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劫)’이라는 단어는 인도의 고어인 산스크리트어 Kalpa나 빨리어 Kappa를 한자로 음역한 겁파(劫波)의 줄임말로, 시간의 단위로는 더 이상 헤아릴 수 없는 무한히 긴 시간을 의미한다. 이는 고대 인도 브라흐만교에서 이미 사용해 오던 단어로써 사전적으로는 수십 가지의 의미가 있다고 하지만 불교에서는 오직 시간적 의미로만 사용되어 왔다.

차성경 기자 biblecar@

일 겁(劫)은 천지가 한번 개벽할 때부터 다음번의 개벽 할 때까지의 사이 동안, 오래고 긴 시간을 뜻한다고 한다. 한순간을 지나는 짧은 시간을 찰나라고 하고 오래고 긴 시간을 겁파라고도 한다. 불가에서는 일 겁을 수 백 년 만에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방울이 바위를 뚫어 구멍을 내는 시간이라고도 설명한다. 

가장 단순한 형태인 ‘원’ 통해 아름다움 표현하다
조진학 작가의 행보가 화제다. 주목받고 있는 작가 조진학은 우주 공간이 맺어준 억겁(億劫) 인연(因緣)을 작품으로 표현해낸다. 우리가 살면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을 ‘겁(劫)’의 인연으로 표현하는 말이 있는데 500겁의 인연이 있어야 옷깃을 스칠 수 있고, 2000겁이 지나면 사람이 하루 동안 동행하는 기회가 생기고, 5000겁의 인연이 닿으면 이웃으로 태어날 수 있다고 한다. 조진학 작가는 “이 순간, 이 시각 같은 공간에 있는 우리는 일천 겁 이상의 참으로 놀라운 인연이라고 할 수 있다”면서 “저는 우주 공간이 맺어준 소중한 인연, 가장 고귀한 선물, 놀라운 우주의 시간을 작품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말한다.

▲ 조진학 작가

어릴 적부터 불심이 깊었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불교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불교의 사상을 작업에 접목한 조진학 작가는 불교의 세계를 구현한 원(圓)의 미학을 선보여 왔다. 그의 작품세계에서 ‘원’은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완벽한 상태로, 작가는 원 안에 우주라는 커다란 공간과 그 속에 존재하는 시간을 담아낸다. 완전무결한 절대 경지이자 완전한 상태. 이는 그가 지향하는 예술이자 구도행위이기도 하다. 또한 다양성과 부조화의 균형으로서의 원, 중심으로부터 일정한 거리에 있는 점들의 집합은 조진학 작가의 작업에 있어 구도의 기본 모티브로서 당연한 출발과 귀결인지도 모른다. 조진학 작가는 “표현하고자 하는 형태의 단순화 과정에서 복잡하고 화려한 형상들을 변화하여 가장 단순한 원이라는 형태를 탄생시켰다”며 “가장 단순한 형태에서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덧붙였다. 그간 원을 바탕으로 입체적으로 재구성하고, 목탁과 동자승, 전구 등 불교 미술을 현대 미술로 표현하는 작업에 천착해온 조 작가는 최근 조각 작품을 벽에 옮기는 작업에 한창이다. 조 작가는 “조각작품도 그림처럼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며 “이를 통해 조각과 그림의 경계선을 허물어 ‘회화 조각’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겠다”고 밝혔다.

‘이름’이 아닌 ‘작품’을 세상에 남기기 위하여
조진학 작가의 최근 작품에서는 도자의 온성에서 금속의 냉성으로 그 속성의 변화를 통해 색감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원의 범위 또한 심성(心性)에서 신성(神性)으로 변화해 나가는 듯하다. 최근 금속 성향의 작품에선 특히 우주 속에서의 원체들을 표현하는 작품들이 많아졌다. 오로지 더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은 마음은 그의 작품세계가 끊임없이 변화하고 확되도록 이끌어왔다. 영남대 미술대학에 진학했지만 현실적인 이유로 대학 졸업 후 실내외 건축디자인을 업으로 삼았던 조진학 작가는 중국에서 사업을 해보라는 지인의 권유에 해외 진출을 했고, 국내에서의 일정한 창작활동을 기반으로 한정된 연구 영역의 폭을 넓히고자 중국 유명 미술원 및 중화권 나라에 유학하며 일반 예술분야에 없는 분야를 개척해냈다. 이후 북경 상해 국제 미술전, 홍콩 국제 아트페어, 타이페이 국제 아트페어 등 중국과 홍콩 등 중화권을 중심으로 활동해온 조진학 작가는 귀국 후 지난 2019년부터는 ‘전업 작가’로 국내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금까지 5회의 개인전을 비롯해 다수 그룹 및 단체전에 참여해 그 역량을 발휘하고 있는 그는 최근 2023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원>, <비상> 작품으로 비구상(조각) 부문 및 구상(서양화) 부문에서 입상하며 뛰어난 예술성을 대외적으로도 인정받았다. 현재 (사)한국미술협회, 대구미술협회, 남구미술협회, 화우반세기회 등에서 활동 중인 조진학 작가는 지난 9월 대구엑스포에서 개최된 5회 개인전 겸 대한민국 불교문화 엑스포에 참여해 호평을 받았으며 오는 11월에는 대전 국제아트페어에 참가해 대중과의 소통을 이어나가고 있다. 조 작가는 “관람객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작품을 선보이고 싶다”면서 “이를 통해 저의 ‘이름’이 아닌 ‘작품’을 세상에 남기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