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좌진 장군, ‘청산리 전투’ 대승                    1920년

▲ 1920 청산리전투-전투에서 패배한 일본군 모습

1920년 6월의 ‘봉오동전투’ 후, 일본군의 독립군 토벌이 본격화하면서 우리 독립군 부대는 백두산록으로 이동해야 했다. 홍범도의 대한독립군은 안도현과 화룡현의 접경지대인 이도구 어랑촌으로, 김좌진의 북로군정서는 근거지였던 왕청현 서대파를 떠나 화룡현 삼도구 청산리 부근으로 근거지를 옮겼다. 일본군이 독립군 토벌을 목적으로 간도에 파병한 병력은 19사단 전부와 제11, 13, 14, 20사단의 일부 등 5개 사단 등 총 2만5000명이었다. 그중에서도 우리 독립군과 청산리전투를 벌인 일본군 사단은 함경도 나남에 주둔하고 있던 제19사단이었다.
첫 전투는 삼도구 청산리 계곡 백운평에서 벌어졌다. 청산리는 깍아지른 듯한 절벽이 양편에 솟아있는 길고 좁은 계곡으로, 이곳을 지나려면 반드시 백운평을 거쳐야하는 곳이다. 첫 상대는 야마다 보병 연대였다. 김좌진(1889~1930)은 북로군정서군을 두 부대로 나눠 자신이 제1제대를 지휘하고 휘하의 이범석 장군에게는 제2제대를 맡겨 백운평의 유리한 고지에 매복해 있다가 일본군이 접근해 오면 포위공격하는 작전을 짰다.
1920년 10월 21일 오전9시, 200여명의 일본군 선발대가 백운평에 다다랐을 때,  김좌진의 공격개시 명령과 함께 600여명의 독립군이 백운평을 향해 일제히 사격을 가했다. 30분동안 계속된 공격에 일본군은 제대로 저항한번 못하고 거의 전멸했다. 청산리전투의 첫 승전이었다.
김좌진 부대는 주변에 포진하고 있는 일본군 본대를 피해 10월 22일 새벽2시30분께 이도구 갑산촌으로 이동했다. 뒤늦게 달려온 일본군은 백운평 주민들을 무차별 보복하는 것으로 분을 풀었다. 50~60 세대 300명 정도였던 주민들 대부분은 잔인하게 살해되었고 마을은 초토화되어 사흘동안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 무렵 또 다른 일본군은 홍범도(1868~1943)의 대한독립군이 은신하고 있는 이도구 어랑촌으로 접근했다. 홍범도 부대는 기민하게 산속으로 숨었다가 10월 21일 늦은 오후부터 22일 새벽에 걸쳐 어랑촌 길목에 있는 이도구 완루구에서 적을 공격하는 게릴라 전법을 구사해 거의 400여명에 달하는 일본군을 전멸시켰다.
이도구 갑산촌에 도착한 김좌진 부대 역시 밤샘 행군에 몸이 파김치가 되었는데도 일본군 1개 기병대가 천수평 마을에 머물고 있다는 정보를 듣고 다시 천수평으로 달려가 22일 새벽 5시30분경 일본군을 기습공격함으로써 일본군 1개 중대 전원을 섬멸하는 전과를 올렸다. 이것이 천수평 전투다. 이때 독립군의 피해는 전사 2명과 부상 17명으로 경미했다.
이 전투에서 일본군 중대장이 소지하고 있는 문서를 통해 일본군 본부가 이도구 어랑촌에 있음을 확인한 김좌진은 완루구 전투를 승리로 장식한 홍범도 부대와 합류한 뒤, 어랑촌의 유리한 고지에 매복했다. 이 전투에 독립군은 2000여명, 일본군은 5000명의 대규모 병력을 동원한터라 이 전투는 청산리전투의 최대 승부처였다.
