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은 호국보훈의 달로 우리에게 익숙하다. 조국의 의미와 또 그 조국을 지키기 위해 희생과 헌신을 마다하지 않았던 호국영령들과 국가유공자들에 대한 감사와 존경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다. 조국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았던 지난 시절, 개인적 유익과 안락을 구하지 않고, 조국을 위해 생명까지도 기꺼이 바친 호국영령들의 애국심과 고귀한 희생정신은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소중하게 간직되어야 한다.

▲ 경기대 국제대학 유영옥 학장

언제나 이맘때쯤이면 전국 여기저기에서 호국보훈과 관련된 행사들이 넘쳐난다. 그러나  대부분이 형식적인 의전행사에 지나지 않는 것만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서일까 이제 몇 분 남지 않은 백발이 성성한 역사의 증인들이 절절한 기억을 야윈 가슴에 안고 헌화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죄스러움과 안타까움을 감출 수 없다. 지금 우리가 딛고 서 있는 이 땅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의 희생까지도 감수해야만 했던 사람들... 과연 얼마나 우리는 그 분들에 대해 기억하고 있는가? 그들의 헌신과 희생으로 얻어진 자유와 풍요를 누리고 있으면서도 정작 우리는 기억해야만 하는 것을 잊고, 감사해야만 하는 것에 무관심한 채 몰염치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 번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애국심과 국가발전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강대국을 이루었던 모든 국가들은 언제나 애국심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강조하였고, 국가유공자에 대한 최고의 예우를 아끼지 않았음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우리와는 매우 긴밀한 군사적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만 보더라도 그들이 얼마나 국가유공자들을 정성껏 예우하고 있는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일예로 해마다 수천억 원의 예산을 들여 제 2차 세계대전을 비롯해 그동안 미군이 참전한 지역의 유해발굴과 실종자 수색을 지금도 이어가고 있다. “조국은 그대를 버리지 않는다”는 약속을 묵묵히 지켜나가고 있는 모습이 감동적이다. 이러한 일관성 있는 국가보훈정책을 통해 대표적 다민족·다문화 국가인 미국은 국민들의 가슴 속에 자연스럽게 애국심을 성공적으로 각인시켜 가고 있고, 그것이 국민 전체의 의식통합과 단결된 힘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오늘의 미국이 있게 한 내적 힘의 근원이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한 때 우리의 적국이었던 러시아도 예외가 아니다. 혁명 전의 강력한 군사력과 국력을 자랑하던 재정러시아 시대뿐만 아니라 공산주의 혁명이후 구소련에서도 국가보훈은 국가정책에 있어 언제나 최우선의 과제였다. 국가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항상 참전용사에 대한 배려와 예우를 잊지 않았다. 특히 재정적 부담이 비교적 적으면서도 국가유공자들에 대한 국민적인 존경심을 효과적으로 유도해 낼 수 있는 상징적 보훈정책이 잘 발달되어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크레믈린 대통령 집무실 가까운 곳에 설치되어 있는 호국영령을 추모하는 ‘꺼지지 않는 불’일 것이다. 러시아에서 전몰용사를 기념하는 추념의 불은 이미 특별한 의미로 러시아 인들의 가슴 속에 새겨져 있다. 그래서 그들은 마치 성지순례를 하듯 결혼예복을 하고 이 불 앞에 와 헌화를 하고서야 결혼예식을 완성한다. 
 얼마 전 영국인들뿐만 아니라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영국 왕실의 결혼식에서 신랑 윌리엄 왕세손이 입고 나온 결혼 예복은 다름 아닌 아프간 전쟁에 참전한 영국 육군 ‘아이리시 가드(Irish Guard)’ 보병 대령복장이었다. 영국 사회의 군에 대한 존경과 예우의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좋은 예이다. 영국과 영연방 국가들 곳곳에는 세계대전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거기에 적힌 로렌스 비니언의 “그들이 늙고, 나이가 그들을 시들게 하고, 세월이 그들을 잡아먹어도 우리는 그들을 기억한다” 라는 헌시(獻詩)는 영국인들의 국가유공자에 대한 기본자세를 잘 보여준다. 
