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지난 10월 1일 김황식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가결함에 따라 헌정사상 첫 전남출신 국무총리가 탄생하게 됐다. 국회는 이날 오후 본회의를 열어 총투표수 244표 가운데 찬성 169표 반대 71표 기권 4표로 김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통과시켰다.

▲ 국회가 지난 10월 1일 김황식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가결함에 따라 헌정사상 첫 전남출신 국무총리가 탄생했다

당초 민주당은 이날 오전 의원총회를 열어 김 후보자에 대한 부적격 의견을 당론으로 정했지만 투표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이로써 김 후보자는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수여받는 동시에 국무총리로 임명됐다. 지난 9월 16일 총리후보로 지명된 김 후보자는 호남출신으로 동서화합형의 무난한 인사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병역면제, 지출입 불일치 등과 관련한 의혹들이 불거져 나오면서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험로가 예상되기도 했다.

신임 국무총리 임명, 국회 기상도는 이상무
김황식 국무총리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이 10월 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향후 정국 기상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날 임명동의안 처리로 정운찬 전 총리의 사퇴 이래 두달 가량의 총리 공백 사태와 김태호 전 총리 후보자를 둘러싼 여야의 격렬한 대치가 일거에 해소됨에 따라 여야 관계가 대체로 평탄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러나 정기국회 국정감사와 새해 예산안 처리 등 ‘진검 승부’의 장이 줄줄이 예정돼 있어 낙관만은 할 수 없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야당의 무대’로 통하는 국감에서 여야는 최대 쟁점인 ‘4대강 사업’을 놓고 격돌했다. 민주당이 ‘국회 4대강 특위’의 설치를 주장하며 정부의 4대강 사업비 22조2천억여원 가운데 8조6천억을 삭감·조정하겠다는 복안이어서 강행을 고수하겠다는 한나라당과 대치가 불가피했다. 특히 민주당이 4대강 예산을 위해 여권이 서민예산을 희생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어 ‘4대강-복지’ 예산이 연계되면서 여야가 이른바 포퓰리즘 경쟁을 벌였다. 또 민주당은 여당이 처리를 목표로 한 집시법을 ‘민주주의 파괴법’, 통신비밀보호법을 ‘인권 유린법’으로 지목하고 SSM(기업형 슈퍼마켓) 규제법 2개를 동시에 통과시키겠다고 벼르고 있어 여야 대립이 발생했다. 이 같은 여러 대치 요인에도 불구하고 총리 인준 후 예산국회 정국의 가도는 예년에 비하면 대체로 험하지 않다는 전망이다. 여야 국회 수장인 김무성-박지원 원내대표가 극단적 충돌 없이 ‘세종시 수정안’의 표결처리를 유도해낸 것처럼 국민의 눈을 의식해 예산국회의 각종 쟁점에서 가급적 접점을 찾으려 했기 때문이다. 여권이 제1야당인 민주당을 국정의 동반자로 대접하는 모습도 정국 전망을 밝게 했다. 정부와 민주당이 지난 10월 1일 쟁점법안 및 내년도 예산 처리 방향을 놓고 이명박 정부들어 첫 ‘야-정(野-政)협의’를 개최한 것, 이재오 특임장관이 9월 16일 민주당 원내대표단을 만나 낮은 자세로 협조를 구한 것 등이 정치권의 달라진 풍경으로 꼽히며 여야 협력의 장으로 기능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때문에 새해 예산안 처리가 모처럼 법정시한인 12월2일을 지킬 수 있을지 정가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와 관련,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4대강 사업의 조정이 필요하다”면서도 “제발 이번에는 예산처리 기한인 12월2일이 지켜지도록 노력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정부 여당이 야당에게 명분을 줘야 한다”며 예산의 조건부 조기처리 가능성을 열어 뒀다.

