다는 주장까지 더해지면서 UFO와 외계인의 존재는 눈덩이처럼 커져갔다. 결국 사람들은 미 정부가 추락한 비행접시의 잔해와 시신을 비밀리에 거둬갔다는 설을 사실로 믿었고 그렇게 세월은 흘렀다.
사건은 1984년 UFO 연구자들이 ‘MJ 12'에 관한 극비문서를 공개하면서 다시 세인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문서에는 1947년 해리 투르먼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MJ 12’라는 암호명의 미국정부 UFO 조사위원회가 구성되어 추락한 비행접시에 대한 조사를 벌인 것으로 되어 있다. 문서는 트루먼의 후임으로 당선된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보고하기위해 당시 CIA가 작성했다고 했다. 여기에 1995년 영국 UFO협회가 추락사건 때 수거된 외계인 사체의 부검장면이라고 주장하는 충격적인 필름을 공개하면서 사건은 전 세계에 충격을 던져주었다. 필름에 나오는 외계인의 눈은 도마뱀처럼 생겼고 커다란 대머리에 머리털이 없었으며 손가락과 발가락이 각각 6개였다.
사건을 둘러싼 소문이 좀처럼 가라앉질 않자 1997년 6월 24일 미 공군은 사건발생 50년 만에 231쪽의 ‘로즈웰 보고서 사건 종결’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당시 추락현장에서 발견된 비행체 파편은 구소련의 핵실험증거를 포착하기 위한 극비계획 ‘프로젝트 모굴’의 하나로 대기권에 쏘아올린 군용기구의 잔해이며 사체는 낙하산 훈련에 사용된 사람과 같은 크기의 인형으로 외계인이 결코 아니라는 발표였다.
냉전 초창기였던 1947년 당시 미소는 치열한 첩보전을 전개했고 미국측은 소련 상공에 음향탐지 비행선을 은밀히 날려 보냈다는 것이다. 이때 상대의 레이더망을 교란시킬 목적으로 함께 띄워 보냈던 레이더 교란용 특수비행선 중 하나가 고장을 일으켜 지상에 추락한 것이 로즈웰사건을 일으킨 문제의 UFO가 됐다는 설명이다. 브레이즐이 수거한 파편도 발사나무를 아교에 절여 제작한 것으로 결코 우주물질이 아니며 뉴욕의 한 장난감 공장에서 제작한 것일 뿐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모굴 프로젝트의 책임자였던 한 퇴역대령은 “군사기밀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그동안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고 주장하며 냉전시대가 남긴 웃지 못할 해프닝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프랑스 비시정부 수반 앙리 페탱 옥중 사망  1951년
프랑스 현대사에서 영욕의 교차가 가장 뚜렷한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앙리 필립 페탱이다. 그는 군인으로는 영웅이었으나 정치가로는 반역자였다. 1차대전 4년 동안 대령에서 원수로 승승장구할 만큼 페탱은 뛰어난 군인이었다. 그에게는 늘 ‘베르덩 전투의 영웅’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녔다. 병사들에게도 페탱의 인기는 언제나 최고였다. 그가 지휘하면 죽을 확률이 적다는 이유에서였지만 성품도 온화했다.
국민적 영웅이 어느 날 갑자기 반역자의 나락으로 떨어진 것은 히틀러가 1940년 6월에 속전속결로 프랑스 국경을 돌파하면서였다. 프랑스 정부가 남으로 후퇴하자 800만 명에 가까운 민간인들도 뒤를 따랐다. 대탈주극이었다. 사태해결을 놓고 지도자들의 의견이 엇갈렸다. 휴전을 원하는 그룹에는 페탱이 있었고, 항전을 원하는 쪽에는 드골이 있었다. 총리의 사임으로 6월 16일 제3공화국의 제107번째 총리가 된 페탱은 6월 18일 라디오로 히틀러에게 휴전을 제의했다. 드골은 이튿날 런던으로 망명, 철저 항전을 호소했다.
