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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서 평론] ‘경상도 아가씨의 순정’의 원로가수, 차은희의 삶과 노래[1]
‘노래 도시’ 부산을 70년간 지켜온 원로가수 차은희와의 인터뷰
2023년 08월 13일 (일) 00:18:01 박성서 webmaster@newsmaker.or.kr

산, 바다, 도시가 어우러져 1년 내내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부산은 도시 천체가 노래 소재로 더없이 좋은 조건을 지닌 낭만적인 도5시다. 곳곳이 멋과 낭만으로 가득해 시대를 떠나 부산은 노래의 소재로 각광받아왔다.

▲ ‘한 많은 오륙도’로 데뷔한 지 56년 만인 2012년. 오륙도를 처음 찾은 원로가수 차은희씨와 필자.

‘노래 도시’ 부산을 70여 년 동안 지키고 있는 원로가수 차은희. 1950~60년대 많은 사랑을 받았던 ‘일선의 우리 오빠’, ‘경상도 아가씨의 순정’, ‘대답 없는 추억’, ‘항구의 무명초’, ‘갈매기 우는 목포항’, ‘청춘 아베크’ 등의 노래로 기억되는 차은희. 따사로운 봄날 햇살처럼 맑고 밝은 목소리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노래 도시’ 부산을 70년 넘게 지켜온 원로가수 차은희의 삶과 노래. 데뷔부터 현재까지를 돌아본다. 그 첫 번째.

글·사진 l 박성서 (음악평론가, 저널리스트)


‘한 많은 오륙도’의 주인공, 56년 만에 처음 오륙도를 찾다

‘1. 오륙도 둥대불이 깜빡일 때에/말 없는 하룻밤을 울려만 놓고/울릉도 떠나가신 임이 그리워/밤늦은 선창가를 헤매입니다.

2. 사시절 동백꽃이 피는 섬이라/돌아올 그 날짜를 잊으셨나요/으스름 조각달이 졸고 있을 때/무심한 연락선만이 왔다 갑니다.’ -한 많은 오륙도(석여인 작사, 이정화 작곡, 차은희 노래), 1956년.

차은희의 데뷔곡 ‘한 많은 오륙도’다. 이로부터 70년 넘게 부산을 대표하는 원로가수 차은희 선생을 모시고 ‘한 많은 오륙도’의 배경이 되는 부산 오륙도를 찾은 것은 지난 2012년.

빼어난 경관으로 부산을 상징하는 명소, 오륙도는 조수의 차이에 따라 섬이 다섯 개, 혹은 여섯 개로 보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육지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등대섬을 제외하고는 모두 무인도다.

‘드디어 오륙도 섬에 오니, 비로소 한이 풀리는 것 같다.’는 소감처럼 오륙도 섬을 직접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노래 속에서 수없이 불러본 이름이건만 막상 섬에 와보니 그저 설렌다며 ‘멀리서 보는 것보다 훨씬 웅장하고 멋지다’는 소감을 밝힌다. 특히 오륙도 등대가 1937년도에 세워졌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자신과 동갑내기라며 더욱 기뻐했다.

여전히 맑고 또렷또렷한 목소리의 주인공 차은희씨는 불과 얼마 전까지도 젊은이 못지않은 열정으로 여전히 많은 무대에 섰다. 원로가수들의 모임인 ‘대한가수협회 원로가수회’ 회원으로 한 달에 한 번 갖는 서울 모임에도 거의 빠지는 적이 없을 정도였다. 틈틈이 양로원, 교도소 등 위문공연을 통해 봉사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 데레사여고 시절 해양 훈련 중에.(우측에서 두 번째가 차은희)

고3 때 콩쿠르 1등으로 입상, 학교 발칵 뒤집혀

본명 최은섭. 차은희씨는 1937년 9월 15일, 서울 장충동에서 출생했다. 부친 최영화씨, 모친 김양순씨 사이의 2남 3녀 중 맏이로 태어난 그는 일곱 살 때 강원도 철원으로 이사했다. 당시 철원은 38선 이북 땅이었는데 이 당시부터 차은희씨는 유행가를 잘 불러 어른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소학교 3학년 때 8.15 광복이 되자 다시 서울로 돌아와 효제초등학교를 거쳐 숙명여중에 재학 중 6.25 전쟁이 발발한다. 이때 가족들과 부산으로 피난했다. 부산에는 막내 고모가 먼저 내려가 교편을 잡고 있었는데 이것이 차은희씨가 부산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다.

부산에서의 피난 시절, 데레사여고에 다니던 차은희씨는 특히 노래를 잘하기로 소문났기 때문에 주위에서는 늘 콩쿠르 참가를 권유했다.

