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네번 바람불어 만화방창(萬化方暢) 봄이 되니/ 구경가세 구경가세 도리화 구경가세' 도화는 곱게 붉고 희도 흴사 오얏꽃이/ 향기 쫓는 세요충은 젓대 북이 따라가고/ 보기 좋은 범나비는 너픈 너픈 날아든다. - 신재효 作 ‘도리화가’ 중에서

신세영 기자 syshin@

역사 속에 숨겨진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섬세하고 아름다운 영상미, 최고 배우들의 호흡으로 담아낸 영화 <도리화가>가 11월 18일 언론시사회를 통해 베일을 벗었다. 이날 행사는 많은 언론 매체가 참석해 류승룡, 배수지, 송새벽, 이동휘, 안재홍 등 배우들의 새로운 변신과 연기호흡, 그리고 <도리화가>가 전할 가슴 뜨거워지는 이야기에 대한 높은 기대와 관심을 입증했다. 영화 상영 후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배우 류승룡은 “거칠게 표현하거나 많은 대사를 하지 않고 소리를 지르지 않아도 침묵의 언어 같은 것들이 파장과 여운이 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뒤에서 묵묵하게 지켜보고 응원해주는 모습이 잘 표현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촬영에 임했고, 저한테는 또 하나의 도전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동편제를 대표하는 최고의 명창이자 동리정사의 소리선생 ‘김세종’ 역의 송새벽은 “감히 내가 이 역할을 표현할 수 있을까, 흉내라도 낼 수 있을까 부담이 많았다. 그래서 촬영 내내 시나리오 안에서 충실히 하려 했고, 감독님과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했었다”며 작품에 임한 마음가짐을 전했다. 이종필 감독은 “신재효 선생님과 조선 최초의 여류소리꾼 진채선, 김세종 명창들의 이야기는 역사적 기록이 희박하다. 그 희박한 이야기가 흥미로웠고, 이들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에 대한 궁금증으로 영화를 찍고자 했던 것 같다”며 연출의도를 전했다. 11월 25일 개봉.

1867년 조선 최초 여류소리꾼 이야기
조선 후기 판소리를 집대성한 대표적 이론가이자 당대 최고의 판소리 대가 신재효, 남자만이 소리를 할 수 있다는 금기와 편견을 깨고 그가 키워낸 최초의 여류소리꾼 진채선. 1867년 흥선대원군이 전국의 소리꾼들을 위해 열었던 경연 ‘낙성연’에서 조선 역사상 최초로 여성의 소리가 울려 퍼진 그 날 이후, 스승 신재효와 제자 진채선 두 사람의 이야기는 역사에 정확히 기록되지 않았다. 신재효가 진채선의 아름다움을 복숭아꽃과 자두꽃이 핀 봄 경치에 빗대어 지은 것으로 알려진 단가(짧은 판소리) ‘도리화가’의 노랫말에 남겨진 그들의 이야기가 2015년 영화 <도리화가>를 통해 되살아난다. <도리화가>는 1867년 여자는 판소리를 할 수 없었던 시대, 운명을 거슬러 소리의 꿈을 꾸었던 조선 최초의 여류소리꾼 ‘진채선’(배수지)과 그녀를 키워낸 스승 ‘신재효’(류승룡)의 숨겨진 이야기를 그린다. 어릴 적 부모를 잃은 채 기생집에서 자라났지만 우연히 접한 판소리에 매료돼 기생이 아닌 소리꾼의 꿈을 품어 온 당찬 소녀 진채선. 그녀가 시대의 금기를 넘어 간절한 꿈에 도전하고, 자신의 운명을 넘어 진정한 소리꾼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은 현시대와도 맞닿아 있는 공감대를 형성하며 가슴 뛰는 카타르시스를 전한다. <도리화가>는 실제 역사 속 장소와 가장 흡사한 공간을 발견하고 창조하는 작업 등 148년 전 소리꾼들의 세계를 생생하게 그려내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제작진은 경복궁, 창덕궁, 용인민속촌, 순천 남안읍성, 남한산성, 수원행궁 등 시대적 배경이 살아 있는 전국의 주요 명소 섭외는 물론, 당시 실제 소리꾼들이 연습을 위해 찾았을 법한 장소와 공간을 찾기 위해 로케이션 헌팅에만 무려 8개월의 시간과 열정을 쏟았다. 무엇보다 극의 초반과 후반에서 소리꾼들에게 가장 중요한 공간이자 무대가 되는 ‘동리정사’와 ‘낙성연’을 스크린에 재현하는데 공을 들였다. 조선 최초의 판소리학당이자 신재효의 생가인 동리정사는 현재 일부만 보존된 채 소실되었다. 이와 가장 흡사한 느낌의 장소를 원했던 제작진은 춘향가의 배경이 되는 남원 광안루의 월매집을 선택, 이종건 미술감독의 섬세한 작업을 거쳐 소리꾼들의 삶이 묻어 있는 공간을 복원했다. <도리화가>는 실제 역사 속 장소와 가장 흡사한 공간을 발견하고 창조하는 작업 등 148년 전 소리꾼들의 세계를 생생하게 그려내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경회루는 경복궁 중에서도 촬영 허가가 가장 까다로운 곳이지만 제작진은 오랜 설득과 노력으로 촬영을 성사시켰다는 후문이다.

