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일부터 노조전임자의 근로시간 면제(타임오프 Time-Off)제도가 시행되면서 전국 사업장이 혼란과 갈등으로 들끓고 있다. 파국을 피하자며 타임오프를 수용하거나 이면합의를 한 곳도 있지만 상당수 사업장에서는 노조 전임자 수를 대폭 축소하는 것은 절대 수용할 수 없다며 파업을 결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노동계는 타임오프제도가 헌법상 보장된 노동3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경제5단체는 법과 원칙대로 새로 시행되는 타임오프제가 빨리 정착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타임오프 둘러싸고 노사 갈등 곳곳서 일어나
타임오프를 둘러싼 노사갈등의 대표적인 사업장은 기아자동차. 기아차 노조는 현재 181명의 전임자를 19명으로 줄여야 한다. 하지만, 노조는 현행 전임자 수 보장, 집행간부가 상급단체와 금속노조 임원으로 선출되면 전임 인정, 급여지급 등을 요구하고 있다. 사측은 ‘법대로 원칙대로’ 대응하겠다는 뜻을 고수하고 있다. 사측은 타임오프 상한선인 19명의 노조 전임자 명단을 노조가 지난 6월 30일 오후까지 알려주지 않자 전임자 전원의 7월분(급여일 8월10일) 임금을 지급하지 않기로 했다. 노조에 제공하는 차량 27대와 아파트 3채도 강제 회수절차에 들어가기로 했다. 그러자 기아차 노조가 강력하게 반발했다. 노조는 지난 6월 24일과 25일 조합원 찬반투표를 통해 파업(재적대비 65.7%, 투표자 대비 71.9%)을 가결했다. 당장 파업이 들어가진 않았지만, 사측이 노조 요구안을 받아들이지 않자 지난 7월 16일 쟁의대책위원회를 열어 앞으로 파업 일정과 수위를 논의하기로 했다. 또 한국델파이·대동공업·상신브레이크 노조 등 전국금속노조 대구지부 산하 9개 노조 소속의 조합원 2천여명은 제각각 타임오프 갈등 등으로 말미암아 이미 부분파업을 벌이고 있다. 구미국가산업단지 1단지에 있는 반도체전문회사인 KEC노조도 지난 6월 21일부터 전면파업에 들어갔다. 경주의 자동차 부품업체인 다스 노조는 6월 28일 하루 전면파업에 나섰다가 타임오프 재논의를 위해 업무 복귀했다. 조합원 2천여명인 LG화학 청주·오창공장 노사는 지난 4월부터 임단협을 진행하면서 타임오프제 협상을 벌이고 있다. 금호타이어는 현 노조 집행부와 강경파 노조원간 노조 내부 갈등으로 타임오프 관련 협상을 전혀 못하고 있다. 사측은 법대로 무급으로 하겠다고 노조에 통보한 상태다. 목포 현대삼호중공업 노조는 지난 7월 8∼9일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실시했다. 그러나 민주노총의 핵심사업장인 현대차는 단체협상유효기간이 내년 3월 말이어서 당장 타임오프 노사갈등의 소용돌이에 빠지진 않았다. 금속노조는 “지난 6월30일까지 81개 사업장에서 노사자율로 노동기본권 보장 합의 및 의견접근을 이뤘지만, 미합의 사업장은 교섭을 벌이고 있다”면서 “현행 단협에 명시된 자동연장협약에 따라 자주적 권리를 계속 행사하겠다”고 밝혔다. 대표적인 ‘노사 상생’ 사업장으로 알려진 현대중공업의 노조는 최근 집행부 회의에서 현재의 전임자 55명을 30명으로 줄이기로 전격 결정했다. 타임오프제를 받아들인 것은 현대중공업 노조가 처음이다. 오종쇄 노조위원장은 “자주적인 노조활동을 전개하고 선진노조로 변화하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현대중공업 노조의 법적 전임자 수는 15명. 다만, 노조는 노조에서 급여를 부담하기로 하고 추가로 전임자 15명을 더 두기로 했다. 노조는 조합비 인상 대신 조합비 적립금이나 사내 오토바이 수리점, 자판기, 후생관 등을 노조가 직접 운영하고 노조창립일 기념품 비용 등으로 충당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인수합병(M&A) 절차를 밟는 평택 쌍용자동차는 일부 조합원의 반발이 있었지만, 노조가 타임오프제를 수용했다. 쌍용차는 이미 지난달 19일 타임오프제를 시행하고 임금문제는 회사에 위임하는 내용 등을 담은 올해 임단협안을 찬반투표에 부쳐 78.88%의 찬성으로 마무리 지었다. 사측은 이에 따라 현재 39명인 노조 전임자 중 개정 노조법이 전임자로 인정하는 7명에 대해서만 급여를 지급하기로 했다. 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단협이 만료된 사업장 중 법정 한도를 준수하며 단협을 갱신한 곳이 100개를 넘어섰다. 그러나 상당수는 노조의 요구에 밀려 편·불법 이면합의를 통해 전임자 수를 유지하거나 노사분규를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계 여름투쟁의 ‘핵’ 될 수도

