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미술의 역동적인 흐름 속에서 한국화가 오랜 침체기를 겪고 있다. 일군의 작가들은 한국화만의 고전적 특질을 계승하는가 하면, 젊은 작가들은 변화하는 시대 경향에 맞춰 새로운 변용을 꾀하며 한국화의 중흥모색에 나서고 있다. 이러한 양상은 한국화의 존립과 정체성의 문제로 야기되며 침체의 골을 깊게 만들고 있다. 한국화단의 허실을 진단하고 타개해 나갈 진지한 논의가 필요한 때다.

신선영 기자 ssy@

서양 미술이 시대의 변전(變轉)에 따라 소재와 형식을 변모해온 것처럼, 한국화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만의 발전을 이룩해 왔다. 그러나 한국화는 변혁의 가능성이 확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시대적 공감을 끌어내지 못한 채 수십 년째 침체기를 겪고 있다. 위기에 놓인 한국화의 길을 모색하기 위해 (사)김해미술문화연구회 회장이자 (사)한국미술협회 부이사장인 목정 문운식 화백을 만나 한국화단의 현재와 미래를 짚어 보았다. 

한국화의 침체는 도제식 교육의 폐해

▲ 목정(木亭) 문운식 화백

문운식 화백은 “한국화가 수채화나 유화에 밀려 존재가치를 거의 잃어가고 있다”고 토로하며 “한국화의 전반적인 상황과 미래를 조망하기 위해서는 현재 한국화가 어떻게 수용되고 있는지부터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해 말했다.

우선 전통을 계승한다는 미명 아래 과거부터 내려져오고 있는 ‘도제식 교육’에 문제 제기했다. 선생의 체본을 그대로 모방하는 도제식 교육으로는 시대적 상황과 정체성을 고민하고 개진해 나갈 작가가 탄생할 리 만무하며, 한국화의 지평을 열어 나갈 존재감 있는 작품도 나올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문 화백은 “한국화는 그 자체가 창작”이라며 “그리고자 하는 대상의 진면목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작가 스스로 대상을 집요하게 관찰해서 그만의 생김과 생태적 특성까지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다.

때문에 선생의 관점과 기법을 그대로 답습해야 하는 도제식 교육을 고집한다는 것은 한국화의 발전에 치명적 오류이자, 걸림돌로 남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자신이 감동 받은 부분을 작품에 분명히 적시할 줄 아는 작가만이 대중과 교감하고 감동을 끌어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사실 도제식 교육은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는 부분으로 한국화단 전반에서 끊임없이 거론되어 왔다. 한국화가 전통 수구라는 질곡에서 벗어나 미래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도제식 교육의 패권부터 해소해야 할 것이다.

한국화의 미래를 위해 나아가야 할 길
현재 한국화단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답습에 충실한 전통계승론자와 실험과 모색을 통해 외연을 확장해 나가는 전통극복론자이다. 한국화의 침체와 부진으로 인해 무용론, 도태론까지 거론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전통극복론자에 힘이 실리고 있다.

하지만 전통극복론자들이 새 지평을 열고 있는 것은 분명하나, 실험과 모색의 과정을 거치면서 오히려 한국화의 정체성이 상실되고 있다는 평도 나오고 있다. 그들의 작품은 한국적 소재와 표현이 주체적으로 흐름을 주도하지 못하고 보조적으로 가미되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한국적 회화의 맥을 잇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문 화백도 “지, 필, 묵 등 고유의 매제는 한국화의 한계인 동시에 한국화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주요 특질 중 하나이다. 작품들이 이러한 양식으로써 존재하면서도 동시대적 정서와 정신세계를 끌어내는 것이 정체성을 잘 찾아가는 길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맥락에서 연 문 화백의 개인전은 큰 의의를 갖는다. 전시는 ‘한국화의 부활’, ‘한국화 다시보기’의 일환으로써 대중은 물론 작가들에게도 귀감이 된 전시로 남았다.

▲ <청산> 한지 수묵담채 130*160 2015 (왼쪽), <빗소리> 한지 수묵담채 130*160 2015 (오른쪽)

정체성과 자주성으로 점철된 목정의 한국화
지난 6월 가나인사아트센터에서 목정 문운식 화백의 개인전이 열렸다. 그의 작품 핵심은 인간의 고뇌와 갈등에서 얻어진 삶의 깊이를 ‘자연’이라는 단서를 통해 제공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한국화의 근간을 이루는 매제를 계승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독자적인 이미지와 정신성을 천착했다는 것이다.

우선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가로 520~780cm에 이르는 대작들이 관객의 이목을 끌었다. 작품 속 산수의 절경은 시원하고 통쾌한 기운을 발산하며 일종의 해방감을 안겨줬다. 이렇게 가시화된 기운들은 한국화가 그간 얼마나 긴 호흡으로 이 시대까지 존재해 왔으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 <바람풀잎>, 한지 수묵담채, 160*520, 2014.

문 화백의 작품에 두드러지는 특징은 한국의 산에 구름, 안개, 비, 노을 등 자연 순환적 소재를 적절히 대응시켰다는 것이다. 문 화백은 “인간이 살면서 삶의 미덕이 필요한 순간들이 있다. 감춰야 할 부분은 드러내기 보다는 덮고, 덮음으로써 다른 것을 도드라지게 하는 것이 삶의 미덕이다. 이것을 구름, 안개, 비로 표현했다. 또 노을이 붉게 머문 지점들은 삶의 치열함을 넘어 감동을 전해주는 장소로써 삶을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이러한 경지를 추구하는 것이 한국화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 <청풍백운>, 한지 수묵담채, 160*780, 2015.

문 화백이 한국화를 시작한지 30여년이 흘렀다. 그는 한국적 회화의 특질을 계승하면서도 고루함을 탈피한 작가로서 지금도 건재하게 활동하며 현대 한국화의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한국화의 정신세계와 정서는 유지하되 현대적 미감을 잃지 않은 원로 화백들의 노력이 한국화단의 자양분으로 남은 것처럼 문 화백의 작업도 한국화단의 발전을 이끌 수 있길 기대해 본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