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성래 작가는 삼 십여 권의 저서를 발표한 중견작가이며, 국문학자로서 인문학 강연자로도 탄탄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지난 1994년 베스트셀러에 오른 연작소설 『베틀』부터 최근 발표한 『고양이와 소녀』, 『붉은 노을』까지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며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여주고 있다. 감성과 지성을 통해 철저히 우리의 역사를 작품에 투영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해 나간다.

의식과 사상, 민중의 역사, 억압받는 자유와 권리 작품에 투영

▲ 소설가 천성래

천성래 작가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단재 신채호 선생이다. 특별히 단재 선생을 존경할만한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자 단재 선생이 우리 역사를 누구보다 중요시한 인물이고, ‘역사를 외면한 민족에게 미래의 역사는 없다’고 강력히 주장한 분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의 소설 속에는 우리의 치열한 사회와 시대, 현장의 역사들이 리얼하게 반영되어 있다.

그는 지난날에 집필하였지만 시대적 상황 때문에 세상에 내놓을 수 없었던 작품들을 최근에 연달아 발표했다. 소설집 『고양이와 소녀』(청어)와 소설집 『붉은 노을』(지우출판)이다. 이 작품집은 우리의 치열했던 광주항쟁, 한미관계, 노조운동, 대학생 운동 등 우리 사회와 정치 등 다양한 영역의 민감한 문제들을 주제로 삼고 있다.

소설집 『고양이와 소녀』는 감성과 지성, 시대성을 두루 갖춘 작품들로 평가받고 있다. 채만식 문학상 본선까지 진출한 이 작품은 고통 속에 몸부림치던 민초들의 삶 속에 숨겨진 인간 내면의 아름답지만 치열한 모습들이 녹아들어 있다.

표제작 <고양이와 소녀>를 비롯하여 <뿍갱이>(전태일 문학상 최종 후보작), <거룩한 선택>(올해의 작가상 수상작), <빙하기> 등 8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하나같이 의식과 사상, 민중의 역사, 억압받는 자유와 권리 등 강력한 주제를 투영하고 있다.

소설집 『붉은 노을』 역시 우리 사회의 암울한 삶을 철저히 반영하고 있다. 21세기 최첨단의 시대에도 청량리 뒷골목에서 성을 팔아 생계를 해결하는 여성들, 분단 6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지난 동족상잔의 비극이던 6.25의 전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떠도는 사람들, 우리사회에 은밀히 혹은 만연하게 일어나고 있는 성폭력의 억압과 피해, 도피안을 위해 존재하는 승려의 깨달음과 번뇌 그리고 정치인의 빗나간 의식을 질타를 하는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저는 소설이 역사를 외면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시는 감성을 크게 추구하고 소설은 감성보다 지성을, 지성보다 역사성을 우위에 두어야 합니다. 또 소설가는 반드시 한글의 독자성을 작품 속에 반영해야 합니다.”

그의 작품 속에는 우리가 끊임없이 가다듬고 가꾸어 나가야 하는 토속어가 살아서 꿈틀거리고 있다. 「고추잠자리 떼가 내 머리 위에서 나분히 날고 있었다. 나는 고추잠자리 떼가 만들어내는 비행기 모양 같은 그림자를 자박자박 밟으면서 걸었다.」 또는 「느릿하게 풀었다가 서서히 몰아들이는가 하면 소리를 밀어냈다가 팽팽히 당기고 어느 순간에는 빙 빙 돌리다가 느닷없이 잘라 떼는 목이 마치 소리의 곡예를......」(소설집 『붉은 노을』 중)에서 알 수 있듯이 득도의 길을 찾는 소리꾼에 대한 묘사에서도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느껴볼 수 있다. 소리를 직접 귀로 듣지 않아도 눈앞에 그려지는 대목이다.

▲ 천성래 작가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단재 신채호 선생이다. ‘역사를 외면한 민족에게 미래의 역사는 없다’고 강력히 주장한 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소설 속에는 우리의 치열한 사회와 시대, 현장의 역사들이 리얼하게 반영되어 있다.

작품 속 인물의 생명 존엄성 존중해줘야
천성래 작가의 작품들은 결코 쉽게 탄생한 것이 아니다. 그는 작품 하나를 이 십여 년까지 품속에 두고 갈고 가다듬는다. 세상 밖으로 나오기까지 산전수전 겪은 작품속의 인물들을 대할 때면 숙연하기까지 하다고 내심을 털어놓는다. 그래서 그에게 작품 속 죽음은 어찌할 수 없을 때여야만 가능하다. 인물을 살리려고 최대한 노력한 다음에 죽이는 것이다.

“언젠가 인터뷰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이런 약속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작가는 단 한 사람의 독자를 위해서라도 글을 써야 한다. 그리고 가장 먼저 깨어나고 가장 늦게 잠들어야 하며 무엇보다 작품 속에 생명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소설가가 작품 속 인물을 쉽게 죽일 권리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그는 작품을 통해 인간의 폭력성에 문제제기하고 생명존중과 같은 인류보편적인 가치의 중요성을 드러내어 재인식시키고 있다.

천성래 작가는 현재 20여 년 동안 혼을 쏟고 있는 대하소설 『한계령』(전10권)을 집필하고 있으며, 내년에도 소설집 『월하의 노인』을 발표할 예정이다. 앞으로도 우리의 아픈 역사와 우리 민족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역사 등을 역사단편 10편으로 집필할 계획이다.

문화 예술계의 발전방향과 상호협력 가능성 모색
천성래 작가는 최근 영화계와 손잡고 일을 하게 되었다. 내년 가을 개봉예정작인 영화 <광화문>의 원작소설과 시나리오를 그가 작업하는 것으로 무일영화사(대표 황정일)와 계약을 마쳤다. 앞으로 천성래 작가는 소설을 영상으로 호환하는 작업을 하고 싶다고 한다. 그래서 단편영화나 독립영화에도 진출할 예정이며, 칸 영화제 등 국제영화제에도 출품하는 것이 목표이다.

이 외에도 인문학 강의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인문학의 본질, 기능과 그 목적에 대한 올바른 지식 전달을 위해 법무연수원 외래교수로서 지난 2년여간 고전인문학 강의를 해왔으며, 올 하반기부터는 법무부 인권국에 소속되어 법무부 공직자들을 대상으로 <고전 공직자상>이란 주제로 활동할 예정이다.

80년대 후반 안정적인 행정공무원의 공직 생활을 깨끗이 접고 절차탁마의 문학의 길로 접어든 그에게 소설이란 단순한 쓰기의 행위라기보다 역사에의 성찰이자 사실에 대한 투영이다. 윤동주가 그의 시 참회록에서 매일매일 거울을 닦는 마음이었듯 단 한 사람의 독자를 위해서 새벽부터 밤늦도록 서재의 불을 밝히며 우리의 현재를 밝히고 우리의 역사를 기록한다. 이런 기개와 작가로서의 의연함으로 장차 역사 속에 우뚝 서게 되길 기대해 본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