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진 vs 나훈아, 나훈아 vs 남진 라이벌전,
그 끝나지 않은 승부

Round 5. ‘라이벌전의 백미’ 1972년, 스크린 대결

국내 최대의 라이벌 구도, ‘남진 대 나훈아, 나훈아 대 남진의 라이벌 대결’은 결과적으로 한국가요를 발전시키는 기폭제로 작용했다. 이 라이벌전의 명승부가 여전히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사실이다. 우리 가요사에 영원히 남을 명승부, 제5라운드. 이들이 펼친 1972년도의 대결은 그중 백미였다. 시민회관 리사이틀 관객동원 기록 경쟁, 나훈아 지구 전속 스카우트, 방송국 10대가수상을 둘러싼 잡음, 매주 오르락내리락 치열했던 가요 톱10 인기차트 판도, 출연료를 둘러싼 신경전, 영화 겹치기 출연에 따른 스케줄 펑크 등은 물론 나훈아 시민회관 피습사건, 남진 노래 방송 불가 사건, 연예단장협회 나훈아 공연 보이콧, 나훈아 mbc 출연정지, 그리고 은퇴선언까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이들 라이벌전의 백미, 1972년의 명승부, 스크린 대결 편.

글 l 박성서 (대중음악평론가, 저널리스트)

▲ 누가 가수고, 누가 배우?

매스컴에서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이름, ‘남진 그리고 나훈아’

‘나훈아 컴백’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는 소문이 점차 구체화 되고 있다. 제법 영향력이 있는 가요계 인사들 사이에서 오가는 말들이기에 더욱 설득력 있게 들린다.
2011년 대한민국을 휩쓸고 있는 세시봉, 즉 통기타 열풍이 그렇듯 나훈아의 컴백 또한 현재 10대들을 주축으로 움직이고 있는 '가요계 문화지표'가 성인 쪽으로도 향하는 풍향계로 작용할 것이라는 기대 또한 크다.
자신의 45주년 기념 전국순회공연을 하고 있는 남진 관련 기사가 연일 매스컴을 장식하고 있는 가운데 얼마 전, 올해 데뷔 60주년을 맞는 가수 윤복희가 ‘승승장구’, ‘무릎팍도사’에서 한 남진과의 결혼 관련 발언이 네티즌의 거센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그런가 하면 나훈아 김지미 커플의 과거사 또한 새삼 화제를 몰고 왔다. 국민배우 신성일의 인생 스토리, ‘88만원 세대와의 소통-청춘은 맨발이다(중앙일보-일간스포츠)’의 첫 회 타이틀이 바로 ’나훈아-김지미 부부탄생 도와줬다”였다.
신성일의 인생스토리, 그 회고는 이렇게 시작된다.
‘영화 인생 50년-. 그간 수많은 별이 뜨고 스러졌다. 뒤돌아보니 기억에 남는 사람이 많다. 그중에서도 가수 나훈아(본명 최홍기)와의 인연은 특별하다. 지금은 대단한 가수 반열에 올라 있지만 내 머릿속에는 시커멓고 여드름투성이로, 대게 껍데기 뒤집어놓은 것 같은 신인 가수 나훈아의 얼굴이 선하다.’,
이렇게 시작되는 인생스토리는 세간의 관심이 그렇듯 많은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한 화두인 셈이다.
초창기 ‘대게 껍데기(영화배우 신성일)’, ‘소도둑(작사가 정두수)’이라 불리던 나훈아는 어느덧 ‘한국 트로트의 전설’이 되어가고 있다. 그의 컴백이 곧 ‘제2의 트로트 혁명’이 될 수도 있을 거라는 기대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완벽하게 준비하지 않으면 대중들 앞에 등장하지 않는, 나훈아가 바로 그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쎄시봉 열풍이 대단하죠. 김세환, 송창식, 윤형주, 이장희, 조영남... 40년 간 변치 않는 우정이 그렇듯 이들은 서로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고, 또 기타만 들어도 화음이 척척 맞는 이들... 이 세시봉 음악이 던진 신선한 충격에 대한민국 국민들이 크게 감동했죠. 그러나 우습게도 그 공연을 보며 제가 떠올린 인물이 나훈아였어요.”
wbs-FM 원음방송 진문진 PD의 말이다. “나훈아가 세시봉 열풍의 주역들과 크게 다른 점은 싱어송라이터로써 늘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내고 있는 인물이라는 사실이죠. 그래서 그의 공백 기간이 길면 길어질수록 그만큼 기대는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매일 저녁 여덟시부터 아홉시까지 옛가요 전문 프로그램, ‘아름다운 인생’의 진행자이기도 한 그는 최근에도 남진, 나훈아 노래를 하루라도 방송하지 않으면 청취자들의 원성을 견딜 수 없을 정도라고 말한다. 남진 노래를 방송하면 나훈아 팬들이 신경 쓰이고 나훈아 노래를 방송하면 그 반대 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에 그에게 있어 이 둘의 이름은 어느새 동일한 무게감을 가진 존재가 되었다.
흔히 ‘우리나라 방송사가 마음먹은 대로 못하는 가수는 나훈아, 서태지, 조용필’이라는 말이 있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현재 종편(종합편성채널)시대 개막과 맞물리며 나훈아 컴백을 앞둔 가요계 모니터 안은  그야말로 '폭풍 전야'다.