#. 배수지, 소리가 운명인 소녀로 돌아오다
2012년 영화 <건축학개론>을 통해 ‘국민 첫사랑’ 열풍을 몰고 온 배수지가 <도리화가>로 3년 만에 스크린에 컴백한다. 류승룡과의 첫 호흡으로 기대를 높이는 배수지는 데뷔작 <건축학개론> 속 국민 첫사랑의 이미지를 벗고 남자들만의 전유물이었던 소리꾼에 도전하는 당찬 진채선으로 완벽히 변신했다. 메이크업을 지운 맨 얼굴에 숯칠을 하고 남장을 하는 파격적 변신을 감행한 것은 물론, 판소리를 위해 발성과 목소리마저 변형시키며 캐릭터에 완벽히 스며들었다. 배수지는 철없는 소녀에서 아름다운 소리꾼으로 거듭나는 채선의 성장 과정을 특유의 맑은 매력과 더욱 성숙해진 연기력으로 소화해냈다. 특히, 신재효의 제자가 된 후 본격적인 소리 연습을 시작하는 장면을 위해 홑겹의 한복만 입은 채 무려 10시간 동안 살수차의 비를 맞으며 촬영하는 등 놀라운 열정과 몸을 사리지 않는 노력을 보여줬다. 소리에 재능을 지닌 평범한 소녀에서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진짜 소리에 눈을 떠가는 과정을 그려야 했던 배수지는 국악인 박애리 명창의 가르침에 따라 촬영 6개월 전부터 판소리를 연습했다. 박애리는 국립창극단에서 주연배우로 활동했으며, 2010년 한국방송대상 국악인상을 수상한 바 있다. 배수지는 기존 가수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창법과 호흡을 구사하는 훈련을 했고, 소리 내는 자체가 너무 힘든 나머지 목과 체력이 금세 소진되는 험난한 과정을 겪었지만 채선과 같은 의지와 노력으로 촬영 기간까지 약 1년 가까이 연습에 매진했다. 박애리 명창은 “판소리를 하기에 아주 좋은 목소리를 갖고 있어 처음 수업을 하던 날 정말 깜짝 놀랐다. 바쁜 일정 속에서 이른 아침, 늦은 저녁을 가리지 않고 내게 먼저 연락을 해올 정도로 열정적으로 연습에 임했다. 짧은 기간 동안 놀라운 발전을 한 재능 있는 배우라고 생각한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Q. 영호 <도리화가>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눈물이 났다. 소리를 하고 싶어 하고, 잘 되지 않아 속상해 하는 채선의 감정은 내가 가수를 준비할 때 느꼈던 그것과 많이 닮아 있었다. 덕분에 감정 이입을 많이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진채선이 조선 최초의 여류 소리꾼이자 실존 인물이라는 점 때문에 부담도 컸지만, 캐릭터의 매력에 이끌려 작품을 선택하게 됐다.

