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가족, 치유, 꿈…. 홍순현 작가의 작품을 이루는 키워드들이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소외됐던 유년의 기억을 재조합한다. 가장 비극적인 순간을 통해 가장 희극적인 순간을 만들고자 했다.

신선영 기자 ssy@

찰리 채플린에 대한 향수

▲ 홍순현(ArtDNA) 작가

눈앞에 찰리 채플린이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찰리 채플린의 모습은 폭이 좁은 콧수염에 작은 중산모를 쓰고 있다. 익살스러운 표정과 과장된 몸짓으로 우리에게 웃음을 준다. 그러나 홍순현 작가가 그린 찰리 채플린은 이러한 모습에서 한 발 물러나 있다.

작가는 “가난한 유년기를 보냈다. 셋방살이를 하며 집을 여러 번 옮겨 다녀야 했다. 주인집의 폭언과 요구, 억지에도 묵묵히 견디며 오히려 그들을 걱정해주는 부모님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고 회상하며 “자본주의와 권력 이면에서 생존과 사투를 벌이며 지팡이로 맞서는 찰리 채플린은 서민의 모습이자 영웅이었고 마치 나의 아버지 같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힘들었지만 아름답고 순수했던 시절이었다. 우리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에게 새로 산 옷도 내어주고, 먹을 것도 나눠주는 부모님을 보며 마음만은 풍족하게 자랄 수 있었다. 자연을 벗 삼아 그림을 그리던 것도 즐거웠다”고 말했다. 그래서 작가가 그린 그림은 유년기에 크레파스로 알록달록하게 그린 그림일기 또는 모래 위에 그린 것처럼 친숙하다.

작가는 유년기를 지나 성장기를 거치면서 가족과 자기 대면의 시간을 갖게 된다. 이때 미래에 대한 막연함과 정서적 불안감을 환기시켜 준 것이 밤하늘이다. 밤하늘에 감정을 덜어내며 위안을 얻었다.

그런 의미에서 작품 <오케스트라> 속 고요한 밤하늘이 인상적이다. 푸른빛이 선연한 밤하늘에 빛나는 별은 가난을 딛고 서야 했던 아버지와 작가의 마음을 대변한다. 수채화 같은 별빛이 마음을 짓누르고 있는 중압감과 고민으로부터 해방시켜주는 듯하다.

▲ 작품 《오케스트라》

작가는 “찰리 채플린을 어둡고 무겁게도 그려 봤지만 내가 원하는 그림이 아니었다. 정말 슬프면 눈물도 나오지 않듯이, 씁쓸한 인생의 무게도 무연히 나아가는 것이 우리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별로 오케스트라를 연주하거나, 별을 품고 기도하는 찰리 채플린의 모습에서 마음의 위안과 위로를 얻는다”고 설명했다. 또 “고되고 힘든 삶일지라도 살아갈만한 가슴 따뜻한 인간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 작품 《기도-별을 품다》(왼쪽), 《기도-그리워 하다》(오른쪽)

형사 가제트와 새인간
그의 작품에는 두 가지 세계가 존재한다. 하나가 찰리 채플린을 통한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라면, 또 하나는 숨 막히는 경쟁 속에서 자아를 상실한 채 살아가는 현대인의 세계이다. 가족에서 사회로 관계가 확대된 것이다.

이 세계에는 형사 가제트와 새인간이 산다. 형사 가제트는 인간과 꼭 닮은 로봇이다. 각종 도구가 나오는 만능 팔과 중절모, 자유자재로 늘어나는 만능 다리로 골치 아픈 사건들을 해결해 나간다. 이는 바쁜 현대사회 속에서 점점 더 다기능화 되어가는 우리 모습과 오버랩된다.

새인간은 나는 법을 잃어버린 의인화 된 새다. 본래의 기능을 상실한 채 이미지로써 존재한다. 작가는 “새는 새장에 갇히는 순간 그 세상이 다인 줄 알고 산다. 오래 갇힌 새일수록 문을 열어줘도 도망가지 못한다. 날개가 도태되고 나는 욕망도 사라진 새를 우리는 이상하게 바라볼 것이다. 하지만 인간도 이와 다를 바 없다”고 설명했다.

▲ 작품 《가제트》

작품 <Life Drawing>은 우리를 그러한 시선으로 이끈다. 작품 속에는 새인간들이 사는 주상복합건물이 나온다. 관찰자는 새인간이 무얼 하고 있는지 하나하나 들여다보게 된다. 어떤 새인간은 영화관, 아쿠아리움, 동물원 등에서 여가를 즐기고 다른 새인간은 옥상에서 일광욕을 하거나 담배를 피운다. 처음에는 만화적 캐릭터와 표현이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하겠지만 이내 새인간의 모습에서 자신을 보게 된다.

작가가 작품을 통해 제시하고자 하는 것은, 새인간들이 살아가는 삶의 터전을 통해 자신의 공간을 재인식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삶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존재성을 다시 돌아보는 일이다. 이는 우리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말하는 찰리 채플린의 명언을 한 번씩 떠올리며 사는 것과 같다. 생의 가장 힘들고 지난한 순간도 희극으로 살아가는 것이 삶의 리얼리즘이라는 신념에서 비롯된다.

▲ 작품 《Life Drawing》

작가는 현대 사회에 대한 특유의 해학적 유머감각을 만화적 캐릭터를 통해 표현했다. 찰리채플린, 형사 가제트, 새인간 등이 사는 세상은 모순적이고 비현실적인 세계이나 불안정한 비극과 희극이 공존하는 세계이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