“특히 바로 옆집에 아코디언 연주자 심성락 선생이 살고 있었어요. 지금 동아대 병원이 있는 대신동 언덕배기 이층집에서 내려다보이는 집에 살던 심선생님은 제게 콩쿠르에 나가보라고 적극 권유했지요. 당시는 전쟁 직후라 방송국 같은 언론사와 음반사가 주축이 되어 신인가수를 뽑는 콩쿠르가 많았었죠.”

물론 고모 집안이 엄격해 결사반대했지만 그래도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학교 뱃지를 몰래 뗀 채 노래자랑 무대에 섰다. 이때가 여고 3학년 때.

당시 국제신문사 주최로 광복동의 한 극장에서 열렸던 이 콩쿠르에서 차은희씨는 당시 유행하던 ‘아메리카 차이나타운’을 불러 1등을 차지한다. 심사위원은 작곡가 이재호.

이 뉴스가 당시 국제신문에 보도되자 학교가 발칵 뒤집혔다. 특히 카톨릭 계열의 엄격한 학교인지라 학교에서 제명시키겠다고 까지 했으나 다행히도 고모부가 남성여고 음악교사인 터라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부산여상 3학년 재학 중이던 박애경(은방울 자매의 ‘큰방울’)씨도 이 대회에 참가해 3등으로 입상했다. 둘은 동갑내기이자 노래자랑 무대 동기로 둘 다 여고 3학년 때 몰래 사복으로 갈아입고 노래자랑대회 무대에 섰던 사이. 이러한 인연을 시작으로 박애경씨가 타계(2005년 별세)하기 전까지 이 둘은 항상 어울려 다녔을 만큼 연예계에 소문난 단짝이었다.

“그냥 친한 정도가 아니었죠. 시간만 있으면 서로 집에 놀러 가고, 그때 애경이네 집이 철길 옆이었는데 갈 때마다 어머니가 보리가 많이 섞인 밥에 콩가루를 넣은 경상도 음식을 해주셔서 맛있게 먹던 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 이후 애경이가 서울에 올라와 활동할 때도 한동안 우리 집에서 함께 지냈죠.”

▲ 데뷔 초기의 가수 차은희.

데뷔곡 ‘한 많은 오륙도’, 캬바레에서 심야에 취입

졸업 후 HLKB(현 KBS부산) 전속가수로 들어가, 부산·경남지역을 돌며 공연을 다녔다.

“부산방송국 전속가수로 발탁되면서 노래를 맘껏 부를 수 있게 되었죠. 저는 전속가수 2기로 은방울자매의 ‘큰방울’로 불리는 박애경씨, 그리고 ‘38선의 봄’으로 유명한 가수 최갑석씨가 바로 동기였죠. 또한 가수 남강수, 남백송씨 등과도 함께 공연을 다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죠.”

예명 차은희(車銀姬), 콩쿠르 심사를 맡았던 작곡가 이재호 선생이 지어준 이름이다. 한문 풀이 그대로 ‘리어카에 금은보화 가득 담고 있는 여자아이’라는 뜻.

앞서 소개한 첫 취입곡 ‘한 많은 오륙도’는 석여인 작사, 이정화 작곡의 노래다. 포항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곡가 이정화 선생은 당시 미도파레코드 녹음기사이자 작사가였던 야인초의 소개로 만나게 되었다. 취입은 영도다리 근처에 있던 야광캬바레에서 자정을 넘긴 시간에 녹음했다.


은방울자매의 ‘큰방울’, 박애경과 가요계 소문난 단짝

그의 평생 동료이자 친구였던 박애경씨의 첫 취입곡은 이재호 작곡의 ‘한 많은 아리랑’이다. 이후 김향미씨와 듀엣을 이뤄 ‘은방울자매’로 활동했고 차은희씨 역시 방송국 전속 기간을 거친 후 대구의 애호(AEHO)레코드사에서 활동을 시작한다.

애호는 휴전 이후 대구에서 설립된 음반사로 설립 초기 SP(축음기 음반)로 ‘신혼여행(차은희)’, ‘명랑한 신혼여행(차은희·임락성)’을 비롯해 ‘체리핑크 맘보(현인)’, ‘초록 포장(박재란)’, ‘당신이 가신 뒤에(심연옥)’, ‘미망인 에레지(황순덕)’, ‘애인도 아니면서(윤일로)’ 등을 발매했다. 별도의 사무실 없이 대구 칠성동 철둑길 옆에 있는 김영수 사장의 집에서 음반사 일을 보았고 취입은 대부분 대구방송국(KBS) 건물 녹음실에서 자정을 넘긴 시간을 틈타 이루어졌다. 당시 악단 지휘는 대구방송 김학송 악단장이 맡고 있었다.