정통 엘리트 코스 거친 법관 출신 신임 총리

▲ 김황식 신임 국무총리는 1974년 9월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로 임용된 이후 정통 엘리트 코스를 거친 법관 출신이다

김황식(62)신임 국무총리는 1974년 9월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로 임용된 이후 정통 엘리트 코스를 거친 법관 출신이다. 그는 1972년 14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사법연수원을 수석으로 수료하고 1974년 서울 민사지방법원 판사로 임용된 이후 서울고법 판사, 전주지법 판사, 광주고법 판사,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지냈다. 또 법원행정처 법정심의관, 법정국장, 기획조정실장 등 요직들을 두루 거쳐 사법행정에도 정통하다. 부동산과 독일법 분야의 권위자로 독일에서 민법과 부당산 등기법을 연구, 이를 우리나라에 적용해 부동산 등기 제도의 기틀을 마련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판사시절에는 실력 있고 후배 법관이나 직원들과 소탈하게 어울리는 성품으로 조직 내 신망을 받았다. 2004년 광주지법원장 재직시에는 매주 전 직원에게 에세이 성격의 이메일을 보냈는데, 이를 직원들이 모아 ‘지산통신(芝山通信)’이라는 책을 펴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1월18일 시작된 메일은 그가 법원행정처 차장으로 발령나기 직전인 2005년 2월 7일까지 매주 전달됐고, 73통에 이른다. 당시 판사로 근무했던 한 법조인은 “외면은 강직하지만 내면은 따뜻한 사람이었다”면서 “당시 이메일은 그의 인간적인 면을 보여주고, 직원들 입장에선 한 주의 시작을 의미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사석에서는 인간적이지만 판결을 내릴 때는 법리에 충실한 판결을 내리는 깐깐한 인물로, 판결 성향은 다소 보수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2005년 대법관 후보 인사청문회에서 그는 ‘판결이 보수적’이라는 지적에 대해 “판결만 보고 일도양단식으로 구분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며 "보수가 아닌 중도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김 총리는 대법관에 재직 당시 상지대 사학비리 사건과 관련, 비리 혐의로 물러난 상지대 구 재단측의 손을 들어준 판결로 최근 총리 인사청문회에서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상지대 사학비리 사건이란 사학법인인 상지대의 기존 이사진이 교수임용 및 입시부정 등의 비리를 저질러 정부 관리로 넘어간 상지대를 두고, 경영이 안정화된 후 정부에서 파견된 임시 이사진이 새 이사진을 선임하려 하자 기존 이사진이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이에 대해 김 총리는 “사학의 자주성은 존중돼야하기 때문에 지금 같은 소수 의견을 판결로 하게 되면 나라가 마음대로 사학의 주인을 바꿀 수 있으므로 그것은 안 된다는 의견을 수용한 판결로, 난 굉장히 진보적인 판결로 본다”고 주장했다. 2008년 감사원장으로 취임한 이후에는 법과 원칙을 바로 세워 국리민복에 기여하는 것을 운영 기조로 삼고 이명박 정부의 국정철학인 ‘공정한 사회’ 실천에 노력을 기울였다. 지난 9월 6일 취임 2주년 기자간담회에서는 “법과 원칙을 확립해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되는 사회가 공정한 사회”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총리 인사청문회에서 병역비리 의혹, 통신대 특혜지원 의혹, 감사외압 의혹 등으로 곤욕을 치렀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법조계 기독교인 모임 ‘애중회(愛重會)’의 회장을 맡기도 했으며 감사원장에 임명되기 한 달 전인 2008년 5월 제40회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해 법관신분으로 ‘대통령과 국가발전을 위해’ 라는 특별기도를 하기도 했다. 한편 김 총리는 2005년 대법관 취임 이후 임기(6년)의 절반을 채 마치지 못한 채 2008년 9월 21대 감사원장에 임명됐으며, 이번에 총리로 임명돼 또 다시 감사원장의 임기(4년)를 절반만 채운 ‘진기록’을 세웠다.

