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가수, 기록으로 보는 ‘李美子 특별전’을 가다[1]

‘이미자 노래 한 가닥’은 한국인을 하나로 묶는 소중한 ‘끈’

우리 대중음악사에 있어 고유명사가 아니라 대명사 격인 이름, 李美子(이미자). 올해로 노래 56년째를 맞는 그의 활동기록은 이제 한 개인의 기록을 넘어 우리나라 대중음악사의 기록, 그 자체다.

그의 활동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시회가 남이섬 노래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 9월18일 개막해 내년 2월까지 열릴 예정인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가수, 李美子 특별전’이 그것.
한국에서 가장 많은 음반과 노래를 취입한 가수로 기네스북에 등재될 당시인 1990년까지 발표한 음반은 총 560장, 곡수는 2,069곡이었다.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씨는 그 많은 노래를 ‘악보 그대로’ 부르는 ‘원곡주의자’이기도 하다.

기쁠 때 부르면 기쁜 노래가 되고 슬플 때 부르면 슬픈 노래가 되는 ‘이미자 가락’, 특히 어려울 때일수록 절절하게 들렸던 이 노래들은 우리네 ‘삶의 동반자’이자 '지쳐있는 삶의 응원가'였다.

지금까지도 그의 노래는 국민들과 함께 한다. 2002년 남북한에 동시 생중계된 ‘평양 동백아가씨’ 공연에 이어 2013년 파독50주년 MBC특별기획 ‘구텐탁(Guten Tag, 안녕하세요) 동백아가씨’, 그리고 지난해 ‘이미자 노래 55년’ 무대까지, 이미자씨는 한국인이 자부심을 느낄만한 많은 무대에서 기쁨과 감동을 나누었다.

‘가늘면서도 비단결같이 고운...’, ‘한 세기에 나올까말까 한 미성’,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한풀이이며 마음의 정화요, 깊은 교감...’이라는 평가를 받는 가수 이미자.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듯 우리나라 전통음악을 고수, 자존심을 지켜오고 있는 인물. 때문에 해외동포들에게 그의 노래는 ‘고향’과 ‘어머니’, ‘조국’이라는 단어를 대신하는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가수, 기록으로 보는 李美子 특별전’을 통해 그의 삶과 음악을 재조명 & 재평가하는 작업은 우리나라 대중음악사의 또 다른 전기를 이룰, 의미 있는 전시가 될 것이다.
그 특별전 현장을 가본다.     

우리나라 대중음악사에 있어 고유명사가 아니라 대명사 격이 된 이름, ‘이미자(李美子)’는 열아홉 살 때인 1959년 <열아홉 순정>으로 세상에 처음 이름을 알렸다.
이로부터 시작된 긴 음악 여정을 따라 가다보면 왜 그의 노래가 5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사랑받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지금부터 그 기록을 따라 ‘이미자 노래여행’을 떠나본다.

“아름다운 남이섬 ‘노래박물관’ 에서 저의 특별전을 할 수 있어 많이 행복합니다. 제가 가요계에 나온 지 어느새 57년째를 향하고 있습니다. 인생도 노래도 끝자락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마침 모든 것을 다 보여드릴 수 있는 기회가 마련돼서 참 기쁘고 조금은 흥분되기도 합니다. 저는 노래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기 때문에 그동안 사랑해주신 팬 여러분께 좋았던 일, 나빴던 일, 에피소드... 이런 것들을 다 솔직하게 보여드리고픈 마음도 늘 있었습니다. 이 기회에 한 분에게라도 더 ‘제가 이러한 인생을 살아왔구나’ 하는 것을 보여드릴 수 있어 가슴이 뿌듯하고 지금까지 사랑해주신 팬 여러분들께 다소나마 보답이 된다면 더욱더 행복하겠습니다.” 자신의 첫 전시회에 대한 이미자씨의 소감이다.

한국전쟁 등 어려운 시기를 겪어야 했던 유년시절부터 ‘노래 잘하는 소녀‘로 불렸던 그. 불과 네, 다섯 살 때부터 부친이 친구들과 젓가락 장단에 맞춰 부르는 ‘유행가’를 신기하게도 가사 하나, 음정 하나 틀리지 않고 따라 불러 주위를 놀라게 했다.