10월 22일 아침 7시30분부터 해가질 때까지 계속된 어랑촌전투에서 일본군은 1000여명(이범석)~1200여명(박은식)의 사상자를 내고 물러났다. 독립군도 100여명이나 전사하는 큰 피해를 입었으나 일본군이 워낙 막대한 피해를 입어 어랑촌전투는 청산리전투 가운데 가장 큰 전과를 올린 유격전으로 기록되고 있다. 어랑촌전투는 치열했던 만큼 여러 가지 일화를 남기고 있다. 인근의 조선족 여성들이 생명의 위협을 무릎쓰고 독립군에게 음식물을 날라다 주어 독립군의 사기를 높여주었고, 행군 도중 오발로 전우를 죽게 해 쇠로 만든 용수를 쓰고 전투에 참가했던 한 병사는 죽은 전우 몫까지 대신한다며 적진 깊이 뛰어들어 전사하기도 했다. 기관총 중대장 최인걸은 기관총 사수가 전사하자 스스로 자기 몸에 기관총을 묶은뒤 올라오는 일본군을 향해 180도 회전하며 총격을 벌이다가 기관총탄이 떨어지자 장렬하게 죽음을 맞았다.
김좌진·홍범도 연합부대는 어랑촌전투를 끝내고 소부대로 나눠 다른 곳으로 이동하면서도 맹개골전투, 만기구전투, 쉬구전투, 천보산전투 등을 벌이며 일본군에게 타격을 입혔다. 마지막으로 벌어진 전투는 10월 25일 한밤중 고동하 골짜기에서 있었다. 일본군의 야습을 받고 인근 절벽으로 피신했다가 적이 방심해있는 틈을 타 재야습을 가해 일본군의 사기를 완전히 떨어뜨린 고동하전투 역시 항일투쟁사에 길이 빛나는 치열한 전투였다.
10월 26일 새벽 홍범도 부대가 이 고동하 골짜기 전투에서 마지막 승리를 장식함으로써 청산리전투로 통칭되는 6일간의 크고 작은 전투가 막을 내렸다.  청산리전투 후 일본군은 총 2000명의 시체와 1300명의 부상자들을 실어날랐다. 독립군도 100여명의 사상자를 냈으나 한국 독립운동사에 찬연히 기록된 최대 승전보였다.
북로군정서가 상해 임시정부에 제출한 정식 보고서에는 일본군 전사자가 연대장 1명, 대대장 2명, 기타 장교 이하 사병 1254명 등 모두 1257명이고 부상자는 200여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당시 중국의 요동일일신문과 박은식은 2000여명이 전사했다고 추산했다. 일본 영사관의 비밀보고서에는 연대장 1명, 대대장 2명, 소대장 9명, 병사 800여명의 사상자가 났다고 되어있다. 독립군의 피해는, 직접 전투에 참가했던 이범석 장군에 따르면 전사 60여명, 부상 90여명 실종 200명에 불과했다. 실종자 대부분도 부대로 복귀했다. 상해 임시정부는 전사자 130여명와 부상자 220명 등 약 350여명의 사상자를 낸 것으로 추산했다.

■오스만 투르크 제국 멸망과 터키공화국 수립                        1923년

▲ 1923 오스만투르크-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19세기에 점화된 발칸반도 국가들의 독립 열풍은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오랜 기반을 뿌리채 흔들어놓았다.  독일측의 동맹국에 가담했다가 당한 1차 대전의 패배 역시 오스만 제국을 연합국의 각축장으로 전락시켰다. 자칫하면 과거의 영광은 고사하고 오랜 세월 터키인들이 터잡고 살아온 땅마저 연합국에 빼앗길 운명에 처했다. 그 누란의 위기상황을 타개한 이가 ‘터키의 국부’로 불리는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다.