Q. 영화 속에서 유독 물과 연관이 많은 것 같다. 빗속에서 힘들게 촬영한 것은 스틸에서도 많이 나왔는데, 이와 관련해 에피소드가 있다면?
- 폭우 맞는 신을 찍고 나서 아주 심한 감기가 걸려서 며칠 고생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물에 들어갔다 나오는 신이 있는데 편집이 되어서 못 보셨을 거다. 그 장면을 찍고 나서도 심한 감기에 걸렸었던 기억이 있다.

Q. 영화의 처음과 끝에 판소리의 완성도가 달라야 했고, 차별성을 어느 정도 둬야 할 것 같은데 그런 부분들에 있어서 어떤 준비를 했나?
- 초반에는 채선이가 판소리를 몰래 훔쳐서 따라 듣고 따라 배우고 매우 미숙한 상태이다. 감독님께서 거의 순서대로 촬영을 해주셔서 실제로도 많이 미숙했다. 하지만 정말 꾸밈없이 열심히 하려고 했었고, 뒤로 갈수록 목소리도 조금 바뀌어서 저도 신기했다. 감독님께 감사하다는 말을 드리고 싶다. 자연스럽게 초반에는 미숙했고 점점 발전하는 모습이 영화에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다.

Q. 배우 류승룡과의 연기 호흡은 어땠나?
- 일단 정말 스승님처럼 잘 챙겨주시고 배려해주셔서 촬영장에서 든든하게 촬영했다. 그리고 서로 눈으로 호흡할 때가 많았다. 선배님께서 눈으로 위로해주시고 괜찮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은 눈빛으로 저를 편안하게 대해주셔서 감사했다.

Q. 남장을 하면서 가장 신경 썼던 부분은?
- 걸음걸이에 신경 썼다. 감독님이 먼저 시범을 보여줬는데, 그대로 따라 했다.

Q. 극중 실제 가수준비 하면서 느꼈던 감정이입을 많이 했다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점에서 그랬는지?
- 제가 가수를 준비할 때 연습실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연습을 많이 할수록 좋고 내가 혼자 남아있을 때 희열도 느꼈다. 그런데 연습을 많이 하는데 잘 되는 것만은 아니었다. 한계에 계속 부딪히고 눈물도 많이 났다. 이 길은 나의 길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했던 과정이 기억이 많이 났다. 그런 기억들이 많이 나서 감정이입이 되었다.

Q. 1년여 정도 소리 훈련을 받으면서 영화를 찍었다. 어떻게 그 짧은 기간 안에 굉장한 실력을 보일 수 있었는지 놀라운데, 트레이닝 과정이 궁금하다.
- 제 스케줄도 있고 선생님 스케줄도 많으시고 해서 만나서 배우면 꼭 녹음을 다해놨다. 그것을 주구장창 매일매일 들었다. 그러면 정말 잘 익혀지고 부족한 점도 알 수 있다. 계속 듣다 보니 흥얼거리게 되는 것 같았다. 계속 선생님 소리를 따라 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처음 녹음한 것과 비교했을 때 조금 늘어있어서 신기했다.

Q. 이 영화가 본인의 작품 중 역할과 비중이 컸던 작품이어서 감회가 새로울 것 같다. 자신이 연기한 것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꼽는다면?
- 스승님한테 소리가 정말 하고 싶다고 한번만 들려주고 싶다고 말하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원래 대본에 있었고 그 장면이 채선의 간절한 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어서 중요하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새로운 대본을 주신 것에서는 그 장면이 사라져서 감독님께 여쭤봤다. 감독님이 이 장면은 굳이 필요 없을 것 같아서 뺐었다고 했었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