▲ 타임오프를 둘러싼 노사갈등의 대표적인 사업장은 기아자동차다

타임오프제에 대한 노동부 입장은 확고하다. 임태희 노동부장관은 “일각에서는 타임오프제가 제대로 정착되겠느냐며 의구심을 갖지만, 정부는 이 제도가 산업현장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노동부는 타임오프제에 어긋나는 각종 부당노동행위를 집중적으로 단속하기 위해 전국 지방노동관서에 ‘전임자·복수노조 이행 점검단’을 운영하기로 했다. 적발된 사용자는 2년 이하의 징역, 2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을 수 있다. 재계 입장 또한 단호하다. 한국경영자총협회·대한상공회의소·전국경제인연합회·한국무역협회·중소기업중앙회 등 경제5단체는 공동결의문을 통해 “제도정착을 위해 법과 원칙을 준수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7월 7일 타임오프제에 대한 이면합의에 대해 엄중하게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윤 장관은 이날 과천청사에서 열린 위기관리대책회의에서 “노동부가 고용노동부로 출범해 노사관계가 고용 중심으로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면서 “타임오프제가 이를 뒷받침할 토대로 향후 불합리한 노사 관행을 바로잡고 노사의 기본 틀을 확립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는 타임오프제 한도를 벗어난 이면 합의에 대해서는 법에 따라 엄격히 처리하겠다”면서 “고용노동부는 타임오프제 시행 현황을 모니터링해서 이달 중하순께 위기관리대책회의에 보고해달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노동계의 반발도 만만찮다. 올해 파업이 발생한 120개 사업장 중 95곳이 타임오프를 놓고 충돌한 것으로 나타났다. 타임오프 투쟁에 앞장선 민주노총과 금속노조는 “타임오프제 폐해를 막고자 노조법을 재개정하는데 힘쓰겠다”고 정부를 압박했다. 금속노조는 6월 9일부터 18일까지, 21일부터 30일까지 부분파업 등의 투쟁을 벌였다. 금속노조는 지난 7월에도 임단협을 벌이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대규모 파업을 벌이겠다고 맞서 타임오프 갈등이 노동계 여름투쟁을 이끌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 타임오프 도입은 내년 초

▲ 임태희 전노동부 장관은 이 제도가 산업현장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금융권의 타임오프(근로시간 면제한도) 도입시기는 내년 초로 미뤄졌다. 금융권이 지난 2008년 체결한 단체협약의 유효기간이 올해 연말까지인 만큼 내년부터 타임오프 제도를 적용해도 된다는 노동부의 유권해석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은행권을 포함한 전체 금융권 노조 전임자 수가 대부분 연말까지 그대로 유지될 전망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금산협)는 최근 노동부 질의를 통해 이 같은 유권해석 받았다. 금융권은 임금협약의 경우 매년 갱신해 왔으나 근로조건 등을 규정하는 단체협약은 지난 2008년 12월 협약을 체결하며 유효기간을 2년으로 정했다. 금산협 관계자는 “지난 2008년 체결한 단체협약의 유효기간을 그대로 인정해도 되는지 노동부의 유권해석이 필요했다”며 “최근 노동부가 단체협약의 유효기간을 그대로 인정한 만큼 금융권의 타임오프 제도 도입은 내년 초로 미뤄지게 됐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국민·신한·우리은행 등 대부분의 시중은행의 노조 전임자 수와 사측이 지급하는 이들에 대한 급여도 연말까지 그대로 유지된다. 그러나 산별노조 수준의 단체협약 외에 ‘지부보충협약’에 노조 전임자 근로조건 등을 따로 명시한 일부 은행은 내부적으로 이 문제를 다시 협의해야 한다. 지부보충협약에 노조 전임자의 근로조건 등을 명시한 은행은 농협과 외환은행 등 총 5곳이다. 한편 타임오프제 도입과 관련 노조 전임자 수를 놓고 치열한 공방을 벌였던 금융노사 양측은 제도 도입이 미뤄짐에 따라 임금협상에 다시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금융노조는 올해 3.7%의 인상안을 사측에 제시했으나 사측은 1%대 이상의 인상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통상 여름 휴가철인 7~8월에는 교섭을 진행하지 않았던 관례상 임금 협상도 9월에나 본격화될 전망이다. 금융노조 관계자는 “최대 현안인 타임오프제 도입 문제가 다소 늦춰진 만큼 오늘 5차 교섭을 끝으로 8월 말이나 9월초에 교섭을 재개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노·사·정 모두 집단적 노사관계의 기본원칙 되새겨야