“제가 네, 다섯 살 때 노래를 잘한다는 소리를 듣게 된 이유가 있어요. 그 무렵 아버지 친구 분들이 집에 오셔서 막걸리 한 잔 따라놓고 젓가락 두들기며 유행가들을 부르곤 하셨지요. 그런데 다음날 제가 그 어른들이 부르던 유행가를 가사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부르더래요. 그게 너무 신기하니까 자꾸 한 번 더 해봐라, 시키잖아요. 어린 나이에 동요가 아니라 어른들의 어려운 노래를 구성지게 부르는 걸 보고 노래에 소질이 있다는 걸 그때부터 어른들이 느끼셨던 것 같아요.”

그야말로 말보다 노래를 먼저 배웠다고 할 정도로 타고난 이 신동은 1958년, HLKZ TV 신인선발 프로그램인 ‘예능로터리’에 출전, 나애심의 <밤의 탱고>를 불러 입상한다. 문성여고 3학년 때였다.

“당시 KBS 노래자랑도 교복 입고 갔다가 예선에서 학생은 안 된다, 해서 나중에 평복 입고 가서 참가를 했었죠. 그후 HLKZ 텔레비전의 ‘예능로터리’라는 프로그램에 참가를 했죠. 예능로터리이기 때문에 가요 뿐 아니라 국악, 무용, 클래식... 등 다양하게 있었습니다. 가요 부분에서 제가 대상을 받았죠.”
심사위원들이 놀랐을 만큼 장안에 화제를 몰고 온 계기로 마이크 앞에서 처음 녹음하게 된 노래가 김성근 작곡의 <도라지 블루스> 등 네 곡이다. 이 노래는 이후 유니버샬레코드사를 통해 음반으로 발표된다.

본격적인 가수 활동은 ‘예능로터리’ 출연 두 달 후, 작곡가 나화랑 씨에게 픽업, 킹스타레코드사에 전속되며 <열아홉 순정(반야월 작사, 나화랑 작곡)>을 발표하면서 부터다. 이 노래로 이미자라는 이름이 세상에 알려진다. 두 콤비는 계속해서 <워싱턴블루스(손로원 작사, 나화랑 작곡)>, <집시의 여정(반야월 작사, 나화랑 작곡)> 등으로 이어간다.

아울러 1963년, 아세아레코드사에 전속되며 영화 ‘미녀와 도적’의 주제가인 <이토록 못 잊어서(조진구 작사, 손목인 작곡)>와 <그리운 마음>, 그리고 영화 ‘행복한 고독’의 주제가인 <잘있거라 나는 간다(김운하 작사, 손목인 작곡)>와 함께 영화주제가 <백년한(반야월 작사, 손목인 작곡)>을 발표한 데 이어 1962년 당시 실종된 어린이 ‘두형이’를 찾기 위해 기획된 음반 <두형이를 돌려줘요(반야월 작사, 라음파 작곡)>로 점차 두각을 나타낸다. 이어 신세기레코드사를 통해 영화 ‘식모(食母)’의 주제가인 <햇빛 없는 그림자(반야월 작사, 박시춘 작곡)> <낙엽 지는 비탈길(백성진 작사, 박시춘 작곡)> 등을 발표한 후 64년 1월1일, 미도파레코드사(지구레코드사 전신)에 전속되며 그해 7월, 영화주제가 <동백아가씨(한산도 작사, 백영호 작곡)>를 발표, 일약 대중음악계의 중심으로 부상한다.

