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존슨, 흑인 최초로 세계 헤비급챔피언에 등극      1908년
승승장구하던 흑인 복서 잭 존슨(1878~1946)이 세계 헤비급챔피언 제임스 제프리즈에게 도전장을 낸 것은 1904년이었다. 그러나 제프리즈가 “흑인과 경기를 할 수 없다”며 거절하는 바람에 존슨은 1907년 전(前) 세계 챔피언을 상대로 간접 분풀이를 했다. 그 사이 챔피언 제프리즈는 은퇴하고 캐나다 출신의 토미 번즈가 새 챔피언이 되었다.
존슨은 새 챔피언에게 다시 도전장을 냈으나 번즈 역시 흑인과의 대결을 피했다. 그렇다고 포기할 존슨이 아니었다. 번즈가 외국으로 장소를 옮겨가며 8전 전승을 구가하는 동안 존슨은 번즈가 경기를 벌이는 영국과 아일랜드, 프랑스 등을 쫓아다니며 경기를 요구했다. 그런 가운데 번즈가 호주로 갔을 때 한 프로모터가 당시로서는 거금인 2만 5000달러를 제시하자 번즈는 그때서야 잭슨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1908년 12월 26일 호주에서 열린 경기는 일반의 예상과 달리 존슨의 일방적인 우세로 펼쳐졌다. 존슨은 복싱 역사상 최초로 아웃복싱을 선보이며 위력적인 레프트 잽을 구사했다. 존슨은 1회 첫 다운을 빼앗아 금방 경기를 끝낼 수 있었는데도 일부러 시간을 끌며 번즈를 난타했다. 번즈가 쓰러질 것 같으면 오히려 일으켜 세워 펀치를 날렸다. 게다가 존슨은 경기중 쉴새없이 백인에 대한 독설을 뿜어내며 번즈에게 온갖 모욕을 주었다.
번즈는 턱뼈가 부러지고 두 눈이 멍이 드는 처참한 상황에서도 흑인에게 챔피언 벨트를 넘겨준 최초의 백인이 되기 싫다는 자존심 하나로 버텼다. 그러나 14회 때 자칫 번즈의 목숨이 위험하다고 판단한 경찰이 경기를 중단시킴으로써 존슨은 흑인 최초의 세계 헤비급챔피언이 되었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미국의 백인들은 경악했다. 백인들은 흑인 챔피언을 인정할 수 없었다. 당시에 세계 헤비급챔피언은 세상에서 가장 강한 남자를 의미했다. 그런데 인간 같지 않은 흑인이 챔피언이라니…. 백인들에게 수치도 이런 수치가 없었다. 더구나 상대는 주먹은 물론 세치 혀로도 백인을 조롱하고 비웃어온 존슨 아닌가?
백인들은 존슨을 쓰러뜨릴 ‘위대한 백인의 희망(Great White Hope)’을 찾아 나섰다. 작가 잭 런던은 ‘위대한 백인의 희망’으로 전 챔피언 제임스 제프리즈를 떠올렸다. 잭 런던은 신문을 통해 제프리즈의 컴백을 강력히 요청했다. 제프리즈는 처음에는 거부했으나 거액의 파이트머니를 보장받고 존슨과의 경기를 수락했다.
1910년 7월 4일 미국의 독립기념일에 미국 네바다주 르노에서 펼쳐진 존슨과 제프리즈의 경기는 단순한 권투경기가 아니었다. 흑백간 대결에 미 전역이 열광하고 언론은 ‘세기의 대결’이라고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권투경기가 국민적 사건이 된 건 이 때가 처음이었다.
주최 측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총을 가지고 들어오지 못하도록 입구를 엄중히 지킨 가운데 펼쳐진 이 경기 역시 존슨의 일방적인 우세로 펼쳐졌다. 존슨은 백인 관중에 포위되어 있으면서도 시종 여유를 부리며 입으로는 상대를 조롱하고 주먹으로는 상대를 가격했다. 결국 제프리즈가 15회에 경기를 포기하자 백인들은 분노를 폭동으로 표출시켰다. 폭동으로 9명의 흑인이 죽고 수백 명이 다쳤다.
