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父子 독립운동가 이위종과 이범진
법무부는 8월 12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예피모바 류드밀라(69), 엘레나(54) 등 독립유공자 후손 30명에게 한국 국적증서를 수여했다고 밝혔다. 지난 10일 러시아에서 특별귀화한 류드밀라는 헤이그 특사 3명 중 1명인 이위종 지사(1887~?)의 후손이다. 이 지사는 1907년 고종의 밀령을 받고 이준, 이상설 등과 함께 제2차 만국평화회의가 열리는 네덜란드 헤이그로 갔다. 당시 회의에 참석하지 못한 3인은 만국기자협회를 통해 일본의 침략 행위를 알렸다. 이후 이 지사는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로 가서 항일운동을 전개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2등급)이 추서됐다. <경향신문 2015년 8월 12일>

이준(1859~1907) 열사가 서울을 출발한 것은 1907년 4월 22일이었다.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참가해 일제의 조선 침탈과 을사조약의 부당성을 세계에 알리고자 함이었다. 이준은 위임장을 품에 숨긴 채 4월 23일 부산에서 배를 타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건너가 이상설(1870~1917)을 만났다.
두 사람은 5월 21일 함께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를 떠나 보름 후인 6월 4일 러시아의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 전 러시아 공사 이범진(1852~1911)을 만났다. 1901년 주러시아 공사로 부임했던 이범진은 1905년 을사조약으로 외교권이 박탈된 후에도 일제의 소환 명령을 거부한 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남아 항일 외교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이상설·이준 두 밀사는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에게 조선의 독립 열망이 담긴 고종의 친서를 전달했다. 그러나 당시 러시아는 러일전쟁 패배로 이미 힘을 잃은 뒤여서 동방의 소국 조선의 운명에 대해서는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이범진은 두 밀사가 헤이그로 떠날 때 둘째아들 이위종(1887~?)을 동행케 했다. 당시 20세였던 이위종은 9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외국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영어, 불어, 러시아어에 능통했다. 이준·이상설·이위종 세 밀사가 헤이그에 도착한 것은 평화회의가 개최되고 열흘도 더 지난 6월 25일이었다. 세 밀사는 드 용 호텔에 투숙, 호텔 앞 현관에 태극기를 내걸고 이튿날부터 공개 활동을 시작했다.
희망과 절망, 비관과 낙관이 교차하는 가운데 밀사들이 6월 26일 대회 의장인 러시아의 넬리도프에게 고종의 옥새가 찍힌 전권위임장을 내보이며 면담을 신청했으나 성사되지 않았다. 특사들은 영국, 프랑스, 독일, 중국 대표 등도 만나 협력을 요청했지만 그때마다 문전박대당했다. 당시 미국은 일본과 가쓰라?태프트 밀약(1905년 7월)으로, 영국은 제2차 영?일동맹(1905년 8월)으로 일본의 조선 지배를 사실상 승인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선의 독립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일본의 집요한 방해까지 있어 특사들은 끝내 회의장에 입장하지 못했다.

이위종, 만국평화회의에서 통역 겸 대변인으로 맹활약

▲ 프랑스 L'Actualite지에 실린 이범진과 이위종(1910.08.04.)

