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년 11월 28일 경북 안동지역 양돈단지에서 시작된 구제역 파동은 앞으로도 한동안 우리나라에 메가톤급 상흔을 남길 전망이다. 현재까지 드러난 피해 상황만 해도 가축 전염병으로 인한 사상초유의 재앙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경기대 국제대학 유영옥 학장

구제역이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확산되던 지난 해 말부터 현재까지 살처분된 우제류 가축수가 이미 330만 마리를 넘어서고 있고, 약간의 소강상태를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전국적으로 20여 곳의 농가에서 구제역이 발생해, 매일 1만 마리가 넘는 가축이 아직도 땅속으로 살처분 매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로 인한 피해액은 실질적 축산 농가 보상금만 1조 5천억에 이르고 있으며, 육가공 업체 등 소, 돼지 관련 중소기업체 피해 및 지역 경제 위축, 유제품 공급 감소로 인한 물가 인상과 같은 간접적 피해를 포함하면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피해규모가 증가될 것으로 예상된다. 뿐만 아니라 그동안의 방역 현장에 투입된 인력만도 하루에 7000명이 넘고, 그 과정에서 7명의 인명피해까지 발생했다. 가히 가축전염병으로 인한 사상초유의 국가비상사태라고 할 수 있다.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이 발표한 그동안의 역학조사를 토대로 한 구제역 확산원인과 그 경로에 대한 분석 내용을 보면, 과거의 경우와 달리 이번 구제역이 전국적인 기승을 부리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가장 먼저 안동지역에서 구제역 발생이 최초로 확인되기 이전에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 경기도 파주지역 등으로 구제역 바이러스가 전파되어 있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또한 돼지가 소에 비해 구제역 바이러스 배출량이 1000배에 이른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번 구제역 사태의 초기 진원지가 대단위 양돈단지라는 점은 우리에게 여간 운수 사나운 것이 아니다. 특히 구제역은 잠복기 2주 동안은 특별한 증상도 없이 바이러스를 배출하는 특성을 지닌다. 그러니 절대적으로 많은 양의 초기 바이러스가 대단위 양돈단지에서 배출되었을 것이고, 이것이 우리가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 전국적으로 번져간 것이다.
  게다가 연례 없이 지속되었던 겨울 한파로 인해 당국의 방역활동이 쉽지 않았던 점도 사태를 쉽게 진정시킬 수 없었던 중요 요인 중 하나였다. 또한 상대적으로 높은 인구밀도와 함께 인구 이동양과 속도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다이내믹 코리아의 특성이 연말연시와 설 명절을 끼고 가속화되어 구제역 확산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그러나 아무리 여러 가지 악조건이 겹쳤다고 해도, 전염병과 같은 질병으로부터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것이 사명인 방역기관이 제 구실을 다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특히 구제역 의심 신고를 받고도 안일한 대처로 사태를 더욱 확대시킨 일부 지방자치단체 방역기관의 미흡한 초기 대응은 비판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비전문가의 눈으로 보이기에도 허술하기 짝이 없는 주먹구구식 행정과 구멍 뚫린 방역시스템은 전면적인 반성과 개혁이 요구되는 부분임을 부정할 수 없다.
  문제는 전국이 구제역 바이러스에 상시 노출됐기 때문에 당분간 구제역 문제를 완전하게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다. 지난 1997년 발생한 구제역으로 400만두 가량의 가축을 매몰하고, 양돈 산업의 40%가 붕괴되는 사태를 겪었던 대만의 경우도 성공적인 백신 접종으로 구제역 확산을 차단하기는 했지만, 지속적으로 재발하는 구제역 바이러스로 인해 일 년 이상 방역당국이 비상근무 태세를 유지해야만 했다. 우리나라도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방역효과가 높아지고, 백신접종이 마무리 되면 구제역 확산은 어느 정도 수준에서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가시적 현상일 뿐이고 이미 우리나라 도처에 구제역 바이러스가 상존하고 있는 상황이니 만큼 방역에 대한 경계심을 풀지 말고, 특히 개별 축산 농가와 관련기관에서 위생관리에 더욱 철저해야 할 것이다.  
