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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을 멀리 하는 대한민국
황금 보기를 돌같이 알라?
2008년 12월 13일 (토) 12:31:18 박재진 기자 pjj5472@

전 세계에 불어닥친 금융위기로 시름이 깊어진 이즈음 일본이 간만에 들려온 신나는 뉴스로 기쁨에 휩싸였다. 일본인 과학자 4명이 노벨 물리학상, 노벨 화학상을 휩쓸었다는 소식이다.

박재진 기자 pjj5472@

글로벌 금융위기로 닛케이평균주가가 9.3% 폭락하고,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금리를 전격 인하한 소식도 뒤로 밀렸다. 7일 노벨 물리학상, 8일 노벨 화학상 수상자로 일본인이 선정되자 각 언론은 연이틀 호외까지 발행할 정도로 일본 전역은 들썩이고 있다.
   
▲ 김대중대통령노벨상수상

올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일본 고에너지연구소(KEK) 고바야시 마코토(小林誠·64) 박사, 교토대 마스카와 도시히데(益川敏英·68) 박사, 미 페르미연구소 난부 요이치로(南部陽一郞·87) 박사 등 3명이 올해 노벨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이어 화학상에서도 시모무라 오사무(下村脩·80) 미국 보스턴대 명예교수가 공동 수상자로 결정되면서 기초과학 분야의 우수성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줬다.
일본인의 이번 노벨상 수상은 2002년 고시바 마사토시(小柴昌俊) 동경대 교수가 물리학상을, 다나카 고이치(田中耕一)가 화학상을 받은 지 6년 만이다. 시모무라 명예교수가 수상자로 결정됨으로써 일본인 노벨상 수상자는 16명으로 늘어나게 됐다. 일본은 지금까지 물리학 7명, 화학 5명, 의학 1명 등 13명의 과학분야 노벨상을 배출했다. 2000년 이후로만 화학상 수상자가 4명이다.

종이와 연필로 이뤄낸 쾌거
NHK 등 주요 언론은 올해 노벨상 수상자들의 학문적 업적과 성장 과정 등을 대서특필 중이며 일본 열도는 말 그대로 흥분의 도가니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한 해에 두 개의 노벨상을 받은 것은 기초과학에 강한 일본의 위상을 국제사회에 다시 한 번 알린 쾌거”라고 보도했으며, 아사히(朝日)신문은 “종이와 연필로 시작한 연구가 한꺼번에 꽃을 피웠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번 노벨상 수상도 1960, 1970년대의 연구 성과를 인정받아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된 것이기 때문이다. 또 1920년대에 시작된 일본의 양자력 연구는 반도체 물리분야의 기초가 되어 20세기 말에 정보기술(IT) 사회를 열었다고 일본은 자부하고 있다.
일본이 13명의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것을 연구환경이 우리보다 훨씬 좋았기 때문이라고 하긴 어렵다. 일본의 첫 노벨상은 1949년 유카와 히데키(湯川秀樹)가 물리학에서 받은 게 처음이다. 당시 일본은 세계 2차대전 패전으로 인해 잿더미나 다름없었다. 변변한 연구 시설은커녕 제대로 된 장비마저 없는 상황에 유카와의 노벨상은 일본이 정신적으로 재기할 수 있는 기폭제가 되었다. 전쟁의 폐허 속에 남은 거라곤 오직 두뇌와 종이, 연필뿐이었다. 유카와의 노벨상 수상 이후 일본의 우수 두뇌들은 종이와 연필만 갖고도 연구할 수 있는 소립자 물리학에 몰려들었다.
   