백인을 더욱 참을 수 없게 한 것은 흑인이면서도 백인 여성을 주로 사귀는 존슨의 여성 취향이었다. 1912년 존슨이 백인여성과 결혼하자 백인들의 흥분은 최고조에 달했다. 그때 백인들이 끄집어낸 것은 1910년 제정된 “부도덕한 목적을 위해 부녀자들을 주(州) 경계선 너머로 수송할수 없다”는 이른바 ‘맨 법령’이었다. 법의 당초 취지는 매춘부 여성을 다른 주로 보내지 않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으나 백인들은 존슨이 백인여자 친구를 기차에 태워 피츠버그에서 시카고로 보내기 위해 열차권을 끊어 준 것을 문제삼았다. 결국 존슨은 1913년 5월 시카고에서 1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존슨은 백인 부인과 함께 캐나다로 도망을 쳤다.
이후 주로 파리를 근거지로 생활하던 존슨은 1915년 4월 5일 쿠바 하바나에서 챔피언으로서의 마지막 경기를 가졌다. 어느덧 37세가 된 존슨은 신예 복서 제스 윌라드와의 45회 경기를 가졌으나 26회를 넘기지 못하고  KO패했다. 이때 존슨이 경기를 포기했다는 루머가 돌았다. 백인들의 화를 누그러뜨려 다시 미국으로 돌아갈 때 죄를 감해보려는 의도였다는 것이다.
경기에서 패한 후 존슨은 스페인과 멕시코 등지를 전전하다가 1920년 7월 직접 미국으로 돌아가 1년형을 살고 1921년 7월 풀려났다. 감옥에서 나온 뒤 복싱을 다시 시작하려고 했지만 타이틀을 획득하는데 실패하고 실의에 빠져 노년을 보내다가 1946년 6월 10일 68세 나이에 자동차 충돌사고로 죽었다.

■자토펙 사상 첫 장거리 육상 3관왕          1952년
‘인간 기관차’ 에밀 자토펙(1922~2000)의 달리기 입문은 실로 우연이었다. 그가 일하고 있는 구두공장 사장이 자신이 후원하고 있는 1500m 크로스 컨트리 대회에 직원 중 누군가를 보내야겠는데 마땅한 적임자가 없어 가장 젊은 자토펙을 내보낸 것이다.
자토펙은 난감했지만 “이왕 나가는 김에 제대로 뛰어보자”며 있는 힘을 다했다. 결과는 생각지도 않은 준우승이었다. 누구보다 놀란 사람은 자신의 숨겨진 재능을 발견한 자토펙 자신이었다. 그의 첫 세계무대 도전은 1948년의 런던올림픽이었다. 26세의 나이에도 1만m와 5000m에서 각각 금·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자토펙의 생애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장면이 연출된 것은 1952년 헬싱키 올림픽 때였다. 그는 주종목인 1만m와 5000m에서 2개의 금메달을 따더니 내친김에 마라톤까지 도전했다. 마라톤은 처음이었다. 그러나 이 천부적인 육상선수에게 마라톤이라고 특별할 것도 없었다. 마침내 일주일동안 열린 세 경기 모두에서 금메달을 따낸 것이다. 올림픽 역사상 장거리 경기에서 세개의 금메달을 따낸 것은 자토펙이 처음이었다. 이 기록은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는 난공불락의 대기록으로 남아있다.
자토펙이 5000m에서 우승하고 몇분 뒤, 생년월일이 같은 그의 아내도 투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어 올림픽 사상 첫 부부 우승자가 되었다.
레이스 도중 늘 턱을 쳐들고 헐떡거리며 고통스럽게 뛰는 그에게 누군가 물었다. “왜 그렇게 힘들게 달리느냐”고. “나는 달리면서 웃을수 있는 재주가 없다.” 우문현답이었다.
