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만 작가는 지난 20여 년 간 미국에서 겪었던 재외국민으로서의 삶을 작품에 드러내고 있다. 일찍이 미국과 세계 각국을 다니면서 직면했던 존재와 정체성에 관한 문제는 이제 한 개인을 넘어 분단과 권력, 이데올로기적 내파를 포착하며 사회적 논의로 이어지고 있다.

본지는 연재 <고성만이 바라본 우리의 자화상>을 통해 그의 작품에 나타난 국가와 사회 담론을 이야기 하고 나아가 미술이 지닌 예술적 가치가 우리 삶에 어떻게 발현될 수 있는지 알아본다.

신선영 기자 ssy@

한국의 내러티브

▲ 추상표현주의 작가군인 잭슨폴록, 바넷뉴먼, 마크 로스코가 수학한 뉴욕 미술학생연맹(Art Student League of New York)과 홍익대학원을 졸업한 고성만 작가. 미국에서 아트 디렉터와 작가로 활동했던 그는 한국과 중국, 러시아, 미국 등 국내외 그룹전과 개인전을 가지며 존재와 정체성에 관한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고성만 작가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이슈들에 대해 정치적 편견이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시각으로 열어 보이고 있다. 이는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해 온 수많은 문제들을 어떻게 구성하고, 어떠한 방향으로 환기시켜 나갈 것인가 하는 고민으로 이어진다.

작가는 “사람 사는 게 다 비슷하다고 하지만 처음 한국에 들어왔을 때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다들 자유롭게 사는 거 같은데 행복하지 않다고 하고, 열심히 사는 거 같은데 무기력해 보였다. 알맹이가 없어진 느낌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현상을 그냥 지나칠 것이 아니라 작품에 끄집어내서 함께 고민하고 공유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게 현대 미술가가 할 일이다. ‘내가 이런 걸 느꼈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자기 생각과 의문점을 밖으로 표출하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어떠한 사안도 이데올로기적 내파에 의해 얽히고설켜서 정치적으로 작동하게 된다. 존재와 자아, 규범과 관습들이 이분법적 사고에 의해 구분되고 색이 덧씌워지기 일쑤다.

작가는 “우리나라가 인터넷 강국이라고 하지만 그 안에 들어가 보면 내용들이 굉장히 거칠다. 서로가 서로를 억압하는 기제로 작용하면서 현대인들이 혼란과 후유증을 앓게 되는 것 같다”고 파악하면서 “작품에는 내 생각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 보다는 은유적으로 표현해서 해석의 여지를 열어 두었다. 그래서 스트레스가 되지 않는, 치유도 될 수 있는 작품이 되길 바랐다”고 작업 취지를 설명했다.

갱글리뉴로파디
그의 작품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작가는 이미지에 대한 상징성에 적잖이 기대고 있다. 은유와 알레고리로 채워졌기 때문에 메시지를 단번에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정치·사회·문화사 안에서 다루기 꺼려하는 내용들이 들추어져 있는 것만은 분명히 알 수 있다.

특히 올해가 광복 70주년인 만큼 주요 쟁점인 역사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작가는 올바른 역사 확립에 대한 시대적 요구가 정치적 어젠다에 의해 축소되고 은폐되는 것에 대해 회의적으로 생각하면서도, 역사의식이 결여되는 상황에 대해서는 깊은 탄식을 했다.

▲ 척추 마디에 있는 신경절이 끊어져서 아파도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병인 ‘갱글리뉴로파디’는 한국에 들어와서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주제 중 하나이다. 이를 모티브로 그린 분절된 38선과 담배 간판에 라이트 바를 장착한 <38도선-갱글리뉴로파디>는 분단사에 대한 미장센이 강하게 드러난 작품이다.

한국에 들어온 뒤 찾아간 파주에서 처음으로 ‘STOP’ 사인을 마주쳤을 때 받은 충격은 그에게 무엇으로도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될 비수로 남았다. 작가는 “한국 근현대사에 있어서 분단은 너무나 가슴 아픈 전쟁의 역사이다. 하지만 이것에 무감각해져서 뉴스에서 군사적 도발, 폭격, 타깃, 실제 상황과 같은 전쟁 용어가 며칠씩 나와도 사람들이 신경쓰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척추 마디에 있는 신경절이 끊어져서 아파도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병인 ‘갱글리뉴로파디’는 한국에 들어와서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주제 중 하나이다. 이를 모티브로 그린 분절된 38선과 담배 간판에 라이트 바를 장착한 <38도선-갱글리뉴로파디>는 분단사에 대한 미장센이 강하게 드러난 작품이다. 올 초 담뱃값 인상이 떠들썩한 뉴스였던 것에 비해 통일에 대해서는 냉소적이었던 우리의 실제 상황을 나타낸 것이다.

작가는 이 작품에 대해 “광복 70주년, 분단 70주년... 이 길고 복잡한 이야기를 어떻게 다 표현할 수 있겠나. 가장 단순하면서도 새로운 화두를 던져줄 수 있는 작품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 예로부터 영혼과 육신의 길잡이가 되어준다는 북두칠성과 자음과 모음을 도식화 한 <북두칠성>은 가로 길이 910cm에 이르는 대작이다. 작가는“자음과 모음으로 이름을 지을 수도 있고 글도 쓸 수 있다. 그래서 저마다 가슴 속에 품고 있는 소원들이 북두칠성과 함께 이뤄지길 바라는 염원이 담겨있다"고 전했다.

라이트 바
작가가 집중해 온 방식은 회화이다. 예로부터 영혼과 육신의 길잡이가 되어준다는 북두칠성과 자음과 모음을 도식화 한 <북두칠성>, 국민 모두에게 왕관을 씌워 줌으로써 주인의식을 고취해야 한다는 <통일대박>은 가로 길이 910~390cm에 이르는 대작으로 단순하면서도 정확한 그만의 의식세계가 드러난 작품이다.

작가는 “자음과 모음으로 이름을 지을 수도 있고 글도 쓸 수 있다. 그래서 <북두칠성>에는 저마다 가슴 속에 품고 있는 소원들이 북두칠성과 함께 이뤄지길 바란다는 염원이 담겨있다. 또, 예전에는 사람들이 통일이라고 하면 가슴 뭉클한 것이 있었는데 이제는 거론 자체를 원하지 않는다. 단어 몇 가지만으로도 색이 씌워지고 프레임에 갇히다 보니 자기 생각을 피력하지 않게 된 것 같다. 그래서 개개인의 의식이 살아 있어야 성숙한 사회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통일대박>을 통해 나타냈다”고 작품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그의 근작은 회화 자체로 완성되지 않는다. 얼마 전 열었던 개인전에서는 작품마다 라이트 바를 장착했다. 그 빛은 희망과 치유의 빛이다. 시대의 아픔을 극복하고 개인의 정체성을 보다 명징할 수 있는 매개로써 사용됐다. 작가는 이 빛의 정서를 우리가 지향해야 할 본연의 모습, 고유 정신으로 보고 있다. NM

▲ 작가는“예전에는 사람들이 통일이라고 하면 가슴 뭉클한 것이 있었는데 이제는 거론 자체를 원하지 않는다. 단어 몇 가지만으로도 색이 씌워지고 프레임에 갇히다 보니 자기 생각을 피력하지 않게 된 것 같다. 그래서 개개인의 의식이 살아 있어야 성숙한 사회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통일대박>을 통해 나타냈다”고 작품 배경을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