  반면 우리 대한민국의 실정은 어떠한가? 아직까지 국가유공자와 그 유가족에 대한 적법한 예우와 지원이 어떠해야 한다는 호국보훈에 관한 기본법조차 부재한 실정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그동안 일관성이 결여된 보훈정책이 난무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국민통합과 애국심 고양의 근간이 되어야 할 국가보훈정책이 오히려 보훈 대상단체들 뿐만 아니라 그 외 일반인 사이에서 갈등과 분열을 야기하고, 국가에 대한 불신의 원인이 되기까지 하는 씁쓸한 상황이 지속되어 왔다.
  그동안 우리는 근대화와 민주화를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국가정체성과 국민통합의 근간을 이루는 보훈정책을 진지하게 생각할 여유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 조국 대한민국은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향해 가고 있으며, 무역규모 면에서는 세계 10위권을 다투고 있을 만큼 성장해 있다. 이제라도 우리가 지니고 있는 외적 성장에 걸맞은 보훈 기본법과 정책을 마련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특히 그동안 국가보훈 이념과 목적에 대한 명확한 인식 없이 당시의 정치적·사회적 필요에 따라 임시방편으로 제정된 개별법들을 체계적으로 일원화하는 일에 먼저 주력해야 할 것이다.  
  국가보훈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국가적 지원이 특별히 요구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우선되는 것은 한반도가 아직 전쟁의 위협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지난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불법포격을 통해서도 여실히 확인되었듯이 북한 김정일 독재정권은 아직도 적화야욕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그들은 핵무기를 비롯한 생화학무기를 끊임없이 개발해 오고 있으며, 전문적인 ‘정보전사’를 양성해 ‘사이버 테러’를 시도하는 등 호시탐탐 남한 전복의 기회를 노리고 있다.
  이렇게 북한의 우리를 향한 공격 전략은 점점 더 다양하고 교묘해져 가는 반면, 우리 사회는 남남분열이라는 덫에 한 쪽 발이 빠져 서로를 반목하고 불필요한 편 가르기를 지속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급속한 경제 성장과 함께 도래한 공동체 의식의 감소, 개인의 자율성, 자유, 권리에 대한 주장 확대와 같은 가치관의 변화는 우리를 더욱 사분오열하게 만들고 있다. 또한 그동안 우리가 줄곧 되뇌어 왔던 ‘평화통일’에 대한 염원은 마치 한반도에 전쟁이란 다시 발생하지 않을 것이며, 영원히 평화만 있을 것처럼 여기는 만성적인 안보 불감증으로 전이되어, 국가 전체적인 안보의식 수준이 이미 위험수위에 이르렀다. 바로 이러한 우리의 현실이 국민통합과 안보의식 확대를 절실히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를 효과적인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국가보훈이 주목되는 이유이다.    
  국가유공자들에게 합당한 보훈정책은 군인에게는 올바른 국가관을 갖게 하고, 국민에게는 안보의식을 강화시키며, 유가족과 순국선열 및 생존하는 참전용사와 혁명참가자들에게는 명예를 회복시켜주는 일이다. 특히 아직 생존하는 국가유공자들에게는 그들이 긍지와 자부심을 지니고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세심한 복지혜택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빠르게 변화하는 한국사회의 특성을 고려해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보훈정책의 확대가 절실히 요구된다. 목숨 바쳐 지키려 했던 자신의 조국이 이제 번영의 길에 있다면, 적어도 조국을 위해 전심을 다했던 젊은 시절을 후회하지는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보훈정책은 이 나라를 이어갈 후손들에게 조국의 의미와 애국심의 가치를 계승할 수 있는 매우 훌륭한 교육방법이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점이다. 나라를 사랑하는 정신을 효과적으로 계승하고 가꾸어 나가기 위해서는 이를 담을 수 있는 문화적 틀이 필요하다. 이 문화적 틀은 순국선열들과 애국용사들의 조국과 민족을 위한 공헌과 희생을 숭고한 애국심의 귀감으로 삼으며, 이를 존경하는 분위기가 조성될 때 비로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인식하에 그동안 국가보훈처를 비롯한 많은 관계부처에서 보훈문화 확대를 위해 각종 보훈문화상, 기념행사, 역사체험, 추모활동, 문화예술활동 등 여러 가지 다양한 정책개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아직까지 우리 사회 속에서 국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유공자들에 대한 존경과 예우가 문화로서 정착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정부는 국가보훈의 중요성과 보훈문화 정착이 현재 우리 대한민국에 필요한 이유와 구체적인 사업 방법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해야만 할 것이다. 왜냐하면 국가보훈은 하나 된 대한민국 발전의 초석이 되기 때문이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