자토펙은 현역시절 올림픽에서만 4개의 금메달을 따고 세계신기록을 18번이나 갈아치운 체코의 육상영웅이었다. 특히 1만m에서는 38연승의 대기록을 세우는 위업을 달성했다. 1만m 경기 때마다 출발과 동시에 자토펙이 늘 선두를 달리고 다른 선수들이 그의 뒤를 줄지어 달린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 ‘인간 기관차’였다.
자토펙은 혹독한 훈련과 과학적인 훈련방법을 개척한 선수로도 유명하다. 완전군장에 손전등을 들고 캄캄한 연병장을 몇바퀴씩 도는가 하면 다리에 4.4파운드짜리 추를 달고 질주하기도 했다. 그가 고안해낸 ‘인터벌 트레이닝’은 지금까지도 장거리 육상선수들이 즐겨 애용하는 훈련법이다.
이 훈련법은 1만m를 그냥 뛰는 것이 아니라 200m나 400m씩 구간을 나눠 각 구간을 전력질주한 후 구간 사이마다 휴식을 취하는 방법이다. 자토펙이 오늘날까지 영웅으로 기억되는 것은 달리기 때문만은 아니다.
1968년 이른바 ‘프라하의 봄’ 때 직접 마이크를 들고 소련군 반대를 외쳤고, 그해 6월 각계 인사들의 ‘2000語 선언’에도 서명함으로써 체코의 자유화와 민주화를 위해 온몸을 던졌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그는 육상 코치에서 해임되어 탄광 막장을 전전해야했다. 공산정권이 물러난 1990년이 되어서야 자유의 몸이 되고 잃었던 권한을 되찾았으나 이번에는 병마가 기다리고 있었다. 2000년 11월 22일 78세로 눈을 감았다. “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엄치고 사람은 달린다.” 자토펙의 말이다.

■코마네치 10점 만점으로 몬트리올 올림픽 3관왕       1976년
캐나다 몬트리올 올림픽이 한창 열기를 띠고 있던 1976년 7월 22일, 153cm·39kg의 가녀린 소녀 나디아 코마네치(1961~ )가 2단 평행봉에서 자유자재로 현란한 연기를 펼치고 사뿐히 착지했다. 전광판에는 숫자 ‘1.00’이 찍혔다. 완벽한 경기를 펼친 코마네치의 점수가 ‘1.00’이라는 사실에 관중석이 술렁거렸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뿐, ‘1.00’이 사실은 ‘10점’ 만점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관중들이 환호하며 박수갈채를 보냈다.
왜 ‘1.00’로 찍힌 것일까? 주최측이 ‘체조 만점’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여겨 전광판의 최대 숫자를 9.99점까지만 나오게 해 ‘10.00’이 찍히지 않은 것이다. 올림픽에서 세계 최초로 10점 만점을 받은 코마네치는 이후에도 6차례나 더 10점 만점 ‘퍼펙트’ 연기를 펼치며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코마네치는 평균대와 개인종합에서도 금메달을 따내 3관왕이 되고 마루운동과 단체전에서도 각각 동메달과 은메달을 따내 모두 5개의 메달을 목에 걸었다.
만 14세에 불과한 코마네치의 금메달은 역대 올림픽 사상 최연소 금메달이었다. 이후에는 16세 이상에만 올림픽 출전 자격이 주어졌기 때문에 14세 금메달은 영원히 깨질수 없는 불멸의 기록이 되었다. 또한 여자체조는 코마네치의 등장을 기점으로 여성미를 보여주는 눈요깃거리 스포츠에서 기술이 가미된 예술로 승화되었다.
