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책무형 참여학교의 필요성

▲ 이재경 교장

 흔히 한 나라의 교육을 국가의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고들 한다. 교육이 그 나라의 미래 운명을 좌우하는 중대한 것이라는 의미인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원칙없이 가벼이 조변석개(朝變夕改)해서는 안 됨을 경계하는 말이다.
 그러나 자고나면 변하는 입시정책과 수시로 바뀌는 교육과정, 주권자들의 인기와 표를 의식한 선출직 시·도 교육수장들의 실적 위주 정책 사업의 남발은 교육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 정신을 무색케 하고 있다. 학교현장에 안착되기도 전에 바뀌는 교육과정 개정은 교육현장의 혼란을 야기하고 있고, 교육청이 앞장서서 벌이는 실적위주의 정책사업을 수행하는 역할로 인해 학교는 정작 학생지도와 학력신장 등에 소홀할 수 밖에 없으며 이는 공교육의 질적 저하로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서울시 교육청은 2016 학교업무 정상화 6대 과제를 추진한다고 밝혔는데 교사로 하여금 교육에 집중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한다는 원칙하에 교육청 정책 사업을 대폭 감축한다는 것이다. 수시로 바뀌는 정책 사업 탓에 교사와 학교가 상당 부분 빼앗겼던 교육적 힘을 학생지도와 교실수업의 향상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늦었지만 교육의 원칙을 따라 마땅히 가야할 방향이라고 본다.

 교육이 한 나라의 미래를 결정짓는 핵심요소임을 알기에 교육에 대한 우리 국민의 기대와 열망은 크다. 문제는 현 상황의 우리교육에 대한 기대와 함께, 불신과 우려 또한 그 어느 때 보다 크고 깊다는 점이다. 가장 심각한 학력저하, 사교육의 폐해에 대한 수많은 대책이 논의되어 왔으나 뚜렷한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으며 그것은 우리교육이 해결해야 할 제1과제로 남아 있다.
 어떤 정책과 해결방안이 나온다 하더라고 결국 학력저하와 사교육의 문제 등으로 인한 교육 문제의 궁극적 해결과 실천은 개개 학교의 교육활동이 어떻게 효과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느냐로 판가름 난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이런 맥락에서 큰 틀에서의 교육적 지향점은 공유하되, 교육청 정책사업의 수와 양을 대폭 줄여 학교 현장의 자율성과 책무성을 발현시키고 확대하는 방안을 제시하고자한다.
 
 학교의 자율성과 책무성은 교육공동체의 협력에 의한 ‘책무형 참여학교’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본다. 자율과 창의에 기반하는 ‘책무형 참여학교’는 학부모와 지역사회가 학교를 신뢰하며 지원할 수 있는 참여학교이며, 교직원의 능력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책무를 중시하고 자생적 공동실천을 모색하는 학교이다. 또한 학생 간, 학생-교사 간, 교직원 간, 가정과 지역사회와의 공존과 공생을 중시하는 교육환경을 조성하여, “선교인간(先敎人間) 후교지기(後敎知技) 즉, 인간 됨됨이를 가르치는 인성교육의 바탕위에 지식과 기술을 가르치는 실력연마에 중점을 두어 바른 인성을 갖추고 긍정적 자아개념을 신장시켜 자신의 적성과 꿈에 기반을 둔 재능과 실력을 키우는 학교이다. 그리하여, 학교는 학생들이 꿈을 실현 할 수 있는 학습의 장이 되고, 선생님들에게는 신명나는 교육으로 보람과 긍지를 얻는 터전이 되어야 하며, 학부모에게는 자녀를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신뢰의 장이 되어야 한다” 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2. 책무형 참여학교의 운영
 1) 학교교육 환경 변화에 따른 기본관점
 최근 몇 년 간 학교는 학부모의 학교교육에 대한 관심과 참여가 학부모회의와 학교운영위원회 참여 및 봉사활동 및 각종 교육기부활동 등을 통해 적극 반영되고 있고, 지역사회와 인적, 물적 자원을 통한 소통과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교실수업향상 및 학생생활지도에 대한 교사들의 욕구는 전문성 계발을 위한 각종 연수 및 자발적 실천모임 활동으로 구체화되고 있으며, 학교운영에서 학생의 자율성과 인권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 변화에 못지않게 부정적인 측면도 부각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수시로 변하는 교육정책과 입시정책에서 오는 혼선과 공교육에 대한 불신감은 이기적 출세주의에 사로잡힌 학부모의 뿌리 깊은 사교육 편승 심리를 갈수록 부추기는 강력한 원인이 되었고, 사교육비의 증가는 가정경제를 넘어 국가경제의 심각한 저해 원인이 되었다. 또한 민주사회의 구성원으로 성장하는데 필요한 책임과 의무를 무시하고 방종에 가까운 이기적 자유를 인권으로 착각하는 일부 학생과 학부모는 교사들의 교육적 의지를 약화시키고 전통적으로 교육과 훈육기능을 담당하던 교사의 역할을 무력하게 하고 있다.
 
