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선조들의 애환과 생활양식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는 전통문화유산은 우리 생활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그러나 산업화와 도시화를 거치면서 쇠퇴하거나 가치를 상실해 점차 사라져 가는 문화유산도 적지 않다.

윤담 기자 hyd@

전통문화를 계승하는 것은 우리 조상의 지혜와 전통을 보존하는 것이기에 그 의미가 남다르다. 세계가 좁아지고 가까워질수록 민족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서도 전통의 보존은 더욱 필요한 일이다. 이에 김한섭 명인의 행보가 화제다. 김한섭 명인을 만나 자세한 얘기를 들었다.

등채 복원 위해 총력을 기울이다

▲ 김한섭 금속공예 명인

김한섭 금속공예 명인은 최근 ‘등채’의 복원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일명 등편(藤鞭)이라고도 일컬어지는 등채는 우리 선조들이 병사를 지휘하던 일종의 지휘봉이다. 손가락 굵기 만한 막대의 손잡이 부분은 초록빛 전(氈)으로 두르고, 청홍의 천을 늘어뜨렸으며, 두 가닥 끈을 내어 중간에서 두 번 동이고 술을 달아 늘어뜨려 장식하였다. 원래는 등(藤) 토막의 머리 쪽에 물들인 녹비(鹿皮)나 비단끈을 단 데서 기인하여 등채라 불리기 시작했다. 평상시에는 물들인 사슴가죽이나 색깔 있는 비단끈을 달고 국상 때에는 백의와 함께 백색끈을 달기도 하였다.

특히 왕이 중요한 국가적 행사나 국난 등 외부에 행차할 때에는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착용구 또는 지휘봉으로서 사용되었다. 김한섭 명인은 “모든 무관이 등채를 사용했던 것은 아니다. 무관으론 포도대장이나 한 부대의 장(長)쯤은 돼야 착용했다”면서 “특히 왕이 중요한 국가적 행사나 국난 등 외부에 행차할 때에는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착용구로 사용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러한 등채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그 명맥이 끊어졌다. 김한섭 명인 역시 도검 제작을 위해 자료를 찾던 중 우연히 옛 문헌에서 등채를 발견하고 사라진 등채복원을 위해 총력을 기울여왔다. 그러나 원형이 남아 있지 않은 등채는 문헌에만 의존하여 복원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김 명인은 “등채는 원형복구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무형문화재로 등록시킬 수 있는 기준이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합섭 명인은 각고의 노력 끝에 사라졌던 등채를 상당부분 재현해 낼 수 있었다. 김 명인은 “이 작은 지휘봉에는 우리 민족의 얼과 혼이 담겨 있다”면서 “그만큼 제작에 정성을 다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이에 실제로 등채는 재료 선정부터 까다롭다. 나무재료는 등나무만 고집하고 백동장식을 덧씌운다. 손잡이는 사슴가죽인 녹피를 입힌다. 김 명인은 “우리 조상들은 5가지 색, 즉 오방색이라 하여 세상의 온갖 상서로운 기운과 잡귀를 몰아내는 부적색으로 이 다섯 가지 색깔을 그림이나 문간 또는 단청 등에 사용해 왔다”면서 “이 등채 역시 오색(五色)을 미대에 부착하여 제작했다”고 전했다.

예술혼 불태우며 우리 문화의 우수성 알리다
최근 김한섭 명인이 새롭게 생명을 불어넣은 등채는 이제 국가 주요의전 행사에도 사용될 만큼 위상을 확고히 하는 중이다. 지난 2014~2015년에는 ‘세계화를 위한 정부조달 문화명품 상품대전’에도 초대돼 김한섭 명인이 직접 전통 복장을 입고 등채를 소개하기도 했다. 2010년 한국이 의장국이 됐던 G20세계정상회의에서도 전시돼 다른 전통수공예품과 더불어 우리 문화를 당당히 알리는 역할을 했다. 김한섭 명인이 제작한 등채가 주목을 받으면서 최근에는 군에서도 제작 의뢰가 들어올 정도다. 외국군 손님이나 주한미군 지휘관들에겐 특별한 의미의 선물로 찾는 경우다. 김 명인은 “등채는 5방색의 상서로운 기운으로 부대를 잘 지휘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며 “가끔 주한미군 지휘관을 위해 제작하기도 하는데 그들이 이 등채가 내포하고 있는 우리의 전통사상을 이해하고 우리나라를 위해 부대 지휘를 잘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함께 전한다”고 말했다. 등채 작품을 더욱 공들여 만들고 호국(護國)공예로서 이를 잘 연구하고 계승시키는 일에 전념할 각오로 오늘도 열심히 작품에 혼을 쏟고 있는 김한섭 명인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