특사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각국 대표들에게 프랑스어로 번역한 독립호소문을 배포하는 등의 선전활동 뿐이었다. 호소문은 회담 소식지 ‘만국평화회의보’ 6월 27일자에 게재되었다. 만국평화회의보 6월 30일자에는 일본의 강압을 낱낱이 고발한 이위종의 호소문이 ‘왜 조선을 제외시키는가’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이위종은 7월 8일 국제기자클럽에서도 ‘조선의 호소’라는 주제로 열변을 토했다. 이 연설회는 ‘헤이그 신보’ 7월 10일자에 상세히 보도되었다.
특사들이 이처럼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을 때 갑자기 이준 부사가 7월 14일 분사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위종은 며칠동안의 일정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갔다가 7월 18일 돌아와 임종은 하지 못했다. 드 용 호텔에서 2일간 안치된 시신은 7월 16일 이상설과 호텔 주인에 의해 헤이그 공동묘지에 가매장되었다. 일본은 이준의 분사 후에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조선의 재판소가 궐석재판을 열도록 압력을 가해 8월 8일 이상설에게는 사형, 이준과 이위종에게는 종신징역을 선고하도록 했다.
이위종이 외국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9살이던 1896년이었다. 주미 특명전권공사로 발령받아 그해 9월 9일 워싱턴에 부임한 아버지 이범진을 따라 미국에 건너간 것이다. 이범진은 2년 반 정도 지난 1899년 3월 다시 러시아?프랑스?오스트리아 유럽 3국의 특명전권공사로 임명되어 1900년 5월 4일 부임지인 파리에 도착했다. 이위종은 파리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군사학교를 다녔다.
이범진은 1901년 3월 겸임해오던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공사직에서 물러나고 러시아 주재 특명전권공사에 임명되자 그해 7월 러시아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부임했다. 일본은 1904년 러일전쟁 발발 전부터 조선 정부에 압력을 가해 친러파이자 눈엣가시같은 이범진의 소환을 요구했다. 송금 중단을 비롯해 모든 수단을 동원했으나 이범진이 응하지 않자 조선정부를 더욱 압박해 1904년 9월 1일 그를 파면시키는 데 성공했다. 파면조치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정부는 이범진의 애국적 열정과 노력에 감응해 계속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체류해도 좋다는 결정을 내리고 임시 체류비까지 지급했다.
이위종은 1904년 러일전쟁 무렵 파리 군사학교를 중퇴하고 부친이 근무하는 러시아 공관에서 부친의 수족 노릇을 했다. 그러다가 18살이던 1905년 러시아 놀켄 남작의 딸인 17살의 엘리자베타 놀켄과 결혼했다. 이위종은 이렇게 미국과 프랑스, 러시아를 거치며 영어와 프랑스어, 러시아어 등 3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게 되어 1907년의 만국평화회의에서 통역 겸 대변인으로 맹활약할 수 있었다.

일제, 이범진을 눈엣가시로 생각

이범진은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과의 전투를 승리로 이끈 포도대장 이경하의 서자로 태어났다. 1879년 과거에 합격하고 여러 관직을 두루 거치며 고종과 민비의 총애를 받았다. 이범진은 민비가 시해된 1895년 10월 8일 새벽, 왕궁의 담을 넘어 러시아공사관에 시해 사실을 전달함으로써 외국 공관에 알려지도록 했다. 며칠 후에는 일본군에 사실상 연금되어 있는 고종을 경복궁에서 탈출시키려 한 ‘춘생문 사건’도 주도했다.
1896년 2월 11일 새벽, 고종이 경복궁 건춘문을 몰래 빠져나와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한 ‘아관파천’도 이범진의 주도면밀한 계획 속에 결행되었다. 아관파천 후 이범진은 법무대신과 경찰청장 격인 경무사를 겸임하며 고종의 신변안전을 책임지고 민비 시해사건에 대한 수사와 재판을 이끌었다.
이런 그를 일본이 가만히 놔두려하지 않자 고종은 이범진의 안전을 우려해 미국 공사로 보냈다. 이범진은 1896년 6월 20일 주미 특명전권공사로 발령을 받아 9월 9일 미국 워싱턴에 부임했다. 미국행에는 부인과 두 아들 이기종과 이위종이 동행했다. 2년 반 정도 지난 1899년 3월 러시아?프랑스?오스트리아 유럽 3국의 특명전권공사로 임명되어 런던을 거쳐 1900년 5월 4일 부임지인 파리에 도착했다. 1901년 3월 겸임하던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공사직에서 물러나고 러시아 주재 특명전권공사로만 임명되어 그해 7월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부임했다.
1907년 헤이그 밀사사건 후 이범진은 러시아 연해주의 연추 지역을 중심으로 거족적인 의병단체를 조직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1908년 4월 이위종과 사돈인 놀켄 남작을 연해주로 파견했다. 그곳에는 자신의 6촌동생인 이범윤과 상업으로 큰돈을 번 최재형이 있었다.
이범윤은 1903년 간도관리사가 되어 간도지역의 한인보호에 애를 쓰고 러일전쟁 때는 조선해방부대를 조직해 러일전쟁에 참여했던 애국지사였다. 최재형은 러일전쟁 직후 이범윤과 함께 발족시킨 ‘국민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이위종은 부친에게서 받은 1만 루블을 최재형과 이범윤에게 건네고, 그들과 함께 연해주에 흩어져 있던 의병을 하나로 묶어 ‘동의회’를 발족시켰다.
이위종은 연해주에서 부대장으로 활동하며 프랑스 군사학교 출신답게 탁월한 지휘능력을 발휘해 조선과 러시아 및 만주의 국경지대에서 치러진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러나 동의회 의병이 두만강 전투에서 일본군에게 패하자 1908년 7월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갔다.