영화인협회, 남진 나훈아 ‘제명’조치 사건

▲ 가수 남진이 주인공을 맡은 영화 ‘푸른 사과’ 주제가 음반재킷. 1969년

▲ 나훈아의 스크린 첫 데뷔작, 영화 ‘풋사랑’의 한 장면. 1971년 6월

가수 겸 영화배우로 무대와 스크린을 동시에 장악했던 ‘영원한 오빠’ 남진, 나훈아.

크고 작은 잡음이 뒤따랐지만 남진 대 나훈아, 나훈아 대 남진은 무대에 이어 스크린까지 뜨겁게 달궜다. 
남진의 꿈은 본래 영화배우였다. 그러나 가수로 먼저 스타덤에 올랐다.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재학 중이던 66년 작곡가 김영광과 손잡고 ‘울려고 내가 왔나’와 ‘사랑하고 있어요’를 잇달아 히트시키며 스타덤에 오른 뒤 당시 메이저 지구레코드사 전속가수로 스카우트된다. 이때부터 작곡가 박춘석과 손잡고 전속 기념으로 발표한 노래가 ‘가슴 아프게’, ‘너와 나’, ‘우수’. 이를 계기로 이 둘의 콤비는 달러박스로 부상한다.
동시에 본격적으로 무대와 스크린을 장악하는 남진의 전성시대가 펼쳐진다. 남진의 히트곡 ‘우수’가 삽입된 영화 ‘형수’를 시작으로 자신의 히트넘버인 ‘울려고 내가 왔나’와 ‘가슴 아프게’가 동명의 영화로 제작되면서 일약 주연을 맡았다.
‘그리움은 가슴마다’, ‘별아 내 가슴에’, ‘지금 그 사람은’, ‘미워도 다시 한 번’, ‘사람 나고 돈 났지’, ‘빗속에서 누가 우나’ 등의 히트곡 퍼레이드를 펼침과 동시에 스크린 데뷔 첫 해만도 영화 ‘형수’, ‘울려고 내가 왔나’, ‘가슴 아프게’, ‘사랑은 파도를 타고’, ‘그리움은 가슴마다’까지 겹치기 출연, 거리에는 온통 그의 사진이 실린 영화포스터가 나붙었고 라디오에서는 쉴 새 없이 그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히트곡은 영화로, 영화는 또 주제가의 히트로 이어졌다.
‘별아 내 가슴에(68년)’, ‘저 언덕을 넘어서(68)’, ‘지금 그 사람은(68)’, ‘사랑이라는 것은(69)’ ‘사랑하고 있어요(69)’ 등의 영화들에서는 직접 타이틀 롤을 맡아 열연함과 동시에 주제가를 직접 부른 영화들이다.
그 뿐 아니라 주제가가 크게 히트되어 영화화되거나 음악관련 영화들 대부분이 그의 몫이었다. ‘밤하늘의 트럼펫(68)’, ‘미니아가씨(68)’, ‘울고 넘는 박달재(68)’, ‘고향무정(68)’, ‘멋쟁이 아가씨들(68)’, ‘가요반세기(68)’, ‘푸른 사과(69)’. ‘흑산도 아가씨(69)’, ‘청춘(69)’ 등이 그것. 물론 후시녹음시대라 겹치기 출연이 가능했으리라.
나훈아 또한 이에 질세라 스크린에 모습을 드러낸다. 첫 작품은 ‘풋사랑’. 1971년 6월10일 개봉된 이 영화의 개봉 날짜가 하필 남진이 월남에서 귀국, 국내 복귀를 앞두고 있던 시점이라는 것이 유독 눈에 띈다.
