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의 공간

▲ 예초 정정순

짙푸른색 나뭇잎들 옹기종기
하늘을 수놓는 무더운 중복 날
안개가 쉬어 가는 무거운 산중
침묵 속에 앉아 있는
나는 겨울 나무 같았다

얽힌 인연들 잊어야 하는 사연들
후미진 산골짜기에서 외로움의 의미를
쌓인 낙엽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본다

산새도 조용한
바람 한 점 없는 후미진 그늘 아래
지팡이 하나 주워 들고 싶은 마음은
산꽃을 피우려는 허심의 노래가 되어
하늘을 덮는 나무 잎새에
바람 소리로 들려오고

가느다랗게 바람 부는 마음은
땅 위에 누워 눈을 감고
당신이 계신 하늘나라로
당신을 버리고 여행을 떠나본다.

무궁화 꽃

눈부신 하늘 가득
보랏빛 무궁화꽃
햇볕 찬란한 아침을 맞으며
어젯밤 내린 비에
말끔히 씻어 내린 청아한 모습은
한국의 향기를 뿜고 있었다

활짝 피어오른 꽃잎을 보며
한민족의 의미를
조국의 의미를 새롭게 느끼며
고운 빛으로 젖던 한순간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서로의 불꽃 같은 마음을 보았다

한마음으로 함께
고운 꽃잎 속에서
뜨거운 빛을 내지 못하는
우리 민족의 아픈 눈물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