“소인은 자결 외에는 다른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이범진은 1910년 한일합방으로 나라가 망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대외활동을 사실상 전폐했다. 그러다가 1911년 1월 26일(러시아 구력 1월 13일) 낮 12시 거실에서 목을 매 자진했다. 러시아 신문들은 그의 죽음을 크게 보도했다. 한 신문은 “거실에서 천장 전등에 밧줄을 설치하고 목 매달아 사망했다. 밧줄로 목을 맨 상태에서 권총으로 자신을 향해 총 3발을 쐈으나 탄환이 벽과 천장을 향해 빗나갔다”고 보도했다.
이범진은 순국에 앞서 고종과 니콜라이2세 러시아 황제, 평소 친분이 있던 그 지역 경찰서장에게 유서를 남겼다. 고종에게는 “폐하. 우리의 조국은 이미 죽었습니다. 소인은 적에게 복수할 수도, 적을 응징할 수도 없는 무력한 상황에 처해있습니다. 소인은 자결 외에는 다른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라고 유언을 남겼다. 자진하기 전 이범진은 갖고 있던 수만 루블 가운데 장례비용으로 쓸 5000루블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 러시아 내 한인 의병조직과 한인학교 등에 기부했다.
자결 후 시립병원에 안치된 유해는 8일 뒤 친인척과 현지 한국 교민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인근 공동묘역에 묻혔으나 1975년 묘역을 재정비하는 과정에서 사라졌다. 현재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내 북쪽의 공동묘역에는 2002년 건립된 높이 2m의 화강암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비에는 한글과 러시아어로 ‘이범진 공사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순국한 대한의 충신이다’라고 새겨져 있다.
이위종은 부친의 죽음 후 생활고에 시달렸다. 러시아 황실로부터 받는 소액의 지원금으로 근근히 생활하다가 1912년 러시아 국적을 취득하고 상트페테르부르크역 철도 세관원으로 근무하며 부인과 세 딸의 생계를 꾸렸다.
그 후의 생애는 정확치는 않으나 몇몇 사실이 전해오고 있다. 러시아 블라디미르 사관학교(1914~1916년)를 거쳐 장교로 임관했다가 1917년 10월 러시아혁명 때 적군에 가담, 일본군을 상대로 싸웠다는 것이다. 1919년 9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한인들의 반일 시위에서 연설을 했다는 기록도 있다. 이위종은 최재형과 함께 1920년 4월 시베리아에 출병한 일본군과 전투 중 사살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그후에도 활동을 계속했다는 자료들이 발견되고 있어 정확한 사망 시점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위종보다 13살 위인 형 이기종도 헤이그 특사 사건 후 불행한 삶을 살다가 생을 마감했다. 이기종은 미국, 프랑스, 러시아 공사관에서 부친을 보좌하다가 모친과 함께 귀국했다. 고종의 신임을 받아 몇몇 관직을 거쳤으나 1907년 동생의 헤이그 사건 직후 일본 헌병대에 끌려가 가혹한 고문을 받았다. 이후 정신이상 증세를 보여 객사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난영과 ‘목포의 눈물’
한국 가요사에서 불후의 명곡으로 꼽히는 ‘목포의 눈물’이 발표 80주년을 맞아 목포시 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전망이다. 목포시는 8월 12일 전문가 자문과 자료 조사 등 관련 절차를 거쳐 이 노래를 시 문화유산으로 지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대중가요가 문화유산으로 지정되는 것은 이례적이다. 이난영은 남편인 작곡가 김해송과의 사이에서 애자·숙자 자매를 낳았는데, 이들은 1950~60년대 미국에서 인기를 모은 원조 한류 걸그룹 ‘김시스터즈’의 멤버이기도 했다. <중앙일보 2015년 8월 13일>