미국의 타임지는 “인간의 몸을 빌려 지상에 나타난 요정”이라고 극찬했고, 뉴욕타임스는 ‘탄력이 충만한 바비인형’이라고 칭했다. 잘 웃지 않아 ‘작은 바윗덩어리’, 평균대 위를 자유자재로 날고 2단평행봉에서 절묘한 묘기를 연출한다고 해서 ‘냉혈 벼룩’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코마네치는 6살 때부터 어린 소녀의 삶을 반납하고 체조인형으로 키워졌다. 그녀를 발탁한 벨라 카롤리는 최고의 코치였지만 훈련스타일은 훗날 아동학대라는 비난을 들을 정도로 혹독했다. 코마네치는 9살이 되던 해인 1970년 루마니아 전국 청소년 체조선수권대회에서 처음 우승을 차지했다. 국제무대에서는 1972년 출전한 공산주의 국가연합 청소년 체조선수권대회에서 3개의 금메달을 따냈다. 1973년과 1974년의 같은 대회에서도 전 부문 우승을 차지해 국제적으로도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일반선수 자격으로 참가한 1975년 유럽선수권에서는 4개의 금메달과 1개의 은메달로 1위에 오르고 체조사상 처음으로 10점 만점을 받아 코마네치의 시대를 예고했다.
몬트리올 성공 후 코마네치는 정치선전에 이용하려는 루마니아 정부의 명을 받아 자의반 타의반으로 벨라 카롤리 코치를 떠나 루마니아의 수도 부크레슈티로 갔다. 계속되는 폭식으로 선수생명이 위태로울 때도 있었으나 재기의 땀을 흘린 끝에 1977년 유럽챔피언대회에서 2개의 금메달, 1978년·1979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각각 1개의 금메달, 1979년 유럽챔피언대회에서 3개의 금메달을 획득하며 1인자로 복귀했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에서도 평균대와 마루운동에서 2개의 금메달을 획득하고 1981년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도 5개의 금메달을 추가하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1984년 공산권 국가의 불참 선언으로 LA올릭픽 출전이 좌절되자 올림픽을 몇주 앞두고 은퇴를 선언, 체조계를 떠났다.
루마니아의 차우세스쿠 독재정권은 코마네치를 국가의 영웅이라고 치켜세우면서도 실제로는 그녀의 삶을 감시하고 통제했으며 심지어는 핍박까지 했다. 차우세스쿠 장남과의 염문설까지 퍼뜨려코마네치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그러던 중 차우세스쿠 정권과 갈등을 빚던 벨라 카롤리가 미국으로 망명하자 코마네치에게 외국으로 가지 못하도록 금족령이 떨어졌다. 핍박과 감시가 더욱 심해져 하루하루가 감옥이었다. 결국 망명을 결심한 그녀는 1989년 11월 추운 겨울밤 루마니아 출신의 미국 시민권자였던 콘스탄틴 패니의 도움으로 국경을 넘어 헝가리와 오스트리아를 거쳐 11월 29일 미국으로 망명했다. 차우세스쿠 정권이 혁명으로 무너지기 불과 20여일 전이었다.
그런데 패니는 코마네치를 돈벌이로 삼았다. 코마네치는 패니가 잡아오는 싸구려 행사에 천박한 화장을 하고 나가야 했으며 그때마다 서툰 영어 때문에 면박을 당하고 오해를 샀다. 그녀에게 동정적이었던 언론도 서서히 그녀를 외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녀는 결국 패니와 결별하고 캐나다에 칩거했다.
그때 그녀에게 올림픽 금메달 3관왕인 바트 코너가 구원의 동아줄을 내려보냈다. 스포츠 관련 사업을 하고 있던 코너는 코마네치에게 사업파트너를 제안했다. 둘 사이에 애정도 싹터 1996년 4월 루마니아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1999년 11월 사마란치 IOC 위원장 등 국제스포츠 지도자 15명은 코마네치를 체조 부문 20세기 최고 선수로 선정했다.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 74경기 연승 위업 달성     1984년        
‘철의 여인’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1956~ )가 현역 시절 세운 각종 기록은 현대 여자 테니스의 역사 그 자체다. 그녀는 여자 테니스에 파워의 개념을 도입한 최초의 선수다. 남자선수들이나 구사하던 ‘서비스 & 발리’의 공격적 장치들을 코트에 도입하고 파괴적인 스트로크로 연승행진을 이어갔다. 그가 정립한 힘의 테니스는 독일의 슈테피 그라프를 거쳐 미국의 비너스·세레나 윌리엄스 자매로 이어져 현대 여자 테니스의 주류가 되었다.