▲ 노벨상 수상자인 유누스,카터,투투주교 및 코피아난유엔총재,넬슨만델라

연구자들의 집념과 함께 일본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도 큰 역할을 했다. 특히, 1995년엔 불경기에도 불구하고 과학기술기본법 제정을 통해 관련 예산을 대폭 확충했다. 일본 정부는 2001년 마련한 제2기 과학기술기본계획에서 50년 내에 노벨상 수상자를 30명 정도 배출한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그러나 일본 내에서는 경계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번 4명의 노벨상 수상자의 연구 성과가 현재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 큰 이유다. 특히 일본도 최근 들어서는 우수한 젊은이들이 과학 분야를 기피하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도 일본 정부가 걱정하는 점이다. 도모나가 신이치로, 고바야시 마코토, 마스카와 도시히데는 유카와 히데키가 1946년 창간한 과학잡지에 낸 논문으로 노벨상을 받았다. 물리학상의 난부 요이치로 교수 논문은 1961년에 발표됐고, 화학상의 시모무라 오사무 교수가 형광단백질을 발견한 건 1962년이었다. 아울러 과학예산도 기초과학보다는 즉각 실용화할 수 있는 응용연구에 집중돼 있는 데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일본 학술회의는 지난 8월 “기초연구의 기반을 소홀히 할 경우 장기적으로는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정책에 위기 상황을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에 노벨상은 가깝고도 먼 당신
축제 분위기인 일본을 보면서 많은 사람이 부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든 면에서 일본인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왜 유독 노벨상에서는 이토록 차이가 나는 것일까? 한국인의 과학적 재능은 일본인에 전혀 뒤지지 않지만 한국의 과학 인프라와 기초과학 지원은 일본에 비해 너무나 부족하다. 2006년 한국의 과학 연구개발비는 28억6400만 달러, 일본은 148억5300만 달러. 한국은 GDP(국내총생산) 대비 국가연구개발비가 세계 5위에 이를 정도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 했으나 절대 액수는 일본의 20%에도 못 미치고 있다. 특히 기초과학 분야에 대한 실질적 투자 액수는 더 더욱 그렇다. 정부의 ‘세계 수준의 연구중심대학(WCU) 육성사업’은 열악한 대학의 연구 인프라에는 투자하지 않고 해외석학의 유치에만 쏟아붓고 있다. 지금 당장 모든 분야에서 선진국과 어깨를 겨루는 수준으로 뛰어오를 수는 없지만 인프라 없이 세계 수준의 대학이 가능하다는 발상은 착각이라 해도 너무 앞을 못 보는 오만한 착각이다.
연구 평가제도도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그동안 비약적 발전을 한 한국 과학계가 2008년 내놓은 SCI(과학논문 인용색인) 등재 논문 편수는 세계 12위다. 하지만 노벨 과학상은 논문 수로 업적을 평가하지 않는다. 국내 논문은 그 질적 수준을 말해주는 ‘논문 1편당 피(被)인용 횟수’가 3.44회로 30위밖에 안 된다. 과학 연구 지원에 있어 아직까지도 논문 수로 평가를 하는 구태의연한 정책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연구지원정책이 유행에 편승해 단기적인 성과만을 요구하고, 그에 맞춰 과학자들이 연구주제를 계속 바꾸고 논문 수만 늘리려 하다 보면 영향력이 큰 창의적인 연구는 힘들어진다.
문제시 되는 모든 점을 개선하고 체계적인 지원이 이루어진다면 한국에서도 반드시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나올 것이다. 과거를 되돌아보면 70년대 말 작고한 이휘소 박사는 당시 입자물리학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업적을 내고 있었기 때문에 생존했다면 노벨상을 받았을 수도 있다고 자주 거론된다. 지난해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한 네덜란드 토프트 교수는 바로 이휘소 박사와 비슷한 분야를 연구했던 학자다. 토프트 교수는 “이 박사의 이론에서 영감을 얻어 박사학위 논문을 썼으며 이후 이 박사가 이를 재해석해주었다”며 “학문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아주 우수한 물리학자였다”고 술회했다. 그리고, 2000년 노벨 화학상(히거, 맥디아미드, 히데키 공동 수상)의 연구 업적인 ‘전도성 있는 중합체’도 국내 학자인 변형직 박사가 처음 고안해냈던 것으로 밝혀졌다. 제대로 된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아 멀쩡한 아이템을 눈 뜨고 뺏기는 현실이 아닐 수 없다.

