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짓던 배고픈 시절에는

▲ 한울북춤연구원장 황보 영

나는 뒤늦게 저녁 형에서 아침 형 인간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1953년 6.25 한국전쟁이 끝나기 직전에 경상북도 군위 고로의 작은 벽촌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의 기억으로는 식구가 많아 조그마한 방에 밥상이 3개 이상 차려졌고, 밥상에 올라오는 밥공기 마다 쌀과 보리를 섞은 비율이 완전히 달랐다. 반찬 종류는 비슷했지만 생선의 토막부위 등도 달랐으며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할머니와 장손인 저는 겸상을 했고 아버지는 독상이며 남동생들은 같은 밥상에서 먹었다. 어머니와 여동생은 그냥 바닥에서 바가지에 남은 밥과 반찬을 담아서 먹었다. 아직도 눈을 감으면 이런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생각해보면 이때는 누구나 할 것 없이 참 가난하게 생활하였다.

이런 우리나라가 산업사회를 경험하고 정보화 사회를 지나면서 이제는 문화와 여행을 즐기는 시대를 맞고 있다. 낯선 곳을 여행을 하다보면 참 아름다운 곳을 많이 보게 되고, 그곳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곳이 정말로 내가 사는 곳보다 좋을 수도 있지만, 어쩌면 내가 그곳에 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낯선 정경들이 더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곳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듯 사람의 욕구에는 끝이 없다. 소박한 욕구에서 출발하였지만, 뭔가를 이루고 나면 또 다른 뭔가를 이루고 싶어진다. 이런 욕구가 지나친 탐욕이 되면, 때로는 분란을 일으키고 전쟁까지 일어나게 만든다. 어느 날 위대한 황제 알렉산더가 막사에서 한없이 울고 있었다고 한다. 부하들이 그 이유를 물었더니 그는 "이제 더는 정복할 땅이 없어 운다."고 대답했다. 우리의 삶도 욕구와 욕구의 연속이다. 이런 욕구가 욕심으로 이어지면 우리는 행복할 날이 없다. 내가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내가 어느 곳에 살고 있느냐도 중요하지 않다. 똑같은 상황이라도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보느냐가 중요하다. 똑같은 것을 보아도 긍정의 시각으로 볼 수 있다면, 내가 가진 것은 새로운 것이 되고, 내가 사는 곳도 늘 새롭게 다가올 수 있다. 그러므로 늘 뭔가에 대한 욕구불만으로 세상을 살아갈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도록 나와 세상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가지고 살아가면 좋겠다.

자연은 직접 해보는 생활이다

저가 어렸을 때는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오면 산에 가서 땔감을 준비하고 산에서는 짐승을 잡아먹는 원시적 삶과, 개울에서는 가재와 물고기도 잡고, 집 주변에 올가미를 설치하여 쥐를 잡았고, 쥐꼬리를 잘라 방학숙제로 모아놓기도 했다. 개울물이 얼면 스케이트도 집적 만들어 사용하였고, 새총을 만들어 산과 들을 뛰어다녔으며, 겨울에는 하늘높이 날리는 연도 직접 만들었다. 묘사 때는 음복을 얻기 위해 동생을 등에 업고 따라다녔고, 묘사가 끝난 산소자리에 나란히 않자있는 아이와 어른 구분 없이 음식을 똑같이 나뉘어 받았다. 아침부터 따라다닌 문중묘사는 음복을 한번 지낼 때 마다 받고 큰문중은 여러번 지내기에, 그 양은 엄청났는데, 짐작으로는 2㎏이상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저녁때 집으로 올 때는, 배가 고파도 음복으로 받은 것은 절대로 먹지 않았고, 먹으면 큰 일이 라도 나는 줄 알았다. 아이들에게 즉석에서 별도로 차려주면 한 두입 정도만 먹고, 집에 가져갈 봉지에 담았던 기억도 난다. 이렇게 먹는 것에서부터 고마움을 알고 자랐기에 학교에서 인사법이나 예절을 가르쳐주지 않아도 어른에게는 몸과 마음을 다하여 존경하고 존칭어를 쓸 줄 알았다.

