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희 작가의 그림은 무엇보다도 고요하다. 외로움을 터놓을 수 있는 어떠한 정경으로써 존재한다. 화려한 채색과 수사를 최대한 줄여서 언뜻 보기에도 암묵적인, 그래서 추상적이고 은유적인 해석이 가능한 모습을 우리에게 선보이고 있다.

신선영 기자 ssy@

외로움에 대한 감각적 시선

▲ 권혁희 작가

권혁희 작가는 자신의 무의식 깊숙한 곳에 저장되어 있는 외로움에 기인한 시선을 작품에 투영하고 있다. 작가가 그려낸 아득하면서도 아련한 분위기의 정경은 생각하는 존재인 인간 본연의 것이어서 우리 마음 어디에나 있는 보편적 외로움으로 공감된다.

작가는 “사람은 누구나 외롭다. 하지만 그 어떤 외로움도 죽을 때까지 끌고 가야 하는 게 인생이기도 하다. 그래서 작품명도 <당연한 외로움>, <침묵 속에서 이루어지는>, <눈에 보이지 않는>등 인생 속에서 느끼는 상념들을 주제로 붙이게 됐다”고 설명했다.

작가는 나무, 산, 바다와 같은 자연에서 지평선을 남겼다. 눈으로 보기보다는 마음으로 담아낸 풍경에 하늘이고 숲이고 바람이기도 한 대상들을 몇 자락씩 펼쳐 보였다. 작가는 “나의 작품 의도는 현대의 산만한 환경으로부터 한발 물러서서 본질을 흐리는 것들을 단순하게 직시하는 담대한 시선으로 여유를 끌어내는 데 있다. 그렇기에 화면구성은 생략적이고 비기교적이다. 표현되는 대상은 자연과 시간에 순응하는 변화의 추출물로서 나의 삶과 병행한다”고 작가노트를 통해 밝혔다.

블루의 보편적 서정
작가의 메인칼라는 블루다. 블루만이 자아낼 수 있는 색과 빛으로 특유의 아우라를 작품에 조성해 냈다. 대표 작품 <눈에 보이지 않는>은 푸른 산 아래로 곡선이 부드럽게 흐르는데, 이는 풍경을 대하는 작가의 시선이기도 하다. 마치 풍파의 흔적처럼 층층이 색감을 머금고 있다. 어느 한 쪽이 다른 쪽을 억압하거나 침범하지 않고 조화롭게 흐른다. 과거로부터 현재, 현재로부터 과거를 끄집어내기라도 하듯 서서히 옅거나 짙어지면서 삶을 떠올려 냈다는 점에서 작가의 색채 감수성이 확인되는 부분이다.

이는 작품 <침묵 속에서 이루어지는>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작가는 “아무리 잔잔한 바다여도 그 안은 무수한 생명체가 치열하게 살고 있다. 아무리 한적한 마을도 집집이 다사다난하다. 그럼에도 이것을 단순하게 그린 것은, 이 그림을 봄으로 해서 삶의 큰 흐름을 관망할 수 있는 혜안을 키우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성찰적 시선을 통해 삶을 새롭게 생성해 나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작업에 임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작품 속 자연에 대해 “보는 이에 따라 산이 섬으로 보이기도 하고 그 밑은 구름, 바다, 능선 등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 부분은 보는 이의 직관에 맡긴다. 마음의 풍경이기 때문에 보는 이에 따라 다양하게 보였으면 좋겠다는 의도성이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그 어느 것이 되었든 누군가에게 무엇을 불러일으키게 만들고 불러 세우는 풍경인 것만은 분명하다. 관람객들은 작품 <당연한 외로움>을 통해서도 각자의 이야기와 느낌들을 작품 속 공간으로 불러와 생각과 감정을 마주 보고 탐색하는 시간을 갖았다. 이렇듯 작품들은 자기 치유이자 성찰의 거울로써 작용하게 된다.

▲ (왼쪽) <침묵 속에서 이루어지는>, (오른쪽)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의 자화상, 그 이면 그리기
지난 6월 열린 개인전 「Self-searching」은 사색의 장이었다. 사람들은 침묵과 관조적인 자세로 작품을 관람했고, 작품 <눈에 보이지 않는>은 시인으로부터 시가 헌정되기도 했다. 권혁희 작가의 작품은 자신의 내면과 대면하는 매개체로써 묵시(默視)의 시간이자, 삶의 사유공간으로써 많은 공감을 얻어냈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이미지는 단순하지만 푸른색의 미묘한 차이를 통해 다양한 감정의 변주를 표출했다. 세필로 하나하나 마음을 담아 터치를 살리는 작업을 서너번 반복했는데 나는 이것을 ‘육화된 터치’라고 말한다. 서너겹으로 쌓아 올린 터치는 한지의 번짐, 스며듦과 어우러져 오래 보고 있으면 숨결 같은 게 느껴지고 포근하기까지 하다. 따라서 푸른색이라도 차갑지만은 않은 부드러운 정서를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작가는 방어적이고 수세적인 현대인의 심상을 어떤 결핍된 상태로 그려내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무한한 관계의 가능성을 담은 지점을 제시하여 소통을 이루는 매개체로써 공간을 그리기도 했다. 그래서 작품 속의 넓은 하늘은 공감과 소통의 확장된 공간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 열린 소통의 공간은 미완에서 진행형으로 나아가기 위한 심리적 거리이자, 그만의 배려이다. NM

▲ (왼쪽) <평정의 간격>, (오른쪽) <당연한 외로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