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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은 나이와 상관 없다”
2023년 09월 07일 (목) 11:28:11 윤담 기자 hyd@newsmaker.or.kr

예술작품에는 힘이 있다. 사람들을 감동에 몸을 떨게 할 수도 있고, 눈물을 흘리게 할 수도 있다. 또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고 아픔을 치유해주기도 한다. 예술작품을 바라보기만 해도 우리는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다.

윤담 기자 hyd@

많은 사람들은 예술가에 대해서 궁금해 한다. 단순히 그들이 만들어 내는 작품들을 감상하고 감명 받는 데에 그치지 않고, 그것들을 탄생시킨 창작가의 손, 남다른 시각, 상상력을 동경하게 된다.

뒤늦게 꽃피운 재능으로 국내 최고의 동양화가 되다

▲ 안창수 화백

설파 안창수 화백의 행보가 화제다. 은퇴 후 환갑의 나이에 미술계에 입문한 안창수 화백은 뒤늦게 꽃피운 재능으로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명성을 얻고 있는 국내 최고의 동양화가로 손꼽힌다. 한국과 중국, 일본의 동양화 기법을 섭렵하며 자신만의 독창적인 동양화 세계를 구축한 안 화백은 화조화, 동물화 등을 소재로 다양한 색감을 선보여 왔다. 특히 매화, 진달래꽃, 붓꽃, 등나무, 동백, 목련, 노송, 수탉, 독수리, 용, 호랑이 등 작품은 전통의 운필과 채색이 화려한 것이 특징이다. 그림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예술혼을 바탕으로 만 60세의 나이에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중국 유학길에 올랐던 안 화백은 반년 만에 호모 배 전국서화 대전에서 닭 그림으로 입선한 그는 이듬해엔 임백년 배 전국서화 대전에서 호랑이 그림으로 1등 상을, 독수리를 그려 중화 배 전국서화예술대전에서 금상을 수상했다.

설파 안창수 화백은 “좌절하고 힘들 때마다 스승님의 한 마디가 저를 잡아줬다”면서 “스승님은 ‘청나라의 대표적인 화가 금농은 쉰이 넘어 붓을 잡았고 예순 넘어 대나무를 그리기 시작했다. 미국의 최고 민속화가로 꼽히는 그랜드마 모제스는 일흔여섯까지 10남매를 키운 주부로 살다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101살에 타계할 때까지 1600여 작품을 남겼다’며 저를 이끌어주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귀국 후 한 달 만에 그림에 대한 공부를 좀 더 심도 있게 해보고자 일본 교토조형예술대학으로 두 번째 유학길에 올랐던 그는 일본에서도 무서운 속도로 성장했다.

소화미술대전 입선, 전일전에서 예술상, 장출판상 준대상 수상, 전일본수묵화수작전 갤러리수작상, 남일본신문사상, 일본전국수묵화미술협회가 학습용 교재로 발간한 룡화집인 ‘新 龍(신 용)을 그리다’의 작가 선정, 제46회 일본수묵화수작전에서 한국인 최초로 수상한 ‘외무대신상’에 이어 ‘제49회 전일본수묵화수작전’에서 <투계도>를 출품해 국제문화교류상을 수상하며 뛰어난 예술성을 인정받았다. 국내에서도 ‘신사임당미술대전’에서 <포도> 등으로 특선을 수상하며 독보적인 예술성을 인정받고 있는 그는 지난 2009년 서울 인사동 서울미술관의 화조화전을 시작으로 부산광복동 BS부산은행갤러리전, 서울인사동 갤러리신상 초대전, 경남교육청 초대전, 춘천KBS닭그림전, 금년 3월 한국수출입은행 전시 등 20회의 개인전과 일본, 미국 등 단체전시전에 참가하며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인생 2막, 그의 도전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

은퇴 이후 직업을 바꿔 성공적인 제2의 인생을 살아가면서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는 안창수 화백. 현재 ▲일본전국수묵화미술협회 회원 ▲국제중국서법국화가협회 이사 ▲부산대학교 평생교육원 강사 ▲한국서가협회 양산지부장 등을 역임하고 있는 안창수 화백은 이준익 감독의 영화 <박열>에 일본 문무대신 역으로 출연한데 이어 그는 울산 KBS의 공익광고에 ‘폐지 줍는 할아버지’ 역을 맡아 출연하며 시니어 배우로서의 커리어도 쌓았다.

뿐만 아니라 KBS TV프로그램인 <아침마당>이 시작된 지 30년 이래로 화가로서는 처음으로 출연해 ‘도전하는 인생 2막’을 주제로 강연과 퍼포먼스도 진행, 뜨거운 반응을 얻기도 했다. 또한 7년 동안 양산부산대 평생교육원 나래관에서는 매주 월요일 오전 10시부터 2시간 동안 동양화 수업을 진행하는 한편 전국 각지에서 자신의 작업실을 찾는 문하생들을 대상으로 일주일에 한 번 수업을 진행하며 후진 양성에도 열정을 보이고 있는 그는 시청, 양산종합사회복지관, 통도아트센터 등에 작품을 기증하며 사회의 귀감이 되기도 했다. 그의 꿈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앞으로 세계무대에 진출해 서양화단의 인정을 받는 것이 최대 목표라는 안 화백은 “은퇴 후 삶을 신중하게 생각하고, 정리가 되면 최선을 다해 실천하는 게 중요하다. 도전은 나이와 관계없다”면서 “동양화의 멋을 동양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로 확산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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