옥례는 목포 앞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유달산 자락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술주정과 찌든 가난이 싫어 옥례가 11살 때 집을 뛰쳐나가 제주도의 일본인 집에서 식모살이를 했다. 옥례는 초등학교 4학년을 중퇴하고 면화 공장에 다니다가 제주도로 건너가 어머니를 만났다.
어머니가 일하는 일본인 집 주인은 아이를 돌보며 흥얼거리는 옥례의 노래를 듣고 악극단에 옥례를 소개했다. 옥례는 그렇게 ‘막간 가수’가 되어 무대에 섰다. 옥례가 이난영(1916~1965)이라는 예명을 갖게 된 것은 16살이던 1932년 ‘태양극장’의 특별단원으로 채용된 후였다.
이난영은 1933년 가극단을 따라 일본 공연에 나섰다가 흥행 실패로 악극단이 현지에서 해산되는 바람에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었다. 그때 일본에서 만난 OK레코드 사장 이철이 이난영의 노래 솜씨를 알아보고 함께 귀국해 이난영을 후원했다. 이난영은 1933년 9월 ‘향수’로 데뷔하고 ‘고적’(1933.10)과 ‘불사조’(1933.11)를 취입했다. 그것은 어두운 인생에 찾아든 한줄기 햇살이었다.
1934년 OK레코드가 전국 6대 도시를 대상으로 ‘애향가’를 공모했다. 3,000여 편의 응모 가사 중 19살의 목포 문학청년 문일석의 노랫말 ‘목포의 눈물’이 당선작으로 뽑혔다. 문일석은 이후 작품 활동 없이 26세에 요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목포의 낭만과 꿈(1절), 민족적 원한(2절), 이 충무공 추모의 정(3절)을 담은 ‘목포의 눈물’ 노랫말에 곡을 붙인 사람은 ‘타향살이’ 작곡가 손목인이었다. 이난영이 ‘목포의 눈물’을 취입한 것은 1935년 10월이었다.
그런데 ‘목포의 눈물’은 음반 발매 전 총독부의 가사 검열에 걸려 자칫 세상에 나오지 못할 뻔했다. 일본인 검열자가 ‘삼백년 원한 품은 노적봉 밑에…’라는 가사가 “임진왜란 때의 원한을 뜻하는 것 아니나”며 “은밀히 반일 감정을 유포하려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고 소란을 피운 것이다.
손목인은 ‘원한’은 ‘원앙’의 잘못된 발음이고 가사는 원앙새를 내세워 이별을 원망하는 연인들을 표현한 것이라며 둘러대 난처한 순간을 피했다. 결국 ‘삼백년 원한 품은…’ 가사는 ‘삼백연 원안풍(三柏淵 願顔風)은…’이라는, 뜻도 모르는 내용으로 바뀌고서야 겨우 빛을 보게 되었다.
‘목포의 눈물’은 이난영의 비음 섞인 애절한 엘레지 가락에 실려 삽시간에 한 많은 식민지 백성의 가슴을 적시며 전국 방방곡곡에 메아리쳤다. 당시로서는 기록적인 3만 장이나 팔려 이난영은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길거리 레코드 가게의 축음기들은 밤낮 없이 ‘목포의 눈물’을 쏟아냈고 가게마다 음반을 사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목포의 눈물’ 이후 이난영은 국민적인 인기를 한 몸에 받으며 국내 공연 무대를 휩쓸었다. 중국과 일본으로도 순회공연을 다녔다.

