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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서 평론] ‘경상도 아가씨의 순정’의 원로가수, 차은희의 삶과 노래[2]
‘노래 도시’ 부산을 70년간 지켜온 버팀목, 원로가수 차은희와의 인터뷰 2
2023년 09월 11일 (월) 13:21:14 박성서 webmaster@newsmaker.or.kr
▲ 1960년대 당시의 가수 차은희씨.

‘노래 도시’ 부산을 70여 년 동안 지키고 있는 원로가수 차은희. 1950~60년대 많은 사랑을 받았던 ‘일선의 우리 오빠’, ‘경상도 아가씨의 순정’, ‘대답 없는 추억’, ‘항구의 무명초’, ‘갈매기 우는 목포항’, ‘청춘 아베크’ 등의 노래로 기억되는 차은희(86세). 따사로운 봄날 햇살처럼 맑고 밝은 목소리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여전히 맑고 또렷한 목소리의 주인공, 원로가수 차은희는 평소 말투 속에도 강하지는 않지만 부산 억양이 배어 있을 정도다.

‘노래 도시’ 부산을 70년 넘게 지켜온 든든한 버팀목, 원로가수 차은희의 삶과 노래. 데뷔부터 현재까지를 돌아본다. 그 두 번째.

글·사진 l 박성서 (음악평론가, 저널리스트)

 

▲ (사진 1) 좌로부터 가수 최숙자, 한옥희, 차은희씨. (사진 2) 공연 대기실에서의 차은희(우측에서 두 번째), (사진 3) 공연 길에 만난 팬들과 함께, 차은희(좌측에서 네 번째).

4.19 당시 희생된 넋을 위로하기 위해 만든 노래 ‘사월의 별’

4.19와 5.16으로 시작된 1960년대, 60년대는 정치적, 사회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처럼 가요계 또한 많은 변화가 있었다.

1961년 5.16과 함께 예술인 통합 단체 ‘예총(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과 연예인 궐기단, 그리고 예그린악단이 창립된다. 또한 1962년 6월 한국방송윤리위원회가 발족되었다. 아울러 가요정화운동의 시작과 함께 당시 3절로 된 대중가요는 모두 2절까지만 부르도록 규제가 뒤따르기도 했다.

이 무렵 가수 차은희씨 또한 개인적으로 많은 변화를 겪는다. 1962년 그동안 몸담고 있던 신세기레코드사를 떠나 아세아레코드사로 전속을 옮긴다. 아세아는 ‘보이소’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신세기 영업부장 최치수씨가 설립한 회사. 차은희씨는 바로 이해에 결혼도 하게 된다.

이즈음 차은희씨가 발표한 노래 중 하나가 ‘사월의 별’이다. 4.19 혁명 당시 희생된 학생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노래는 아세아레코드의 자회사 격인 나나장시간(長時間)레코드를 통해 1962년 발표되었다.

‘1. 오빠여 언니여 왜 총에 맞았나요/원망스런 세상이여 너는 바로 보았으리/그렇게도 배우고저 밤을 새며 읽은 책을/누구에게 전하려고 내던지고 가셨나요.

2. 다 같은 형제요 다 같은 자손인데/누가 뉘를 쏘라든가 누가 뉘를 쏘았느냐/불러 봐도 땅을 쳐도 대답 없는 오빠 언니/사정없는 눈물만이 골방을 흐릅니다. -사월의 별(최치수 작사, 김성근 작곡, 차은희 노래), 1962년.’

아세아에 전속되자마자 이전에 발표한 노래들도 함께 재발매

1962년 아세아로 전속을 옮긴 차은희는 많은 음반을 발표한다. ‘노래하는 꾀꼬리(김영일 작사, 손목인 작곡-이하 작사, 작곡 순)’. ‘서울의 전차 차장(최치수, 김성근)’, ‘갈매기 우는 목포항(김진경, 김성근)’, ‘경상도 아가씨의 순정(최치수, 김성근)’, ‘항구의 무명초(김영일, 엄토미)’, ‘관광버스 여차장(김진경, 김성근)’ 등등...