  그 보다 더 큰 문제는 구제역으로 인해 예상되는 후폭풍이다. 이미 전국의 소, 돼지 10마리 중 2마리 이상에 해당하는 가축들이 땅에 묻혔다. 땅의 정화작용에도 한계가 있기에 이렇게 많은 양의 가축을 한꺼번에 매몰할 경우 예상되는 문제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아직까지 언 땅이 녹지 않은 지금도 계곡에서 핏물이 보인다는데, 만일 날이 풀리고 본격적인 부패가 시작되면 과연 어떤 문제가 더 발생할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이미 구제역 매몰 지역에서 나타나는 침출수의 증가와 이로 인한 수질오염, 토질오염과 같은 2차 피해에 대한 우려로 방역당국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다. 새해 첫 날부터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에서 핏물로 변한 도랑이 방역당국에 신고 되었다. 그 곳은 이틀 전 돼지 3000여 마리를 살처분한 지점으로부터 10여m 떨어진 곳으로서, 이는 침출수로 인한 2차 오염 우려를 현실적으로 확인시켜주었기에 방역당국은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이어 나흘 뒤 강원도 원주시, 충북 괴산군, 경남 김해시, 인천 강화군에서도 연이어 붉은 물이 흘러나오는 등 전국 곳곳의 매몰지 주변에서 침출수가 잇따라 발견됨에 따라 방역당국이 긴급하게 막는 조치를 취해야만 했다. 
  이는 살처분 지침에 매몰 즉시 유출되는 침출수를 받아낼 저류조를 설치하도록 되어 있지만, 구제역 확산 속도가 너무 급박하게 진행되었고, 방역 작업 인력도 턱없이 부족해 땅 속에 묻기에만 급급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그러나 살처분 매뉴얼대로 저류조가 제대로 만들어졌다고 하더라도 이 좁은 대한민국 전역에 걸쳐 수천마리의 가축을 한꺼번에 묻은 4,162개소에 달하는 매몰지를 두고 환경오염 문제를 피해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처럼 구제역 살처분으로 인한 환경오염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자 정부는 매몰지 주변 관측정에 침출수 등으로 토양과 지하수가 오염될 시 자동 경보 시스템 도입할 것, 향후 구제역이나 조류 인플루엔자(AI) 발생시 소각 등 다른 살처분 수단 병행할 것, 전국의 매몰지 주변 300m 이내의 관정 3000곳에 대해 지하수 수질조사를 진행할 것, 태스크포스(TF)를 통해 3년간 매몰지를 관리하고, 지하수 관리 데이터베이스(DB)를 통한 체계적으로 모니터링을 하며, 전국 매몰지에 대한 실태를 조사한 후 보강공사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정도 대책만으로는 부족하다. 구제역으로 인한 2차오염이 따뜻해지는 기온과 함께 더 이상 확산되지 않도록 환경부, 농림수산식품부, 식품의약품 안정청등 관련 기관은 청와대를 중심으로 종합적인 대책 마련에 혼신을 다해야 할 것이다.
  환경문제와 더불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는 것은 그렇지 않아도 그동안 대출을 받아 겨우 연명해오던 영세한 축산 농가들의 파산이다. 이미 자신이 기르던 소를 매몰하는 끔찍한 현장을 목격해야 했던 사람들과 이러한 불행이 언제 닥칠지 몰라 불안에 떨고 있는 사람들이 수십만에 이르는 것이다. 특히 농가소득의 50%이상을 축산업이 차지하고 있었던 점을 고려할 때 이번 구제역 대재앙은 천재지변과 같은 수준이다. 그러나 이들 영세 축산 농가를 위한 사회적 보호 장치는 전무한 상태이다. 또한 소와 돼지 20%이상이 일시에 살처분 되면서 물가불안이 야기되고 있다. 이미 시장에서는 소고기와 돼지고기의 공급부족으로 웃돈을 주고 도매가격이 형성되고 있으며, 우유를 원료로 하는 빵, 과자, 음료등 일반서민들이 애용하는 식가공품들의 가격인상이 불가피해진 상황이다.
  바로 이러한 점들이 우리가 일치단결하여 지혜를 모아야 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일부 야당 정치인들은 국가비상사태에 준하는 심각한 국면임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책임론을 부각시키며 정치적 우위확보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또 언론은 언론대로 선정적이고 자극적으로 편집된 영상만을 골라 국민들의 불안감을 확대시키며 당국의 활동에 짐을 지우고 있다. 우리의 기억 속에는 미국산 수입 쇠고기에 대한 광우병 의심 파동과 전국적인 촛불시위가 아직도 생생하다. 지나치게 편향되고 선정적인 표현으로 일관된 언론의 주장이 어떻게 국민들을 불안정한 상태로 몰고 갈 수 있는지 단적으로 증명해주는 좋은 예가 될 것이다. 현재  우리의 상황은 누구에게 잘못이 있는가를 따질 시간이 없다. 먼저 정부와 국민 모두 일치단결해 우리 앞의 놓여 있는 시급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총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