 작금(昨今)의 학교교육 현장의 변화와 문제점을 통해서 본 시사점 및 과제를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하면 첫째, 교사와 학부모, 학생과 교사, 교사와 교사 간 상호 신뢰와 존경의 교육적 관계 정립의 필요성. 둘째, 학생의 학업부실구조에 대한 총체적이고 정책적인 대응전략의 수립 및 교사의 사기진작과 전문성 수준을 높이기 위한 노력과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학생지도력의 신장. 셋째, 학교교육에 대한 가정과 지역사회와의 협력 필요성이다. 같은 맥락에서 학교현장의 과제를 해결하고자 제시하는 핵심방안이 바로 ‘책무형 참여학교’의 운영이다.
 
2) 책무형 참여학교 운영의 실천전략
 책무형 참여학교는 네 가지 실천전략과 그에 따른 세부운영을 통해 운영된다.
 첫째, 교육공동체의 관계조성을 위한 개방·협력적인 학교의 운영이다. 이는 교사와 학생과의 대화와 소통을 위한 노력, 민주적인 교무회의 및 협의회 활성화와 학부모회 활성화와 학교교육과정 공개, 학교운영위원회 활성화 및 지역사회 전문인사 초청 특강 및 토론회 활성화, 지역민을 위한 학교도서관 개방 및 독서교실 운영, 지역민 합동 생활체육 활성화 등을 통해 학교를 소통과 신뢰를 통한 열린 공간으로 확장하는 것이다.
 둘째, 책무성을 강조하는 자율학교의 운영이다. 이는 교직원이 스스로 주인의식과 책무성을 가지고 교육활동에 임할 수 있도록 의사결정 권한을 대폭 위임하고 구성원 스스로가 기획하고 창출한 교육활동의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조직의 배치와 연계 및 운영에 있어 자율과 책무, 참여를 기반으로 한다.
이를 위해 학생지도 및 교실수업개선을 최우선으로 지원하는 학교조직의 운영이 강조된다. 학교교육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교사의 자발적 노력과 이를 위한 제도적 지원이 뒷받침되어야하며 무엇보다 현행 교육과정 체제하에서 학교 자율권의 최대한 활용을 통해 학교별 특성을 살릴 수 있어야한다.
 개별학교의 전통을 살리고 학생과 학부모가 원하는 학교특성에 맞는 학교운영을 위해서는 현행 교육행정 기관의 지나친 관리 감독 대신 학교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지원하는 방향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또한 학생의 특성과 흥미 분석을 통한 학교교육과정의 편성과 계발활동 및 방과 후 학교 운영, 진로 탐색 프로그램 및 상담을 통한 진로교육의 강화 등 학생의 특성과 개성을 고려한 교육과정의 운영과 학생선택권과 자율권을 확대하도록 한다. 
 셋째, 창의적인 인재육성 중심의 교수활동 운영이다.
 교사와 학부모 및 전문가로 구성된 학교교육과정위원회의 내실 있는 운영으로 학생 특성을 고려한 창의적 교육과정 편성 및 재구성을 통해 교과·특별·창의적 체험활동 등 학교교육과정 운영전반에서 미래사회를 선도할 창의적 인재육성을 위한 학생의 잠재력이 발현되고 신장되도록 노력한다. 또한 자기장학, 동료장학 및 수업컨설팅 내실화로 교내 수업장학을 활성화하고, 수업공개 및 수업협의와 자료개발 활동을 통한 교사의 전문성 신장을 위해 예산과 행정지원을 확대하도록 한다.
 넷째, 바른 인성을 기초로 교육공동체 각자의 인권이 존중되는 공존과 공생의 생태학교를 지향하는 학교환경을 조성, 운영하는 것이다. 협력학습과 민주공동체의식 고취를 통한 인성교육 및 학생인권 및 교권의 보장으로 서로를 존중하며 교내 유휴지를 활용한 생태 소공원 및 텃밭 가꾸기를 통해 자연친화적인 환경을 조성하도록 한다.
 
