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5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 법안심사소위에서 벌어진 한·EU FTA 비준안 표결에서 기권을 한 한나라당 홍정욱 의원을 두고 참신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여당이 야당과의 토론에서 결론이 나지 않자 강행처리를 시도했고, 홍 의원이 이를 막아낸 것이다. 항상 보여졌던 여야간 몸싸움을 시작 전에 막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 홍정욱 의원

외통위 법안심사소위 부결 사건 일으키다
홍정욱 의원은 지난 4월 15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법안심사 소위원회에 참석해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에 기권 의사를 밝혔다. 홍 의원이 기권할 경우 한-EU FTA 비준안은 찬성 3, 반대 2, 기권 1로 부결된다. 하지만 소위 위원장인 유기준 한나라당 의원은 홍 의원이 기권 의사를 밝히기 전 기립으로 찬성 의사를 밝혔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한-EU FTA는 소위에서 가결됐다는 것이다. 소위 이후 열린 외통위 전체회의의 주제는 그의 기립이었다. 유 의원을 비롯한 한나라당 의원은 그의 행동을 찬성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고, 민주당 등 야당 의원들은 그가 기권 의사를 분명히 했다고 반박했다. 갈등 끝에 외통위 회의는 아무런 결론을 내지 못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4월 국회에서 한-EU FTA 비준안 처리가 무산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당사자인 홍 의원의 입장은 단호했다. 그는 기자회견을 갖고 “한-EU FTA 비준안에 기권했다”며 “퇴장하기 위해 일어난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한나라당 의원인 그가 한-EU FTA 비준안에 기권 의사를 밝힌 이유는 무엇일까. 홍 의원은 “한-EU FTA는 야당과 협의를 통해서도 충분히 통과시킬 수 있는 문제였는데, 물리력을 동원한 강행처리 시도가 있었다”며 “한-EU FTA에 찬성하지만, 강행처리에 반대하는 의미에서 기권했다”고 설명했다. 홍 의원의 이날 행동은 “앞으로 물리력을 동반한 일방처리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선언의 일환이다. 그는 지난해 예산안 강행처리 이후 일부 의원과 함께 “만약 물리력을 동반한 일방처리에 동참할 경우 다음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그는 국회 바로세우기 모임 등을 통해 국회 내 폭력 추방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이 과정에서 그는 ‘한나라당 내 소장파’라는 수식어를 얻게 됐다. 그가 국회에 입성할 때 가졌던 수식어는 ‘원조 엄친아’다. ‘엄친아’는 ‘엄마 친구 아들’의 줄임말로 모든 방면에서 빼어나는 인물을 일컫는다. 우선 그는 미국의 명문 하버드 대학 출신이다. 하버드대에 입학하게 된 과정과 입학 이후의 생활을 담은 자서전 ‘7막 7장’은 밀리언셀러를 넘어 ‘모든 고등학생이 꼭 사야 할 책’으로 등극했다. 이후에는 언론사의 최고경영자(CEO)가 됐다. 그러다 18대 총선에 출마해 국회의원 배지까지 달았다.

▲ 지미카터와 대담중

소신 위해 한나라당에 반기 들다
홍정욱 의원은 기권을 하는 그 순간에 앞으로 논란의 중심에 설 것을 예상하지 못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EU FTA는 정부입장에서 매우 중요한 의제이고 일정상 시급히 처리할 필요가 있었다. 한나라당이 이번 회기 내에 처리하기 위해 조급히 움직였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여당 의원으로서 여기에 사실상의 반기를 드는 행위에는 큰 정치적 부담이 있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때문에 이 상황은 단지 여당 의원이 정부안에 반대해 소신을 지켰다는 평가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맞다. 대체 홍정욱 의원은 왜 이러한 선택을 했던 것일까? 우선적으로 홍정욱 의원이 ‘국회 바로세우기모임’ 소속이라는 점이다. 이 모임은 한나라당 소장파들이 주축이 된 모임으로 알려져 있다. 남경필, 원희룡 등의 젊은 중진의원들과 개혁적 성향의 초선의원들 모임인 민본21 등이 2010년 연말의 예산안 날치기 통과에 대해 반성의 의미를 담아 만든 모임이라고 한다. 이들은 만일 국회에서의 일방적인 강행처리와 물리적 충돌에 함께하는 일이 있다면 19대 총선에서 불출마를 하겠다고 약속할 정도로 높은 수준의 결의를 모은 바 있다. 때문에 홍정욱 의원이 이러한 소신을 지키기 위해 한-EU FTA 법안심사에 기권을 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아직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일부에서 지적하듯 법안심사소위에 참여하지 않는 방법으로 조용히 넘어갈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었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는 홍정욱 의원을 포함한 소장파의 다수 의원들이 수도권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는 수도권 민심을 배려하기 위해 지방을 뒤흔들어 놓았지만 상황이 나아질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수도권은 중앙정치이슈에 민감하여 야권의 정권심판론이 수월하게 먹힐 수 있는 토양을 갖춘 데다 전월세대란, 물가상승 등의 정부 정책 실패의 피해를 고스란히 받고 있는 상황이다. 때문에 한나라당 수도권 의원들의 대다수는 다음 총선에서 살아남기 위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인기가 없는 이명박 정부와는 거리두기를 하면서 대중적 인기가 높은 박근혜 전 대표를 총선에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는 것이다. 이것은 최근 정두언 의원의 소위 ‘대구발언’에서 명백하게 드러난 바 있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