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박 쫓다 쪽박… “도박은 현대사회 고질병”
신정환 10년 걸친 도박인생, 왜 이렇게 됐나?

“기억하라! 지칠 줄 모르는 도박자들아. 시간이 룰렛의 판에서 항상 승리한다.” 19세기의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는 일찍이 카지노의 본질을 꿰뚫고 이 같이 말했다. 순간순간은 승리할지 모르지만, 카지노의 특성상 시간이 지나면 도박에 손댄 이들은 모두 패배자가 되리란 사실을 극명하게 일깨우는 격언이 아닐 수 없다.

방송인 신정환의 필리핀 원정 도박 사건으로 연예계가 떠들썩하다. 신정환은 최근 필리핀 세부의 한 카지노 호텔에서 도박을 해오다 출연 중이던 방송프로그램 3개를 줄줄이 펑크를 내며 연예계 데뷔 이후 최대 위기에 빠졌다. 그는 2005년 11월 도박혐의로 기소돼 한동안 방송 출연 정지를 당한 바 있으며, 올해 7월엔 강원 정선 강원랜드에서 1억8000만 원을 빌린 뒤 갚지 않은 혐의로 기소되기도 했다. 이로써 신정환이 도박으로 물의를 일으킨 것이 벌써 세 번째다. 특히, 현지 목겸담들로 인해 도박 혐의가 드러났음에도 신정환은 연출사진까지 자신의 팬카페에 올려 거짓말로 대응, 팬들의 실망이 극에 달해 당분간 그의 방송 복귀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올해 연예계에서는 신정환 외에도 김준호, 신혜성, 이성진 등이 도박에 연루돼 논란을 빚었다. ‘도박에 빠지면 패가망신한다’는 상투어처럼 도박 중독의 위해성은 누구나 익히 알고 있다. 도박 중독자들이 내뱉는 “딱 한 번만”이라는 나약한 외침은 집도, 차도, 직업도, 가족도 앗아갈 만큼 무서운 위력을 가졌다. 이들은 자신을 망치는 일인 줄 뻔히 알면서 왜 도박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것일까. 그리고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 힘든 늪지대 같은 도박중독을 확실히 끊는 방법은 무엇일까.

신정환 롤링시스템 타깃이었다?
9월 16일 방송된 SBS ‘한밤의 TV 연예’에 따르면 제작진은 신정환 사태를 취재하기 위해 필리핀 세부에서 홍콩, 마카오 등을 찾았다. 제작진은 세부 교민의 말을 인용, 신정환이 롤링시스템의 덫에 걸린 것은 아니냐는 주장을 제기했다. ‘롤링시스템’이란 카지노에 사람을 데려간 중개인이 수수료를 받는 방식이다. 이는 게임의 양에 따라 수수료가 측정되기 때문에 게임을 계속하도록 부추기는 시스템으로 덫에 걸린 것처럼 꼼짝없이 빠져나올 수 없게 된다. 세부 한 교민은 신정환이 일명 ‘롤링 시스템’에 얽혀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교민은 “비행기표, 방, 식사를 다 주고 게임만 시키는 이 롤링 시스템은 카지노에서 대리점을 주고 사람을 게임량에 따라 수수료를 주는 방식”이라며 “그렇게 되면 불법사채를 안 쓸 수 없다“고 말했다. 또한, 신정환의 지인에 따르면 채권자들은 빚에 대한 이자도 챙기면서, 신정환을 도박장으로 보내 도박을 할 때마다 중개수수료까지 받아왔다. 결국 신정환은 빚을 갚기 위한 돈을 벌 심산으로 도박을 또 하게 되는 것뿐만 아니라, 그를 이용해 계속 돈을 벌려고 하는 사람들 때문에 도박장을 벗어나지 못해왔다는 것. 이 지인은 ”채권자들에게 이미 많은 빚을 진 신정환은 그들이 가라는 도박장으로 가야만 했다, 채권자들은 돈을 벌고 신정환은 더 많은 빚을 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신정환이 한국에 돌아왔을 때 그를 도박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한 채권자들을 처벌해야 한다. 개인의 이익을 위해 유명인의 인지도를 이용해서 신정환을 폐인으로 몰아간 사람들을 먼저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05년 벌금형 신정환, 3년 뒤 다시 도박판에…