옷은 집적 농사를 지어 목화로 짜서 입기도 하고, 신발은 집신과 검정고무신이고 어른들은 집신을 많이 준비했다가 신었으며, 일 년에 한 번씩 미국의 구호품을 배급받아 몸에 맞게 줄여서 입었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되어 겨울에 까만 동복을 입었을 때는 너무 좋아서 일을 더 열심히 했던 생각이 또렷하다. 이때만 해도 나는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고, 그런 생각을 하지도 않았다. 그때는 하루에 밥을 삼시세끼 다 먹는다는 생각을 할 수도 없었고 해서도 안 되는 때였다. 하얀 쌀밥은 제사 때나 식구의 생일 때만 구경할 수 있었다. 그 외에는 아침밥은 나물밥, 무밥, 보리밥 등으로 하고 점심과 저녁은 죽과 국수, 감자 등으로 때를 이어갔다. 아이들은 영양가는 적었지만 배부를 정도로 많이 먹었고 몸에 살은 없어도 올챙이배처럼 뽈록한 배로 뛰어 놀았다. 집집마다 아이들의 수는 보통 다섯에서 열 자매가 넘기도 했다. 이때만 해도 밥을 먹고 집밖을 나오면 앞은 냇가요, 산이요, 들이었다. 온 천지가 놀이터요 학습장이며, 동네 아이들이 형과 동생이 되어 갖가지 놀이를 만들어서 즐겼다. 놀이에서는 형들의 도움을 받아 공정한 경쟁을 하며 지혜를 익혔고, 지기도 하고 이기기도 하는 좋은 추억을 만들었다.

귀농과 귀촌으로 회귀하는 세상

당시에는 대부분 70% 이상의 아이들이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도시로 나가 취직을 하였는데, 이때부터 산업전선에서 일을 하는 직장인이 되었다. 도시마다 공장의 굴뚝은 높아지고, 1년의 농경생활이 한달의 공장생활로 바뀌면서 환경은 점점 변화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 초부터 『새마을운동』이 시작되면서부터 초가집이 없어지고 마을길도 넓어졌다. 등에 지게 지고 다니던 골목길도 손수레 다닐 만큼 넓은 길이 되었으며, 손수레는 지개의 열배를 실고 다니게 되었고, 이것이 경운기로 발전을 거듭하더니 지금은 트랙터가 들어와 수백 평에서 수천, 수만 평의 농사도 거뜬히 해내게 되었다. 그러나 많은 농약과 비료의 힘을 빌리면서 음식의 성분도 변하고 다양한 질환의 발병 가능성도 낳게 되었다. 이것이 현재의 농촌사회 모습이기도 하다.

그동안 농촌을 벗어나 도시로 향하던 사회 모습이 이제는 도시에서 농촌으로 돌아가는 귀농과 귀촌 현상이 눈에 띄게 높아지고 있다. 이런 모습에서 나는 우리의 옛 전통도 다시 되살아나서 현재의 차가운 도시 빌딩숲이 감성이 무르익는 세상으로 변모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특히 우리의 전통생활민속놀이도 다시 부활되어 그 새로운 가치를 찾을 때가 되었다고 본다. 앞으로의 산업은 차가운 디지털 기술로만 발전할 것이 아니라 전통예술과 같은 감성의 옷을 입힐 때 인간다운 삶을 회복할 수 있고, 우리 고유의 문화도 살려낼 수 있다고 생각된다.

가공하면 무궁무진한 가치를 가진 생활민속예술

우리의 생활민속예술과 문화가 새로운 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누구나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예술과 문화가 되어야 한다. 이렇게 너와 나, 그리고 우리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것으로, 나는 우리의 세시풍속인 풍장놀이부터라고 본다. 서울역이나 서울시청 앞 등의 공공장소에 집회하기 위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데, 이런 곳에서 수백에서 수만 명이 머리에 붉은 띠를 매고 요란하게 북을 두드려가며 거칠게 시위하는 모습은 국민들이 보고 싶어 하는 좋은 모습이라고 할 수 없으며 주변사람들에게도 소음공해가 된다. 특히 이런 모습을 보며 지나가는 외국 관광객들의 눈에는 어떤 모습으로 비칠까 염려도 되고, 한국에 대한 인상이 잘못 각인될까 걱정도 된다.

