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1 일본 대지진 사건이 결국 원전 폭발이라는 인류의 대재앙과 직면한 상황으로까지 치닫고 있다. 이번 지진은 강도 9.0으로 인류 역사상 다섯 번째로 기록되는 강진이다. 지진과 함께 덮친 높이 10m의 검은 쓰나미는 순식간에 일본 동북부 해안가 도시들을 아비규환으로 만들어 버렸다. 검은 바닷물에 자동차와 집들이 속절없이 떠다니고, 대형 어선이 논두렁에 뒤집어지고, 잘 정돈되었던 수출용 컨테이너들은 장난감 블록처럼 어지럽게 흩어졌다. 

▲ 경기대 국제대학장 유영옥

현재 일본의 피해 규모는 시간이 흐르면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불어나고 있다. 갑자기  밀려온 쓰나미를 피하지 못한 채 한꺼번에 희생된 수천여구의 시신이 속속 발견되면서 사망자만 수만 명에 이를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아직도 고립된 채 생사의 갈림길에서 공포에 떨고 있는 사람만 2만 4천여명이 있고, 모든 것을 순식간에 잃고 피난민의 처지로 전락해 구호물품에 의존하고 있는 사람들이 31만 명 이상이다. 대략 집계된 파손된 건물만 4만 6000채 가량 이고, 그 밖의 경제적 피해는 계산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피해 복구비용만도 일본의 GDP의 3%에 해당하는 1800억 달러(약 203조원)가 최소한도 필요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게다가 지진으로 전력공급이 끊어진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 원자로들이 잇따라 이상 현상을 보이고 있어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진 발생 다음날인 12일 오후 제1원자력 발전소 1호기가 폭발한 것을 시작으로 3호기에서는 14일에, 2호기와 4호기에서는 15일에 폭발과 화재가 이어졌다. 나머지 5호기와 6호기까지도 온도가 상승하고 있으며, 16일에 다시 화재가 발생한 4호기는 폐연료봉 핵분열 가능성까지 제기 되고 있다. 이미 1호기 핵연료봉 70%가, 2호기 핵연료봉 30%가 손상되었음을 도쿄전력이 공식적으로 발표하였으며, 프랑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후쿠시마 원전사고 등급을 전체 7단계 중 6단계로 상향 조정한 상태이다. 지난 1986일 발생했던 체르노빌의 악몽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는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임이 분명하다.  
 이에 따라 세계 각국은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일본 내 자국민들을 신속히 대피시키고자 하는 움직임을 빨리 하고 있다. 이미 이라크를 포함한 8개국 대사관을 일시 폐쇄하기로 결정했고, 일본에 진출한 외국 기업들도 속속 일본을 떠나고 있다.
 9.0 규모의 지진과 10m 높이의 쓰나미 앞에서도 차분함과 질서정연함을 잃지 않던 일본, 턱없이 부족한 주먹밥과 식수를 다른 사람에게 먼저 양보하는 높은 수준의 도덕성으로 세계인의 찬사를 받았던 그 일본도 시시각각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원전사태 앞에서는 결국 인내심의 한계를 드러내고 말았다. 사재기로 상점의 식료품과 주유소의 기름이 동이 난지 오래되었고, 공항과 터미널은 표를 구하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장 인접해 있는 이웃국가인 우리나라는 후쿠시마 원전사고 상황과 관련해 민감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다. 행여라도 바람의 방향이 바뀌어 낙진피해를 입지 않을까 사람들의 눈과 귀가 모두 일본의 사태 진전 소식으로 향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민감한 시점에 일본 방사능 물질이 한반도에도 상륙한다는 허위 메시지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타고 유포되어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우리는 지난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불법 포격이 발생했을 때에도 이러한 종류의 유언비어가 난무했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아직도 우리 사회 속에는 국론분열을 조장하는 친북좌파세력이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이번 일본 대지진 참사와 원전폭발사고와 관련해 괴담을 확산시키고, 대한민국의 UAE 원전수주를 평가 절하할 뿐만 아니라 한국내의 원자력 발전소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왜곡·과장해서 한국 사회의 불안감을 가중시키고 있다. 따라서 우리국민 모두는 부화뇌동할 경우 발생 가능한 모든 결과를 직시하고 냉정한 판단력을 잃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한 정부는 이번 기회에 한국의 원전시설에 대한 확실한 안전점검과 함께 만일의 상황에 대한 방재대책을 철저히 준비해야 할 것이다.