▲ 금속노조는 지난 7월에도 임단협을 벌이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대규모 파업을 벌이겠다고 맞서 타임오프 갈등이 노동계 여름투쟁을 이끌 것으로 보인다

현재 세계 각국은 그 나라 노사관계 환경에 적합한 타임오프제를 시행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산업별 노동조합 체계가 잘 발달해 있는 서구 국가에서는 노조 스스로 전임자 인건비를 부담하는 것이 당연한 관행으로 정착되어 있다. 다만 근로자 대표들은 근로를 제공하면서 적절한 수준에서 최소한의 타임오프를 보장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노사 자율주의 전통이 있는 영국에서는 노조 대표자에게는 근로자 대표 업무수행과 훈련을 받는 시간에 대해 합리적 수준에서 타임오프가 보장된다. 다만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사용할 때는 사용자가 이를 거부할 수 있다. 법으로 정해진 바는 없으나 평균적으로 선임 노조 대표는 타임오프를 주당 12.5시간 인정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작업장 민주주의가 잘 발달한 독일은 종업원평의회라는 근로자 대표기구 일부 위원들에게 유급으로 근로자 대표 업무만을 수행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 근로자 200~500명인 사업장은 전임자 1명, 501~900명은 전임자 2명, 901~1500명은 전임자 3명, 1501~2000명은 전임자 4명 등이며 그리고 근로자 1만명까지는 근로자 1000명당 1명, 근로자 1만명 이상에서는 근로자 2000명당 전임자 1명이 추가로 보장된다. 프랑스에서는 각각 노조 대표 위원, 근로자 대표 위원, 종업원평의회 의원에게 사업장 규모에 따라 일정한 타임오프가 보장되며 대기업에서 이를 모두 겸직하게 되면 한 달에 총 55시간의 근로시간을 면제받게 된다. 반면에 역사적으로 기업별 노조 중심으로 노사관계가 형성되어온 우리나라는 그 처지가 다르다. 과거 노동운동 역사가 상대적으로 짧은 상황에서 기업별로 조직된 노조의 재정이 열악해 정상적인 노조 업무를 위해서 사용자의 급여 지원이 관행적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재정적 독립성 확보가 가능한 대규모 노조에서조차 지나치게 많은 유급 노조 전임자가 양산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집단적 노사관계의 기본원칙은 정부가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법적 틀을 마련하고 노사는 제시된 틀 내에서 노사 자율로 책임 있게 집단적 질서를 형성해 나가는 것이다. 어렵게 도입된 타임오프제가 안착하기 위해서는 노·사·정(勞使政) 모두가 집단적 노사관계의 기본원칙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먼저 정부는 원칙에 따라 근로시간면제 한도에 대해 규율함으로써 건전한 노사관계 환경이 형성될 수 있도록 하면서도 대상 업무, 사용 방식과 같은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법적 틀 내에서 노사 자율로 결정할 수 있는 영역을 조성해줄 필요가 있다. 시행된 기준이 사업장의 지역적 분포, 교대제 근로 등 사업장 특성에 맞게 보완할 점이 있는지 엄밀하게 점검하는 작업도 병행해야 할 것이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