우리의 전통예술인 풍장과 사물놀이가 유럽이나 미국카네기 공연장에서도 대찬사와 기립박수까지 받지 않았는가! 이런 훌륭한 예술과 문화를 다시 느끼고 싶어서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 관광객들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까? 대한민국에 직접 와서 체험도 하고 더 좋은 느낌을 가지고 가게 하면 그들이 우리의 예술과 문화를 알고 널리 홍보해줄 것이 아닌가! 앞으로 노사 간의 집회는 본인들의 회사에서 하고, 우리의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서울역, 서울시청, 광화문 앞에는 우리의 전통예술인들이 고유의 생활민속예술을 공연하고, 이것을 외국 관광객들에게 더 자주 선보이고,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그러면 그들은 우리의 전통예술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우리의 문화가치까지 배워갈 것이다.

전통예술의 음미가 인문학이다

우리가 대중문화를 즐기는 것도 좋지만, 또 하나의 흐름으로 함께 즐길 수 있는 우리 전통예술도 살려낸다면 더욱 좋지 않겠는가! 『아리랑』만 해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았고, 곡의 수만 해도 이만수가 넘는다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이것을 미루어보면 『아리랑』은 날씨와 장소, 그리고 그날의 명분만 가져도 즉흥적으로 노래가 되고 춤이 되어 철학으로 녹아 나온다. 외국 관광객은 이런 것을 그냥 보고 느끼면 된다. 우리가 일부러 특별하게 학습을 시키지 않아도 그들에게는 최고의 예술여행이 되고 문화여행이 될 것이다. 또한 오고 싶고 자랑할 만한 가치 있는 나라로 여기며 자국의 국민들에게 홍보해 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12월은 1년 열두 달 중 마지막 달이다. 우리 선조들은 거기에 맞게 즐기면서 생활을 하였다. 전통생활민속예술 중 풍장놀이 장르에는 열두 마당이 있고, 열두 발의 상모놀음과 버너놀음을 보면 ‘열둘’이라는 숫자가 가진 말에 ‘놀음’을 붙인 것에도 큰 명분이 있다. 이렇듯 풍장놀이 등 우리의 전통예술에 이러한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고 볼 때와 그냥 특별한 재주로 여기고 볼 때의 느낌은 완전히 다르다. 풍장놀이 속에 들어있는 내용을 음미하기 시작하면 그것은 바로 인문학이 되고, 우리의 위상을 높여주는 가치로 작용한다고 생각된다.

자! 그러면 열두 발 상모이름을 생각해보자. 왜 열두 발이라고 했을까? 세발도 좋고 다섯 발이나 열 발도 있을 텐데 열둘이라고 한 이유를 보자. 우리가 편리하게 정해놓은 시간도 오전과 오후 각 열두 시간이고, 지상의 변화를 열둘로 나뉘어 표현한 생활에, 12지지도 특별한 의미 있다. 아마도 여기에도 또 다른 숨겨진 비밀이 있을 것이다. 1년을 열두 달로 정하고 1월부터 12월까지 지나면서 희로애락과 새로 다가오는 해를 맞이하고 서로의 묵은 때와 감정을 열 두발 상모에 담아, 이것을 돌리고 돌리면서 액을 풀고, 희망을 가지기 위해 돌리고, 힘을 얻기 위해 돌리는 마지막 놀음으로 보면 된다. 그리고 우리가 상모를 돌린다고 할 때, 돌리는 이유에는 어려운 세상이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염원이 들어있다. 그 어려움이란 바로 열두 고개로 표현하는 삶의 어려움이다. 특히 열두 발 상모를 사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때 열둘(12)이라는 의미 속에는 하루를 12시간으로 한다거나 1년을 12달로 나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이런 우리의 옛 생활민속예술 속에 들어있는 놀이의 재현과 발굴은, 창조문화융성으로 함께 만들어 냄으로써 다시 뿌리가 힘을 얻고 줄기에 물이 공급되면서 빛을 보게 될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생활민속예술이 일상생활에 녹아내리는 지구촌의 인문학이 되기를 간절히 희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