▲ 이난영(가운데)과 김시스터즈. 남자는 쇼 진행자 에드 설리번이다

국민적인 인기를 한 몸에 받으며 국내 공연 무대 휩쓸어

이난영은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1937년 11월 21살의 나이에 작곡가 김해송(1911~?)과 결혼했다. 평남 개천 태생의 김해송은 일본 조치대 철학과 출신의 인텔리로 ‘오빠는 풍각쟁이’, ‘청춘삘딩’, ‘개고기 주사’ 등 10여 곡을 작곡한 유명 작곡가였다. 1930년대는 민중의 삶과 사회상을 코믹한 가사와 선율로 만든 ‘만요(漫謠)’가 유행했는데 김해송은 그 분야 선두 주자였다. 또한 민요, 재즈, 블루스까지 못 다루는 장르가 없어 “크로스오버의 원조이며 시대를 대표한 모던 보이”라는 평가도 받았다. 심지어 “1930년대의 모차르트이자 서태지”라고 극찬하는 이들도 있다.
당시로서는 드문 이 연예계 커플 사이에는 9명이 태어나 7명이 살아남았다. 이난영은 1937년 12월 목포 노래의 속편 격인 ‘해조곡’(이부풍 작사, 손목인 작곡)을 또다시 히트시켜 ‘엘레지의 여왕’, ‘가요의 여왕’으로 불렸다. 1942년에는 목포 노래의 완결판이자 또 한 번 대대적으로 목포 열풍을 일으킨 ‘목포는 항구다’(조명암 작사, 이봉룡 작곡)를 히트시켜 부동의 국민가수 대접을 받았다.
작곡가 이봉룡은 이난영의 친오빠였다. 해방 후인 1946년 이난영은 김해송과 함께 뮤지컬 전문 쇼단 ‘KPK 악단’을 창단했다. 김해송은 ‘카르멘’, ‘로미오와 줄리엣’ 등 고전극부터 현대극까지 다양한 뮤지컬 쇼를 무대에 올리고 이난영은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다.
이난영의 인생에 먹구름이 드리운 것은 1950년 6·25전쟁 때 김해송이 납북되면서였다. 서울 필동의 방 13칸짜리 저택까지 불에 타 없어져 삶이 곤궁해졌다. 이난영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영자, 숙자, 애자 등 열 살 전후의 세 딸로 구성된 보컬그룹 ‘김시스터즈’를 국내 최초로 결성, 미 8군 무대에 세웠다. 국내에서 한창 인기를 끌던 김시스터즈는 1959년 꿈의 무대인 미국 라스베이거스로 진출했다. 국내 가수 최초의 해외 진출이었다.
하지만 전쟁 중 남편을 잃고 전쟁 후 세 딸을 미국으로 떠나보낸 이난영은 외롭고 힘든 나날을 보내야 했다. 그때 그를 위로해주고 경제적인 도움까지 준 사람이 당대 최고 인기 가수 남인수였다. 두 사람은 사랑에 빠져 연인이 되었으나 남인수마저 1962년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나 이난영은 다시 혼자가 되었다.
그 후 김시스터즈의 초청으로 1년 정도 미국에서 체류하다 돌아와 1965년 4월 11일 홀로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1968년부터 이난영을 추모하는 난영가요제가 목포에서 열리고 있고 1969년 10월 전국 최초의 노래비가 유달산 중턱에 세워졌다.

■김시스터즈
전쟁으로 폐허가 된 1950년대 한국은 물론 미국에서 인기를 모은 원조 한류 걸그룹 김시스터즈. 8월 13일 개막하는 제11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개막작인 ‘다방의 푸른 꿈’은 김시스터즈가 아시아 가수로는 처음으로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입성한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다. 영화제 측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 김시스터즈의 멤버 김민자씨는 상기된 모습이었다. 김시스터즈는 ‘목포의 눈물’로 유명한 이난영씨의 두 딸 애자와 숙자씨, 이난영의 오빠인 작곡가 이봉룡씨의 딸 민자(예명 김민자)씨가 결성한 걸그룹이다.

김시스터즈는 동서양의 문화를 조화시킨 독특한 무대 매너, 개성 있는 연주와 노래로 1960년대 미국인들의 관심을 끈 한국 최초의 보컬그룹이다. 가수 이난영과 작곡가 김해송 부부의 피를 이어받은 그들은 미국에 한국의 문화와 대중가요를 처음 소개하고 위상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난영은 불멸의 가요 ‘목포의 눈물’을 부른 가수이고, 김해송은 해방 후 뮤지컬 전문쇼단 ‘KPK 악단’을 창단해 다양한 뮤지컬 쇼를 무대에 올린 한국 뮤지컬의 개척자다.
이난영은 6?25전쟁 때 김해송이 납북되자 홀로 7남매를 키웠다. 다행히 아이들이 음악에 재주가 있어 전쟁 중이던 1951년 영자, 숙자, 애자 등 열 살 전후의 세 딸로 ‘김시스터즈’를 결성해 미군 클럽에 진출시켰다. 세 자매는 클럽에서 2차대전 직후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미국의 여성 보컬그룹 ‘앤드루 시스터즈’의 히트곡을 뜻도 모르고 무작정 외워 노래했다. 앙증맞은 아이들의 노래에 미군들은 넋을 잃고 바라보며 전쟁의 고단함을 잊었다.
김시스터즈는 휴전 직후인 1953년 가을, 수도극장(스카라극장)에서 자매 트리오의 탄생을 알렸다. 그 무대에서 당시 초등학교 2~3년생이었던 김시스터즈가 부른 앤드루 시스터즈의 노래는 비록 발음은 엉망이었지만 열렬한 호응을 받았다. 주한 미군 가운데 김시스터즈의 이름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해진 그들에게 비로소 행운이 찾아온 것은 1958년이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아시안쇼를 기획하고 있는 톰 볼이 새로운 흥행거리를 물색하기 위해 일본을 찾았다가 그곳 미군들로부터 김시스터즈의 명성을 들은 것이다.
톰 볼은 1958년 한국으로 건너와 김시스터즈의 잠재력을 확인한 후 이난영과 계약을 체결했다. 키가 큰 큰딸 영자 대신 이난영의 오빠 이봉룡의 딸 이민자(여권 발급 절차를 위해 이난영의 딸 김민자로 개명)로 그룹을 새롭게 구성한 세 자매 트리오 ‘김시스터즈’가 미국 땅을 밟은 것은 1959년 1월 9일이었다. 해외 진출 1호 보컬팀의 탄생이었다.
김시스터즈가 처음 둥지를 튼 곳은 라스베이거스 선더버드 호텔의 쇼프로그램 ‘차이나 돌 레뷔’였다. 공연은 아시아 출신의 가수들 위주로 짜였다. 김시스터즈가 오기 전, 중국과 일본 가수는 많았지만 한국 가수로는 김시스터즈가 처음이었다. 김시스터즈는 첫 4주 동안 매일 밤 2개 쇼에 출연했다. 관객의 반응이 시원치 않으면 4주 후 한국으로 돌아가는 조건이었다. 다행히 선더버드 호텔 공연 후 다른 호텔에서도 공연 요청이 쇄도했다.

