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가 그렇게 울어대듯, 아름다운 도자 작품을 만들기 위해 수십, 수백개의 예비 작품이 무참히 깨진다. 찬란한 도자기를 빚어내는 장인의 손길 뒤에는 고단한 시간과 혼이 숨어 있으나 우리는 영롱한 빛깔에만 관심을 가지게 된다. 

차성경 기자 biblecar@

한 명의 장인이 탄생하기까지 수십 년 아니 평생 때로는 대를 이어 기나긴 인고의 세월을 보내야 한다. 요사이 휴대전화 하나면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 얼굴을 맞대며 이야기하는데 고리타분하게 장인정신을 말하는 것 자체가 진부한 생각일 수 있으나 새로운 과학과 문명의 발달도 그런 장인들의 손끝에서 탄생되고 있음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흙과 불, 예술혼이 빚어내는 최고의 ‘명품’ 

“민족을 떠난 예술품은 없고, 예술을 떠난 민족은 없다.(야네기무네요시) 백자 도자기는 500여 년간 이어온 우리나라의 전통예술이다.” 물레 앞에 앉은 장인은 사뭇 말이 없다. 이미 그의 눈빛은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깊고도 긴 내면을 빚어가고 있다. 하얗다 못해 끝없이 맑고 투명한 빛깔을 짚어가며 고집스런 외길을 걸어왔다. 도원요의 지당 박부원 명장은 지난 12월 서울 강남구 일원동 밀알미술관에서 그의 도자인생 60년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도예작품 초대전을 가졌다. ‘도자의 마음을 담다’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전시에서 현직 최고령 도예명장인 박부원 선생은 그의 뜨거운 예술혼의 결정체들을 대중들에 선보여 극찬을 받았다. 박부원 명장의 딸이자 큐레이터인 박소영(도자사학 전공)씨는 “이번 전시의 주된 작품은 암각문항아리와 청동채항아리, 백자달항아리로, 황톳빛 암각화 달항아리는 수만 년 동안 계속된 자연의 진화 속에 나타난 풍화, 침식 작용의 질감과 색감을 달항아리로 표현했다”면서 “우리나라의 역사와 깊은 관계가 있는 몽골의 암각화 우리나라 울주군 암각화를 황토색 달항아리에 새겼다”고 설명했다. 

▲ 박부원 명장

광주왕실도자명장의 칭호를 받은 광주 왕실도자 1대 명장인 박부원 명장은 지난 1970년대부터 달항아리 작품에 매달려왔다. 이에 대해 지당 박부원 명장은 “달항아리에는 서민들의 눈물이 고여 있다. 그 시대의 가장 밑바닥 생활을 한 사람들이지만 흙으로 이런 둥근 항이리를 만들었다면서 세계도자역사 가운데 달처럼 둥근 달항아리를 만든 민족은 우리나라 뿐이다. “장작 불가마에서 태어난 달항아리를 보면 같은 모양이 하나도 없는데, 그것은 자연물이 하나도 같은 것이 없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특히 박부원 명장은 도자기를 빚는 과정에서 전통을 계승하며 새로운 시도도 계속 이어갔다.  달항아리의 형태는 대부분 비대칭이다. 매끈한 균형과 흠 잡을 데 없는 좌우비례를 갖춘 게 아니라 좌우가 엇박자다. 조선시대에는 대작을 만들기 위해  제아무리 노련한 도공도 당시의 기술로는 한 번에 구워낼 수 없었기에  윗부분과 아랫부분을 따로 만든 뒤에 둘을 붙이는 방식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반면 박부원 명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물레를 회전시켜 만드는 타래기법을 이용하여 작업을 한다. 이에 대해 박 명장은 “18세기엔 18세기 방법이 있고 지금은 지금의 방법이 있다. 지금은 기술도 발전했으니 하나로 만드는 게 당연하다. 더 좋은 달항아리를 만드는 것은 우리의 사명이다”면서 “전통을 따르는 것은 그 시대의 형태가 아니라 그들의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다. 똑같은 것을 만드는 것은 재현하는 것일 뿐이다. 그들의 정신문화를 21세기에 맞게 발전·계승하는 데 의미가 있다”고 피력했다. 

도자예술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리고 있는 거장 

“도자기는 생명의 과정과 같다. 씨앗과 같은 생명이 자라는 살아있는 흙으로 빚어서 1300도의 고열에 구워 흙이 타 죽여야만 아름다운 도자기가 새롭게  탄생하는 것이다.” 스물넷의 나이에 처음 도자의 길에 입문한 박부원 명장은 국내 최초로 고려청자 재현에 성공한 故 도암 지순탁(1912~1993) 선생을 사사했다. 당시 도공이라는 직업은 예술가보다는 ‘그릇쟁이’라는 인식이 강했기에 8남매의 장남으로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박부원 명장의 선택은 집안의 거센 반대에 부딪쳐야 했다. 그러나 끝까지 도공의 길을 걷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던 박 명장은 반세기가 넘는 시간이 흐른 후, 이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광주 왕실의 도자기 명장으로 당당히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히 왕실도자기의 고장 광주에서 영감을 받아 수많은 작품을 만들어낸 그는 왕실도자기협회 회장, 세계도자기엑스포 추진위원을 역임하며 광주왕실도자기의 우수성과 도자예술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고 있는 중이다. 올해로 85세, 하지만 거장의 가슴에는 누구보다 뜨거운 예술혼이 불타오르고 있다. 박부원 명장은 “반평생을 도자기에 몰두한 제가 앞으로 얼마나 작업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버리지 못하는 욕심이 있다”면서 “시대와 세대를 초월하여 꾸준히 사랑받는 작품을 남기고픈 깊은 열정이 있기에 마음과 손은 자연이 준 고귀한 흙을 놓을 수 없다”고 피력했다. 한편 박부원 명장은 1976년 일본 오사카에서 개최된 ‘한국 도예 5인 초대전’을 시작으로 1997년 러시아의 ‘한국전승도자전’ 2016년 미국 맨하튼의 ‘Body&Spirit 코리아소사이어티 초대전’ 등 다수 작품전을 통해 세계 각지에 한국도예문화를 알렸다. 현재 그의 작품은 영국 ‘빅토리아·앨버트 박물관’과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그시 민속박물관’ 등에서 소장 중이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