국내 첫 전남 출신 국무총리

▲ 김황식 총리는 지난 10월 1일 국회 임명 동의를 받고 정부 수립 이래 처음 전남 출신으로 총리직을 공식 수행했다

김 총리는 10월 1일 국회에서 임명 동의를 받아 이 대통령이 후반기 국정운영 화두로 제시한 ‘공정’에 걸맞은 총리로 자리매김했다. 지난 9월 29~30일 이틀간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제기된 병역면제 의혹, 동신대 특혜 지원, 4대강 감사 발표 지연, 증여세 탈루 등 의혹을 해소하면서 김 총리 인준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로써 50일간 이어진 국무총리 공백 사태가 마무리됐다. 정운찬 전 총리가 지난 8월 11일 퇴임식을 한 뒤 김황식 총리가 지난 10월 1일 국회 임명 동의를 받고 정부 수립 이래 처음 전남 출신으로 총리직을 공식 수행하게 됐다. 김 총리는 이날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받은 뒤 곧바로 세종로 정부종합청사에서 제41대 총리로 취임식을 하고 총리직 첫발을 내디뎠다. 그는 취임사에서 “공정한 사회 실현을 통한 선진일류국가 건설이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큰 뜻을 이뤄 나가는 데 앞장서겠다”면서 “총리로서 헌법과 법률에 규정된 권한과 책임을 다하겠다는 결심을 다시 한 번 밝힌다”고 말했다. 김 총리는 이어 “공정한 사회, 따뜻한 사회는 선진일류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이라면서 “이를 위해선 법과 원칙이 준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선 김 총리는 이날 총리 고유 권한인 국무위원 임명제청권을 행사했다. 이달 서울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특채 파동’으로 공석이 된 외교통상부 장관 후임으로 김성환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에 대해 임명을 제청했다. 이에 이 대통령은 신임 외교부 장관으로 김 수석을 내정했다. 이어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낙마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지식경제부 장관을 비롯해 공석 상태인 감사원장과 국민권익위원장 자리에 대한 인선 작업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특히 김 총리는 앞으로 이명박 정부 핵심 공약인 4대강 사업을 진두지휘할 것으로 예상된다. 4대강 사업에 대한 감사원 감사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감사에서 별다른 문제가 지적되지 않는다면 국회뿐만 아니라 국민을 상대로 4대강 사업 필요성 등을 역설하는 등 ‘4대강 총리’로 이 대통령 후반기 국정운영 파트너 역할을 할 전망이다. 김 총리는 중소기업, 다문화가정, 서민층 등 사회적 소외계층에 대한 복지정책 추진에도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상대적으로 약하고 가난한 사람, 소외된 계층을 진심으로 보살피고 끌어안아야 한다”며 “정부와 사회지도층이 나눔과 배려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대ㆍ중소기업 상생 정책에도 가속이 붙을 전망이다.

“차기 대권에는 출마 의사 없다”
김황식 국무총리가 취임 닷새째인 10월 5일에는 국무 회의를 처음 주재했다. 김 총리는 이날 오전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법과 원칙, 소통과 화합, 나눔과 배려 등 공정하고 따뜻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3가지 덕목을 강조했다. 특히 “국무위원과 소통하는 문을 활짝 열겠다”며 “어려운 일이든 아니든 자주 와서 편안하게 상의해주고 모든 문제를 같이 풀어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정운찬 전 총리의 사퇴와 김태호 전 총리 후보자의 낙마로 ‘총리 공백’ 사태가 50여일간 지속되며 일각에서 국정 차질을 우려한 데 대해 “소관 현안을 꼼꼼히 점검해 그런 걱정이 기우에 불과했다는 것을 보여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의 해외 방문과 관련, “국정 감사 대비 등으로 모든 부처가 바쁜 시기라고 하겠지만 공직 기강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유념해달라”고 덧붙였다.  한편 김 총리는 전날 여야 지도부와 3부 요인을 예방한데 이어 이날 오후 김영삼 전 대통령을 예방해 취임 인사를 했다. 지난 10월 8일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을 예방하고 조만간 노태우 전 대통령,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 등도 예방했다. 한편 10월 4일에는 취임인사차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내 분수를 안다”며 차기 대권에 출마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이날 김 총리는 안 대표와 ‘공정사회’ 구현과 채소값 폭등에 따른 물가안정 대책 등 현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날 오전 당 대표실을 찾은 김 신임 총리에게 안 대표는 “김 총리는 최초의 전남 출신 총리라는 점에서 화합과 탕평의 이념에 맞기 때문에 호남지역의 기대도 크다”며 “국민의 기대가 큰 만큼 좋은 총리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안 대표는 또 “대법관과 감사원장을 거쳐 총리로 임명된 것은 자유선진당 이회창 대표와 비슷한데, 혹시 이 대표처럼 대권에 나갈 생각인지 모르겠다”며 웃었다. 이에 김 신임 총리는 “나는 내 분수를 잘 알고 있다”며 “내 역할을 알고 있기 때문에 내 역할에 맞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총리 인사청문회에서 병역면제 등 한차례 홍역을 치른 바 있는 그가 차기 대권에 출마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이날 김 총리는 “지역에서는 지역 나름대로 기대가 있겠지만, 지역색을 넘어 국정운영을 전체적으로 꾸려나가겠다”며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