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으로 무려 3년여를 끌어온 동남권 신공항 입지 선정 작업이 지난 3월 30일부로 사실상 백지화됐다. 입지 후보지로 경쟁을 벌인 경남 밀양과 부산은 공황 상태에 빠졌다.

경북 지역 한나라당 소속 지방자치단체장은 물론, 한나라당 의원들조차 친이, 친박계를 가리지 않고 정부의 결정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더욱이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도 “(대통령이) 국민과의 약속을 어겼다”며 강한 유감을 표시해 타는 불에 기름을 부었다.

경남 밀양과 부산은 공황 상태
동남권 신공항 건설계획 추진에 앞서 부산·대구·울산 및 경남·북 등 5개 광역시·도는 국토균형발전과 지역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그리고 지역의 항공수요 증가에 따라 신공항 건설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꾸준히 제기해 왔다. 이에 이명박 대통령이 대통령 선거 당시 동남권 신공항 건설을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구체화된 동남권 신공항 건설 계획 추진은 이명박 정부 들어 더욱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동남권 신공항 입지평가위원회는 3월 30일 과천 국토해양부 정부청사에서 신공항 종합평가 결과 가덕도 38.3점, 밀양 39.9점으로 2곳 모두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최종 판단했다고 발표했다. 평가는 공항운영(장애물·공역·기상/가중치 30점), 경제성(수요·비용·편익·건설계획/40점), 사회·환경(접근성·토지이용·환경/30점) 등 크게 3개 분야로 나눠 이뤄졌다. 신공항 후보지는 100점 만점 가운데 50점 이상 받아야 하며 평가점수가 50점에 미달되면 탈락한다. 평가분야 중 비중이 가장 큰 경제성 분야에서 가덕도는 12.5점, 밀양은 12.2점을 받았다. 공항운영 부문에서는 가덕도 13.2점, 밀양 14.5점, 사회·환경(30점) 분야에서는 가덕도 12.6점, 밀양 13.2점을 각각 받았다. 신공항 입지평가위원회는 지난 9개월간 국제기준과 국내외 사례, 국토연구원 용역결과 등을 검토해 평가항목을 결정하고 지난 3월 27일 평가단을 선정했다. 평가단은 지난 3월 28∼29일 위원회로부터 넘겨받은 자료를 평가하고 현장 실사에 나섰다. 박창호 동남권 신공항 입지평가위원장은 “두 후보지 모두 지형조건이 불리해 환경훼손, 사업비 과다 등 문제가 많아 공항 입지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영남권 주민들의 염원에도 불구하고 국가적 차원에서 아직 신공항 건설 시기와 여건이 무르익지 않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후 국토해양부(이하 국토부)가 3월 30일 “부산 가덕도와 경남 밀양 신공항 후보지 두 곳 모두 경제성이 낮게 평가돼 부지 선정을 백지화한다”고 발표했다.

백지화는 미리 정해놓은 시나리오?

▲ 김황식 국무총리는 동남권 신공항 건설계획 백지화에 대하여 “대승적 차원에서 신공항 사업을 추진할 수 없다”고 토로하며 양해를 구했다

동남권 신공항 추진 백지화 배경은

이 대통령 “신공항 백지화 죄송” 대국민 사과

▲ 이명박 대통령이 4월 1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정부의 동남권 신공항 건설 백지화 결정에 대한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뿔 난 영남 민심 “소송 불사하겠다”

▲ 박창호 동남권 신공항 입지평가위원장이 지난 3월 30일 오후 경기도 과천 국토해양부 기자실에서 부산 가덕도와 경남 밀양 모두 신공항 입지로 적합하지 않다는 평가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與 ‘신공항·과학벨트’ 논란 여진 계속
신공항 백지화를 둘러싸고 한나라당 내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여기에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이하 과학벨트) 입지 선정 문제까지 겹치면서 논란이 확산할 조짐이다. 부산이 지역구인 서병수 최고위원은 지난 4월 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신공항 백지화에 대해 대통령이 국민에게 사과하는 지경인데 누구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한나라당이 책임있는 당이라고 할 수 없다”면서 “공약작성 책임자와 정책결정 시기를 놓친 정책 책임자도 문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 최고위원은 “당이 반성하되 정책당국의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신뢰가 회복되고 당과 청와대 관계를 정상적인 관계로 돌린다는 약속도 지킬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역시 부산 출신인 김정훈 의원은 불교방송 아침저널에 출연, “미적미적하다가 유치경쟁만 실컷 가열시켜 놓고서 백지화시킨 정부 당국자에 대한 책임 추궁이 있어야 할 것 같다”고 공감했다. 김 의원은 독자적 가덕도 신공항 건설 계획과 관련, “민자유치만으로는 어려워 정부예산과 공항공사의 외자 유치 등이 결합한 인천국제공항 건설 방식이면 가능하지 않을까 예상한다”면서 “김해공항의 군 공항 문제가 해결되면 김해공항 부지를 매각해서 가덕도 신공항 건설비용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전시장 출신인 박성효 최고위원은 과학벨트 문제를 거론했다. 박 최고위원은 “현 상황은 솔로몬 재판의 상황이 재현되는 것 아닌지 우려된다. 둘 다 자기 아이라고 주장하니 둘로 나누라는 (요구가 있는) 상황”이라며 “대통령이 합리적 판단을 내릴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대구·경북 및 호남 지역에서 과학벨트 분산 유치를 주장하는 점을 에둘러 언급하면서 충청권 유치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됐다. 이에 김무성 원내대표는 의원총회 모두발언에서 “국책사업 문제로 화가 나서 할 말이 많겠지만 좀 참고 사태 수습에 협조하는게 성숙된 사회에 정치인이 할 일”이라고 자제를 촉구했다. 심재철 정책위의장도 앞서 최고위원회의에서 “신공항은 가슴이 아프지만 국가와 미래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며 “일부 지역에서 총선·대선 공약으로 만들겠다는데 갈등이 재발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든다”고 덧붙였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