6월 22일, 페탱의 주도로 프랑스는 독일과 휴전했지만 사실상 항복이었다. 이로써 북쪽에는 독일군이 주둔했고, 남쪽에는 히틀러의 묵인 아래 전원도시 비시에 세운 페탱의 ‘비시 정부’가 들어섰다. 7월 10일 프랑스 의회가 569대 80이란 압도적인 지지로 페탱에게 전권을 부여하자 비시를 수도로 한 새로운 정부 ‘프랑스국’이 탄생했다. ‘괴뢰정부’라는 것이 정설이지만 독일군에 의해 강제로 세워진 정권이 아니라 합법적 절차를 거쳐 세워진 자발적인 정부이기 때문에 괴뢰정부로 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주장도 있다. 어쨌거나 프랑스 젊은이들은 독일로 끌려갔고, 프랑스 기업들은 군수품을 생산했다. 페탱은 전쟁이 끝나고 재판에 회부되었지만 그도 할 말은 있었다. 프랑스 남쪽이 그나마 독일군으로 부터 파괴를 면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히틀러에게 협조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종전 후 페탱은 국가반역죄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종신형으로 감형되어 수감생활을 하던 중 1951년 7월 23일 95세로 되섬에서 옥중 사망했다.

■뉴욕 타임스, 로켓 이론 비판했던 49년 전 사설을 정정  1969년
훗날 ‘로켓의 아버지’로 불린 로버트 고다드가 1919년 ‘극단고도에 도달하는 기술’이란 제목의 논문을 통해 “엔진의 추진력을 충분히 높여준다면 로켓이 달까지 갈 수 있다”고 주장했을 때 뉴욕 타임스는 냉소로 반응했다. 1920년 1월 13일자 사설에서 “고다드가 고등학생 수준 이하의 지식으로 논문을 썼다”며 “공기가 없는 곳에선 추진을 할 수 없어 로켓의 우주비행은 불가능하다”고 혹평한 것이다. 고다드는 “모든 이상은 그것을 처음 이룬 사람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농담처럼 들린다”며 담담하게 신념을 밝혔으나 언론과 과학자들은 고다드를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했다. 동료들도 “달나라 가는 로켓일은 잘 되냐”며 비아냥거렸다.
고다드는 아랑곳하지 않고 연구에 매진, 1926년 3월 16일 인류 최초로 액체로켓을 12.3m 높이까지 발사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로켓사(史)에 이름을 굵게 새겼다. 그래도 냉소는 여전히 계속되어 1929년 7월 고도계, 온도계, 기록용 카메라를 탑재한 로켓을 발사했을 때 실험이 일으킨 소음으로 경찰과 신문기자가 달려오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한 신문은 ‘달나라 로켓, 목표물에서 238,799.5마일에서 벗어났다’는 제목으로 대서특필하며 고다드에 대한 조소를 멈추지 않았다.
고다드의 연구성과는 V2로켓을 개발한 폰 브라운에까지 영향을 미쳤으나 살아있을 때보다는 1945년 죽은 뒤에 더 진가를 인정받았다. 1959년 미 의회가 고다드의 역할을 재평가해 NASA 내에 고다드 우주비행센터를 설립하고 1960년에는 미망인에게 214개의 특허 사용료로 100만 달러를 지급했다. 뉴욕타임스는 1969년 7월 17일자 신문에 ‘A Correction’이라는 제목의 정정기사를 실었다. 고다드를 조롱했던 49년 전의 사설을 뒤늦게 사과한다는 정정기사였다. “계속된 조사와 실험이 17세기 뉴턴의 연구 성과를 확인해 주었다. 그리고 오늘날 진공상태 뿐만 아니라 대기에서도 로켓이 기능할 수 있다는 것이 분명하게 입증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당시의 잘못을 사과한다.” 그날은 아폴로 11호가 발사된 날이었다.