또한 아세아는 차은희씨가 전속되기 이전 타 음반사를 통해 발표한 노래들도 판권을 사들여 재발매한다. 앞서 소개한 ‘사월의 별’을 비롯해 대구 애호레코드사에서 발표했던 ‘명랑한 신혼여행’, ‘항구의 무명초’, ‘안녕히 계세요’ 등이 그것.

1960년대의 정겨운 서울풍경을 그린 경쾌한 멜로디, ‘서울의 전차 차장’

이 무렵 서울의 정겨운 풍경을 그린 또 하나의 노래가 ‘서울의 전차 차장’이다. 1962년 발표될 당시 서울시민들의 발이었던 전차, 서울 시내를 달리던 전차 차장(안내양)의 일과를 생생히 묘사했다. 차은희의 목소리와 잘 어울리는 밝고 경쾌한 노래다.

‘1. 아침저녁 통근차에 윙크하던 청년 신사/그 언젠가 주신 편지 나도 몰래 찢었어요/그런데요 왜 그런지 이 가슴은 두근거려/놀리지를 마세요 사랑이 무언가요/나는야 명랑한 서울의 전차 차장.

2.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쉴 새 없는 서울 거리/시네마의 포스터는 바람결에 나부끼네/어젯밤엔 술에 취해 비틀대던 저 손님도/오늘 낮엔 부부 동반 극장엘 가는 가요/나는야 명랑한 서울의 전차 차장.

3. 오고 가는 교차로엔 신호등도 애달파라/밤도 깊은 명동 거린 네온불도 잠들었네/막 전차의 크락션은 처량하게 울리는데/졸고 앉은 저 손님은 어디로 가시는지/나는야 명랑한 서울의 전차 차장. -서울의 전차 차장(최치수 작사, 김성근 작곡, 차은희 노래). 1962년.’

공중에 설치된 전선으로부터 전기를 공급받아 궤도 위를 달리는 차. 한때 서울시민의 발이었던 이 전차는 점차 늘어난 버스가 중요한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으면서 도로 한가운데를 지나는 전차가 교통의 흐름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1969년에 철거되었다.

서정적인 트로트에서 맘보, 차차차 그리고 민요, 가곡까지 다양하게 발표

▲ 전성기 시절 발표한 차은희의 LP 음반들.

그는 맑고 고우면서도 풍부한 성량으로 여러 음반사를 통해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발표했다. ‘서정적인 트로트 가요’를 비롯해 ‘맘보’나 ‘트위스트’, 심지어 ‘민요’, ‘가곡’까지 모두 소화해내는 다재다능함을 보여주었다.

“저는 작곡가 선생님들이 주는 대로 불렀어요, 돌이켜보니 제가 부르지 않은 장르가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왈츠, 스윙, 림보록, 부르스, 트위스트, 차차차, 트로트, 맘보, 민요까지... ”

실제로 제목에 직접 리듬 이름이 들어간 노래도 많다. ‘순정의 룸바(양류상, 김부해)’, ‘차차차 서울 구경(천지엽, 송운선)’, ‘트위스트 청춘(천지엽, 송운선)’, ‘색소폰 맘보(이철수, 김화영)’, ‘아가씨 맘보(이철수, 김화영)’, ‘불야성 청춘의 맘보(이철수, 김화영)’, ‘재즈 봄(이재현, 이재현)’, ‘미망인 부르스(최치수, 김영만)’ 등등...

이외에도 ‘아리랑’, ‘노들강변’, ‘할미꽃 아리랑’ 등 민요를 비롯해 ‘다뉴브강’, ‘로셀리의 세레나데’ 등 가곡도 발표했다.

가수 차은희에 대한 평가 중 하나가 맑고 또렷한 발음이다. 그래서일까. 아세아레코드가 발매한 ‘차은희 히트집’ 음반 첫 부분에 차은희의 또렷하고 상냥한 인사말이 들어있다.

’(대사) 여러분 안녕하세요. 제가 차은희예요. 수고하시는 여러분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하여 이 노래를 부르면서 인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그러면 ‘경상도 아가씨의 순정’으로 부터 불러보겠어요.’로 시작되는 ‘차은희 히트집’. 첫 곡 ‘경상도 아가씨의 순정’은 서울로 떠나는 사랑하는 임에게 전하는 경상도 아가씨의 솔직한 심정을 애교 있게 그리고 있다.