신정환의 원정도박 의혹이 점점 커지고 있는 가운데 검찰이 수사에 들어갔다. 신정환의 오랜 지인은 지난 9월 17일 신정환이 도박에 빠지게 된 과정을 공개했다. 그는 “신정환이 2000년부터 도박을 시작했지만 2005년 검찰에 적발되기 전까지는 자기가 버는 돈으로 도박비용을 충당할 수 있었다”며 “당시 신정환은 SBS ‘실제상황 토요일-X맨’에 출연하면서 1년에 20억원 정도 벌었다. 서울 뿐 아닌 부산 해운대에도 아파트가 두 채 있을 정도로 부유했다”고 밝혔다. 당시 신정환은 30억원의 빚이 있었지만 감당할 수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다 2005년 11월 10일 신정환은 도박혐의로 검찰에 입건됐다. 신정환은 다음날인 11일 혐의를 인정했고 그달 30일 벌금 700만원 약식기소 됐다. 4개월 동안 자숙기간을 거친 그는 2006년 2월 23일 KBS 2TV ‘상상플러스’ 녹화에 다시 참여함으로 방송에 복귀했다. 그 기간 동안 많은 팬들의 방송복귀 서명운동이 있었고, 신정환 역시 미니홈피에 “많이 반성하고 있다”는 글을 남기며 자신의 과오에 많이 뉘우치는 듯 했다. 하지만 신정환은 2006년 이후 1~2년의 자숙기간을 거쳤지만 2008년 도박에 본격적으로 다시 뛰어들었다. 이 지인은 “통 큰 무리들과 어울리면서 도박 판돈의 액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자신의 출연료로도 도박 비용을 감당하지 못할 정도였다. 브로커 및 롤링 에이전트가 신정환에게 붙기 시작했고, 주위 형, 친구들과 멀어지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더욱이 2009년 소득세도 내지 못할 정도로 빚에 시달렸다면서 “당시 소득세가 4억 정도였는데 이를 낼 돈을 마련하기 위해 도박을 했다”며 “소유했던 3채의 아파트도 도박 빚 때문에 날렸다. 출연료도 차압당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또한, 신정환을 잘 알고 있다는 한 관계자는 “신정환은 예전 불법 도박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 받은 후 3개월 만에 다행히 재기에 성공했지만 그때도 여전히 도박을 멀리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며 “이른 방송스케줄이 있는 날 오전 바로 직전까지 도박을 하다가 촬영장으로 향하는 날도 있었다. 당시 바로 그 상황을 전해 듣고 연예관계자들끼리 혀를 내둘렀던 기억이 난다”고 떠올렸다. 한편, 신정환의 가족은 도박 빚 청산을 위해 최근 거주했던 서울 중구 신당동 42평 아파트를 전세로 내놓고 조용히 서울 모처로 거처를 옮겼다. 신정환의 어머니 심모씨가 소유주로 돼 있는 로얄층의 이 아파트는 근저당이 설정된 상태로 전세가는 4억(매매가 7억선)을 웃도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정환 ‘잠적 파문’ 일지

▲ 신정환

▶ 8월 27일 = 신정환, 필리핀 세부 출국.
▶ 9월 5, 6일 = MBC 추석특집프로그램, KBS 2TV ‘스타골든벨 1학년 1반’ 녹화 연속 불참. 소속사 “과로 때문. 7일 ‘꽃다발’부터 참석할 것”이라고 입장 표명.
▶ 9월 7일 = MBC ‘꽃다발’ 녹화 불참. 세부 교민들 “신정환 카지노 출입 목격”. 최측근 “신정환, 현지 교민에 도박빚. 여권 뺏겨 억류 중” 증언 이어짐.
▶ 9월 8일 = 신정환, 현지 병원 입원 사실 알려짐.
▶ 9월 9일 = 신정환, 팬카페에 세부 현지 병원 입원 사진과 함께 “뎅기열 걸려 입원. 카지노 들렀지만 도박하지 않았다”고 해명. 이후 이날 퇴원한 것으로 알려짐.
