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이성의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영역이었다. 따라서 예술가들은 인간 정신을 자유롭게 하는 미술활동으로 표현·유희적 의미를 마음껏 표출했다.

차성경 기자 biblecar@

예술은 사회의 모습을 반영하기에 좋은 수단으로 문화를 이끌어가는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단순한 시각적인 아름다운 미술을 넘어 어떠한 목적과 의미를 갖고 적극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매개체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 정종해 화백

자신을 정화해나가는 하나의 조형적 우주 창조
‘자아’가 흔들리지 않고 변화를 맞이하는 것처럼 생명력이 긴 예술가는 언제나 시대를 등지지 않는다. 시대에 흡수되거나 시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어떻게든 본인만의 작품을 이어가면서 ‘함께’ 공존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전통은 거대한 시간의 흐름 속에 존재하지만, 시시각각 수많은 콘텐츠가 쏟아져 나오는 오늘날과 같은 세상에서는 자칫 고루한 것으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특히 오늘날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흐름에서 전통의 가치도 고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전통의 현대화는 많은 의미만큼 난해하고 어려운 문제다.

이에 정종해 화백의 행보가 화제다. 우리의 전통 그림을 문인화의 전통 속으로 본질화함으로써 이를 현재화시키고 있는 정 화백은 거칠고 강한 필선을 통해 호방하고 거침없는 기세와 기운을 드러낸다. 특히 자연을 매개로 스스로 즐겁게, 감미롭게, 질펀하게, 쓸쓸하게, 슬프거나 비장하게 혹은 격정적으로 필묵을 유희하는 그는 자신을 정화해가는 하나의 조형적 우주를 창조해낸다. 구조적 골격으로 형태를 추상화하고, 유현한 먹빛으로 함축한 색채를 머금은 그의 작품 속 화면은 가상의 삼차원 공간이 아닌, 물질적 공간을 초월한 순수 조형 공간으로 절대화한다. 대상을 현실화하고 일상화하여 현재화시키는 그의 필묵은 더욱 자율화되고 감각화되며 유희적인 순수조형으로 참신하고 새로우며 재미있다. 1970년대 추상화가 득세하던 시기에 작품의 추상성이 지나치게 강하면 대상성이 없어지는 단점을 반추하게 된 정 화백은 이후 형상에 기반을 두면서도 붓의 분방한 자유로움을 강조하고, 수묵 외에 채색을 아울러 쓰면서 서정적 세계를 작품 속에서 펼쳐나가게 된다.

▲ 잎 92 x 120 한지 신문지 먹 2020

특히 70세를 넘어서면서 정종해 화백은 완전히 새로운 기법을 선보이며 화선지 위에 콜라주의 형태로 전각의 맛을 재현한 신기법을 창안해냈다. 그는 목면이나 종이 위에 그림을 그린 뒤 가위로 오려 다시 한지에 콜라주하는데, 가위로 오린 자국은 전각의 칼자국처럼 생동하는 생명의 기운을 느끼게 하며, 자칫 날카로울 수도 잇는 잘려진 맛은 단순하고 소박한 선으로 완화된다.

젊은 시절부터 끊임없이 새로운 기법 추구해온 예술가
예술이 지향하는 최상의 목표는 인간주의의 실현이다. 예술은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움의 극치, 세련미가 숨 쉬듯 이뤄져야 한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끊임없는 정진과 도전으로 일구어내는 희열과 감동이야말로 예술가로서 느낄 수 있는 최고의 보람이자 기쁨이다”. 1948년 경북 예천 출생인 정종해 화백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 여명 98 x 134 견 먹 채색 2018

서울대 대학원 재학시절인 1974년 국전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하며 화단의 총아로 주목을 받았던 정 화백은 이후 제 1회 중앙미술대전 수상을 비롯해 네 차례의 국전 특선을 거머쥐며 예술성을 인정받았다. 이후 국립현대미술관 초대작가로 여러 차례의 해외 및 국내 초대출품을 이어온 그는 수많은 전시회의 심사위원을 비롯해 영남대 교수, 한성대 예술대학 학장 및 예술대학원장을 역임했다. 정년퇴임 후 현재 여주시 점동면에 은천흔암뜰 작업실에서 활발한 작품 연구 활동을 지속하고 있는 정 화백은 젊은 시절부터 새로운 기법을 추구해왔고, 마침내 전각적 표현 세계로 들어서게 된 것이다. 예술계에서는 이미 그가 전각적 스타일의 세계에서도 훌륭한 경지에 도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자신의 예술적 감성을 담아 자연과 우리 삶의 모습을 새로이 해석하고 표현방법을 통한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지향해나가고 있는 정 화백의 향후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 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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