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의 중심을 이루는 종이, 붓, 벼루, 먹을 일컫는 문방사우(文房四友). 평생을 학문과 삶을 이야기하며 서로 공감하고 이해해주는 벗처럼 선비들의 곁에 있는 것들이 있었으니, 이것이 바로 문구다.

윤담 기자 ydh@

선비들이 글로 지을 때 함께했던 문구는 때로는 외로움을 달래주는 친구, 때로는 조용히 지켜주는 벗이라는 뜻에서 문방사우라 칭했다. 우리의 조상들은 예부터 문방사우를 가까이 하며 인격을 쌓으려 노력했다. 전통사회에서 서예는 지성인의 척도였다. 붓글씨는 군자의 덕목이자 심성을 바르게 잡는 수신의 방법이었다.

지난 40여 년간 전통 붓 제작의 외길 걷다

▲ 유필무 필장

“붓은 자연입니다. 여유를 가지고 기다려야 꽃과 열매를 얻듯이 붓을 만드는 작업도 여유를 가지고 만들어야 제대로 된 붓을 만날 수 있습니다.” 지난 40년여 간 전통 붓을 제작해온 유필무 필장이 주목을 받고 있다. 16세에 공방에 입문 후 전통 붓 제작의 외길을 걷고 있는 유 필장은 국내 최고의 ‘붓 제작 장인’으로 손꼽힌다. 전통 붓에는 동물의 털로 만든 모필과 억새, 갈대 등으로 만든 초필이 있다. 붓은 먹을 함유하되 균일하게 발산할 수 있어야 하고, 마모에 오래 견딜 수 있는 내구력과 붓끝인 호의 갈라짐이 없어야 하고, 탄력과 유연성을 유지해야 한다.

이런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재료로 양의 겨드랑이 털, 족제비 꼬리털, 산토끼털 등 여러 동물들의 털이 사용되는데, 추운 내륙지방의 짐승일수록 품질이 좋다. 붓의 구성은 촉과 붓대롱, 그리고 큰붓의 경우 붓촉과 붓대롱을 연결하는 각통으로 되어있는데, 붓대롱은 주로 대나무를 사용하고, 각통은 참죽나무를 많이 쓴다. 유 필장이 제작하는 모필은 대부분 양호필로, 흰 염소의 털로 만들며 부드러운 것이 특징이다. 황모필은 족제비 꼬리, 장액필은 노루 앞가슴 털, 낭모필은 이리 털, 마필은 말의 털로 만든다. 초필의 재료인 고필은 볏짚, 갈필은 칡 줄기, 죽필은 대를 잘게 쪼갠 것이다. 특히 붓을 제작하는 대부분의 ‘필장’이 모필을 만드는데 비해 유필무 장인은 볏짚(고필), 칡(갈필), 억새, 개나리새, 종려나무 등의 재료도 활용해 붓을 만든다. 특히 띠풀이나 억새풀, 볏짚(稿筆) 등으로 만든 붓은 국내는 물론 중국에서까지 희소성을 인정받고 있다.

식물성 소재로 유연성, 탄력성, 함수성 등을 갖춘 붓을 만들기 위해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정성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 점이 바로 유필무 필장이 높게 평가받는 이유 중 하나다. 이 중 갈필을 만들기 위해서는 3~5년생 칡덩굴을 겨울철에 채취해 9번 찌고 9번 그늘에서 말리는 과정을 반복한다. 유 필장은 “식물성 재료를 찔 때는 나무나 풀잎의 진액 등을 뽑아내기 위해 소금물을 사용한다”면서 “구증구포(九蒸九曝)를 마친 칡덩굴을 망치로 쉼 없이 두드려 가느다란 섬유질로 만들어 낸다. 나무나 풀이 끊어지거나 부서지지 않도록 적당한 힘으로 두드리기를 재료에 따라 최소 5천 번에서 3만 번까지 한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모든 과정을 거쳐 하나의 갈필이 탄생하기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최소 3개월 정도 걸린다.

붓대부터 필산, 붓걸이까지 손수 제작

▲ 16세에 공방에 입문 후 전통 붓 제작의 외길을 걷고 있는 유 필장은 국내 최고의 ‘붓 제작 장인’으로 손꼽힌다.

하루 15시간 작업으로 한 달에 유필무 필장이 만드는 붓은 45자루. 붓대부터 필산, 붓걸이까지 남의 손을 거치지 않고 스스로 만든다. 유 필장의 붓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바로 우이모필이다. 소의 귓속에 난 털로 만든 우이모필은 정조를 주제로 한 MBC 드라마 <이산>에 소개되며 더욱 화제가 되기도 했다. 유필무 필장의 붓은 붓대에 반야심경이나 시, 아름다운 문양 등 각종 모양의 각이 새겨져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붓을 벽걸이 못 등에 걸어놓기 좋은 편리성을 위해 붓걸이도 전통문양의 매듭을 만들거나 자연을 천연 나무 등을 소재로 한 장식품도 만들어 유 필장이 제작한 붓의 가치를 한층 더 높이고 있다. 유 필장은 “예전에는 생각 없이 주문자 생산방식으로 전국에 붓을 제작해 공급했지만 값싼 것을 많이 만드는 것보다 차별화된 붓을 만들고 싶었다”면서 “전통방식의 붓을 만들기 위해 붓을 만드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구전으로 붓을 만드는 방법을 배웠다”고 밝혔다. 한국인의 섬세한 심성과 유연함, 강한 의지를 담고 있는 우리의 붓이 서구의 필기구와 값싼 중국제품에 밀려 사라져 가고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는 유필무 필장. 최근 정부는 금박장, 은장도, 누비, 문방사우와 같은 우리 전통 기술의 사업화를 추진 중이다. 앞으로도 이러한 노력들이 이어져 우수한 우리의 전통 문화가 꾸준히 계승 발전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