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갤러리 이즈에서 김판준 작가의 13번째 개인전이 열렸다. 작품 시리즈 <유년의 기억-경주 보문호에서의 추억>을 통해 어린 시절 자연을 벗삼아 놀던 기억과 산천을 자유롭게 떠돌아다녔던 소박한 감성을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한눈에 보아도 향토성이 짙은 그의 작품은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자 인간 감수성에의 향수이다.

신선영 기자 ssy@

순수에 대한 향수
그의 작품에는 너른 하늘 아래 산과 강이 펼쳐져 있다. 흩날리는 수양버들 잔가지 사이로 붉거나 흰 꽃들이 넘실대고, 무리지어 움직이는 비목어와 물결을 만들며 떠나가는 오리 떼들이 시선을 이끌고 있다. 작가가 기억하는 경주 보문호에서의 추억이다.

작가는 “눈이 하나밖에 없어서 항상 암수가 나란히 헤엄치며 산다는 전설의 비목어처럼, 사람들 속에서 부대끼며 어울려 살아가는 삶에서 공존의 법칙을 깨닫는다. 또 메마른 고목 줄기 끝에서 혹독한 겨울을 견디고 피는 매화처럼 쇠퇴하지 않고 늘 새롭게 시작하고자 한다”며 작품에 투영된 마음가짐을 전했다.

자연 속에서 체화한 미를 아름다운 삶의 한 형식으로 해석한 김판준 작가는 일상의 언저리에서 느꼈던 상념과 서정을 자연 이미지로 표현했다. 실제로 형태에 움직임은 없지만, 그 움직임과 기운을 감지할 수 있도록 대상의 잡아냈다.

▲ 작품 시리즈 <유년의 기억-경주 보문호에서의 추억>. 자연 속에서 체화한 미를 아름다운 삶의 한 형식으로 해석한 김판준 작가는 일상의 언저리에서 느꼈던 상념과 서정을 자연 이미지로 표현했다. 실제로 형태에 움직임은 없지만, 그 움직임과 기운을 감지할 수 있도록 대상의 잡아냈다.

특히 불교 국교였던 경주는 신라의 문화유산이 보존된 곳이다. 유적지와 남산의 절터에서 놀던 기억도 모티브로 작용했다. 작가 노트에서 밝힌 “무수한 전설이 서려있는 내 기억 속의 정체. 내 삶의 원형질. 때로는 희망적이고 때로는 권태롭기도 했던 삶의 중심에 온전히 자리 잡고 있는 산”은 도가적 무위자연의 세계관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는 자연의 정신적 사유, 사색의 깊이가 없으면 나올 수 없는 것이다. 작가에게 도자는 단순히 대상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과 교류하고 호흡함으로써 그것에 깃든 정신을 승화하는 작업이다.

도자의 심미적 사유
도자는 자연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 작가가 자연에서 나고 자라 자연스럽게 흙과 가까워진 것처럼 도자도 흙, 물, 불, 바람, 공기에 의해 결정되는 숙명을 안고 있다. 작가가 도자를 “돌아가는 물레로부터 영혼의 궤적을 더듬는 과정”이라고 표현한 까닭이다.

도자는 성실성을 담보로 쉼 없이 자기 본분에 충실해야 하기 때문에 내면적 성찰 뿐 아니라 물질적, 재료적 연마도 게을리 하면 안 된다. 물레를 차고, 소성을 이해하고, 흙의 건조시간과 형의 변화를 주시해서 흙이 건조한 후에도 형색을 두루 살펴야 한다.

불의 예술이라고도 하는 도자는 불의 적용 또한 피할 수 없다. 건조된 형을 불로 초벌구이한 뒤 시유와 본 구이를 거쳐 상회하는 과정에서 오는 노동의 수고로움은 자기 수양에 버금가는 집중과 시간을 요한다. 또 전통방식을 지키면서도 작가만의 고유한 개성을 드러내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시간의 경과에 따라 우연하고 자연스럽게 생겨난 안료의 효과, 미세한 균열로 덮인 표면, 윤기를 드러내지 않는 질박함과 매끄러운 유기질감이 어우러진 김판준의 작품은 마치 자연으로부터 풍화작용을 거친 자연물과 같다. 이러한 사유의 흔적이 긴장되지 않는 편안함으로 우리의 눈을 쉬게 한다.

▲ 작품 시리즈 <유년의 기억-경주 보문호에서의 추억>. 시간의 경과에 따라 우연하고 자연스럽게 생겨난 안료의 효과, 미세한 균열로 덮인 표면, 윤기를 드러내지 않는 질박함과 매끄러운 유기질감이 어우러진 김판준의 작품은 마치 자연으로부터 풍화작용을 거친 자연물과 같다. 이러한 사유의 흔적이 긴장되지 않는 편안함으로 우리의 눈을 쉬게 한다.

과거 짜임새 있는 구도와 섬세한 묘사로 기물을 채웠던 것에 반해, 근작은 단순화된 형태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간단명료하면서도 시적인 정취가 마음에 물결같이 흘러넘치는 미학 세계이다.

도자를 업으로 삼은 지 35년이 지났지만 작가는 아직도 “예술이라는 미명 아래서 작업이 항상 어렵다”고 말한다. 현상의 아름다움만 보자면 그렇지 않을 것이다. 도자를 인간의 척도를 넘어서는 근원적인 신앙의 세계이자 지향해야 할 정신성으로 보기 때문이다.

▲ 김판준 도예가

김판준 작가는 지금까지 총 300여회의 개인전, 초대전, 단체전을 가졌으며, 대한민국 미술대전 공예분야 심사위원, 대구공예대전 운영위원과 심사위원, 경북미술대전 운영위원과 심사위원, 신라미술대전 운영위원과 심사위원, 개천미술대전 운영위원, 코리아 아트 페스타 운영위원, 성산 미술대전 운영위원, 정수미술대전 심사위원 외 다수의 미술대전 심사위원을 맡았다.

현재는 대구공예대전, 경북미술대전, 신라미술대전 초대작가이자, 한국미술협회, 한국공예학회, 대구도예가회, 계명도예가회, 가마골회 회원이며, 다양한 실험과 노력으로 터득한 도예의 가능성과 기법을 보여주며 계명대학교 미술대학 후학들과 공유하고 있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