한편 일부에서는 이번 일본 원전사고 관련 SNS 유언비어 유포가 시세차익을 노린 일부 투기세력들의 소행이라는 의혹이 제기되어 경찰이 진위파악에 나섰다. 사실여부와 관계없이 이러한 의혹이 제기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다. 어떻게 수 만 명의 목숨이 단숨에 사라지고, 또 앞으로 더 얼마나 큰 희생을 감당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이웃국가의 위기 상황을 놓고 이러한 비인간적인 생각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의 저급한 황금만능주의와 극단적 이기심이 바닥을 드러내는 것 같아 곤혹스럽다.
 특히 최근 물의를 빚었던 한국 대형교회 원로목사와 정치인의 조심성 없는 일본 대재앙 관련 발언은 유감스럽기 그지없다. 이는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피해자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지 않는 일본기자들과 또 생사의 갈림길에서 조차 배려와 양보와 절제를 잊지 않는 평범한 일본인들의 모습과 너무 대조적이기 때문이다. 종교라는 것이, 또 한 나라를 이끌어가는 정치인의 자세라는 것이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재앙 앞에 주저앉은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지는 못할망정 상처를 헤집고 소금을 뿌리는 것과 같은 독설을 주저하지 않는다면 과연 옳은 것일까? 인간의 손에 맡겨지지 않은 천재지변에 대해 오만한 판단을 먼저 할 것이 아니라 인간의 손에 맡겨진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을 먼저 지켜야 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일본 국민을 돕자는 온정의 손길이 우리나라 각계각층으로 번지고 있어 다행스럽다. 현실라고는 믿기 힘든 참상을 지켜본 네티즌들을 중심으로 자발적인 모금운동이 전개되는가 하면, 일본에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한류스타들이 발 벗고 나서서 거액의 기부금을 전하고 있고, 일본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연예인과 스포츠선수들도 대거 동참하고 있다. 이미 이들 유명인들의 기부액은 총 40억 원을 넘고 있으며, 그밖에 인도적인 차원에서 일본을 도울 자금을 마련할 콘서트 등 크고 작은 행사준비가 줄을 잇고 있다. 

 정부차원의 지원도 활발하다. 한국은 일본 정부의 요청에 따라 세계에서 가장 먼저 긴급구조팀을 보냈으며, 피폭의 위험도 아랑곳 하지 않고 추가 지원된 구조대원들이 지금도 구조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또  폐연료봉을 냉각시킬 붕산을 국내에 재고가 남아 있지 않은 상황임에도 선뜻 지원하는 등 적극적인 도움의 손길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밖에 각 종교단체 및 시민단체도 한 마음으로 일본을 돕자는 운동에 속속 합류하고 있다. SBS는 특별방송 '힘내세요! 일본'을 통해 성금을 모금했으며, KBS도 아직 프로그램 제목과 내용이 미확정 상태이지만 일본 지진 피해자를 돕는 모금방송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 모든 것이 예상치 못한 곤경에 처한 이웃에 대한 순수한 ‘인간애’의 발로일 것이다.
 무엇보다 지난 16일 주한 일본 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 961차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수요집회는 한국과 일본 모두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꽃다운 젊음을 ‘종군 위안부’라고 하는 처절한 생지옥에서 보내고 그 이후의 삶도 결코 평화로울 수 없었던 이들 피해 할머니들의 입장에서라면 이번 일본의 대재앙을 두고 한 맺힌 악담을 한다 해도 이해하지 못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그들이 “재일교포, 일본시민 모두 힘내세요”라고 적힌 문구를 들고 그동안의 시위 대신에 일본 희생자 추모 행사를 진행한 것이다.
 이러한 한국의 격려와 도움의 손길에 일본 언론들도 취재경쟁을 하는가 하면, 무토 마사토시(武藤正敏) 주한 일본 대사는 지난 16일 일본대사관 집무실에서 갖은 인터뷰에서 "한국정부와 국민들이 앞장서서 우리를 도와주고 있는 것을 잊지 않겠다"며 감동과 감사를 표했다. 
 21세기의 지구촌 시대는 이미 한 나라의 위기가 그 나라에만 머물지 않는 공동체적 세계로 존재한다. 일본의 쓰나미과 원전사고 및 이와 관련해 앞으로 파생될 여러 가지 문제들은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 다양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우리를 포함한 세계가 일본을 격려하고 도와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히 지난 역사 속에 감정의 골이 깊어 풀리지 않는 매듭으로 엉켜 있는 한·일 관계가 이번 일본의 국가적 위난 상황과 그것을 대하는 대한민국의 따뜻한 ‘인류애’로 새로운 관계 형성의 시발점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한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