‘1. 선생님예 날 사랑합니까/정말로 사랑합니까/장부의 말씀이라/금순이는 믿습니데이/선생님 선생님예 몸성히 잘 가이소/경상도 금순이는/언제까지나 기다립니데이.

2. 선생님예 정말로 갑니까/언제나 오시렵니까/서울에 가시면은/금순이를 잊겠지요/선생님 선생님예/안녕히 잘 가이소/경상도 금순이는/언제까지나 기다립니데이.

3. 선생님예 말씀을 믿어요/거짓은 아니십니까/세상에 변키 쉬운/여자이라 할지라도/선생님 선생님예/저만은 믿으이소/경상도 금순이는/언제까지나 기다립니데이. -경상도아가씨의 순정(최치수 작사, 김성근 작곡, 차은희 노래), 1963년.’

정확하고 또렷한 발음에 대한 평가는 ‘무정한 내 사랑(노래 원방현)’ 등 다른 가수들의 음반에 내레이션으로 참여할 정도로 호평을 받았다.

50년대 말부터 60년대 초 당시 음반을 보면 온통 차은희 세상이었다고까지 생각될 정도다. 방송과 공연, 쉴 새 없는 음반 취입 등으로 매우 바빴던 차은희씨는, 그러나 1965년을 지나면서 한순간 음반계에서 자취를 감춘다.

▲ (사진 1) 좌로부터 시계 방향으로 가수 강윤상, 고운봉, 안다성, 그리고 차은희씨 부군 이춘식 쇼단장. 조금옥. 그 옆 인물은 지방의 한 팬. (사진 2) ‘김정구 노래 총결산쇼’, 뒷줄 우측에서 두 번째가 가수 김정구, 아랫줄 우측에서 네 번째가 이춘식 쇼단장.

1962년 쇼단장과 결혼, 공연의 주제가처럼 불리던 ‘관광버스 여차장’

방송과 음반 취입, 쉴 새 없는 공연 등으로 매우 바쁜 나날을 보내던 차은희씨가 드디어 1962년, 결혼한다. 그녀 나이 스물다섯 때다.

상대는 당시 공연단체를 이끌던 세 살 터울의 이춘식 쇼단장. 진주 출신의 남편 이춘식씨는 일찌감치 부산에서 활동을 시작해 잔뼈가 굵은 ‘부산 사나이’다.

“처음 부산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어요. 그이가 이끌던 단체를 도와 주로 부산, 경남을 중심으로 무대 활동을 했죠. 물론 때때로 전국 공연을 다니기도 했지만...”

쇼와 노래, 그리고 관객들의 환호와 박수... 참으로 행복했던 시절이었다고 회고한다.

“그때 우리 집 양반이 대단했어요. 흥행을 할 때 이은관씨를 비롯해 김정구, 고운봉, 장세정, 장소팔·고춘자, 안다성씨 그리고 젊은 가수는 윤일로씨와 나를 꼭 포스터 전면에 내세우곤 했죠.”

이 무렵 취입한 곡 중 하나가 ‘관광버스 여차장(김진경 작사, 김성근 작곡)’이다. 관광버스를 테마로 부산을 출발해 김해, 창원고개, 마산, 진주, 합천을 도는 노선을 생생하게 묘사한, 재미있고 경쾌한 노래. 이 노래는 당시 공연장소에 따라 약간씩 지명이 바뀌면서 무대에서 자주 부르던 노래다. 한때는 마치 공연의 주제가처럼 불리던 노래라고 했다.

‘1. 오라잇 오라잇 오라잇 오라잇/길고 긴 구포다리 넓고 넓은 김해평야/산을 넘고 물을 건너 달린다 달려간다/에헤요 창원고개 데헤요 넘어간다/랄랄랄라라 음음음 다음은 마산이에요.