노벨상을 바란다면 우리의 현실을 곱씹어라
우리는 정보기술(IT) 및 기타 여러 분야에서 일본을 앞서가는 분야가 많다. 우리 스스로 머리만큼은 일본에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노벨상에 있어 현실은 아직 평화상밖에 수상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 또한 전방위 로비를 펼쳐 따낸 정치적 결과라며 스스로 손가락질 한다.
노벨상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해 실망하기보다는 왜 국내 인재들은 노벨상과 거리가 먼가를 먼저 분석함으로써 과학교육의 문제점과 개선책을 생각해 봐야 한다.
왜 한국은 과학부문 노벨상 수상자가 없는가? 이 물음에 해답을 얻고 싶다면 현재 행하고 있는 교육시스템을 살펴보는 게 빠를 것이다. 수많은 사람이 개혁을 외치며 해마다 교육제도를 뜯어고치고 있지만 국내 교육의 현실은 입시 위주의 교육으로 학생들은 자유로운 과학적 사고의 발상과 탐구보다는 교사의 지도에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게 일반적인 경향이다. 학생들의 일과는 입시를 위한 시간쪼개기에 갇혀 창의력이 둔화될 수밖에 없다. 학원이나 과외 선생이 가르치는 건 시험 점수를 잘 받는 데 필요한 요령과 방법이지 창의력이 아니다. 오죽하면 KAIST가 2010학년도 입시요강을 사전에 공개하지 않기로 했겠는가. 주제를 공지해놓고 면접시험을 치르면 사설학원에서 준비해온 모범답안을 발표한다니 이런 식이라면 창의적인 인재를 뽑을 길이 없다. 과학고 출신이 많은 KAIST 지원자들이 이 정도라면 장차 노벨상을 따낼 창의력 있는 학생을 기대하기란 요원하다.
일반 학생들의 인식 속에는 과학은 외우기 어려운 공식과 이론, 몇몇 머리 좋은 극소수의 연구원이나 학자들만 관심을 가지는 분야라는 개념이 팽배해 있다. 기초과학에 대한 푸대접도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이다.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에서 공개한 자료를 보면 최근 5년간 국제과학올림피아드에서 수상한 과학 영재 98명 가운데 47%가 이공계 진학을 기피했다고 한다. 이런 우수한 학생들이 저마다 문과계열이나 의대에 가려는 마당에 기초과학 분야에 인재가 몰릴 리가 없다. 수학이나 물리학, 화학 등 자연과학 분야보다는 당장 취업이 잘되는 학과에 줄을 서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기초과학이 홀대받는 분위기는 해외에서 공부한 실력 있는 한인 과학자들의 한국 입성마저 막는다. 게다가 기초과학은 정부나 대학, 연구소의 정책적 지원 없이는 발전이 어려운 분야다. 하나의 결과를 위해 엄청난 인내와 집중력이 요구되므로 장기적으로 상당한 연구비가 꾸준히 지원돼야만 한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 정부나 대학들의 기초과학 분야 지원책을 다시 한 번 살펴볼 일이다.
노벨상은 국가나 대학의 수준을 말해주는 하나의 척도로 꼽힌다. 특히 과학분야 노벨상은 선진국에서 많이 나오고 대학도 노벨상 수상자를 몇 명이나 배출했느냐에 따라 권위가 갈린다. 노벨상이 선망의 대상인 것은 메달이나 상금 때문이라기보다는 이 같은 의미와 파급효과 때문이다. 일본이 과학분야에서만 13명이나 되는 노벨상 수상자를 내는 동안 우리는 무얼 했는지 자문해 보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은 이제 국민소득 4만 달러에 세계 7대 강국을 지향하는 나라다. 게다가 교육에 관한 한 한국처럼 많은 돈을 쏟아붓는 나라는 세계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가 한 명도 없다니 안타까운 일이다.
따라서 초·중학교의 과학교육은 학생들이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과학 현상에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하고, 과학의 기초 원리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교과서, 교수·학습방법 등을 개발하여야 하며, 대학의 과학 기술교육 방법이나 교육과정은 미래지향적이며 시대가 요구하는 기술에 맞게 끊임없이 개혁해 나가야 한다. 
선진국은 과학기술교육의 우월성을 추구하기 위하여 과학교육에 관심과 지원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제 우리나라도 창의성을 신장할 수 있도록 교육환경을 개선하고, 그 속에서 과학적 소양과 건전한 가치를 가진 미래 시민을 양성하는 과학교육을 추구·실천해야 할 것이다.
사회 인식에서도 학교는 입시준비를 하는 곳이라는 통념에서 벗어나 학생의 건강과 정신, 다양한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는 곳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지식기반 사회의 도래와 함께 우리의 학교가 학생의 창의성과 바른 인성을 기르는 곳으로 변화할 때 우리도 제2, 제3의 노벨상 수상자를 기대해 볼 수 있다.

