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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 대한 평가는 역사가 내릴 것이다
2023년 09월 07일 (목) 17:11:48 황태일 기자 hti@newsmaker.or.kr

‘예술’은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이성의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영역이었다. 따라서 예술가들은 인간 정신을 자유롭게 하는 미술활동으로 표현·유희적 의미를 마음껏 표출했다.

황태일 기자 hti@

예술은 사회의 모습을 반영하기에 좋은 수단으로 문화를 이끌어가는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단순한 시각적인 아름다운 미술을 넘어 어떠한 목적과 의미를 갖고 적극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매개체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 김구림 화백

한국의 실험미술 이끈 1세대 전위예술가
“비난을 받으면서도 단연코 후회해본 적 없다. 그저 ‘하고 싶은 대로 하다 죽는다’는 생각뿐. 고집 센 내가 그 고집대로 산 거다.” 김구림 화백의 행보가 재조명되고 있다. 1960-70년대 퍼포먼스나 영화 등의 실험미술을 선보이며 한국 미술계의 이단아로 불린 김구림 화백은 오늘날 한국의 아방가르드 미술을 이끈 선구자다. 한국의 1세대 전위예술가인 그는 회화, 조각, 판화 등 전통적인 미술장르를 넘어 퍼포먼스, 보디페인팅, 대지미술, 일렉트릭아트부터 단편영화, 무대미술과 의상에 이르기까지 방대하고 다양하게 각종 장르를 실험하고 도전했다. 1969년 국내 첫 실험영화인 ‘1/24초의 의미’를 연출한 데 이어 이듬해 ‘제1회 서울국제현대음악제’ 총연출을 맡았던 그는 1958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회화, 판화, 조각, 설치, 비디오아트 등 전방위로 미술작품을 발표했다. 한강변 잔디를 태워 생명 순환의 과정을 표현한, 이른바 ‘대지미술’을 국내에서 처음 시도하기도 했다.

▲ 질-62, 1962, 캔버스에 비닐, 유화, 180x88.5cm

하지만 그의 이름은 오랫동안 국내 화단에서 인정받지 못했다. 자의로 그만두긴 했지만 미대를 졸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미술계에서는 근본 없는 예술인으로 치부되었고, 작품을 눈여겨보는 이도 없었다. 1985년 도미 이후 백남준과의 2인전 등으로 이름을 알리며 미국 미술계에서 귀화 권유까지 받을 정도로 명성을 얻은 그는 이를 마다하고 한국으로 돌아왔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런던 테이트모던에서 2012년 개최된 <A Bigger Splash: Painting after Performance> 전시회에서는 잭슨 폴록, 데이비드 호크니, 쿠사마 야요이 등과 전시했고, 한국인으로서 처음으로 테이트 라이브러리 스페셜 컬렉션에 ‘김구림 아카이브’가 소장되었고 이듬해 서울시립미술관이 그를 재조명했지만 관심이 오래가진 않았다. 문화교실과 대학 강사 등을 전전하며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이렇게 쌓인 화단에 대한 울분, 시대를 향한 날선 해석은 그의 정체성이 됐다. 김구림 화백은 “현실 속에서 작품에 대한, 부딪혀서 사회가 요구한 바를 반영하며 내가 해야 할 것을 찾는 것이다. 하나의 작품 경향을 되풀이하는 것은 혼이 없고, 정신이 깃들지 않은 것이다”며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작가란 먼 훗날 역사가 평가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에 대한 평가 역시 역사가 내릴 것이다”고 강조했다.

본래의 이미지 해체·재조합하며 새로운 의미 창조
“시대가 변하면 사고가 변하고, 사고가 변하면 작품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김구림 화백의 작품은 일찌감치 형식주의에서 벗어나 있었고, 소재나 매체 측면에서도 인위적 혹은 작위적이지 않았다. 그의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즉흥성, 우연성, 물성을 통한 탈물성화라는 역발상, 해체의 지향은 문화적·경제적 특권을 누리던 작가들과의 차이를 명료하게 하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 음과 양, 2023, 비디오, 컬러, 사운드, 가변크기

김 화백은 1980년대 중후반부터 현재까지 〈음과 양〉 시리즈를 지속하고 있다. 경계를 허물며 끊임없이 세상과 이야기를 나누는 <음과 양> 시리즈는 세상만물이 모두 음과 양으로 이뤄져 있고 자신은 세상의 것을 작품으로 구현하기에 작품명을 통일했다. 수많은 이미지와 오브제의 조화와 충돌을 통해 본래의 의미를 해체시키고 재조합하며 새로운 의미를 창조해낸다.

말기암과 심장판막부전증을 앓고 있는 김구림 화백은 올해도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광주비엔날레뿐만 아니라 5월 MMCA와 구겐하임미술관이 공동기획한 그룹전 <한국 실험미술 1960-1970>을 성공적으로 치른 그는 이제 내년 2월까지 MMCA 서울관에서 미발표작을 포함한 개인전을 개최한다. 김 화백은 “기억되고 싶은 수식어는 생각해본 적도 없다. 마음대로 평가하고 기억해도 좋지만 1백년 후에 후대의 사람들이 나라는 예술가를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알고 싶다. 나는 작품을 만들면서 항상 그 생각을 한다”면서 “나의 예술은 테크닉과 아름다움이 목적이 아니다. 나는 라디오를 들으며 이미지 상상 시대를 지나 흑백 티비에서 컬러 티비로 컴퓨터로 물질의 변화를 겪었다. 시대가 변하기 때문에 내 작품은 변화한다”고 피력했다. 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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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과 양 4-S 368, 2004, 혼합 재료, 20x15x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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