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해 동안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관계는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었던 격랑의 연속이었다. 북한의 3월 천안함 폭침과 이어 발생한 11월 연평도 불법포격으로 남북관계를 둘러싼 국제관계는 심각한 긴장국면에 접어들었고, 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각 이해관계국들의 입장 차이는 당분간 좁혀지기 어려울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새로운 국제질서를 향한 미국과 중국의 패권싸움으로 인해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미·일 對 북·중·러의 신냉전체제가 형성되는 것이 아닌가 우려하고 있다. 

▲ 유영옥 경기대 국제대학장

 지난 해 고조되었던 한반도의 긴장 상황과 관련해 우리에게 아쉬움을 남기는 것 중의 하나가 그동안 ‘북방정책’이라는 전략적 목적을 가지고 노력을 기울여온 한·중 관계와 한·러 관계의 후퇴일 것이다. 1980년 대 이후 본격화된 공산주의 국가들과의 교류 확대를 통해 한국은 1990년 러시아와 1992년 중국과 국교수립을 이루었다. 이후 양국 모두 활발한 교류를 이어왔으며, 한국과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임을 선언하는 관계발전을 이루어왔다.
 그러나 지난 해 지속된 북한의 도발과 한반도의 긴장 국면을 둘러싼 중국과 러시아의 행보를 바라보면서 과연 중국과 러시아가 우리와 맺고 있는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라고 하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란 냉전시대의 ‘동맹’의 개념을 대체한 탈냉전시대의 국가 간의 관계를 지칭하는 용어이다. 그러나 이념보다는 국가의 이익을 우선으로 하고, 제3의 적을 설정하고 있지 않으며, 군사적 협력 외에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친 포괄적 협력을 지향하는 보다 느슨한 관계라는 특징이 있다. 그러므로 현대국제사회의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는 이전의 ‘동맹관계’보다 더욱 다양한 방식의 소통과 상호이해가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한국은 중국과 러시아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고 보기에는 여러 가지 면에서 부족하다. 특히 미국과 북한에 대한 서로간의 인식의 차이로 인한 소통의 문제는  한반도 문제에 대해 국제간의 공조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근본적인 원인으로까지 꼽힌다.
 우리에게 있어 한·미 동맹은 건국초기부터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안보와 발전의 기반이 되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것이지만, 중· 러의 입장에서는 동아시아 국제관계의 균형을 깨는 의심스러운 협조체제일 뿐이다. 또한 우리에게 미국이 경제적 원조뿐만 아니라 6·25 전쟁에서 피 흘리며 함께 싸우고, 지금까지도 우리의 안보를 지탱하는 혈맹국인 반면, 중· 러에게는 자신들이 혼신을 다해 추구하던 공산주의라고 하는 이데올로기의 오점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결국 방향을 바꿀 수밖에 없도록 조장한 기분 나쁜 자본주의의 종주국인 것이다.
 그런가 하면 북한에 대한 한·미·일의 적대적 시각과는 달리, 중·러에 있어 북한은 문제를 발생시킨다는 점에서는 불편한 존재이긴 하지만 오랜 친구임이 분명하다. 특히 중국의 경우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는 과정에서 김일성을 선두로 한 조선 공산당의 지원이 만주전선의 승리에 상당한 역할을 했던 것을 감안한다면 북한은 중국 혁명의 혈맹인 셈이다.
 중국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해치는 모든 것에 반대 한다”는 것으로 한반도 정책의 핵심을 표방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그동안 수차례에 걸쳐 서해안 지역의 무력도발을 일으켜도, 두 번의 핵실험과 수차례의 중단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를 강행해도, 천안함 포격에 이어 연평도의 민간인을 향해 포탄을 퍼부어도, 중국은 북한에 대한 언급을 일절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북한의 지속적인 한반도 평화위협에 대해 중국이 어떤 영향력을 행사해주길 기대하는 국제사회의 요구를 지속적으로 모른 척 해왔으며, 때로 국제사회가 공조를 통해 진행시키려는 유엔의 대북제재를 방해하기도 했다.
 러시아의 경우 지난 11월 발생한 연평도 사건을 계기로 과거 한반도 문제에 대한 기존 자세를 바꿔 북한 정부를 맹비난하는 이례적인 모습을 보여 우리의 관심과 기대를 집중시켰다. 특히 러시아 외무장관에 이어 실세인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까지 나서서 핵문제와 관련해 북한 측이 유엔 안보리 결의를 무조건적으로 이행할 것을 요구함으로써 우리는 북한을 압박할 또 하나의 우군을 얻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기대에 부풀었다.