노벨상을 위한 한국의 과제
그나마 한국이 노릴 수 있는 노벨상은 문학상이나 평화상이다.
외국 문인 가운데 우리 문학에 대해 깊이 있게 알고 있는 작가는 많지 않다. 무엇보다 우리 문학을 해외로 번역 소개하는 경우가 적기 때문이다. 우선 외국에 번역 소개하는 작품의 양을 늘려야 한다. 또한 노벨 문학상이 생존 작가에게만 시상한다는 이유로 생존작가 작품에만 집착하지 말고, 세계 각지의 유명 도서관과 대학이 구입해 갈 수 있도록 한국 문학 작품을 꾸준히 번역해 세계에 내놓을 필요가 있다. 훌륭한 작품들을 발굴, 꾸준히 번역 소개함으로써 한국을 외국에 알리는 과정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국의 독창성과 세계의 보편성의 균형을 이뤄내야 하는 우리 작품의 질적 문제가 풀릴 수 있다.
 노벨 문학상 수상에 있어 그 수상작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격정의 삶이 묻어있는 작품이 많다. 서울국제문학포럼에서 파스칼 카자노바가 “한국의 경우 외부역사와 항거의 역사로 비춰볼 때 ‘문학의 세계공화국’이라는 아일랜드와 유사해 우수작 생산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 것도 바로 이런 점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은 역사상 이런 아픔을 가슴 속 깊이 간직하고 살아왔기 때문에 격정의 애환이 담긴 우수작이 많이 나올 수 있다는 여지를 얘기한 것이다. 카자노바는 노벨 문학상 후보로 소설 「토지」(전16권)의 저자 박경리를 지목했다.
우리는 노벨 문학상이 차근차근 준비하고 노력하는 하나의 문화 국제사업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노벨상이라는 성급한 결실에 목말라 하기보다는 세계가 한국의 문학 작품을 통해 한국을 이해하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노벨상 후보에 오른 한국인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은 앞으로 한국인이 노벨상을 수상하는 데 있어 물꼬를 터 준 것이라 평가할 수 있다. 이를 계기로 다른 부문에서도 노벨상에 도전할 수 있는 자신감을 얻게 된 것은 큰 소득이다. 한국인으로서 김대중 대통령 외에 노벨상 후보로 추천을 받았던 사람은 노벨 문학상에 김은국(미국 거주·69년), 김지하(75년), 김동리(작고·81년), 서정주(90, 94, 95년), 최인훈(92년), 한말숙(93년), 구상(99, 2000년) 등 6명이다. 이외에 황순원(작고), 박경리, 조정래, 황석영, 이문열, 고은 등도 개인 또는 단체 차원에서 후보로 꾸준히 회자되고 있다.
국제노벨상심사위원회가 후보를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한국 과학자 중 후보에 올랐던 사람은 정확히 집계하기가 힘들다. 다만 조선족 한의사 출신의 유해봉(42·삼화그룹) 회장이 1998년에 추천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 회장은 가문의 비방으로 내려오던 골절치료약을 개량해 우수한 효능의 특효약을 만든 공로로 중국 국가과학기술위원회에 의해 추천받았다. 이외에도 미국에서 활동 중인 데니스 최(미 워싱턴대), 승현준(벨연구소)씨와 국내 서울대 물리학과의 임지순·김진의 교수, 김정욱 고등과학원장 등도 노벨상 후보자로 가끔 거론된다.