나브라틸로바는 체코에서 태어나 서방 국가로 테니스 투어를 다니면서 공산주의 국가 체코의 공기가 갑갑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런 그녀에게 체코의 관료들이 “미국 물을 먹었다”며 비판하자 결국 그녀는 1975년 US오픈 여자 단식에서 준우승한 뒤 그해 9월 미국에 정치적 망명을 요청했다.
나브라틸로바는 1978년 7월 10일 윔블던 단식에서 처음 우승한 후 세계 랭킹 1위에 올랐다. 그후 그녀는 전성기 때 총 156주동안 세계 랭킹 1위 자리를 지켰다. 오늘날 최장기 여자 랭킹 부문 1위는 1987년 8월부터 1991년 3월까지 186주 연속 1위 자리를 지킨 슈테피 그라프가 갖고 있다. 나브라틸로바는 1982년·1983년 두 해 모두 승률 96%가 넘는 전성기를 구가하긴 했지만 최전성기는 74연승의 금자탑을 쌓은 1984년이었다.
그해 1월부터 시작해 12월 초까지 이어진 74연승 기록은 1984년 12월 6일 호주 오픈 준결승에서 같은 체코 태생의 헬레나 수코바에게 2-1로 패하는 바람에 더 이상 이어가진 못했으나 지금까지 남여 통틀어 최고 기록으로 남아있다. 연승 기록 2위는 슈테피 그라프가 1989~1990년 시즌에 세운 66연승이다.
나브라틸로바는 1984년 6월 프랑스 오픈 단식에서 우승함으로써, 여자 테니스 사상 세 번째로 대망의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그랜드슬램은 4대 메이저 테니스 대회를 석권하는 것을 뜻한다. 참고로 테니스 국제대회는 국가 대항전인 데이비스컵 대회(여자는 페더레이션스컵)와 하계올림픽 그리고 4대 메이저 대회로 불리는 윔블던(영국 오픈), 프랑스 오픈, 호주 오픈, US 오픈 등으로 구분된다.
그러나 나브라틸로바의 그랜드슬램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즉 나브라틸로바에 앞서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1954년 모린 코널리(미국)와 1970년 마거릿 코트(호주) 등이 한 해에 4대 메이저대회를 모두 석권한 것과 달리 나브라틸로바는 1983년 6월 윔블던, 9월 US오픈, 11월 호주오픈에 이어 해를 바꿔 1984년 6월 프랑스 오픈에서 우승했기 때문에 그랜드슬램으로 인정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국제테니스연맹은 나브라틸로바의 그랜드슬램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나브라틸로바는 동성애자다. 1981년 레즈비언임을 커밍아웃한 후 동성애자의 지위 향상을 위한 운동에 적극적으로 투신했다. “남자 선수들 중에도 동성애자들이 있는데 그건 물어보지 않으면서 여자에게만 동성애자냐고 물어보냐”고 항변하는가 하면 1991년 에이즈에 걸려 은퇴를 선언한 농구 선수 매직 존슨에게 온 나라가 동정을 보일 때는 “여자가 수백 수천의 남자와 잠을 자서 에이즈에 걸렸다면 모두들 창녀라고 손가락질 했을 것”이라며 사회의 이중도덕을 비판했다.
나브라틸로바는 1987년 8월 슈테피 그라프라는 걸출한 후배에게 1위 자리를 내주었지만 그래도 건재를 과시하며 우승의 기쁨을 맛보다가 1994년 11월 은퇴해 현역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그 짜릿한 승부의 순간을 잊지 못해 2000년 44세에 코트에 복귀했다. 일부 팬들은 “전성기를 지난 퇴물의 복귀”라며 코웃음을 쳤다.
나브라틸로바는 체력 소모가 큰 단식보다는 복식에 주로 승부를 걸긴 했으나 역시 그녀는 ‘철의 여인’이었다. 2003년 7월 윔블던 혼합복식 우승컵을 따내며 세계 최고령 우승기록을 갈아치우고, 2003년에만 복식에서 3차례나 우승하는 등 녹슬지 않은 기량을 과시했다. 그러나 역시 체력은 어쩔수 없어 2006년 9월 US오픈 혼합복식에서 마지막 우승을 하고 영원히 은퇴했다.