김시스터즈야말로 ‘한류의 원조’

김시스터즈는 공연 때마다 “한국에서 온 김시스터즈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한 뒤 꼭 ‘아리랑’을 불렀다. 다른 보컬그룹과의 차별화를 위해서도 각기 다른 악기를 연주했다. 색소폰(숙자), 베이스(애자), 드럼(민자)을 중심으로 가야금, 장구, 북 등 10여 가지 악기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여성 보컬그룹은 미국인들에게 신선한 존재였다. ‘아리랑’, ‘도라지타령’ 등 우리 민요를 곁들인 춤과 노래와 연주가 버무려진 이색적인 무대는 미국인들을 열광시켰다. 고국에 대한 그리움에 지쳐 있던 재미 동포들도 이들의 민요 가락에 눈물을 쏟아내며 향수를 달랬다.
세 자매에게 음반 제의가 들어온 것은 미국 최고의 TV 버라이어티쇼 ‘에드 설리번 쇼’에 출연한 뒤였다. 세 자매는 이후 ‘에드 설리번 쇼’에 20여 차례 출연했다. 그룹 코스터스의 히트곡을 리메이크한 ‘찰리 브라운’ 등 12곡을 수록한 첫 음반은 1960년에 출시되었다. 거의 모든 곡을 영어로 취입했으나 ‘아리랑’과 이난영의 노래를 리메이크한 ‘봄맞이’만은 한국어로 노래했다.
음반이 인기를 끌자 각종 잡지와 방송의 평론가들이 미국 최고의 흑인여성 보컬 트리오 ‘슈프림스’와 같은 등급으로 김시스터즈를 극찬했다. ‘라이프지’지는 1960년 2월호에 특집화보 기사로 소개하고 ‘찰리 브라운’은 1962년 빌보드 싱글차트에 오를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공연 무대도 라스베이거스를 벗어나 뉴욕, 시카고, 로스앤젤레스 등으로 점차 넓어졌고 주급도 500 달러에서 2만 달러로 올라갔다. 1966년 유명 사회자 밥 호프와 함께 베트남을 방문, 참전 미군을 위해 벌인 위문공연은 열광의 도가니를 이뤘다. 같은 해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스페인, 서독 등 유럽 순회공연도 성황리에 마쳤고 몬테카를로에서는 그레이스 모나코 왕비를 위해 특별공연을 펼쳤다.
인기가 높아지자 돈이 따라왔다. 미국 진출 10년 만에 18인조의 개인 오케스트라를 거느리고, 푸에르토리코에 자신들의 호텔 나이트클럽을 열었다. 라스베이거스에서는 고액 납세자 6위에 오른 때도 있었다. 1967년과 1968년 세 자매는 각각 외국인들과 결혼하고 1970년 5월 조국을 떠난 지 12년 만에 귀국, 4일 동안 시민회관에서 조국의 팬들을 열광시켰다. 1973년 사촌인 민자가 탈퇴한 후 1975년 큰언니 영자가 합류하면서 김시스터즈는 1951년의 구성원으로 돌아가 10년간 활동했다. 돌이켜 보면 김시스터즈야말로 한류의 원조였다. 어린 나이에 미국 무대에 등장해 그 긴 세월 동안 인기를 유지한 한류 스타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