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말하고 생각하는 ‘세계화’라고 하면 가끔 세계인의 입맛에 우리 것을 바꾸는 것으로 오해한다. 물론 동서양의 문화크로스를 통해 새로운 문화를 창출해내는 것도 좋은 일이고 중요한 일이긴 하다.

하지만 우리의 것을 잃어버리고 흔히 말하는 외국문화에 젖어들어 세계화를 부르짖는다면, 이는 진정한 세계화라고 볼 수 없다. 우리도 엄연히 세계를 구성하는 한 일원이기 때문이다. 세계화라는 것은 우리의 것을 세계인에게 널리 알리는 것이지, 우리의 것을 잃어버리고, 외국의 것을 따라한다는 의미는 분명 아니다. 그렇기에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인 셈이다.

▲ 1991년 정호다완을 재현해 도예부문 초대 명장이 된 김정옥

200년 전 조상들이 사용한 전통방식 고수

▲ 청화백자팔각소병

한평생을 물레와 씨름해 온 백산 김정옥 도예가. 18세에 아버지 김장수 옹으로부터 도예를 사사한 이래 반세기가 넘는 시간동안 외길을 걸어왔다. 7대 도공인 그는 우리나라 최초로 지정된 중요 무형문화재 105호인 사기장이기도 하다. 경북 문경시 문경새재 아래 진안리에 자리 잡은 영남요에서 백산은 전기물레 대신 발물레로, 가스가마 대신 전통 장작가마인 망댕이가마로 그릇을 빚고 있다. 200여 년 전 조상들이 사용한 전통방식 그대로다. 그는 “가스가마나 전통가마나 언뜻 보면 작품 차이는 별로 없을지 몰라요, 하지만 가스나 석유 때문에 지구 대기가 나빠지는 반면, 나무를 때면 독성이 없습니다”면서 “독성 없는 불로 그릇을 구워야 되지요. ‘전통가마로 구워낸 그릇과 가스가마로 구워낸 그릇 중 가스가마 그릇에 꽂아 둔 꽃이 먼저 시든다’는 말도 있잖습니까”라고 설명했다. 그릇을 빚고, 문양을 새기고, 그림을 그리고, 뜨거운 불에서 도자기를 구워내는 모든 과정을 직접 하는 그에게는 7대째 이어온 장인의 자부심과 고집이 느껴진다. 두 달에 한 번 불을 지피는 가마에는 다완 100여점이 들어가지만 작품으로 남는 것은 3~4점이 채 안 된다. 80~90%의 성공확률을 보장하는 가스가마를 외면하고 97%의 실패가 눈에 보이는 망댕이가마를 고집해 탄생되는 그의 작품은 그 형태와 빛깔에서부터 남다르다. 그의 대표작은 청화백자와 정호다완으로, 집안 대대로 이어지는 청와백자에서는 소박하면서도 고고한 멋을 느낄 수 있어 옛 명품에 버금가는 깊이와 운치가 서려 있으며, 정호다완에서는 정갈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특히 손맛이 살아 있는 다갈색 차사발과 정호다완은 분청 중에서도 일품으로 꼽힌다. 1991년 정호다완을 재현해 도예부문 초대 명장이 된 그는 1996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유일하게 중요무형문화재 사기장으로 지정됐다. 지난 1999년에는 문경대학 초대 명예교수로 임용된 데 이어 이듬해인 2000년에는 대통령 표창을 수상하는 영예를 얻기도 했다.

어려움 딛고 국내 최정상에 올라서다

▲ 정호다완

지금은 국내 최고의 도예가로 인정을 받고 있는 백산이지만, 그 역시 처음부터 도예가의 꿈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먹고 살기 어려워 중학교 3학년 때 결국 중퇴를 하고 어쩔 수 없이 6대조 때부터 가업으로 이어온 도자기 일을 배워야 했다. 아버지 밑에서 흙을 고르고, 땔감을 나르고, 생계를 위한 그릇을 만들어야 했다. 무명의 도예가였던 그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1983년 경북공예품경진대회에서 입선한 뒤 1987년 전승공예대전 특별상을 받는 등 각종 대회를 휩쓸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당시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일본과의 교류도 활발해지면서 일본인들 사이에서 유명해지기 시작한 그는 마침내 국내 최정상에 올라섰다. 이제는 일본은 물론 미국 등 외국에서도 그의 작품이 유명세를 타 지난 1996년 미국 스미스 소니언 박물관을 비롯, 캐나다 왕립 박물관, 독일 베를린 동아시아 박물관 등에 그의 작품이 전시되어 한국의 미를 전 세계에 알리고 있다. 그는 최근 전수장학생 4명과 외아들 우남 김경식씨에게 참도공의 길을 가르치며 제자양성에도 한창이다. 외아들인 우남 김경식 씨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8대 도공의 길로 들어서 부자가 함께 국내의 굵직굵직한 상을 수상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김경식 씨는 찻잔, 다완에서부터  달항아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크기의 도자기를 섬세하게 만드는 능력을 갖췄고, 특히 망댕이 가마 운용에 대한 일가견을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백산은 현재 매년 일본이나 독일 등 외국을 찾아다니며 전시회를 열고 있지만 아직 홍보 부족으로 미흡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에 한국 도자기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끝없는 도전정신으로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이어 백산은 “이제 세계 여러 나라에 가서 우리 전통 도자기를 홍보하여 인식시키고 싶습니다. 또 전수교육관을 건립하고 아들, 손자가 힘들더라도 우리 가문의 명예를 이어갔으면 합니다”라는 소망을 밝혔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