■미국의 전설적 노조운동가 지미 호파 실종    1975년
지미 호파는 미국 노동계의 전설이다. 대공황이 막 시작되던 1930년 17세의 나이로 도매상 점원 생활을 하며 노동자로서의 삶에 첫 발을 내디딘 이래 노조의 권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강성 노동운동가였다. 목표만 달성한다면 그에게 ‘도덕’은 거추장스러운 멍에일 뿐이었다. 마피아와 결탁했고 그의 앞을 가로막는 자는 누구도 용서하지 않았다. 그 덕에 1930년대 초만 해도 기껏 10만명 안팎이었던 ‘팀스터스(트럭운전사조합)’는 1957년 그가 위원장이 되면서 230만명에 달하는 초대형 조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56년 ‘팀스터스’와 마피아가 연계된 비합법적 활동이 드러나고 존 F 케네디 상원의원이 지휘하는 노동특별위원회가 팀스터스와 호파를 조사하면서 호파와 케네디가(家) 사이에 불꽃 튀는 접전이 벌어졌다. 1957년 존 F 케네디의 동생 로버트 케네디가 노조 자금을 개인 용도로 사용했다는 혐의로 호파를 기소했으나 배심원의 혐의 불인정으로 1라운드는 호파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케네디와 결탁한 AFL-CIO(산별노조 총연맹)가 팀스터스를 연맹에서 추방하고, 1961년 케네디 형제가 각각 대통령과 법무장관이 되면서 진짜 위기가 닥쳐왔다. 로버트가 호파를 가리켜 “미국의 최대 적”이라고 비난했을 때 호파 역시 “이봐, 애숭이, 트럭 몰아봤어? 노동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면 말하지 마”라고 면전에서 퍼부은 독설은 유명한 일화로 남아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호파는 ‘노동계의 대통령’ ‘노조원의 우상’이 되었으나 부패와 독직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로부터는 자유롭지 못했다. 결국 1967년 공금 유용과 배심원 매수 혐의로 13년형을 선고받고 철창행 신세가 되었다가 1971년 닉슨 대통령의 사면조치로 4년 만에 풀려났다. 컴백 시도로 그의 과거 심복이었던 새 위원장과 갈등을 빚고 있던 1975년 7월 30일, 2명의 마피아 조직원과 만나기로 한 디트로이트의 한 식당에서 목격된 것을 마지막으로 종적이 묘연해졌다. 시신도 발견되지 않았다. 실종과 사인을 둘러싼 각종 추측만 난무할 뿐 어느 것 하나 밝혀진 것 없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아프리카 기아와 ‘라이브 에이드(Live Aid)’ 콘서트   1985년
1980년대 들어 검은 대륙 아프리카가 기아로 신음했다. 1982년부터 수년간 계속된 20세기 최악의 가뭄으로 아사자가 속출하면서 아프리카는 죽음의 땅이 되었다. 밭에는 곡물을 심을 수 없었고 강물은 메말라 해수가 역류했으며 우물에는 먹을 물조차 없었다. 이미 10년 전 가뭄으로 30만 명의 아사자를 냈는데도 또다시 재앙이 아프리카를 엄습한 것이다. 아프리카인 5억 명 중 1억5000만 명이 기아로 내몰린 직접적인 원인은 가뭄이었다. 그러나 아프리카 각국 정부의 부정부패와 실정으로 평소 가뭄에 대비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것은 정부가 자초한 인재(人災)나 다름없었다. 아프리카 국가들의 정정불안과 반정부 게릴라도 사태를 악화시켰다. 우익이든 좌익이든 보급로를 장악한 반군들은 구호양곡의 수송을 방해했고, 이로 인해 아프리카는 더욱 참혹한 상태로 내몰렸다.
그 중에서도 에티오피아가 가장 비극적이었다. 10년 전 가뭄으로 20만 명의 아사자를 낸 에티오피아는 그때의 참극이 원인이 되어 셀라시에 황제가 쫓겨나고 사회주의 국가가 수립되었으나 나아지기는커녕 사태만 더욱 악화시켰다. 서방국가들은 사회주의 국가 에티오피아에 투자하길 꺼렸고, 이 때문에 농촌은 자연재해에 무방비한 미개발 상태에 머물렀다. 소련은 무기만 지원했고, 에티오피아 정부는 25만명의 상비 병력을 유지하는데 국가예산의 40%를 퍼부었다. 결국 1985년 6월까지 200만 명의 아사자를 낸 것으로 추정된 아프리카에서 에티오피아에서만 100만 명이 굶어죽었다.
