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래 작가는 릴리프 작가로 알려져 있다. 엄밀히 말해서 ‘릴리프 회화’이다. 릴리프 회화는 단색조의 채색 패널에 옹기토로 만든 테라코타를 접목한 것이다. 테라코타의 입체감과 깊이가 더해진 작품을 통해 내부의 세계, 즉 무의식의 세계로 확장을 시도한다.

신선영 기자 ssy@

김일래 작가의 작품은 의식 너머 무의식을 향해 열려 있다. 주제를 설정한 후에 이야기를 드러내는 작업이 아닌, 오직 패널을 마주쳤을 때 발생하는 무의식적 감각과 직관에 의존해서 작업을 한다. 특히 점토를 찢고, 겹치고, 문지르고, 두드리는 행위로 만든 테라코타의 자유로운 형태는 분방함을 내재하고 있다. 어떠한 틀을 벗어나려는 자유로움, 그 자유로움의 의지와 관계있는 듯하다.

▲ 김일래 작가

릴리프식 추상회화
학부 때 조소를 전공한 김일래 작가는 흙, 나무, 돌, 철과 같은 재료에 관심이 많았다. 이러한 재료를 토대로 콜라주, 오브제, 설치 작업을 하면서 의식 세계를 표출해 왔다. 다양한 재료의 물성을 통합하고 해체하면서 장르의 영역을 천착해 나갔다.

작가는 “조소과는 각 재료의 속성을 파악해서 그것에 내포된 표현 가능성을 찾는 작업을 한다. 이 과정을 통해서 나에게 맞는 소재와 표현법을 찾게 되는데 저에게는 흙이 가장 잘 맞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흙 고유의 자유로운 물성과 질감, 색감이 마음에 들었다. 릴리프 회화는 대학원 때 구상한 것인데 흙을 회화 작업과 함께 풀어 가는 과정에서 큰 즐거움을 느꼈다”고 덧붙였다.

릴리프 회화는 비정형의 추상 이미지를 부각한 작품이다. 패널은 단색조의 평면인데 그 안에는 정확히 형태를 규정할 수 없는 비정형의 테라코타가 작품의 존재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작가는 이러한 창작 과정에서 오는 새로운 표현의 즐거움을 작업 에너지로 삼으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 <무제> 릴리프 회화는 비정형의 추상 이미지를 부각한 작품이다. 패널은 단색조의 평면인데 그 안에는 정확히 형태를 규정할 수 없는 비정형의 테라코타가 작품의 존재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작가는 이러한 창작 과정에서 오는 새로운 표현의 즐거움을 작업 에너지로 삼으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미의식, 무의식의 성취
김일래 작가가 사용하는 흙은 옹기토이다. 옹기토는 점성이 높아서 표현이 자유롭다. 그리고 강한 소성(燒成)을 이겨낸 뒤의 단단함과 견고함이 작품에서도 존재감을 발휘한다.

우선 사각 패널에 원색 바탕을 칠한다. 그리고 옹기토로 테라코타를 성형한다. 형태를 만들고 해체하고 다시 재조합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몇 번의 채색과 굽는 과정을 반복한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자기 자신을 포함한 그 누구도 떠올리지 않으며, 그 어떤 기억이나 상념에도 빠지지 않고 오로지 작품에만 열중한다.

작가는 “이성보다는 순간의 감각과 직관으로 작업한다. 패널 안에서 회화와 테라코타 간의 유기적인 조화와 균형을 맞추는 데 작업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자유로운 형태로 만들어진 테라코타는 패턴이나 형식에 일관성은 없지만 서로가 서로를 반영하고 에너지를 나누면서 하나의 장을 형성하게 된다. 패널의 수면 위로 떠오른 미지의 이미지 혹은 무의식의 이미지를 통해 ‘이미지의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 <무제> 작가는 “이성보다는 순간의 감각과 직관으로 작업한다. 패널 안에서 회화와 테라코타 간의 유기적인 조화와 균형을 맞추는 데 작업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자유로운 형태로 만들어진 테라코타는 패턴이나 형식에 일관성은 없지만 서로가 서로를 반영하고 에너지를 나누면서 하나의 장을 형성하게 된다.

색채의 보편적 서정
김일래 작가는 순간적으로 어필돼 오는 감각으로 작업하기 때문에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는 낯설고 생경할 수 있다. 하지만 보면 볼수록 시각뿐만 아니라 소리, 촉감, 냄새와 같은 총체적 느낌을 유추하면서 작품에 동화하게 된다.

작품들은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자연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이는 색채를 통해서도 느낄 수 있다. 작가는 “옹기토는 다른 점토에 비해 철과 같은 광물질의 함량이 높다. 그래서 구우면 구울수록 갈색이 진해져서 원초적 색감에 가까워진다. 아무리 채색 과정을 여러 번 한다 해도 안료가 도드라지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진한 갈색에 중첩된 안료의 차분한 색감, 손으로 빚은 이의 정서가 느껴지는 촉각적 형태를 보면서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 진한 갈색에 중첩된 안료의 차분한 색감, 손으로 빚은 이의 정서가 느껴지는 촉각적 형태를 보면서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작가의 작품을 볼 때 지적 긴장감이나 불안 요소가 해소되는 것도 이 탓이다. 원색의 바탕이 주는 시원한 느낌, 여기에 어떠한 이론이나 해석도 필요하지 않은 비정형의 자유로운 색채 덩어리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무장해제 된다.

작가의 작품을 볼 때 지적 긴장감이나 불안 요소가 해소되는 것도 이 탓이다. 원색의 바탕이 주는 시원한 느낌, 여기에 어떠한 이론이나 해석도 필요하지 않은 비정형의 자유로운 색채 덩어리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무장해제 된다.

작가는 “제 작품은 조형적인 완성도를 추구하면서 열린 정서를 드러내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꼭 무엇을 해석하고 유추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작업 과정에서 느꼈던 즐거운 기운이 전해지길 바란다”고 말하며 “앞으로도 가볍게 인지하고 편안하게 볼 수 있는 그림을 추구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렇게 작품을 특정한 무엇으로 지칭하거나 결정짓지 않으려는 그의 화법은 여러 가지 시각으로 읽어낼 수 있는 비선형적인 열린 해석을 끌어내기 위함이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