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의 붓질로 사물의 본질(眞)을 담아내고, 한 번의 붓질로 작가의 인격(善)을 담아내며, 한 번의 붓질로 아름다움(美)을 창조해내는 서예는 한국을 비롯하여 중국, 일본에서도 공통적으로 발전된 동아시아 특유의 철학적 예술이다.

▲ 성균관대학교 유학/동양학부의 김응학 교수는 “예로부터 서예는 유가, 도가, 불가 사상의 철학에 통달한 사대부들이 학문에서 우러나오는 사상과 향기를 글씨에 접목시켜 영유한 고차원의 세계였다”고 말한다

서예는 도(道)와 기(技), 예(藝)와 덕(德)을 구별하여, 기(技)보다도 도(道)를 중시하고 예(藝)보다도 덕(德)을 높인다. 기운(氣韻)이란, 바로 이러한 도(道)와 덕(德)을 상징한 것이며, 이것은 높은 정신성을 요구하고 인격을 필수로 한다. 서예는 종이와 붓, 먹이라는 도구를 이용하여 점과 획으로 이루어진 문자를 통해 작가의 감정을 담아내는 예술이다. 단순한 의사전달이나 기록과 같은 실용적인 목적을 넘어 문자를 예술적으로 표현하는 서예는 기본적으로 조형예술에 속한다. 서예는 눈으로 볼 수 있는 구체적 형상을 드러내고 그것을 다시 ‘생명의 형식’으로 전환하여 예술미를 표현하는 ‘기(氣)의 세계’이다.

투철한 예술정신으로 예도의 경지 구현
성균관대학교 유학/동양학부의 김응학 교수는 “예로부터 서예는 유가, 도가, 불가 사상의 철학에 통달한 사대부들이 학문에서 우러나오는 사상과 향기를 글씨에 접목시켜 영유한 고차원의 세계였다”고 말한다. 탁월한 심미적 의식과 투철한 예술정신으로 서예미학을 조화롭게 풀어내고 있는 김응학 교수는 대내외적으로 예도의 경지를 구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서예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시대적 변화를 수용하면서 현대예술로 계승 발전시키고 있는 그는 직관적 통찰력을 바탕으로 서예미학의 새로운 모색을 도모하고 예술학의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김 교수는 “서예는 단순히 글씨만을 멋지게 쓰는 예술이 아닌 생생지도(生生之道)의 생명력을 근본으로 하는 예술”이라고 정의한다. 때문에 서예이론과 필법 속에는 우주의식이 들어 있고 작품에는 이러한 우주의 원리가 그대로 나타난다는 것. 서예는 말 그대로 문자를 통해 붓으로 점과 획을 이어 자신의 정감을 표현하는 동양 특유의 문자예술로 인격완성을 목표로 삼으며, 공간에서 전개되는 시간의 예술이라 할 수 있다. 서예는 동양예술의 한 분야이기는 하나 단순히 예술적 가치만을 추구한 것이 아닌 ‘정신수양의 수단이자 인격도야의 방편으로 여겨졌다는 점에서 여타의 예술과는 구별된다. 김응학 교수는 “서예작품은 쓴 사람의 학식과 인품 나아가 그 사람의 성격과 정서 등 모든 것을 작품에 반영하기 때문에 ‘서(書)는 바로 사람이다’고 한다”면서 “심신의 수양을 중요하게 여긴 동양의 유교문화권에서는 서예를 중요하게 다루었으며, 벼루 위의 인성교육으로 자신의 품격을 나타내고, 붓과 먹을 통해 문자를 표현함으로써 우리 옛 선비들은 그 사상과 생활이 일치된 경지를 보여주었다”고 덧붙였다. 옛 선인들의 고고한 예술세계를 담아내고 동양의 미학정신을 일깨우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그는 오늘날 서구문화의 유입으로 변질된 서예술의 현실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김 교수는 “서예는 심학(心學)과 형학(形學)을 아우른다. 즉 심학에 의한 형학이 되어야 하는 것”이라면서 “일반적으로 동양의 서화예술은 심의(心意)를 드러내는 예술이지만 근래로 넘어오면서 서양문화의 유입으로 우리의 정체성을 잊어버리고 형학으로 변모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개성의 자유로움을 넘어서 오락적 기능으로 흘러가는 듯 해 안타깝다”고 밝혔다.

▲ 김응학 교수는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원 서예학전공 주임교수로 후학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획을 통해 문자의 혼을 예술로 승화
필법과 운필의 예술적 경지를 개척하여 서예계의 한 획을 긋고 있는 김응학 교수는 획을 통해 문자의 혼을 예술로 승화시킨 이 시대의 진정한 예인이다. 대전에서 4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대학 입학 후 서예동아리에서 본격적으로 붓을 들었다. 김 교수는 “숨도 멈춘 채 정신이 집중되고, 손끝에 따라 백(白)의 여백을 흑(黑)의 기백으로 채워 나가며 예(藝)를 연마했지만 어느 순간 한계를 느꼈다”며 토로했다. 이후 그는 이면에 가려져 있는 정신이 중요하기 때문에 철학을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느끼고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원에서 동양미학을 전공했다. 김 교수는 “경전을 읽으면서 동양예술은 형(形)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사의(寫意)하는 것을 깨달았으며 주역(周易) 및 논어, 맹자, 중용, 대학 등 사서를 읽으면서 서예는 단순히 기교적 차원에서 머무는 것이 아닌 인간 내면의 인격도야와 연결, 그 어떤 장르의 예술보다 심오한 예술이라는 것을 배웠다”며 “이후 법첩을 임서하면서 자신의 정체성 문제에 대해 심한 회의를 느끼면서 자연스럽게 전각(篆刻)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전했다. 그는 임서만 하던 때에는 보이지 않았던 문자의 표정들을 보게 되어 그것을 느끼는 즉시 자신의 서예에 용해시켰다. 김 교수는 서울예술대학교, 원광대학교, 대전대학교, 경희대학교, 연세대학교, 홍익대학교 등에서 동양미학(東洋美學)과 관련하여 강의 및 CEO특강 등을 한 바 있고, 현재는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원 서예학전공 주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후학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김 교수는 함축적인 내용을 표현하는 간결한 문체와 영어 서예도 연구하면서 서예문화의 세계화 작업에도 몰두하고 있다. 그는 “우리 제도권 교육 내에서 한문교육과 중용철학이 강조되어야 한다”면서 “서예는 머리에서 가슴으로 담아내야 하는 초고도의 예술이다. 또한 오늘날 현실철학인 유학정신을 되살리고 성현들의 가르침을 본받으면서 인문학을 통해 예술철학의 토양을 다지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고 피력했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