아프리카의 비극은 1984년부터 전세계 언론에 소개되었다. 1984년 11월 어느날, TV를 보던 아일랜드 록 가수 밥 겔도프의 눈가에 물방울이 맺혔다. TV에는 에티오피아 난민의 참담한 모습이 비춰지고 있었다. 겔도프는 즉각 음악계 친구들에게 특별 프로젝트를 제안했고, 며칠후 영국 최고의 인기 팝스타들이 영국의 작은 도시 노팅힐의 한 스튜디오에 모였다. 보이 조지, 듀란 듀란, 조지 마이클 등 36명의 스타들은 그 자리에서 ‘밴드 에이드’(Band Aid)를 결성하고 ‘Do they know it’s a Christmas?(그들이 크리스마스를 알까요?)'를 녹음했다. 노래가 영국 차트 1위에 올라 수백만 장이 팔려나가자 미국 팝스타들의 마음도 꿈틀거렸다. 그들을 모으기 시작한 것은 미국의 가수이자 사회운동가인 해리 벨라폰테였다. 팝스타 50여명이 뜻을 같이하겠다며 자선그룹 ‘USA for Africa’를 결성했으나 빡빡한 개인 일정으로 한자리에 모이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1985년 1월 28일의 ‘미국 음악 시상식’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시상식이 끝나고 밤새 뒤풀이 파티를 하는 것이 관례였으나 이날만은 달랐다. 스티비 원더, 티나 터너, 다이애나 로스, 신디 로퍼, 케니 로저스, 빌리 조엘 등 쟁쟁한 음악 스타들이 그날 밤 할리우드의 A&M 스튜디오에 비밀리에 모였다. 그렇게 모인 50여명은 밤늦게까지 마이클 잭슨이 작사하고 라이오넬 리치가 작곡한 역사적인 노래 ‘We are the world’를 녹음했다.
1985년 3월 7일 싱글 음반에 담겨 발매된 노래는 ‘역사상 가장 빨리 팔려 나간 앨범’이란 수식과 함께 대단한 인기와 찬사를 누리며 미국 차트에서 4주간이나 정상을 차지했다. 세계적으로 2000만장이 판매되면서 1980년대 최다판매 싱글 음반이 되었다. 1985년 6월, 이 음반 판매수익으로 구입한 음식과 비타민, 약품, 의류 등을 실은 대형 화물기가 처음 미국을 이륙해 에티오피아로 향했다. 노래 한 곡으로 말미암아 아프리카에 지원된 물자의 누계는 총 6300만달러(약 713억원)어치에 이르렀다. ‘노래 한 곡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실제 사례가 된 셈이다.
1985년 7월 13일, 민족과 국경을 초월한 인류애가 노래의 대합창으로 지구촌에 울려퍼졌다. 아프리카 기아 난민 돕기 자선운동의 결정판인 초대형 자선 콘서트 ‘라이브 에이드(Live Aid)’가 영국과 미국 두 곳에서 동시에 열린 것이다. 경쟁 상대이던 영국과 미국의 아티스트들은 이날 만큼은 손을 잡고 마음을 합쳤다. 콘서트는 세계 유명가수 200여명이 출연한 가운데 16시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7만2000여명이 운집한 영국 런던의 웸블리 구장에는 폴 매카트니, 마돈나, 비치 보이스 등이 열창해 관중을 매료시켰고, 9만 명이 운집한 미국 필라델피아의 존 F 케네디 스타디움에는 존 바에즈, 보브 딜런, 에릭 크랩튼 등이 출연해 팬들을 황홀경에 빠뜨렸다. 16개의 인공위성에 실려 전 세계 약 160개국에서 동시 또는 녹화로 중계된 공연은 세계 20억 인구가 시청했고 모금액은 예상액 1200만 달러의 4배가 넘는 5300만 달러나 되었다. 팝스계 사상 일찍이 없었던 ‘사상 최대의 빅 이벤트’였고, 팝음악이 시대정신의 산물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준 현장의 승리였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