그가 주목을 끌기 시작한 것은 오스만 제국이 독일 쪽 동맹국의 일원으로 참전한 제1차 대전 때였다. 청년 장교 케말은 1차대전의 주요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워 이름을 날렸다. 그러나 독일과 오스만은 전쟁에 패했고, 연합국은 패전국 오스만을 분할·점령하는데 팔을 걷어붙였다. 500년동안 오스만의 지배를 받아오다 1832년에서야 독립한 그리스까지 그 틈을 이용해 에게해에 연해있는 교역도시 이즈미르를 점령(1919년 5월)했다.
전쟁 중 케말의 능력을 익히 알고있던 연합국은 사실상 허수아비 술탄에게 압력을 가해 눈엣가시였던 케말을 불모의 땅 아나톨리아(소아시아) 내륙으로 전보시켰다. 그러나 케말은 그곳에서 사방으로 흩어졌던 오스만군 병사들을 모으고 민병을 조직해 독립전쟁에 나섰다. 그 무렵 일각에서는 오스만 제국의 보존을 위해 영국이나 미국의 보호령으로 두자는 의견이 제기되었으나 케말은 단호히 이를 거부하고 터키 민족 중심의 독립국가 건설을 외쳤다.
케말이 전국적인 독립저항세력을 모아 세력을 키우자 결국 오스만의 술탄 정부는 케말 조직의 압력에 굴복, 1920년 1월 총선을 실시했다. 새 의회는 오스만을 배제한 채 연합국끼리 논의하고 있는 대(對) 오스만 조약이 불평등조약임을 주장하며 종전 당시(1918년 10월)의 영토범위 내에서 독립을 실현시킨다는 국민헌장을 통과시켰다. 연합국은 즉각적으로 탄압을 가했다.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고 의원들을 체포·구금하며 의회를 해산했다. 그러나 케말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1920년 4월 23일 앙카라에서 ‘터키 대(大)국민의회’를 구성, 연합국의 압력에 맞섰다. 연합국 역시 패전국인 오스만의 의견을 무시한 채 파리강화회의의 일환으로 1920년 8월 10일 연합국끼리의 ‘세브르 조약’을 체결, 오스만의 영토문제를 일단락지으려했다.
조약에 따르면 오스만은 이스탄불과 트라키아(유럽대륙에 위치한 발칸반도의 남부지역) 일부 지역에서만 제한된 영유권을 확보할수 있는 대신 아랍지역은 다 빼앗기고 아나톨리아를 둘러싸고 있는 에게해 섬들과 이즈미르도 그리스에 양도해야 했다. 보스포러스 해협은 국제화되었고, 오스만에 대해서는 엄격한 금융통제가 실시되었다.
한편 터키 국민의회는 1921년 1월 주권은 술탄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에게 있고 국민의회가 유일한 국민의 대표기구임을 선언했다. 국명은 ‘투르키예(영어로 Turkey)’로 정했고, 국가운영의 실권은 케말이 주도하는 집행위가 장악했다. 케말의 관심은 과거 오스만 제국의 광활했던 영토가 아니라 터키 민족만의 독립된 영토에 있었다. 그러나 연합국은 제국의 영토는 물론 터키 영토마저 분할하려 했다. 독립전쟁이 불가피했다. 터키 내에 주둔하고 있는 외세와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동쪽 영토는 아르메니아와 그루지아로부터 빼앗았고, 남쪽의 프랑스군은 시리아로 쫓아냈으며 영국을 믿고 영토를 확대하려는 그리스군은 1년에 걸친 전쟁 끝에 터키 땅에서 완전히 몰아냈다. 이렇게되자 연합국은 무스타파 케말을 오스만의 대표기구로 인정하고 모두 철수했다.
케말은 1922년 11월 1일 국민의회가 술탄(황제)과 칼리프(이슬람교 최고 지도자)를 분리하고 술탄제 폐지를 의결하도록 함으로써 술탄 메흐메드 6세를 축출하고 623년 역사의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문을 닫게 했다. 1299년에 창건되어 전성기 때는 서아시아·북아프리카·발칸반도·흑해 북부·코카서스 남부까지 아우르고, 1453년에는 콘스탄티노플의 동로마를 함락해 유럽인들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짓밟았던 대(大) 제국이 과거의 영화를 뒤로한 채 역사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칼리프 제도는 1924년 3월 3일 폐지되었다.