나브라틸로바가 코트에 남긴 기록은 그야말로 전설적이다. 86.8%(단식)라는 경이적인 승률에 개인통산 단식 타이틀만 167개, 복식은 177개, 혼합복식은 15개이고 이중 4대 메이저대회 타이틀은 단식 18개, 복식 31개, 혼합복식 10개 등 모두 59개나 된다. 역대 최장 세계 랭킹 1위 기록은 남여 통틀어 슈테피 그라프(377주)에 이어 2위(331주)를 기록하고 있다. 한때 여자 테니스를 호령했던 마르티나 힝기스의 이름에서 ‘마르티나’는 힝기스의 어머니가 딸에게 나브라틸로바 같은 선수가 되라고 지어준 것이다.

■마이클 조던, 시카고 불스 첫 우승 이끌어      1991년
야구선수로 활동하며 프로야구선수를 꿈꾸던 마이클 조던(1963~ )이 농구로 방향을 튼 것은 고교 2학년 때였다. 고교 졸업 당시 조던은 ‘좀 잘하는’ 농구선수였을 뿐 전미 고교 유망주 300위 내에는 들지 못했다.
그러나 조던의 잠재력을 알아챈 노스캐롤라이나대학에 스카우트되면서 조던의 농구 인생은 중요한 전기를 맞는다. 대학에서 조던의 농구기량은 일취월장했다. 조던의 현란한 드리블을 제대로 쫓아가지 못한 심판들이 수없이 트래블링 반칙을 선언할 정도로 발놀림이 빨랐다. 심판들의 오심은 대학측이 심판들에게 조던의 동작을 슬로비디오로 보여주고서야 잠잠해졌다.
조던은 1984년 6월에 있은 미 프로농구(NBA) 신인 드래프트에서 하킴 올라주원, 샘 보위에 이어 3번째로 지명되어 시카고 불스에 입단했다. 입단 첫 해에 평균 28.2점을 득점하는 놀라운 기량을 보이며 그해 신인왕 타이틀을 차지함으로써 곧 다가올 ‘조던의 시대’를 예고했다.
조던은 1986년 4월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63점을 넣어 플레이오프 최다득점 신기록을 세우고, 1986년 3월부터 2001년 12월까지 무려 866경기 연속으로 두자릿수 득점 행진을 펼쳤다. 1986~1987년 시즌에서 평균 37.1점이란 가공할 득점력으로 첫 NBA 득점왕 타이틀을 따낸 것을 시작으로 1989년 시즌까지 3시즌 연속 득점왕에 올랐다.
그러나 역시 혼자서 팀을 우승시키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1989년 필 잭슨이 지휘봉을 잡고 스코티 피펜과의 환상적이 조합이 무르익으면서 1991년 마이클 조던은 또다시 득점왕에 오르고 시카고 불스는 최초로 NBA 정상에 등극했다. 이후 1993년까지 조던은 3연속 득점왕을 차지하고 불스 역시 3연속 NBA 우승을 차지하며 미 NBA 무대를 평정했다.
그러나 ‘농구 황제’라는 찬사에 시샘이 난 듯 운명은 그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거액의 골프 도박에 연루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그동안 출중한 실력과 모범적인 사생활에 감동했던 팬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조던의 공개사과로 잠잠해질 무렵이던 1993년 7월 23일, 이번에는 아버지가 강도에게 피살되는 비극적인 일이 일어났다. 조던은 이때의 충격으로 1993년 10월 6일 은퇴를 선언했다.
하지만 몸속에서 꿈틀거리는 승부욕을 어쩌지 못해 1994년 3월 31일 농구선수가 아닌 야구선수로 운동장에 나왔다.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마이너리그에서 뛰었으나 역시 야구는 그의 본업이 아니었다. 0.202의 낮은 타율에 실망한 조던은 1995년 3월 18일 “내가 돌아왔다(I‘m Back)”는 유명한 말과 함께 전격 복귀선언을 했다.