2. 오라잇 오라잇 오라잇 오라잇/마산을 떠나가네 가로수도 춤을 추네/진주 천리 머나먼 길 누구를 찾아가나/에헤요 논개 넋을 데헤요 불러보자/랄랄랄라라 음음음 다음은 진주예요.

3. 오라잇 오라잇 오라잇 오라잇/남강을 굽어 돌아 비봉산을 바라보며/해인사로 달려가는 유람의 관광버스/에헤요 금송아지 데헤요 우는 마을/랄랄랄라라 음음음 다음은 합천이에요. -관광버스 여차장(김진경 작사, 김성근 작곡, 차은희 노래). 1963년.’

10년간 1백여 곡 발표, 1965년에 음반 취입 중단

“첫 아이를 갖게 되면서 이제는 가정에만 충실해야겠다, 이런 다짐을 했지요.” 결국 차은희씨는 이후 모든 음반 활동을 접는다. 1965년의 일이다.

1956년부터 1965년까지 10년 동안 취입한 곡은 대략 1백여 곡. “예전에 취입했던 노래들을 듣다 보면 때때로 이 노래를 왜 이렇게 불렀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죠. 음반사 전속가수다 보니 녹음날짜가 잡히면 무조건 서둘러 취입하고 회사와 작곡가들이 이것저것 주문하는 대로 그냥 불렀고... 연습을 충분히 하고 취입했어야 하는데 그 당시에는 그런 여건이 전혀 되지 않았죠.”

차은희씨는 취입할 때 항상 구두를 벗고 맨발로 마이크 앞에 서서 허리띠까지 졸라매는 습성이 있다. 무엇보다 노래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그렇게 몰두해서 노래하는 가수였기에 아쉬움은 더욱 크다. “요즘 같으면 마음에 드는 곡만 골라서 취입할 텐데 그때는 그런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죠. 노래라는 게 삼박자가 모두 맞아야만 되는 것 아니겠어요?”

물론 본인이 좋아하는 곡도 많다. “‘갈매기 우는 목포항’ 같은 경우는 참 잘 불렀더라고요. 제가 듣기에도 괜찮고 그나마 저의 개성이 잘 드러난 노래 같아요.”

1970년대 ‘제2의 고향’ 부산에 정착, 부산연예협회 가수분과 위원장 맡아

▲ (사진 1) 좌로부터 박애경(은방울자매), 차은희, 오숙남, 현미. (사진 2) 좌로부터 가수 김상국, 한복남, 김정구, 차은희, 윤일로. (사진 3) 이미자씨와 함께.

서울과 부산을 오가던 차은희씨 부부가 완전히 부산에 정착한 것은 1973년. 이들 부부에게 부산은 ‘제2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이곳에서 청소년 시절을 보냈고 가수로 데뷔, 첫 취입까지 한 곳이다. 무엇보다 첫사랑을 만난 곳이기도 하다.

다시 부산으로 돌아온 뒤 그는 부산연예협회((사)한국연예예술인총연합회 부산광역시지회) 가수분과 위원장을 맡는다. 1975년의 일이다.

“다시 부산에 돌아오니 원로 작사가 천봉씨가 가수분과 위원장을 맡아달라고 해요. 물론 가정생활과 병행하기가 쉽지 않았죠.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때라 뒷바라지도 만만치 않았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위원장을 1년간만 맡고 그 이후 부위원장을 1년 정도 더 맡았지요.”

차은희씨 부부는 부산에 정착하면서 남포동에서 ‘칠광현상소’를 운영했다.

“70년대 들어 극장쇼가 사양길로 접어들기 시작했죠. 그 무렵 쇼단장이던 그이가 흥행 일을 접고 새롭게 칠광현상소를 시작했어요. 매년 전국사진촬영대회를 열어 전국의 사진작가들을 불러 모으기도 했죠. 촬영대회 모델로 유명 연예인들이 많이 왔었어요. 탤런트 김영란, 오연수씨 등등...” 이 전국사진촬영대회는 이후 후발 회사인 조광현상소가 잇는다.