연합국은 터키의 실체를 인정해 1923년 7월 24일, 3년전 체결한 세브르 조약을 로잔 조약으로 대체했다. 이 조약으로 터키는 1차대전 때 잃은 비(非) 터키 지역을 포기하는 대신 터키 영토의 보존과 독립을 국제적으로 승인받았다. 트라키아 쪽 국경은 마리차강(江)으로 확정되고 그리스는 에게해 섬으로 밀려났다. 강제적인 주민교환으로 130만명의 그리스인이 터키를 떠났고 40만명의 그리스 내 터키인이 고국으로 귀환했다.
로잔조약은 그러나 쿠르드족에게는 죽음의 조약이었다. 세브르 조약에서 영국과 프랑스로부터 약속받은 독립조항이 로잔조약에서는 오스만의 반대로 삭제되어 지금까지도 나라없이 떠돌고 있는 것이다. 1923년 10월 29일 터키 국민회의는 터키 공화국을 선포하고 케말을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스탈린의 권력 장악         1924년

▲ 1924 스탈린

1924년 1월 레닌이 죽었을 때 후계자는 누가 보아도 트로츠키였다. 그는 레닌으로부터 인정을 받은 데다 군부와 청년들 사이에도 많은 추종자를 두고 있던 당내 2인자였다. 트로츠키가 자신을 과신한 나머지 방심하는 동안 후계 자리를 넘보는 또 한명의 인물이 있었다. 트로츠키와 동갑내기 스탈린이었다.
1879년 그루지야에서 태어난 스탈린은 신학교 재학 중 반정부 서클에 가입해 퇴학당한 뒤, 철도 노동자들로 구성된 학습 모임을 지도하면서 혁명에 투신했다. 1901년 러시아 사회혁명당에 입당하고 1903년 사회혁명당이 볼셰비키와 멘셰키비로 갈라섰을 때 볼셰비키 쪽에 가담하면서 레닌의 사람이 되었다.
레닌이 주로 해외에서 망명생활을 하던 1903년부터 1913년 사이에는 국내에서 볼셰비키 세력을 키우며 수차례나 체포·투옥되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풀려나 한때는 제정 러시아 비밀경찰의 밀정이라는 의심을 사기도 했다. 1912년 볼셰비키 중앙위원으로 선출되고 볼셰비키 신문 프라우다의 초대 편집장이 되면서 비로소 ‘강철’이라는 뜻의 스탈린을 자신의 이름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1913년부터 4년간 유배생활을 하다가 풀려난 1917년은 10월혁명의 전주곡인 2월혁명으로 이미 차르 체제가 무너지고 만 다음이었다.
10월혁명의 주역은 레닌과 트로츠키였다. 스탈린은 10월혁명에서 눈에 띠는 활약상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러네 혁명 후 레닌은 스탈린처럼 강철같은 기질의 사람이 필요했다. 레닌은 스탈린의 충성심을 인정해 1922년 4월의 당대회에서 스탈린을 당 총서기로 임명했다. 스탈린이 총서기 자리를 이용해 무한 권력을 행사하자 스탈린에 대한 레닌의 평가에 변화가 생겼다.
레닌은 1922년 5월 첫 뇌출혈을 일으켜 집무를 수행하지 못하게 되자 당 지도자들에 대한 비밀평가를 측근에게 받아적게 했다. 이른바 ‘레닌의 유서’였다. 유언장에는 “트로츠키는 유능한 사람이지만 너무 자만하다”고 평가하고 “스탈린은 동지들을 무례하고 냉담하게 다루니 서기장 직에서 축출하라”고 씌어있었다. 그러나 레닌의 병은 어느덧 스탈린을 제어할 수 없을 만큼 깊어 있었다.