1995년 3월 19일 복귀 첫 경기에서 조던은 19점 득점에 그치고 팀은 패하지만 그것은 17개월간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워밍업일 따름이었다. 3월 28일의 경기에서 조던은 무려 55득점을 쏟아부으며 전성기의 기량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동안 하락세를 면치못하던 시카고 불스는 조던 복귀 이듬해인 1996년 72승 10패라는 역대 NBA 시즌 최다승을 기록하며 옛 명성을 이어갔다.
시카고 불스는 1997년과 1998년, 또다시 3연속 우승이라는 위업을 달성하는 기쁨을 누렸으나 조던은 1999년 1월 13일 두 번째 은퇴를 발표했다. 이듬해인 2000년 1월 19일 조던은 선수가 아닌 워싱턴 위저즈의 공동 구단주가 되어 나타났지만 곧 농구에 대한 열정을 어쩌지 못해 2001년 9월 25일부터 다시 위저즈의 선수로 뛰었다. 2003년 4월 16일 조던이 세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은퇴함으로써 ‘농구 황제’는 ‘농구의 전설’로 남게 되었다.
조던은 농구 역사상 누구와도 비교할수 없는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다. 시카고 불스를 6차례나 NBA 챔피언에 끌어올리고 개인 통산 득점왕 10차례, 플레이오프 MVP 6차례, 정규시즌 MVP 5차례, 올스타 14번 출장과 올스타전 MVP 3차례, 스틸왕 3차례에 오르는 등 공수양면에서 농구선수가 할 수 있는 각종 기록을 갈아치웠다.
15시즌 통산 경기당 평균득점도 역대 최고인 30.12점이나 되었고 통산 득점은 카림 압둘 자바(3만8387점), 칼 말론(3만6928점)에 이어 3위(3만2292점)를 기록했다. 올림픽과도 인연이 있어 대학 때는 LA 올림픽(1984년)에, 프로때는 바르셀로나 올림픽(1992년)에 출전, 두 차례 모두 미국의 우승을 이끌었다.
조던이 압둘 자바, 윌트 체임벌린 등 쟁쟁한 선수들을 제치고 AP가 선정한 ‘20세기 최고’로 꼽힐수 있었던 것은 누구도 흉내낼수 없는 조던만의 화려한 플레이 때문이었다. 조던이 현란한 드리블, 폭발적인 슬램덩크, 상상을 초월하는 고난도 슛과 엄청나게 긴 체공시간으로 종횡무진할 때마다 농구팬들은 탄성을 자아냈다.
큰 키로 골밑을 제압하는 센터들이 코트를 지배하던 시대에 보통키(198cm)의 조던이 보여준 것은 인간의 동작이 아니라 신의 동작이었다. 그래서 붙여진 별명이 ‘농구의 신’이다. NBA가 미국이라는 울타리를 뛰어넘어 지구촌 스포츠로 격상할 수 있었던 것도 조던이라는 걸출한 스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스포츠 산업에 끼친 ‘조던 효과’도 엄청났다. 조던이 입단할 때 2000만달러였던 불스 구단의 값은 조던이 마지막 투혼을 불사르던 1999년 2억달러로 치솟았다. 나이키 등 조던과 광고계약을 맺은 기업들도 ‘조던 특수’에 엄청난 돈을 벌었다. 누가 뭐래도 1990년대는 마이클 조던의 시대였다.

■알렉산드르 카렐린, 올림픽 레슬링 3연패      1996년
‘시베리아 불곰’ 알렉산드르 카렐린(1967~ )은 올림픽 3연패와 세계선수권대회 10회 우승 등 세계레슬링대회 24회 우승이라는 불멸의 기록을 남긴 ‘레슬링계의 전설’이었다. 또한 130kg 이상이 출전하는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수퍼헤비급에서 1987년부터 2000년까지 13년간 패배를 모르고 살아온 무적의 선수였다.
