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최초의 궁중광대 이야기를 다룬 영화 <왕의 남자>(2005)로 1,230만 관객을 동원한 이준익 감독이 <사도>로 돌아왔다. <왕의 남자>를 비롯해 <황산벌>,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평양성> 등 사극 장르에 일가견이 있는 그는 “약 250년 전 조선 왕조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 ‘임오화변’에 대해 그리스 로마 신화, 셰익스피어의 어떤 비극보다도 더 참혹한 실화”라고 전하며 ‘사도’ 이야기를 재조명했다.

신세영 기자 syshin@

이준익 감독의 영화 <사도>가 8월 11일 CGV 압구정에서 진행된 제작보고회를 성황리에 마쳤다. <사도>는 아버지에 의해 뒤주에 갇혀 8일 만에 죽음을 맞이한 사도세자를 재조명해 영조와 사도 그리고 정조에 이르기까지 조선왕조 3대에 걸친 비극을 그린다. 제작보고회에서는 아버지 ‘영조’와 아들 ‘사도’가 비극적 운명으로 치닫게 된 과정을 그린 캐릭터 예고편을 비롯해 <사도>의 제작과정을 담은 제작기 영상을 공개해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이날 송강호는 “이준익 감독 특유의 따뜻한 시선과 감성이 <사도>를 통해 꽃 피울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감성이 영화에 어떻게 담길지에 대한 궁금증으로 기분 좋게 출연을 결정했다”며 <사도>를 선택한 이유를 말했다. 이어 유아인은 “대선배 송강호와의 작업은 더할 나위 없는 최고의 경험이었다. 송강호는 ‘영조’와 ‘사도’ 사이의 긴장감을 유지하면서도 내가 편하게 연기할 수 있도록 주변에 공기를 불어넣어 주었다”고 덧붙였다. ‘영조’의 40년 세월을 연기한 송강호는 “가장 현실적이고 인간적인 ‘영조’의 모습을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왕위 정통성 논란, ‘사도’와의 갈등을 과장 없이 연기하면서 세월의 흐름을 표현하기 위해 목소리부터 행동까지 많은 연구를 했다”고 어떠한 순간에도 왕이어야 했던 ‘영조’의 콤플렉스를 그려내기 위한 노력을 전했다. 유아인은 “배우가 아니었다면 뒤주에 갇힌 ‘사도’의 감정을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뒤주 속에서 극한의 두려움으로 치닫는 ‘사도’의 감정 변화에 집중했다”며 사도세자를 연기한 소감을 밝혔다.

“이것은 나랏일이 아니고 집안일이다”
이준익 감독은 모두가 알고 있는 역사적 사건이지만 그 누구도 제대로 알지 못한 ‘사도’의 가족사에 집중했다. 이에 어떤 순간에도 왕이어야 했던 아버지 ‘영조’와 단 한 순간만이라도 아들이고 싶었던 세자 ‘사도’의 이야기를 조선역사에 기록된 가장 비극적 가족사로 풀어냈다. ‘영조’와 ‘사도’, ‘정조’에 이르기까지 3대에 걸친 인과관계를 그려내고 싶었다는 이준익 감독은 “56년의 이야기를 현재와 과거의 사건을 교차시키는 구성으로 두 시간 안에 담아낸다면 3대에 걸친 이야기를 풀어내기에 좋은 방법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며 새로운 구성을 취한 이유에 대해 밝혔다. 특히, 남다른 총명함으로 ‘영조’를 기쁘게 한 ‘사도’의 어린 시절부터 서로의 진심이 어긋나기 시작하는 ‘대리청정’과 두 사람의 갈등이 첨예해지는 ‘양위파동’, 그리고 이들을 둘러싼 가족들의 엇갈린 이해관계를 밀도 있게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에게 극적인 긴장감과 감성적인 공감을 동시에 불러일으킬 예정이다. 이준익 감독과 <사도>를 통해 처음 호흡을 맞춘 송강호는 “<사도>의 이야기는 모두가 알고 있는 역사 속 실재했던 비극이지만, 이준익 감독의 따뜻한 시선이 더해져 새롭게 재탄생 했다”고 그에 대한 신뢰를 내비쳤다. 유아인은 “이준익 감독은 배우의 눈높이에서 작품을 바라보는 배려심과 칼날같이 매서운 통찰력을 지닌 분이다. 신뢰를 바탕으로 온전히 촬영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 이준익 감독 인터뷰
2005년 <왕의 남자>로 1,230만 흥행을 기록하며 충무로 대표 감독으로 자리매김한 이준익 감독은 <라디오 스타>, <즐거운 인생>, <님은 먼 곳에>,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평양성>, <소원> 등 사극과 현대극을 넘나들며 뛰어난 연출력을 선보였다. 2015년 <사도>로 돌아온 그는 다시 한 번 정통사극의 진수를 보여주며 ‘영조’와 ‘사도’ 그리고 ‘정조’까지 3대에 얽힌 비극적 가족사를 재조명해 관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할 것이다. Q. 배우 송강호와 유아인을 어떻게 캐스팅하게 됐나?
- ‘영조’ 역할에 송강호를 캐스팅하게 된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 솔직히 시나리오를 쓸 때 송강호를 염두에 두지 못했다. 지난 10여 년 동안 워낙 바빠서 시나리오를 한 번 건네 보지도 못했는데, 이번에 흔쾌히 승낙해줬다. 캐스팅되는 그 순간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현장에서 송강호가 보여준 ‘영조’의 모습을 보고 감동 받았다. ‘대한민국 대표배우는 저런 모습이구나’라고 느꼈죠. 반면에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사도’에 유아인을 생각하고 있었다. 20대 우 중에 과연 이런 연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싶었다. <사도>에서 보여준 모습을 영화로 꼭 확인하고 싶었고, 연기는 제가 말로 수식할 수 없을 정도다.