레닌은 1923년 3월 말 열릴 대회에서 유언장을 공개하려 했으나 대회 3주전에 세 번째 발작을 일으키면서 계획은 중단되었다. 스탈린은 레닌이 첫 발작을 일으켰을 때부터 각각 레닌그라드와 모스크바 소비에트를 이끌고 있던 지노비에프, 카메네프와 3두 체제를 결성해 세력을 키워나갔다. 스탈린은 빈번한 감정폭발과 비열한 성격의 소유자였지만 정치적 식견과 수완이 좋았고 두뇌회전이 빨랐다.
레닌이 죽었을 때 트로츠키는 레닌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트로츠키는 스탈린이 멀리 흑해 연안의 휴양도시에 있었던 자신에게 거짓 장례일을 알려주어 장례식에 참석할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사람들은 믿질 않았다. 내막을 알리 없는 당과 인민들이 트로츠키의 결례와 무관심을 질타하는 동안 스탈린은 장례를 준비하며 홀로 각광을 받았다. “레닌 동지! 우리는 당신의 지령을 훌륭히 완수할 것을 맹세합니다”라는 스탈린의 맹세연설까지 신문에 실려 입지가 강화되었다. 그때까지도 스탈린은 레닌의 유언을 알지못했다.
1924년 5월의 제13차 당대회에서 유언장이 공개되면서 스탈린은 비참함과 초라함을 느꼈다. 그러나 지노비에프와 카메네프가 스탈린을 변호하고, 스탈린 자신도 짐짓 태연한 척 레닌 숭배를 강조하고 레닌의 사상을 ‘레닌주의’로 교의화하면서 위기를 모면할수 있었다.
스탈린은 뒤이어 자신과 지노비에프, 카메네프로 구성된 3두 체제를 이용해 트로츠키를 공격했다. 스탈린은 트로츠키의 반(反)레닌주의 증거로 혁명 전에 레닌의 볼셰비키당 강령에 반대했던 성명을 공개하면서 트로츠키를 몰아세웠다. 레닌 숭배가 절정이던 그 무렵에 반레닌주의로 낙인찍힌다는 것은 트로츠키의 명성을 심각하게 손상시키는 것이었다. 트로츠키는 1925년 1월 인민위원직에서 해임되었다. 실각이었다.
스탈린의 다음 표적은 3두체제의 두 축 지노비에프와 카메네프였다. 스탈린은 일국 사회주의를 제창했다. 이는 레닌이 추구해온 세계혁명론에 반하는 일이었다. 10월혁명 이래 레닌은 제3인터내셔널(코민테른)을 통해 세계혁명을 꿈꿔왔고 카메네프와 지노비에프는 세계혁명론의 신봉자였다. 기대했던 독일, 헝가리, 중국에서 공산당이 죽을 쓰고 혁명까지 요원해 보이자 스탈린이 세계혁명론을 부정하고 일국 사회주의를 제기한 것이다.
스탈린의 계산은 적중했다. 좌파였던 두 사람은 일국 사회주의론을 부정했지만 당내 보수 우익들 특히 노동조합 책임자인 미하일 톰스키, 당 이론가인 니콜라이 부하린, 그리고 인민대표회의 의장인 알렉세이 리코프로부터는 호감을 샀다. 카메네프와 지노비에프는 고립주의 노선에 맹렬히 반대했으나 그럴수록 스탈린이 친 거미줄에 더욱 엉켜들어갈 뿐이었다. 뒤늦게 기만당한 것을 눈치채고 거세당한 트로츠키와 1926년에 연대를 도모했으나 이미 실기한 뒤였다. 1927년 11월 두 사람은 당 중앙위에서 축출되었다.
