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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비약하는 인류문명… 어디로 흘러야 하나
2023년 08월 10일 (목) 23:47:02 이은주 한의사 webmaster@newsmaker.or.kr

인류사를 되짚어 보면, 때때로 짧은 기간에 문명 수준이 전혀 다른 차원으로 튀어오를 때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자기 영역 안에 머물다가 그 활동반경이 갑자기 넓어진다든가, 발로 걷다가 바퀴를 이용하거나, 땅 위에서만 이동하다가 공중을 날기 시작했다든가 하는 순간들이다. 그런 변천이 장기간에 걸쳐 확산되었을 것처럼 생각하기 쉬우나, 실제로는 변화가 가시화되는 과정은 순식간이다 싶을 정도로 빠르게 인류 전체에게로 확대된다.
흔히 문명의 단계를 구분할 때 자주 쓰는 구석기니 신석기니 청동기 철기 등의 개념을 예로 살펴보아도 그것은 확실하다. 어느 종족에 의해 새로운 생활도구가 등장했을 때, 그것이 주변의 다른 종족에게로 확산되는 속도는 매우 빠르다. 이를테면 인조 고무와 플라스틱은 20세기 초에 등장하여 불과 4,50년 안에 지구촌 모든 곳에서 일상적인 도구가 되었다. 인간이 만든 전기의 확산도 그랬다. 가깝게는 인터넷이 확산되던 속도를 생각해볼 수 있다. 한국에서 대다수 사람들은 이제 인터넷과 함께 한다. 인터넷이 들어오지 않는 곳에 들어가면 아련한 향수를 느낄 정도로, 그것은 옛날인 듯 느껴진다. 과연 얼마나 전의 일일까. 대중의 일상 수준까지 인터넷이 파고든 것은 불과 20년 전의 일이다.
역사발전의 형태를 설명하는 여러 이론 가운데 ‘계단’이론이 등장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아주 완만하게 변하거나 거의 변화가 없다가 일정한 때가 되면 한 계단을 뛰어 오르듯 급격한 진전이 나타난다는 이론이다. 때때로 일어나는 도약들이 꾸준히 이어져 인류 역사의 긴 파노라마가 이루어졌다.
새로운 단계가 펼쳐지면 사람들이 중시하는 가치나 철학에도 변화가 일어난다. 밥 한 끼를 제대로 때우지 못하던 시대의 사람들에겐 ‘고깃국과 쌀밥 한 그릇’이 행복의 상징이 되지만, 그것이 전혀 문제되지 않는 풍요가 이루어지면 오히려 ‘매일 밥만 먹나’하는 식으로 쌀밥의 가치는 격하되고 만다. 흔히 맨발로 살던 인류가 신발을 필수품으로 신고 다니게 된 지 1백년이 넘었다.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1~2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신을 신는 사람보다는 맨발로 지내는 사람들의 수가 훨씬 더 많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신발을 신는 사람들이 더 선구적이었을 테지만 지금은, 다시 맨발로 걷는 사람들이 더 선구적으로 여겨진다.     

‘시대정신’이라는 말을 생각해 본다. 그것은 우선 그 시대에 인류가 가장 고민하는 것, 나아가 마땅히 고민해야 할 주제를 의미한다. 그리고 인류의 다음 문명을 예시하고 이끌고 실제 변화를 예고하는 나침반의 자력(磁力)처럼 작용하는 이데아 같은 것이다.
역사발전의 계단은 몇 천년, 몇 백년 단위로 성글게 이어지다가 점점 간격이 촘촘해지면서 16세기 르네상스 이후에는 매우 그 변화가 빨라졌는데, 그 계단마다 대두하는 새로운 테마 같은 것들이 있었다. 그것은 선구적인 모험가들에 의하여 그들의 이름으로, 어록으로 표현되고 축적되기도 했다.
철학이 시작되었다고 여겨지는 기원전 6세기를 대표하는 시대정신은 인간의 ‘자아발견’이었다. 그 정신은 ‘너 자신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탈레스 BC 6~7세기)’는 말 가운데 표현되어 있다. 그것은 소크라테스(BC 5세기)에 의해 구체화된다. ‘내가 아는 전부는 내가 아무 것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그보다 더 오래전에 동양에서는 주역이 하나의 시대정신으로 등장한다. 세상은 서로 상반된 두 힘, 음과 양의 힘이 지배하며 그것이 서로 순환하면서 세상의 모든 것이 만들어졌다는 생각이다. 그와 관련하여 귀곡자(BC 4세기)가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한다. ‘음으로도 양으로도 안 되고 중정(中正)이라야 한다.’ 즉 음이나 양, 좌나 우에 치우치지 않고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지혜를 말한 것이다. 이것은 신이 창조한 세상에서 신에게 종속된 인간들이 인간 스스로의 가치를 이해하고, 그 중요성을 깨닫는 단계로 이행한다.
나고 죽는 과정을 벌레나 야생의 짐승들처럼 아무 저항의지 없이 (숙명처럼) 받아들이며 살던 인류가 행복과 고통에 대하여 의지적인 탐구와 지향을 갖기 시작한 것은 이러한 의식의 발달과정을 거친 이후였을 것이다. 글을 쓰고 그것을 주고받거나 남기는 단계를 지나면서 그에 대한 고민과 저항이 치열해졌을 때, 공자와 부처와 예수는 인간들이 겪는 생의 고통을 화두삼아 고민한 끝에 ‘사랑-자비-연민’에서 답을 찾는다. 이것은 천년의 시간을 관통하는 담론으로서, 이후 다양한 시대정신의 초석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14~16세기 이후 그 각성의 속도는 더욱 빨라진다. 굵직한 화두들만 연결 지어 살피더라도 ‘백성이 하늘이다’ ‘인간은 누구나 천부의 권리를 지니고 있다’ 등의 사상이 선언되고, 그러한 선언이 시대정신으로 확장된 이후에 정치사회의 시스템에도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지구는 둥글다’와 같은 과학적 각성, 탐험과 여행, 언론과 예술, 전쟁과 평화 등이 16세기 이후 인류문명의 약진을 유발했다.
이제 지금의 시대정신과 과제는 무엇이며, 22세기를 지배할 시대정신은 무엇이 될까를 생각해볼 때다. 이러한 질문과 응답이 정지되면, 시간의 흐름이 멈춘다. 인류의 과거 역사를 돌아볼 때, 시간의 흐름이 멈춰 에너지가 고이는 곳에서는 필시 갈등이 고조되어 변란이 일어났다. 어떻게든 시간 에너지는 흘러야 하고, 그 흐름을 자연스럽게 이어가기 위해서는 누군가 방향을 제시하고 에너지가 흘러갈 수 있도록 물꼬를 터주어야만 한다.
부와 쾌락- 더 이상 신선감도 없는, 이 오래된 가치를 너무 오래 붙들고 있으며 이제 어느 방향으로 물꼬를 터야 할지 판단도 결심도 못하는 지금의 세계는 그럴수록 점증하는 잠재적 불안감에 빠져들고 있다. 어디로 어떻게 바꾸어갈 것인가. 과연 인류는 단지 지혜가 모자라서 답을 얻지 못하는 것일까. NM

▲ 이은주 한의사

[이은주 대화당한의원, 한국밝은성연구소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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