 위에서 제시한 ‘책무형 참여학교’의 운영은 교육수요·공급자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소통과 협력의 경로를 통하여 민주적인 경영과 교수 학습활동을 지원하는 행정력의 강화, 가정과 학교, 지역사회의 요구와 갈등을 적절히 조장하는 상황적 관리자 및 지원자로서의 학교장의 역할 수행이 전제되어야 하며, 매년 학교공동체구성원이 참여하는 워크숍을 통해 진단 및 평가가 이루어지도록 하고 진단 결과는 차년도 학교교육계획 수립에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

3. 자율성과 책무성을 통한 학교의 교육력 향상
 대한민국 사람들은 모두 교육에 관한 한 박사라는 말이 있다. 길거리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도 교육문제를 지적하고 해결책을 운운 한다 해서 말하는 자조적인 표현인데, 그만큼 교육이 모든 사람들의 관심사이자 중요한 것인데 비해서 그 해법이 어렵다는 얘기다.
 최근 대한민국의 교육계는 너 나 할 것 없이 핀란드 교육을 통해 우리의 교육적 문제를 진단하고 변화시키는데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핀란드 교육의 성공에는 국가전체에 적용된 일관된 교육철학과 수십 년에 걸친 교육정책의 지속적인 실천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우리교육은 어떤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교육이 철학적 일관성도 정책적 지속성도 없이 교육 권력의 변화에 따라 조변석개(朝變夕改)하지 않는가 말이다. 일부의 교육적 소신에 의해 제시된 수많은 정책들이 급조되어 시행되다가 정권이 바뀌거나 시간이 지나면 ‘아니면 말고’식으로 예산과 교육력만 낭비하고 사라진 사례가 어디 한 두 번이던가!
 
 충분히 검토되지 않았고 여건도 마련되지 않은 상태의 교육적 관점과 철학이 새로운 교육정책으로 현장에 급파되었을 때 학교와 교실, 그 안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들은 그야말로 임상시험 혹은 실험대상이 되는 것이다. 교육은 한 나라의 미래를 결정짓고 한 개인의 인생 전체를 결정하는 중요한 일이다. 그러기에 교육정책이 수시로 변하며 실험과 실습으로 이루어지다가 아니면 말고 식으로 폐기처분되는 것은 한 나라의 운명에도 한 개인의 삶에서도 매우 위험천만한 일이다.

 다른 나라에서 성공한 사례를 가져와서 급하게 적용하기에 앞서 우리의 교육에 대한 반성을 통해 일관된 철학을 세우고 그에 맞는 정책을 신중하게 제시하고 검토하고 여건을 마련한 다음 수십 년을 이어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을 지금이라도 해 나가야 한다.
 또한 교육현장의 목소리를 읽어내지 못한 채 하향식으로 주어지는 각종 정책은 최대한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일부 시·도 교육청의 여전히 고압적이고 권위적인 행정이 변해야 한다. 교육철학과 정책은 공유하되 그 시행과 방법론에서는 학교의 상황과 입장에서 충분히 자율성과 책무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교육청이 학생과 학부모 지역사회의 필요와 요구에 맞는 다양한 교육적 실천을 하지 못하도록 작은 부분까지 세세히 규제하고 교육청 매뉴얼대로만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주기를 바라는 구태적인 양상을 강요하는 한 학교는 창의성과 자율성을 상실한 교육의 말단 행정기관일 뿐이다.
 자율성과 책무성을 상실한 학교와 교실에서 다양성과 창의성에 기반한 미래의 핵심 인재를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학교의 구성원인 학생과 학부모의 요구를 바탕으로, 학교의 교육적 소신이 자율성을 통해 발휘되고 그 결과는 다시 학생과 학부모 및 지역사회와의 관계에서 책무성이 검토되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불신의 교육을 바로 세우고 공교육의 위상을 바로 잡는 출발이라고 생각한다.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