남진과 나훈아가 한 영화에서 함께 연기 대결을 펼친 첫 출연작은 ‘기러기남매’다. 아예 포스터에 ‘남진 대결 나훈아’라는 헤드 카피를 내걸었다. 이들의 라이벌 구도를 부각시켜 기획된 이 영화에서 극중 주인공 또한 이들의 이름을 딴 ‘진’과 ‘훈’이다. 1971년 11월24일 개봉되었다.
신봉승 각본, 최인현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이 영화 ‘기러기남매’의 줄거리를 잠시 보자.
‘진(남진 분)’은 여대생 ‘영이(문희 분)’를 사귀다가 임신시키게 하는데, 진의 엄마는 돈으로 해결하려고 하지만 영이의 오빠 ‘훈이(나훈아 분)’는 이를 거절하고 이사를 한다. 영이를 찾아다니다가 부모의 강제 권유에 의해 다른 여성과 약혼을 하게 된 진은 이후 영이가 부산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훈과 함께 오픈카를 훔쳐 타고 부산으로 달린다. 그러나 추적해온 형사들에 의해 잡힌 뒤 형사들의 감시 하에 10분 동안 영이를 만난 뒤 그들 손에 수갑이 채워진다...는 멜로물이다.  
한 여인을 두고 애인과 오빠로 설정된 이 영화는 말 그대로 이들의 이미지를 그대로 카피한 이미테이션, 즉 ‘귀족풍’의 남진과 ‘의리의 사나이’ 나훈아의 대결구도다. 과연 이 영화가 상영되던 83분 간, 관객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한편 궁금한 대목이다.
이 영화의 히트를 시작으로 이 둘은 함께 ‘친구(72년, 윤정수 감독)’, ‘동반자(73년, 이일수 감독)’, ‘어머님 생전에(73년, 이혁수 감독)’ 등의 영화에 출연해 연기 대결과 동시에 인기 대결을 펼쳤다.
이 둘을 내세운 스타 마케팅은 일종의 흥행보증수표였다. 그만큼 이들이 장르를 넘나들며 보여준 활약에 대한 주위의 견제도 만만치 않았다. 쇼단장협회의 나훈아 공연 보이콧에 이어 영화인협회 ‘회원 제명’사건까지 이들의 활동은 시시때때로 난관에 부딪쳤다.
남진은 당시를 이렇게 회고한다.
"그때는 후시녹음시대라 카메라 앞에서 입만 벙긋하는 금붕어 연기만을 주로 했지요. 반쪽짜리 연기였던 셈인데 사실 표정 연기로만 감정을 표현한다는 게 쉽지 않잖아요. 대사가 감정 표현의 70%를 차지하는데 성우 도움을 받았으니... 또한 그 당시만 해도 제작 환경이 매우 열악했기 때문에 촬영 중 NG가 나면 감독들한테 필름값 물어내라며 욕도 많이 먹었습니다. 하하하..."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