애호레코드 사업부(영업)는 속칭 ‘보이소’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최치수(이후 아세아레코드사 설립자)가 맡았다.

“당시 최치수씨는 철도국에 근무했었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영업 활동하기에 적격이었죠. 우선 전국 어디를 다니든 돈이 안 드니까.., 정말 부지런한 분이었죠.”

이후 ‘보이소’가 서울 신신레코드(이후 신세기레코드사)로 자리를 옮기면서 애호레코드의 메인 가수인 차은희씨를 데리고 서울로 올라간다. 애호는 이후 작사가 호심(이후 박대림으로 개명)을 문예부장으로 영입하면서 상호도 ‘애호’에서 ‘아카데미’로 이름을 바꾸었다.

▲ 차은희 공연 포스터와 대전동화극장에서의 은방울쇼 단체 사진. 중간 줄 좌측에서 세 번째 한복 입은 인물이 차은희씨

대구 ‘애호레코드’에서 서울 ‘신신레코드’로 전속 옮겨

당시 최고의 메이저 음반사인 신신레코드사(이후 신세기)에 전속됨과 동시에 서울로 무대를 옮겨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이때가 1958년.

“신신에는 많은 가수가 있었어요. 작곡가 김교성, 김부해, 전오승 선생을 비롯해, 박재홍, 명국환, 윤일로, 김용만씨 등이 전속으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전속 여가수는 오로지 저 하나였죠. 때문에 기대도 많이 받았고 동시에 많은 노래도 취입할 수 있었지요. 얼마 뒤 ‘대전 부르스’의 안정애씨가 들어왔죠.”

당시 신신에서의 차은희씨 취입곡을 살펴보면 김성근 작곡의 ‘일선의 우리 오빠’를 비롯해 김부해 작곡의 ‘순정의 룸바’, 김동수(김화영) 작곡의 ‘여배우 일기’, 김교성 작곡의 ‘하와이 청춘 부두’, 조춘영 작곡의 ‘애수의 여인’, 송운선 작곡의 ‘꽃 파는 차은희’ 등등. 그렇듯 당시의 인기 작곡가들과 골고루 손잡고 활발하게 음반을 발표했다.

‘여배우 일기’ 또한 그가 아끼는 노래 중 하나다.

‘1. 밤차에 흔들흔들 우연히 만난 사람/그대는 방랑극단 노래하는 꾀꼬리/구름에 고향 싣고 떠다니는 삐에로/차창에 뺨을 대고 차창에 뺨을 대고/더운 눈물 뿌리네.

2. 이 마을 저 마을에 포장치고 징 울려/넋두리 품을 파는 연극하는 여배우/청춘의 그 사랑도 돈 호세의 정열도/청춘을 날려 보낸 청춘을 날려 보낸/그 시절은 애달퍼.

3. 분 바른 얼굴 위에 구겨지는 주름살/뒤집는 트럼프에 점을 치는 팔잔가/실 허리 부여안고 춤을 추자 듀엣/한 많은 크라리넷 한 많은 크라리넷/고향 꿈을 부른다.’ -여배우 일기(반야월 작사, 김동수 작곡, 차은희 노래. 1959년)

유랑악단 연극배우의 애환을 그린 이 노래와 더불어 ‘일선의 우리 오빠’ 역시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노래다.

▲ 전성기 시절 차은희 발표 음반들.

‘꽃 파는 차은희’, 가수 이름을 노래 제목에 직접 내걸 만큼 인기 치솟아

또 하나 눈에 띄는 노래가 ‘꽃 파는 차은희’다. 1950년대 당시 최고 인기가수 백설희가 자신의 이름을 딴 노래 ‘꽃 파는 백설희’를 발표했듯 가수의 인기를 이용해 제목에 직접 가수 이름을 사용한 이색적인 노래다. 작곡가는 송운선.

“송운선 선생님은 부산방송국 시절, 함께 공연 다니던 KBS 악단의 기타리스트였어요. 이 노래를 취입한 게 벌써 60여 년 전인데도 그때 연습하던 광경이 아직도 생생해요. 노래가 명랑하고 예쁜 만큼 예쁘게 불러야겠다고 생각하고 부르던 생각도 나고...(웃음) 특히 노래 제목에 제 이름이 들어가 있어 개인적으로도 오랫동안 아끼던 노래지요.”

이 노래에는 맑고 밝은 차은희씨의 목소리가 잘 담겨 있다. 차은희씨의 음색은 계절로 치면 봄이다. 봄과 매우 잘 어울린다. 마치 따사로운 봄 햇살에 피어난 화사한 꽃이랄까.
 