노벨상이란?
노벨상(Nobel Prize)은 다이너마이트 발명가인 스웨덴의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에 따라 인류 문명 발달에 학문적으로 기여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상을 말한다.
노벨상은 살아있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며, 아무리 위대한 업적을 남겼어도 사후 수여는 하지 않는다. 유언장에서 노벨은 상을 수여하는 기관으로 4개의 기관(3개는 스웨덴에, 나머지 하나는 노르웨이에 있음)을 지목했다. 그 가운데 스톡홀름의 스웨덴 왕립 과학 아카데미는 물리학상, 화학상, 경제학상을 수여한다. 그 외 생리·의학상은 카롤린스카 의학연구소에서, 문학상은 스웨덴 아카데미에서, 평화상은 오슬로에 있는 노르웨이 노벨 위원회에서 수여한다. 노벨 재단은 기금의 법적인 소유주이자 관리자로서 상을 주는 기관들의 공동집행기관으로서의 기능은 수행하지만, 앞서 말한 4개 기관에서 전담하는 수상자 선정 업무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선정 과정
노벨상의 권위는 엄격한 심사를 통한 수상자 선정 과정에 기인한다. 수상자 선정 작업은 그 전해 초가을에 시작된다. 이 시기에 노벨상 수여 기관들은 한 부문당 약 1,000명씩 총 6,000여 명에게 후보자 추천을 요청하는 안내장을 보낸다. 안내장을 발부받는 대상은 전해의 노벨상 수상자들과 상 수여 기관을 비롯해 물리학, 화학, 생리·의학 분야에서 활동 중인 학자들과 대학교 및 학술단체 직원들이다. 안내장을 받은 사람들은 해당 후보를 추천하는 이유를 서면으로 제출해야 하며 자기 자신을 추천하는 사람은 자동적으로 자격을 상실하게 된다.
후보자 명단은 그 다음해 1월 31일까지 노벨위원회에 도착해야 한다. 후보자는 부문별로 보통 100∼250명가량 된다. 2월 1일부터 6개 노벨 위원회는 접수된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각기 선정 작업에 들어간다. 이 기간 동안 각 위원회는 수천 명의 인원을 동원해 후보자들의 연구 성과를 검토한다. 필요한 경우에는 검토 작업에 외부 인사를 초빙하기도 한다.
각 노벨 위원회는 9∼10월 초 사이에 스웨덴 왕립 과학 아카데미와 기타 상 수여 기관에 추천장을 제출하게 된다. 대개는 위원회의 추천대로 수상자가 결정되지만, 상 수여 기관들이 반드시 여기에 따르는 것은 아니다. 상 수여 기관에서 행해지는 심사 및 표결 과정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지며 11월 15일까지는 최종 수상자를 결정해야 한다. 상은 단체에도 수여할 수 있는 평화상을 제외하고는 개인에게만 주도록 되어 있다. 죽은 사람은 수상 후보자로 지명하지 않는 게 원칙이지만, 다그 함마르시욀드(평화상, 1961)와 에리크 A. 카를펠트(문학상, 1931)의 예처럼 생전에 수상자로 지명된 경우에는 사후에도 상을 받을 수 있다. 일단 수상자가 결정되고 나면 번복할 수 없다. 이밖에도 상을 수여하는 사람들은 시상 과정에서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외교적 혹은 정치적 발언을 해서는 안 된다.
일본의 노벨상 수상자 배출은 분명 부러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리 실망할 필요는 없다. 아직은 우리의 기초과학 역사가 충분하지 않음을 인정하고, 우리도 일본처럼 기초에 충실한 연구를 꾸준히 해 나간다면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하리라 기대한다.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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