▶ 9월 10일 = SBS ‘한밤의 TV연예’ 현지 취재. “신정환 7일 입원, 열없고 아픈 게 아니라 쉬러왔다. 모든 결과가 정상”이라는 현지 병원 의료진 말 전하며 자작극 의혹 제기.
▶ 9월 11일 = KBS 2TV ‘연예가중계’, “뎅기열 아니다”는 현지 병원 의료진 말 전하며 이후 의혹이 더 커짐.
▶ 9월 13일 밤 = 홍콩으로 출국. 현지 관계자 “13일 낮까지 카지노 출입” 증언. “한국 연예 생활 포기했다며 당분간 귀국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현지 관계자 전함. 세부 채권자 A씨 “신정환 빌린 돈 총 3억원. 모두 갚고 홍콩으로 출국”했다고 밝힘.
▶ 9월 13일 이후~19일까지 = 행방 묘연해짐. 마카오 출현설 등 돌았으나 소속사 “마카오에 가지 않았다. 제3국 체류 중”이라고 전함.
▶ 9월 27일 = 검찰, 원정도박 혐의 신정환에 강제수사 가능성 제기
▶ 9월 29일 = 신정환 네팔 체류설 “마음 정리하고 10월 중순 귀국할 것으로 알려짐”

연예인, 왜 도박에 쉽게 빠지나
왜 연예인들은 도박의 중독성을 인지하면서도 그리고 선배 연예인들이 도박 사건에 연루돼 큰 실패를 경험했던 것을 알면서도 도박에 빠져들까. 황기순, 김준호, 신혜성, 이성진, 강병규, 그리고 신정환에 이르기까지. 어쩌면 언론에 노출되지 않은 사람들이 더 있을 가능성도 꽤 있다. 문제는 인기를 최고도로 달릴 때 도박에 빠져든다는 점이다. 인기를 누린다는 것은 대단한 기쁨이요 쾌감이다. 그러나 그 뒤에 숨어 있는 불안감과 허탈감이 동시에 그들을 짓누른다. 언제까지 이러한 인기가 지속될 것인가. 또는 조명과 환호성이 꺼진 다음에 혼자 남겨진 상태에서의 외로움도 있을 수 있다. 대중들은 ‘TV에 비춰지는 연예인의 겉모습과 캐릭터를 좋아할 뿐 진정한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하는 의심도 들게 된다. 사회심리학 전문가는 연예인들이 도박에 쉽게 빠지는 이유에 대해 “연예인들은 직업 특성상 평소에 스트레스가 많다.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방법이 제안되어 있기 때문에 도박에 빠지기 쉽다”며 “도박을 통해 돈을 딸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해야 하며, 만약 도박을 할 경우엔 시간과 금액을 한정적으로 정해놓고 그 선을 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대한민국, 성인 230만명 ‘도박중독’… 왜 이렇게 됐나

대한민국이 언젠가부터 세계 최고 수준의 ‘도박중독’ 국가가 되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지난 9월 17일은 국무총리 소속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이하 사감위)가 정한 ‘도박중독 추방의 날’이다. 사감위는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도박중독 추방의 날을 맞아 지난 11일부터 18일까지를 ‘2010 도박중독 예방주간’으로 정하고 다양한 행사를 벌였다. 도박중독의 폐해를 알리고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기 위해 사감위는 지난 11~12일 서울역 앞에서 도박중독 자가진단 상담실을 운영했으며, 13일에는 ‘제4회 도박중독 예방치유 국제컨퍼런스’를 개최했다. 이어 18일까지 서울과 부산, 수원 등에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거리 캠페인을 진행했다. 사감위가 충남대 산학협력단에 의뢰해 지난 6~7월에 만 20살 이상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국내 사행산업 이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성인의 도박중독 유병률은 6.1％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성인 3700만명 가운데 230만명이 도박중독에 빠져 있는 셈이다. 이런 유병률은 영국(1.9%, 2007년), 캐나다(1.7%, 2005년), 오스트레일리아(2.55%, 2006년) 등과 비교해 매우 높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카지노나 경마 등을 레저로 생각하지 않고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는 특성이 있다. 외국의 경우 놀이동산처럼 즐기기 위해 카지노를 찾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돈을 따려고 하다 보니 중독에 빠지기 쉽다는 것이다. 더욱이 지난 10여년 사이 카지노, 경마, 경륜, 경정, 복권, 스포츠토토, 소싸움 등 사행산업 수와 규모가 크게 팽창했다. 그 결과 국내총생산 대비 사행사업 비중(2006년)이 0.61%로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0.45%)보다 훨씬 높아졌다. 사업마다 시행 이유가 있겠지만 도박중독자가 양산될 토양이 됐음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나도 도박중독에?” 자가진단 체크 리스트
다음 중 5개 이상 항목에 해당하면 도박중독의 가능성이 높으므로 전문가의 진단이 필요하다.
