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만 작가는 그가 보고 느끼는 삶의 특수한 사건들 속에 자신의 삶을 끊임없이 투영하여 예술적 범주를 형성하고 있다. 지난 20여 년 간 미국에서 겪었던 재외 한국인으로써의 삶과 현재적 상황, 문화적 차이와 정체성의 문제 그리고 예술적 양상들을 작품에 담아내는가 하면 최근에 열린 「Melting Pot」전에서는 통일과 직결되는 작품들을 선보이며 존재에 대한 담론을 이어가고 있다.

신선영 기자 ssy@

인종의 용광로에서 유추한 추상

▲ 고성만 작가

작가는 청년시절부터 민주화라는 사회변혁과 20여 년에 걸친 미국 유학과 이민생활을 통해 늘 인간의 존재 문제에 직면해 왔다. 특히 다인종·다문화에 대한 숙명적 전통을 안고 있는 미국사회를 관찰하면서 존재와 정체성, 생존의 문제를 미적 형성의 기본 메커니즘으로 발전시켜 왔다. 

작가는 인종 분리를 겪고 있는 재외국민을 캔버스에 물감을 떨어트리거나 붓는 드리핑 기법으로 표현했다. 그 대표작으로 <Big O>를 꼽는다. 작가는 “캔버스 위의 물감들은 이슈와 주제가 넘치고 문화 담론들이 쏟아져 내리는 미국이라는 거대한 사회에 덤핑 행위로 던져진 타자적 존재”라며 “이러한 물감의 우연성, 우발성, 그리고 공감각적 기변이 낳은 의식과 무의식의 허구가 모든 상황을 대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겹겹이 쌓여 이룬 물감들은 변혁의 움직임이 불안 에너지로 표출되고 있는 인종의 용광로(Melting Pot)이다. 작가는 “초기 작업 시 현실성(Reality)과 환상(Illusion)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며 “생에 가장 심각한 존재 문제에 직면한 사람들의 역사적이고 존재론적인 흔들거림, 그리고 어떠한 패러다임에도 속박되지 않으려고 하는 자유롭고 순수한 영혼의 메타포를 작품에 담아냈다”고 전했다.

논쟁의 역사, 새로운 시간을 생성해야
전쟁과 전쟁의 참화, 테러리즘, 반전 등이 거론될 때마다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국가가 세계 유일의 분단국인 한국이다. 그러한 이유로 작가본인을 비롯한 한국계 이민자들도 분단 상황에 대한 평가 범주에 늘 놓이고 있다.

추상표현주의 작가군인 잭슨폴록, 바넷뉴먼, 마크 로스코 등이 수학한 뉴욕 미술학생연맹(Art Student League of New York)을 졸업하고, 미국에서 아트 디렉터와 작가로 활동한 고성만 작가도 오랜 이국 생활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의 틀과 범주, 그리고 세계관의 잣대가 그의 작품세계에 적용되는 것을 꿋꿋이 견뎌야 했다.

▲  <Big O>

하지만 작가는 “나는 인종, 종교, 국적 등 사회적 정체성이 나타나는 사안에 있어서는 늘 경계인이자 날카로운 지점에 놓여 있었다. 그래서 세계 속에 던져진 ‘나’라는 존재, 그 존재론적 관찰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고 설명하며 “이러한 노마디즘(유목민) 인간일수록 자기가 귀속된 국가 체제와 종족에 관한 문제에 늘 깨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더욱 자신의 생각이 세상의 다리가 될 수 있다는 의식을 가지고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피력했다. 

때문에 작가가 분단 현실을 바라보는시선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는 “최근 정부에서 통일대박을 외쳤다. 통일에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젊은이들의 인식을 재고하기 위한 슬로건이었는데 반응이 싸늘했다. 하지만 담뱃값 인상에 대해서는 굉장히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담뱃값 인상이 세금 정책의 일환이기 때문에 체감도가 높은 것은 이해하지만 통일대박에 대한 노골적인 냉대와 비웃음에 비교하면 씁쓸한 일”이라고 토로했다.

▲ 「Melting Pot」전시 장면, 맨 앞의 작품 <38도선-갱글리뉴로파디>

작가는 이러한 상황을 다치고 아파도 아무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병  ‘갱글리뉴로파디(Ganglineuropathy)’에 빗대어 설명했다. 38선으로 분단된 상태가 너무 오래 지속되다 보니 분단국가라는 특수성과 갈등상태 속에서도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군사적 상황에 맞닥뜨려도 위기감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를 갱글리뉴로파디에 비유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연 개인전 「Melting Pot」에 대해 작가는 “최근 파주의 군사분계선에서 ‘STOP’ 사인을 마주쳤을 때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 무엇으로도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의 비수로 가슴에 내리그었다”며 “더욱이 올해가 광복 70주년인 만큼 통일에 대한 합의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작품들을 선보여야 겠다고 생각해서 개인전을 열게 됐다”고 전시 취지를 설명했다.

통일의 빛, 희망의 메시지를 밝히다
지난 4월 가나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린 「Melting Pot」전은 광복 70주년에 맞게 그 취지와 시의성이 돋보이는 전시로 주목받았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의식으로 세상이 바뀌고 나라가 돌아가는 만큼 국민 모두에게 왕관을 씌워줌으로써 주인의식을 고취해야 한다는 작품 <통일대박>, 한글 문양과 북두칠성의 일곱 개 별을 도식화 하여 통일을 염원한 작품 <북두칠성>, 한반도의 단절된 아픔과 안타까운 현실을 상징하는 38선을 먹으로 분절하여 그린 <38도선-갱글리뉴로파디> 등을 통해 그만의 주제 의식을 드러냈다.

가장 주목할 점은 주요 작품마다 38선을 나타내는 흰색 라이트 바를 장착한 것인데, 이렇게 단순한 형태와 재료를 통해 그만의 철학적 사고를 강렬한 메타포로 발산해 냈다는 것이 주요 특징이다. 이 빛은 지난 70년의 기나긴 통증의 역사를 명징할 뿐 아니라 통일의 미래로 나아가는 빛으로서 작품에 의미를 더했다.

▲ (위) <북두칠성>, (아래) <통일대박>

한국, 미국, 중국, 러시아 등 국내외 그룹전과 개인전을 통해서 자신만 미학을 구축해 나가고 있는 고성만 작가. 그의 개인전 「100 US$ Fantasia(백 딸라 환상곡)」, 「Dumping(던지기)」, 「Melting Pot(인종의 용광로)」 등의 명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미술을 미학적 형식에 머물기 보다는 사회와 문화의 총론적 시각에서 담론화하며 자신만의 의식으로 표출하는 데 의의를 두고 있다. 앞으로도 어떻게 새로운 변화를 찾고 작품이 어떻게 변화하게 될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