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물건을 정리해서 버리는 일에 익숙해져 있다. 이사를 가거나 집을 새로 지을 때에도 오래된 문서, 서적, 사진 등을 이제는 쓸모없는 물건이라고 치부하면서 버리는 일이 다반사이다.

황태일 기자 hti@

개인이나 집안에서 지니고 있는 한 장의 빛바랜 사진이나 문서 등은 오랜 시간이 흐른 후 귀중한 사료가 될 수도 있다. 아카이브(archive)는 역사적으로 유의미한 가치가 있는 ‘기록물’을 뜻하며, 이를 수집·연구·보존하여 이용객들에게 제공하는 장소를 아울러 일컫는다. 기록하는 사람이 지향하는 가치에 따라 아카이브 기본 구성 방향과 구체적인 유형이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 정재홍 관장

50여 년 가까이 지구별을 여행해온 순간을 담다
홍진아카이브는 개인기록관과 강연·전시·힐링카페·주말농장이 어우러진 복합문화체험예술공간이다. 정재홍 홍진아카이브 관장은 “정재홍의 끝글자 ‘弘’자와 김순진의 끝글자 ‘鎭’자를 모아 홍진(弘鎭), 두 사람이 평생 살아온 흔적들의 기록을 정리해 전시한 기록관이란 의미로 ‘홍진 아카이브’라고 명명했다”며 “한 시대 한 공간을 공유한 수많은 사람들 중, 정재홍이란 한 남자와 김순진이라는 한 여자가 만나, 하늘의 뜻으로 혼을 맺는 인연을 지어 50여년 가까이 지구별여행을 해 온 순간순간을 담은 장소”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간의 여행에서 맛보았던 소소한 편린들이지만 세월가면 모두 망각의 늪에 묻혀질  것이라는 허전함에 이제까지 버리지 못하고 끌고 다닌 삶의 흔적들을 모아 보았다”면서 “하나하나엔 지난날의 미련과 그리움이 배어 있어 바라보고 있노라면 눈시울이 적셔지는 것들도 있다. 이들조차 영원하지 못하리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래도 그냥 버리고 돌아가기에는 아쉬움이 있었다”고 개관 배경을 밝혔다.

지난해 11월 문을 연 홍진아카이브에는 정재홍 관장의 1953년 초등학교 1학년부터 중학교·고등학교·대학교까지 성적표와 각종 상장, 8년간의 학창시절 일상을 써내려간 일기장과 사진들, 가까웠던 지인과 친구에게 받은 500여통의 손편지가 정리돼있다. 1963년 발행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자서전 ‘국가와 혁명과 나’, 1921년 7월~9월까지의 100년 전 ‘동아일보 축쇄판’, 조선총독부가 발간한 ‘금강산 식물조사서’ 등의 고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전시물은 성인들에게는 향수를, 어린아이들에게는 아날로그적 감수성을 자극하며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색다른 문화 향유의 기회를 제공한다. 정 관장은 “제가 만든 홍진아카이브가 보고 가신 분들께 옛 기록물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과 함부로 버리지 않겠다는 생각을 갖도록 해줄 수 있다면 홍진아카이브의 존재이유를 다 하는 것이라 생각하면서 기왕이면 많은 분들이 방문해서 함께 옛 추억담을 나누어 주셨으면 좋겠다”고 취지를 밝혔다.

은퇴 후 재능 기부로 인생의 2막을 열다
구봉신협 이사장을 역임할 당시 부설 구봉아카데미에서 일본어 교실을 열고 기초과정과 중급과정을 개설해 성인 학생들을 가르쳤던 정재홍 관장. 그는 은퇴 후에도 20여 년 이상을 구봉신협 부설 구봉아카데미를 비롯해 대전시청, 가수원 도서관, 대전서부교육청, 대전시 서대전세무서, 한밭대 어학교육원, 남대전농협, 가수원주민자치센터, 대전여성회관, 한밭대 평생교육원 일어반, 노인복지사반, 성애노인요양원, 관저동 느리울초등학교 일본어교육, 혜천대 사회복지학과 학생 대상 일본어교실, 대전둔산동 풀러스국제특허사무소, 구봉신협 부설 구봉아카데미, 가수원중학교 방과 후, 서구청 직원, 대전시 교육청 직원, 관저1동 자치센터, 대전시청, 관저문예회관, 관저마을역사관 부설 에이스 아카데미 등 수많은 곳에서 일본어와 중국어를 무료로 가르치며 재능기부를 펼쳐왔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올해의 신한국인 대상’, ‘한국을 이끄는 혁신리더’ 등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은퇴 후의 삶은 재능기부로 인생 2막을 시작한 정재홍 관장은 앞으로도  “배우고 익힌 지식을 사회에 환원하는 게 즐거움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재능을 나누며 배려하며 사는 삶은 행복파이를 더 키워줍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가르치는 일은 계속하며 살 생각이다”고 전했다. 이어 “많은 분들이 안물안에 오셔서 휴식과 재충전을 하고 가실 수 있길 소망한다”며 “제 반려동물들을 사랑해주면서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이 곳에 오시는 이웃들과 더불어 감사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