 트로트의 한국화, <동백아가씨>를 시작으로 우리나라 전통가요를 완성하다
1964년 <동백아가씨>를 시작으로 우리나라 트로트 시대를 ‘완성’시켰다고 평가받는 이미자씨. ‘해적판’까지 기승을 부리게 만든 ‘동백아가씨 신드롬’은 우리 가요계에 하나의 사건으로 기록된다.
미8군 출신가수들이 주축을 이루던 1960년대 다양한 장르와 번안곡이 유행하던 이 무렵 <동백아가씨>의 빅히트는 우리나라 대중가요를 다시 트로트 위주의 전통가요로 급선회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작곡가 백영호씨와 손잡고 발표한 영화주제가 <동백아가씨(한산도 작사, 백영호 작곡)>는 <황포돛대(이용일 작사, 백영호 작곡)>로 이어지며 ‘이미자 시대’는 본격적으로 막을 연다.
게다가 천재 작곡가 박춘석씨가 자신의 곡을 이미자씨에게 취입시키기 위해 자청해서 지구에 전속된다. 작풍도 ‘이미자 풍(風)’에 맞춰 트로트로 선회, 스스로 ‘제2의 전환기’를 맞는다. 이렇게 해서 60년대 빅 히트 3대요소인 ‘지구+박춘석+이미자’라는 진용을 갖추고 <섬마을 선생님><그리움은 가슴마다> <흑산도 아가씨> <기러기 아빠> <황혼의 블루스> <한번 준 마음인데> <아네모네> 등을 잇달아 발표한다. 동시에 백영호 작곡의 <여자의 일생> <아씨> <서울이여 안녕> <울어라 열풍아> <홍콩의 왼손잡이> <빙점> 그리고 손석우 곡인 <사랑했는데> <석양의 밀감밭> 등을 잇달아 히트시키며 거침없는 질주를 계속했다.

이른바 ‘달러박스’로 불린 그의 목소리는 작곡가라면 누구라도 탐냈다. 특히 저음에서 고음까지 완벽히 소화해내기 때문에 작곡가 입장에서는 어떤 곡이든 자신 있게 만들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을 갖춘 가수였기 때문이다.

지구 전속작곡가인 박시춘 선생과 <벽오동 심은 뜻은>을 비롯해 <밤의 정거장(전우 작사, 김인배 작곡)> <유달산아 말해다오(반야월 작사, 고봉산 작곡)> <미워도 다시 한 번(김진경 작사, 이재현 작곡)> <영원한 사랑(반야월 작사, 홍현걸 작곡)> 등 여러 작곡가들과 손잡고 많은 히트곡을 탄생시켰다. 동시에 공보부(현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한 무궁화상을 비롯한 방송국 10대가수상 등 주요 상을 모조리 휩쓸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이미자 시대’였던 것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 <동백아가씨> 일본 가다
국내에서의 <동백아가씨 신드롬>은 현해탄을 넘어 일본으로까지 이어졌다.

1966년 7월, 일본 빅터레코드사와 계약을 맺은 후 일본으로 건너간 이미자씨는 <동백아가씨(戀の赤い燈, 애수의 등불)>와 <황포돛대(別れの悲歌, 이별의 비가)>를 일본말로 취입한다. 동시에 일본 전역 순회공연을 통해 인기몰이를 시작했다. 외신을 타고 속속 날아드는 소식에 국민적 자부심은 컸다.

그러나 음반에 李美子라는 이름을  ‘Lee Mi ja’로 영문 표기 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측 언론들은 일방적으로 ‘리요시꼬’라고 그를 지칭, 보도했다. 때문에 당시 외교부와 마찰도 있었지만 이미자씨의 솔직한 해명으로 일단락된다. 아울러 3개월만의 귀국은 국민들로부터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다. 귀국기념음반은 물론 기념 공연까지 성황을 이루기도 했다.

<동백아가씨> 외에도 VICTOR레코드사를 비롯해 일본에서 발표하는 음반들에는 반드시 ‘Lee Mi ja’라는 이름을 표기하는 걸 잊지 않았다. 일제강점기 때 나라 잃은 슬픔을 극명하게 그린 박시춘 작곡의 <눈물의 해협(淚の海&#23777;)>, 손석우 작곡의 <노오란 셔쓰의 사나이(黃色いシャツ’)>, 손목인 작곡의 <카스바의 여인(カスバの女) 등을 발표하며 우리나라 작곡가들의 노래를 일본에 소개, 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미자씨는 현재까지도 ‘가장 한국적인 것이 곧 세계적인 것’임을 노래로 증명해보이고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