● 도박에 집착한다. 예를 들면 과거의 도박 경험을 계속 떠올리고, 돈을 걸었을 때 승산을 예상하거나 계획하며, 도박을 해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에 대해 항상 생각한다.
● 도박을 할 때마다 돈의 액수가 점점 커진다.
● 스스로 도박행동을 조절하거나 중지하려는 노력이 거듭 실패로 돌아간다.
● 도박을 줄이거나 그만두려고 하면 안절부절하게 된다.
● 무기력감, 죄책감, 불안감, 우울감 등과 같은 정신적 문제에 부딪쳤을 때 도박을 한다.
● 도박으로 돈을 잃고 나서 이를 만회하기 위해 다시 도박판으로 간다.
● 자신이 도박에 빠져 있는 것을 숨기기 위해 주변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한다.
● 도박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사기, 도둑질, 공금횡령과 같은 불법행위를 저지른다.
● 도박으로 인해 대인관계가 위태로워지거나 직업, 교육, 출세의 기회를 잃어버리게 된다.
● 도박으로 파탄한 경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돈을 빌린다.

강원랜드 도박중독 심각‥ 30%가 재출입
정선경찰서 통계에 따르면 2000년 강원랜드 개장 이후 지난해까지 정선군 내에서만 도박으로 인해 비관하거나 빚을 갚지 못해 자살한 사람이 37명으로 확인됐다. 또 도박중독자 대부분이 우울증이나 약물 남용 증세를 보이고 10명 중 1.5명은 최소 1회 이상 자살을 기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강원랜드 카지노에 스스로 출입금지를 신청한 사람들 가운데 30%는 다시 카지노에 출입하고 있어 도박중독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강원랜드가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김태환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강원랜드 카지노에 영구적으로 출입을 금지해달라고 스스로 신청한 ‘영구출입제한 신청자’가 만2천6백여 명이었으며, 이 가운데 30%인 3천7백여 명은 다시 카지노에 출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가족신청자 중에는 전체의 15.5%에 해당하는 967명이 카지노에 재출입한 것으로 집계됐다. 2년 안에 카지노에 출입하는 사례도 828명에 달했고, 3년 내 재출입자는 278명이다. 그만큼 도박중독을 끊기 어렵다는 것이다. 김태환 의원은 “도박을 완전히 끊으려면 본인 의지 뿐 아니라 가족과 주변인의 관심이 중요하다”면서 “강원랜드의 적극적인 노력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도박은 자극 찾는 정신질환… 자살 유발할 수도
중독은 모두 인간의 쾌락과 연관이 있다. 쾌락을 담당하는 뇌는 특정한 자극이 들어오면 쾌락 물질을 다량 분비한다. 이후 더 강한 자극을 찾게 되는데 이 충동을 조절하는 회로에 문제가 발생한다. 회로 자체가 작동하지 않거나 도파민을 비롯한 신경 전달물질의 균형이 깨지면 충동 조절이 되지 않는다. 성격적인 요인도 있다. 지나치게 자극을 추구하는 탐닉형 성격이거나 평소 현실도피적인 사람들도 중독에 빠지기 쉽다. 과거에는 중독을 단순히 어떤 물질을 섭취하면서 생기는 병으로 인식했다. 하지만 최근 급격히 늘고 있는 중독 중 하나가 도박이며 경마, 카지노, 인터넷 도박 등 그 종류 또한 다양하다. 전문가들은 최근 내국인을 위한 카지노가 생기고 수익을 위해 지방자치단체마다 경마, 경륜장이 생긴 현실을 보면 중독자의 수가 점점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더구나 인터넷 도박이 성행하고 있는데 접근이 쉽고 적절한 통제의 수단도 없을 뿐 아니라 실제로 돈이 나간다는 감각이 무디어지기 때문에 심각한 후유증을 나을 수 있다. 도박은 일종의 현대병이다. 그냥 병이 아니고 반드시 치료가 필요한 심각한 정신질환이다. 