특히 지난 2007년 2월에 발족한 ‘현인기념사업회’에서 부회장을 맡기도 했다. 부산 출신 가수 현인을 기리는 동시에 부산 가수들의 발전을 위해 설립된 이 단체의 회장은 김상호씨(전 부산장애인협회장). 그는 시각장애인 기타리스트 출신으로 은방울자매의 ‘작은 방울’ 김향미씨의 사촌오빠이기도 하다. 고문에는 작곡가 김종유씨 등. 부산 출신의 가요인 60여 명이 참여했다.

▲ (사진 1) 좌로부터 가수 김광남, 김은혜, 신세영, 반야월, 손인호, 차은희. (사진 2) 뒷줄부터 시계 방향으로 가수 남강수, 안정애, 차은희, 이경희, 김봉선, 김미정, 양금희, 오정심, 반야월, 신세영. (사진 3) 대한가수협회 원로가수회 추계수련회, 2011년 9월.

양로원 회장 맡아 봉사활동

필자가 가장 최근에 차은희 선생을 만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4년 전인 2019년 11월이다.

“3년 전인 지난 2016년, 남편이 돌아가셨어요.” 자리에 앉자마자 꺼낸 첫 소식에 이어 당시 하루의 일과는, 학장동 S아파트 양로원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고 했다.

“아침 6시 반에 눈 떠서 아홉 시 이십 분까지 양로원에 도착해 하루를 시작하죠. 틈틈이 봉사활동도 하는데 봉사라는 게 뭐 자랑할만한 일은 못 되지만 제가 카톨릭 신자이다 보니 성당 계통에서 병문안 같은 것도 겸하고 있고...”
양로원에 전화하면 직접 전화를 받을 정도로 매사 적극적이고 또 건강했다. 목소리도 낭랑해 50대가 아니냐는 소리도 종종 듣는다고 했다. 그의 건강에 관한 일화 중 하나. 70년대, 연예인이 총출동해 해군 함대를 타고 제주도 공연을 가는 도중, 일행 모두 심한 배멀미에 기진맥진해있는데 오로지 차은희씨만이 아무렇지도 않은 채 여유롭게 뜨개질을 했다는 얘기가 지금까지도 가요계에서 회자될 정도다. 배멀미엔 장사가 없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매사 건강관리에 철저하다.

이러한 건강관리를 바탕으로 차은희씨는 당시 원로가수들의 모임, ‘대한가수협회 원로가수회’가 한 달에 한 번씩 갖는 서울 모임에 거의 빠지지 않았다.

그로부터 4년 후. 현재는 병상에서 힘겨운 투병 중이라는 안타까운 소식을 가족들은 전한다. 그럼에도 음악만큼은 여전히 사랑하고 계시다고 덧붙인다. 특히 임영웅 팬으로 TV에 그의 목소리만 나와도 자다가 벌떡 일어날 정도라고.

“엄마는 최근 3년 동안 임영웅만 보시고 TV에서 목소리가 나오면 누워 계시다가도 벌떡 일어나실 정도죠. 지금까지 엄마가 본 가수 중에 최고래요. 표현력도, 표정도...”

그래서 가족들은 지난여름, 어머니를 위해 서울서 열린 임영웅 콘서트 티켓을 어렵사리 구했다. “콘서트 제일 앞자리를 예약하고 서울까지 모시고 갔는데 갑자기 엄마가 공연 볼 자신이 없다는 거예요. 휠체어석도 따로 마련되어 있었는데... 결국 엄마는 호텔에 그냥 계시고 이모가 대신 공연을 봤어요. 엄마가 가장 좋아할 만한 선물이었는데, 딸로서는 무척 아쉽죠.”

얼마 전 큰 고비를 넘겼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전한다. 2남 1녀를 둔 차은희씨. 현재 부산에 있는 장녀의 보살핌 속에 지내고 있다. “가족들은 알아보고 말씀도 가끔 하시죠. 그리고 TV에서 노래만 나오면 여전히 귀를 가만히 기울이시고...”

‘노래 도시’ 부산을 70년간 지켜온 부산 가요의 버팀목, 원로가수 차은희씨. 투병 중임에도 여전히 음악을 사랑한다는 이야기에 그의 노래들이 한층 더 소중하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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