스탈린은 평소 이들 좌파들이 주장해온 농업의 집단농장화와 공업화를 추진했다. 이것은 집단농장화를 반대해온 부하린 등 당내 우파를 공격하기 위한 또 다른 전술의 일환이었다. 스탈린이 곡물 비축자를 체포하고 전시 공산주의를 강조하며 레닌이 NEP(신경제정책)를 추진할 때 철폐했던 곡물 징발 정책을 다시 채택하자 중농들의 분노가 시작되었다. 우익으로부터도 강력한 비판이 제기되었다.
위협을 느낀 부하린은 1928년 7월, 실각한 카메네프를 비밀리에 만나 대(對)스탈린 공동전선을 펼 것을 제의했으나 결과는 몰락을 재촉할 뿐이었다. 1928년 11월의 중앙위는 우익의 견해가 적절하지 못하다고 비난하고 공업화 드라이브를 가속화할 것을 촉구하며 스탈린과 보조를 맞췄다.
부하린 등 세 사람은 결국 현직에서 물러나 공개석상에서 자아비판을 강요당했다. 이것은 곧 다가올 대숙청기의 죽음을 의미했다. 이제 스탈린의 권위에 도전할 자는 아무도 없었다. 음모와 모략으로 모든 반대파를 제거하고 절대권력자로 올라선 것이다. 이후 스탈린은 경제적으로는 전시공산주의로 불리는 강력한 동원체제를 가동시켰고 1934년부터는 대숙청을 벌여 20세기 최대 살육전을 펼쳤다.

■주가 대폭락…대공황의 시작        1929년
1920년대 미국의 번영은 눈부셨다. 1919년부터 10년동안제조업 생산량은 64%나 상승했고 자동차는 5명당 1명꼴로 홍수를 이뤘다. 노동자의 임금과 실질 소득이 늘어났으며, 기업이윤은 임금상승율보다 훨씬 높았다. 돈을 좇는 사람들로 증권시장도 전례없는 대호황이었다. 1929년 현재 증권구좌는 155만개에 달했고 이 가운데 60만개는 신용거래로 대박을 꿈꿨다. 방미중이던 처칠영국 재무장관이 월가에서 신용거래로 한몫 잡았다고 친구들에게 자랑했던 것도 이 무렵이었다. 미 역사상 처음으로 근검절약이 경시되고 지출과 과시적인 소비가 미덕이 되었다.

▲ 1929 대공황-‘검은 목요일’로 불리는 1929년 10월 24일, 뉴욕 증권거래소 앞에 모여든 투자자들

다만 호황이 주로 자동차와 건설 등 2개 부문에 집중되고, 노동자들의 10년 평균실질소득이 11% 상승한데 비해 기업이 평균 62%의 기업이윤을 더 높이려고 생산량을 과도하게 늘려 수요가 생산을 따르지 못하기 시작했다는 것, 또 만성적인 과잉공급으로 농업소득이 지난 10년간 22% 하락한 것 등이 문제일수 있었겠지만 이 모든 것들은 증권시장의 상승세가 끝없이 지속되리라는 희망과 낙관에 파묻혀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들이 느끼지 못했을 뿐 성장은 이미 1929년 6월에 멈춰있었다. 건설과 산업생산이 감소하고 자동차 판매가 줄어들었으며 도매물가가 하락하고 있었다. 오르기만 하던 주가도 9월 3일부터 하락과 상승을 반복하자 사람들은 막연하게나마 불안감을 느꼈다. 그래도 여전히 낙관론이 팽배했다.
10월 24일, 이날도 개장과 함께 거래는 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1시간이나 지났을까. 주가가 갑자기 곤두박질치면서 객장분위기가 공포로 돌변하더니 너도나도 주식을 팔아치우려고 아우성이었다. 다행히 오후 들어 은행가의 큰손들이 방어에 나서 폐장 무렵에는 전날의 주가수준을 거의 회복해  ‘검은 목요일’은 안도속에 지나갔다. 이튿날에도 더 이상의 하락은 없었다.