그러나 우리사회는 아직 도박을 질병으로 생각하기보다는 단순한 습관의 문제나 본인의 의지의 문제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도박중독은 심각한 후유증을 동반한다. 주변인에게 도박을 한다는 사실을 숨기고, 빚이 늘어나면서 가족과도 멀어진다. 해야 할 일을 잊고, 도박에만 집착하면서 성격도 변화한다. 자제 능력을 잃었기 때문에 도박을 멈추고 싶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심지어 공황상태에 빠져 사리분별을 못해 불법 행위도 서슴지 않는다. 이는 금단 증상이다. 도박을 하지 않으면 초조하고 불안해 어디에도 집중할 수 없다. 알코올 의존증 환자가 술을 마시지 않으면 손이 떨리고 안절부절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도박중독은 행위중독, “복합적 치료방법 도입 필요”
도박 중독은 행위 중독 가운데서 가장 위험하고 정도가 심한 병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중독자가 그러하듯이 도박 중독자 역시 자신은 도박을 즐기고 있으며, 스트레스 해소 방편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남들보다 조금 많이 할 뿐이라고 변명한다. 이것이 잘못이다. 도박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지만 불치병은 아니다. 의학의 발달로 원인이 속속 밝혀지고 있으며, 무엇보다 약물치료 분야는 획기적인 발전이 이뤄졌다. 항우울제가 도박중독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알코올의존증 치료 약물도 도박에 대한 욕구와 갈망을 현저히 줄여준다. 중독자들의 잘못된 믿음과 행동을 교정해 주는 인지행동치료도 큰 도움이 된다. 도박은 일종의 확률이다. 도박중독자들은 이 확률을 자신에게 유리하게만 계산한다. 어제 잃었으니 오늘은 딸 것이라고 확신한다. 따고 나면 어제 땄으니 오늘도 딸 것이라고 다른 계산을 한다. 과거 크게 땄던 경험만 기억하고 그 쾌감을 잊지 못한다. 이를 인지행동치료를 통해 교정한다. 병원 치료 외에 꾸준히 단(斷)도박모임에 참여하는 것도 중요하다. 1984년 시작된 한국단도박친목모임은 도박 때문에 현재 고통을 받고 있거나, 고통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함께 모여 어려움을 나누는 자발적 모임이다. 현재 서울을 비롯해 전국에 30개 이상의 모임이 있고 해외에도 지부를 두고 있다. 병원에서도 치료 중 반드시 단도박모임에 참가할 것을 권한다. 한국단도박모임은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처럼 도박중독을 비롯한 현대인의 중독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선진국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중독환자의 관리 및 치료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한 신경정신과 교수는 “중독은 절망적인 난치질환이 아니라, 예방과 치료, 재발방지 및 재활로 이어지는 체계적인 관리를 하면 충분히 조절이 가능한 병”이라며 “약물치료, 인지행동치료, 가족치료 등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합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이 밖에 국가적인 차원에서는 경각심을 늦추지 말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 지난 9월 17일 ‘도박중독 추방의 날’을 맞아 폐해를 알리는 거리캠페인 등이 벌어졌지만 일회성 행사는 의미가 없다. 무엇보다 사행산업이 무분별하게 팽창되지 않도록 엄격하게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중독자들이 도박의 덫에서 빠져나오도록 돕는 사회안전망도 제대로 갖춰야 할 것이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