Q. ‘사도’ 역할에 유아인을 생각하고 시나리오 작업을 했다는데, 외적으로 송강호 유아인이 많이 닮아 보이지는 않는다.
- 실제 ‘영조’의 어진(왕의 초상화)을 보면 지금 송강호의 모습하고는 다르다. 송강호는 영화 속에서는 40대부터 80대까지 약 40년의 세월을 연기해야 했기 때문에 특수분장을 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실제 ‘영조’의 어진과 많이 유사하다. 물론 유아인은 실제 ‘사도’의 모습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사도’는 굉장히 뚱뚱했다. 그렇지만 눈빛을 자세히 보면 유아인과 똑같다

Q. 송강호, 유아인과 첫 호흡인데, 어땠나?
- 송강호가 ‘영조’로서 첫 촬영을 하는데, 하필 그 장면 분량이 굉장히 많았다. 평소 송강호의 보이스톤이 아닌 ‘영조’만의 목소리를 준비해왔다. 길지 않은 대사인데 수 십 번, 수 백 번 연습하더라. 타인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노력하며 연습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팽팽한 공기가 느껴졌다. 유아인의 첫 촬영도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대리청정 신에서 굉장히 긴 테이크로 촬영했는데, 내가 생각한 ‘사도’의 모습과 유아인이 준비한 ‘사도’의 모습이 달랐다. 배우의 몰입을 끊으면서 서로가 생각한 ‘사도’의 모습에 대해 얘기했다. 바로 촬영에 들어가서 몰입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첫 촬영을 보면서 ‘사도는 유아인이어야만 했다’고 다시 한 번 생각했다.

Q. 비극적 가족사에 초점을 두었던 이유는?
-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 안에서 비극에 도전하고 싶었다. 물론 ‘사도세자’ 이야기는 누구나 아는 흔한 이야기다. 그런데 그것이 비극으로만 남는 것이 아닌 아름답기를 바랐다.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에서도 비극에 도달하는 것은 아름다움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들을 뒤주에 넣어서 죽음으로 이끌어간 아버지의 마음과 심리, 감정이 이 영화를 끌고 가는 힘이다. 뒤주 안의 ‘사도’와 뒤주 밖의 ‘영조’의 심리를 쫓아가다 보니 이 비극적인 이야기가 반드시 아름다워야 한다고 느꼈다.

Q. ‘영조’와 ‘사도’, 부자관계의 갈등을 통해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점이 있다면?
- <사도>는 ‘영조’와 ‘사도’ 그리고 ‘정조’로 이어지는 3대에 걸친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다. 2시간 안에 약 56년의 이야기를 압축해야 했기에 위험하고 어려운 선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 권력은 부자지간에도 나눌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아들이라는 사랑스러운 존재가 어느 순간 경쟁 상대가 됐을 때의 두려움과 자신의 기대를 져 버렸을 때의 실망감, 그로 인한 애증으로 비극이 시작되는 거다. 후대에 덕을 베풀어서 복을 받는 것이 56년에 걸친 3대의 이야기를 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궁극적으로 그들의 상처와 갈등이 곧 누군가에게 큰 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Q. 56년간의 사연을 8일간의 이야기로 특별한 구성을 취한 이유가 있나?
- 시간 순서로 나열하기에는 너무 방대한 이야기여서 8일의 시간을 8개의 시퀀스로 나누어서 그 사이사이에 과거의 이야기를 삽입하는 구성을 취했다. 결국 어떤 목표를 가지고 관객들에게 명료하게 전달하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사도>를 통해 처음 시도한 구성이어서 나름대로 굉장히 두려운 선택이었다. 놀랍게도 배우들이 그 구성 사이의 여백을 모두 메워 줬다. 오랫동안 작업했던 스태프들과 사극에 대한 풍부한 경험이 있어서 드라마를 해치지 않고 드라마를 살리기 위한 것들로 채워졌다. 그런 것들이 굉장히 만족스럽다.

Q. 팩트에 기반을 둔 사극들을 많이 찍었는데, <사도> 같은 경우에는 지금까지 많이 다뤄진 이야기다. 굳이 다시 사도에 집중한 이유가 궁금하다.
- 이번이 5번째 사극이다. 제가 잘 모르는 이야기라서 계속 찍는 것 같다. 만약 잘 아는 이야기라면 무슨 재미가 있겠나. 최근에 팩션이라고 픽션과 팩트를 합쳐서, 판타지가 가미된 소재들의 사극이 활발하게 성장했지만, 사실 <황산벌>, <왕의 남자> 때만 해도 가능하면 사실을 근거로 현대의 관객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갈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 끝에 나온 영화들이다. <사도>도 마찬가지로 250년 전의 ‘사도’와 ‘영조’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뭐 그렇게 중요한 이야기겠나. 다 지난 일인데. 하지만 내가 이 땅에 있고, 250년 동안 어떤 사람들은 유구히 어떤 사람들은 그런 관계 속에서 많은 눈물과 갈등과 슬픔을 안고 살아간다. 이 순간에 ‘나’라는 존재 DNA의 한쪽 구석에는 사극에서 있었던 어떤 문제들과 맞닿아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이 크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