 그러나 연평도 한미합동 군사훈련을 기점으로 상황은 완전히 역전되었다. 북한의 우라늄 농축 시설 문제와 관련해 6자회담을 권유하면서 중국과 우회적으로 보조를 맞추던 러시아는 급기야 우리 군의 연평도 훈련을 앞두고 유엔 안보리 소집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결과적으로 천안함 폭침, 연평도 불법 포격, 핵개발 등으로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지역의 갈등과 긴장을 발생시킨 원인은 전적으로 북한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주권국으로서 당연한 군사훈련을 한 한국이 유엔 안보리 소집의 원인 제공자가 되고만 기이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와 같은 러시아의 대응과 중국의 무조건적인 북한 감싸기는 우리의 잣대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다. 따라서 자유 민주주의적 혹은 자본주의적인 관점을 기반으로 한 외재적 접근방법으로 중국과 러시아의 행보를 평가·비판하는 것은 지양하고, 내재적 접근방법을 통한 상호이해와 소통능력의 확대를 도모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이를 위해 중국과 러시아의 사회적 전통과 의식구조에 정통한 전문가의 양성은 무엇보다 시급한 일이다. 그러나 러시아와는 이미 수교관계가 20년을 넘어서고 있고, 중국과는 내년이면 20년이 되지만, 아직까지 중국과 러시아 관련해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외교전문가는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러시아의 경우 중국보다 상황이 더욱 열악해서 수교 전까지는 말할 것도 없고, 수교 후에도 소련 붕괴에 따른 추락한 러시아의 위상과 맞물려 러시아를 무시하는 한국 내의 풍조가 팽배해 전문 인력 배출에 부정적으로 작용했음은 부정하기 힘들다.
  한편 전문 인력 부족의 내면을 살펴보면 간과할 수 없는 또 다른 중요한 문제점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한국에 ‘중국통’, 혹은 ‘러시아통’으로 불리는 전문가가 적은 것이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에서 공부하고 연구한 인력들을 우리 정부가 적극적으로 활용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재 중국과 러시아를 상대로 외교활동을 하고 있는 한국의 전문가 그룹의 대부분은 중국과 러시아 현지에서 공부한 사람들이 아니라, 미국에서 중국과 러시아를 연구한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이들의 중국과 러시아를 바라보는 관점은 필연적으로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우선으로 하는 외재적 관점으로 기울어질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청와대를 비롯한 외교 안보 라인에 중국과 러시아 현지에서 공부하고 그들의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면서 실질적 인맥을 갖춘 전문가가 몇 명이나 있는가 궁금하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는 전통적으로 비공식적 인간관계가 매우 중요한 사회이다. 일반적으로 중국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들이 가장 중요시 여기는 ‘관시(關系·관계)’를 알아야 한다고 한다. ‘관시’는 의리로 맺어진 관계, 혹은 깊은 우정으로 표현되는 관계를 의미하는데 이러한 관계가 맺어지려면 오랜 시간과 정성이 요구된다. 또한 러시아에도 ‘블라트’라고 하는 독특한 비공식적 인간관계가 존재하는데 이를 통해 러시아 정치, 경제, 사회 전반적인 흐름을 이해할 수 있다. 이 ‘블라트’라고 하는 관계 또한 밀접한 인간적 접촉을 배재한 채 형성되기 어려운 특성을 지닌다. 따라서 중국과 러시아와의 외교관계에 있어서는 전문가의 층을 더욱 두텁게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이와 더불어 최근 심각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는 한·중 관계, 한·러 관계의 위기와 관련해 중국과 러시아의 한반도 문제 전문가들이 한국 사회에 팽배해 있는 지나친 미국중시풍조를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점도 유념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이러한 풍조가 바뀌지 않는 한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갈등 상황은 쉽게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고 이들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반도 문제에 있어 중국과 러시아가 지니는 전략적 가치를 재검토하고, 진정한 ‘전략적 협력 동반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도록 상호이해의 수준을 높이기 위한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일 뿐만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의 자존심과 여론을 배려한 섬세하고 밀착된 외교활동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