‘1. 꽃들을 사세요 어여쁜 꽃을/언제나 향기롭고 싱싱한 이 꽃은/행복을 빌어 준대요/나는야 꽃 파는 열아홉 아가씨/이 거리 저 거리로 노래를 부르면서/헤매입니다.

2. 이 꽃을 보세요 정열의 장미/순정이 타오르는 이 꽃을 사면은/사랑도 꽃이 핀대요/새파란 리본을 저 바람에 날리며/오늘은 빌딩 거리 내일은 다방거리/헤매입니다.

3. 사세요 새빨간 순정의 칸나/볼수록 아름답고 말쑥한 이 꽃은/청춘의 꽃이랍니다/나는야 언제나 명랑한 노래에/실안개 헤치면서 거리를 떠다니는/천사랍니다.’ -꽃 파는 차은희(월견초 작사, 송운선 작곡, 차은희 노래. 1960년 발표)

가수 이름을 직접 제목에 내세운 ‘꽃 파는 차은희’가 그렇듯 이미 차은희씨는 신신의 인기스타였다. 이어 신신은 음반사의 대표 청춘스타들인 차은희, 윤일로, 안정애를 앞세워 ‘청춘 아베크’를 발매한다. ‘청춘 아베크’는 1950년대 젊은 연인들의 휴일 데이트 모습을 담은 빠르고 경쾌한 노래다.

‘1. 오늘은 선데이 희망의 아베크/오늘은 선데이 행복의 아베크/산으로 바다로 젊은이 쌍쌍
다 같이 노래하는 청춘의 세계란다/오늘은 선데이 그대와 함께/오늘은 선데이 즐거운 아베크/지는 해가 야속트라 청춘 아베크.

2. 오늘은 선데이 희망의 아베크/오늘은 선데이 행복의 아베크/두 가슴을 고백하는 젊은이 쌍쌍/종달새 춤을 추는 여기는 푸른 언덕/오늘은 선데이 그대와 함께/오늘은 선데이 즐거운 아베크/지는 해가 야속트라 청춘 아베크.

3. 오늘은 선데이 희망의 아베크/오늘은 선데이 행복의 아베크/조각배 꿈을 실은 젊은이 쌍쌍/흰 구름 손짓하며 깃발을 펄럭인다/오늘은 선데이 그대와 함께/오늘은 선데이 즐거운 아베크/지는 해가 야속트라 청춘 아베크.’ -청춘 아베크(이철수 작사, 이재현 작곡, 차은희·윤일로·안정애 노래, 1959년)

 

▲ ‘밤 열차 그 여자’, ‘걱정도 팔자야’ 음반 가사지. 아래는 윤일로·차은희·안정애가 함께 부른 ‘청춘 아베크’ 음반. 사진은 윤일로, 안정애

청춘 아베크’, ‘재즈봄’ 을 함께 취입한 윤일로와  열애 소문 자자

인기 절정의 청춘스타 윤일로와 계속해서 ‘재즈봄’ 등을 듀엣으로 발표하는데 이때 방송활동과 더불어 전국 공연 등을 함께 보내는 일이 많아지면서 둘이 연애한다는 소문이 거세졌다.

“지금은 웃으면서 얘기하고 있지만 그 무렵에는 해명하느라 무척 애를 먹었죠.”라고 당시를 회고하는 차은희씨. 그러나 새삼 돌이켜보면 한편 빛나는 시절이 아니었나, 생각된다고도 했다. 청춘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재즈봄’을 들어보자.

1. 봄봄봄 봄이 온다/봄이 온다 봄이 와요/아- 어- 봄봄봄봄 봄이 온다/사랑의 꽃이 피는/봄이 온다 봄이 와요/아- 봄봄봄봄 봄이 온다/희망도 행복도 미련도 눈물도/봄바람에 휘날린다 봄봄봄/노래와 춤을 추자/청춘의 꽃이 핀다/달콤한 키스에다/봄바람만이 나는 좋아요.

2. 봄봄봄 봄이 온다/봄이 온다 봄이 와요/아- 어- 봄봄봄봄 봄이 온다/사랑의 꽃이 피는/봄이 온다 봄이 와요/아- 어- 봄봄봄봄 봄이 온다/희망도 행복도 미련도 눈물도/봄바람에 휘날린다 봄봄봄/노래와 춤을 추자/청춘의 꽃이 핀다/토요일 일요일은/그대와 같이 아베크로. -‘재즈봄(이재현 작사, 작곡, 윤일로·차은희 노래, 1960년)

신신레코드사에서 인기를 구가하던 차은희씨는 1962년, 처음 그를 발탁한 최치수씨가 아세아레코드사를 설립하자 고민 끝에 아세아로 전속을 옮긴다. 가수로써 제2의 전성기가 시작된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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