그러나 월요일인 10월 28일 다우존스 주가가 13% 하락하더니 ‘비극의 화요일’이었던 10월 29일, 뉴욕 증권가가 다시 거대한 투매폭풍에 휩싸여 1640만주나 거래되었다. 다우존스 주가가 12%나 하락해 하루만에 100억 달러가 휴지조각이 되었다. 통화금액의 2배에 달하는 엄청난 금액이었다. 이후 하락세는 계속 이어졌고 소액 투자가들은 파산하기 시작했다. 무서운 투매현상은 지난 10년간 지속된 밝고 낙관적인 경기 전망에 쐐기를 박아버렸다. 10월 1일에 870억 달러였던 뉴욕 증권거래소 상장주식값은 거품 붕괴와 함께 11월 1일 550억 달러로 곤두박질치더니 1933년 3월에는 190억달러가 되었다.
재앙은 현대역사상 최악·최장의 불황으로 이어졌다. 1929년부터 1932년까지 4년동안 약 6000개의 은행이 파산하고 재고 과잉상태에 빠진 제조업체들은 공장문을 닫았다. 노동자들이 점차 늘어나는 상품을 사들일 구매력을 잃어가자 생산이 수요를 초과하는 만성적인 생산과잉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1930년부터 1933년까지 매주평균 6만4000명씩 실업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1930년 400만이던 실업자는 800만(1931년), 1200만(1932년), 1300만명(1933년)으로 급격하게 늘어났고, 1932년 한 해동안 뉴욕에서만 95명이 굶어죽었다. 비공식적으로는 3400만명의 실업자가 하루하루의 생계를 위해 거리를 배회했다. '일자리를 찾는다'고 적은 간판을 목에 걸고 서있는 남자들, 굶주림에 지쳐 쓰레기통을 뒤지는 주부들, 실업자들의 시위·행진 등은 어느덧 도시의 일상적 풍경이 되었다.
도시에서 굶주린 사람들이 먹을 것을 찾아 쓰레기통을 뒤지는 동안 농부들은 파는 것이 더 손해인 곡물을 들판에서 마구 태웠다. 농촌의 젊은이들은 도시로 도시로 떠났다. 그래도 영화산업만은 주당 8500만명의 영화팬들이 현실도피를 위해 극장을 찾은 덕에 유일하게 번창했다.
1차대전 후 차관, 대미수출, 관광수입 등의 형태로 미국의 달러화에 크게 의존해온 서유럽도 휘청거렸다. 가장 심각한 타격을 입은 나라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였다. 두 나라는 연합국에 대한 막대한 전쟁배상금 지불부담을 안고 있는 데다 통화의 불안정과 전쟁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독일에서는 히틀러가 등장하기 바로 전해인 1932년 실업자가 600만명으로 늘어났고, 영국에서도 300만명의 실업자가 생겨 노동당 정권을 무너뜨렸다.
미국은 허버트 후버대통령이 사태의 심각성을 인정하려 들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후버는 1930년 3월 이미 300만명이 일자리를 잃었는데도 국민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해 곧 번영이 임박했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한번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 경제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게다가 1930년 미국 농산물 가격하락을 걱정하던 후버와 공화당 의원들이 관세를 인상하는 역사상 최악의 법으로 알려진 '스무트·홀리 관세법'을 통과시켜 캐나다,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호주 등 전세계 국가들의 보복적인 관세인상을 유발시켰다.
후버는 단지 자국 산업을 보호한다는 단순한 의도에서 관세를 인상했지만 결과적으로 보호무역주의 열풍이 전세계에 불어닥쳐 세계 불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후버는 결국 1932년의 대통령선거에서 루스벨트에게 정권을 넘겨주고 물러났다.
경기회복이 임박했다는 그의 예측은 조소의 대상이 되었고 그는 모든 일을 그르친 장본인으로 역사에 기록됐다. 한 히치하이커가 “차를 태워주시오. 아니면 후버에게 표를 찍겠소”라고 으름장을 놓은 팻말 덕분에 미국을 횡단했다는 일화가 나돌정도로 당시 후버의 인기는 최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