그의 필살기는 상대 선수를 무 뽑아 올리듯이 들어올려 바닥에 메치는 이른바 ‘카렐린 리프트’로, 강력한 양팔로 상대 선수의 허리를 껴안아 그대로 들어올린 다음 매트 위에 내다 꽂는 이 기술은 단번에 레슬링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높은 점수인 5점을 따낼 수 있는 호쾌하고도 경이적인 고난도 기술이다. 하지만 이 기술을 구사하려면 엄청난 힘이 필요해 다른 선수들은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한다. 카렐린은 이 기술을 즐겨 사용했지만 힘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무리가 올 수 밖에 없어 올림픽 3연패까지 9번이나 수술을 받았다.
태어날 때 몸무게가 5.6kg이었던 카렐린은 192cm의 키에 몸무게가 130kg나 되는 거구이긴 하지만 같은 체급의 다른 선수들에 비하면 그렇게 뛰어난 체격은 아니었다. 그가 상대 선수에게 포인트를 거의 내주지 않으며 매트를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덩치가 아니라 다른 선수들이 갖고 있지 못한 엄청난 괴력과 월등한 기량이었다. 게다가 그는 시체같은 얼굴과 얼음같은 눈빛을 가져 매트에 오르는 순간부터 상대선수를 압도했다.
그러나 그는 이런 외모와 달리 여린 천성을 타고 났다. 수줍움을 너무 타 가족과 몇몇 친구 외엔 어울리는 사람이 없었으며 시간이 나면 고전음악을 들었다. 대학에서 고전문학을 전공한 그는 유연성을 기르기 위해 발레연습까지 했다. 카렐린은 14살 때 레슬링을 시작해 18살이던 1985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세계무대에 처음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20살이던 1987년 러시아선수권대회 때 당시 세계대회를 2연패하고 있던 세계챔피언이자 선배인 이고르 로스토로츠키에게 패배를 당하긴 했지만 그후 13년동안은 단 한 차례도 패한 적이 없는 ‘천하무적’이었다.
올림픽도 1988년 서울올림픽,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잇따라 정상에 올라 레슬링 사상 첫 한 체급 올림픽 3연패 신화를 창조했다. 1993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경기 도중 갈비뼈가 부러졌는데도 포기하지 않고 우승하는 초인적인 정신력을 과시했다.
카렐린이 얼마나 대단한 선수인가는 그와 경기를 해본 선수들의 말을 통해 알 수 있다. 카렐린과 한번이라도 대전 해본 선수들은 이구동성으로 “그 앞에 서면 오금이 저린다”라는 말로 두려움을 나타낸다. 평소 “카렐린과 치른 경기는 마치 고릴라와 싸우는 것 같다”고 말하곤 했던 미국의 매트 가파리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결승전에서 카렐린에 패한 직후 “그와 8분간 시합한 선수는 나밖에 없다”며 자부심을 표시했을 정도다.
1996년 올림픽을 3연패한 공로로 러시아군 대령에서 소장으로 수직상승함으로써 러시아 현역 장성 중 최연소 기록을 세운 그는 2000년 9월의 시드니올림픽 때도 결승까지 진출, 올림픽 역사상 처음으로 단일종목 4연속 금메달을 목에 거는 듯 했다. 결승 상대가 미국의 무명선수 룰런 가드너였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결승전에서 카렐린은 3차례나 파테르 공격 기회를 가졌고 그때마다 특기인 ‘카렐린 리프트’를 시도했으나 예전과 달리 상대를 들어올리는데 실패해 세월의 무게를 느껴야 했다. 결국 가드너에게 연장접전 끝에 0-1으로 패해 올림픽 4연패의 신화적 기록을 세우려던 야심찬 도전은 수포로 돌아갔다.
시상대에 오른 카렐린은 “2위 자리가 어색하다”며 “이제는 조국 러시아의 어린이들을 위해 살겠다”고 말했다. 이후 국경수비대 중장으로 근무하면서 러시아 하원의원도 겸해 매트 밖에서도 최고의 인생을 보냈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