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정신(匠人精神).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전념하거나 한 가지 기술을 전공하여 그 일에 정통하려고 하는 철저한 직업 정신을 일컫는 말이다. 장인은 전력을 다하여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것에 자기의 최선을 다하는 철저한 장인 정신의 소유자를 말한다.

차성경 기자 biblecar@

사전을 찾아보면 ‘명품(名品)’은 ‘뛰어나거나 이름난 물건 또는 그런 작품’을 가리키는 말이다. 영어로 명품을 뜻하는 ‘Prestige’ 역시 장인정신과 예술혼이 살아 있는 뛰어난 물건이나 작품을 의미한다. 세상이 변하고, 사람이 변하듯 그릇의 쓰임새도 변했지만 고집스럽게 그릇에 혼을 불어넣는 장인의 정신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변했지만 도자기들을 바라보노라면 얼마나 자연에 충실한가, 얼마나 사람을 위한 것인가를 느낄 수 있다.

투철한 장인정신으로 전통의 명맥을 잇다

경북 문경에

▲ 백산 김정옥 선생

소재한 영남요는 대를 이어 장인의 예술혼을 이어가는 곳이다. 중요무형문화재 105호 사기장인 백산 김정호 선생은 이곳에서 한국의 전통 도자기를 빚고 있다. 김정옥 선생의 가문은 조선시대 사료인 하재일기(조선말 분원에서 만든 그릇을 궁궐에 납품하던 공인 하재 지규식이 쓴 일기)에도 기록될 만큼 국내 유일한 조선 왕실 도자 혈통이다. 1800년대 초반, 초대 김취정 선생은 문경 주흘산 아래 위치한 관음리에 도예의 터를 닦았다. 5대 김운희 선생에 이르러 조선 최고의 사기장들만 출입했다던 경기도 광주 관요(官窯)인 분원에서 왕실도자기를 빚으며 이름을 떨쳤다.

7대 도자혈통을 잇는 김정옥 선생, 1991년 정호다완을 재현해 도예부문 초대 명장이 된 그는 지난 1996년 국내에서 처음이자 유일하게 중요무형문화재 사기장으로 지정됐다. 1999년 문경대학 초대명예교수에 이어 2000년 대통령 표창까지 받는 영예를 얻었다. 지난 2012년 6월에는 통일에 대한 우리의 의지와 통일 후 필요한 재원을 담아내는 그릇으로, 통일 준비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통일항아리’를 류우익 당시 통일부 장관과 함께 완성하기도 했다.

김정옥 선생은 200여년 전 조상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전기물레 대신 발물레로, 가스가마 대신 전통 장작 가마인 망댕이 가마를 사용하는 전통방식을 고수하며 그릇을 제작한다. 2달에 한 번 영남요는 망댕이 가마에 불을 지핀다.

▲ 청화백자팔각소병(靑華白磁八角小甁)

망댕이 가마는 우리나라 특유의 칸 가마로 20~25㎝ 굵기의 사람 장딴지 모양과 비슷한 진흙덩이(망뎅이)와 흙벽돌을 사용해 만든 가마다. 불은 5칸의 가마에 차례로 올라탄다. 14시간의 초벌을 끝낸 작품에 무늬를 넣고 다시 재벌을 한다. 재벌은 1000여점의 작품을 품고 꼬박 18시간여의 오랜 시간동안 1200도를 웃도는 불과 사투를 벌인다. 공을 들이지 않을 수 없는 중요한 작업이기에 선생은 아직도 가마 앞에서 기나긴 불때기 작업을 손수 고집한다. 이렇게 탄생한 ‘청화백자팔각병’과 ‘분청사기철화당초문계룡산호’, ‘정호다완’ 등 김정옥 선생의 작품은 자기 과시나 수사적인 기교 대신 투박하지만 고고한 자연의 멋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철저한 장인정신으로 탄생한 그의 작품은 해외에도 전해져 일본과 미국, 캐나다, 독일 등에 영구 전시되었으며, 김정옥 선생의 명성이 일본에도 전해져 일본 79대 총리 호소가와 모리히로에게 청화백자 도자기법을 직접 전수하기도 했다.

‘명문 도예가문’ 9대로 이어지다

“나의 그릇들은 가마 속에서 태어나 사람들의 친구가 된다. 시름에 젖은 자에게는 술사발로, 아픈 자에게는 약사발로, 마음을 닦는 자에게는 찻사발로, 그들의 생을 채워주고 보듬어 주었다.” 김정옥 선생은 한평생 고집스런 삶으로 장인의 길을 걸어왔다. 쓸쓸하고도 외롭지만 절대 현실과 타협하지 않았다. 애써 꾸며대지 않은 소박함, 그리고 단호함이 엿보이는 백자는 김정옥 선생을 닮았으며, 김정옥 선생 역시 백자를 닮았다.누군가는 말한다. 도자의 길, 그것은 어쩌면 사기의 명장 김정옥 선생 자신의 자화상을 빚는 과정이었는지도 모른다고. 그의 고집스러운 장인정신의 영향을 받은 탓일까.

▲ 김정옥 선생의 아들 김경식 씨 뿐만 아니라 손자 김지훈 군까지 가업을 이으며 9대 도예가문으로 이어지는 ‘명문 도예가문’은 다시 한 번 그 명성을 공고히 하고 있다.

김정옥 선생의 아들 김경식 씨 뿐만 아니라 손자 김지훈 군까지 가업을 이으며 9대 도예가문으로 이어지는 ‘명문 도예가문’은 다시 한 번 그 명성을 공고히 하고 있다.

김경식 씨는 7년간 장교로 군 복무를 마친 뒤 지난 1995년 도예에 입문, 20년 가까이 영남요를 지키고 있으며, 전승공예대전이나 기능경진대회에서 수차례 입상, 캐나다 로열온타리오박물관에 작품이 영구 전시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경식 씨의 맏아들인 김지훈 군 역시 도예에 입문한 지 1년 만에 개최된 문경전통찻사발축제 행사의 하나였던 발물레 경진대회 학생부에서 3등을 차지했으며, 지난해 10월에는 같은 대회 학생부 대상으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거두었다. 지훈 군은 문경의 인문계고교 1학년을 마치고 지난 2012년 경기 이천에 있는 한국도예고교로 전학했으며 지난해 목원대에 입학해 도자기를 전공하고 있다. 다시 태어나도 도공으로 살겠다는 김정옥 선생은 “조상대대로 흘러온 끼는 내가 억지로 거부하려 해도 거부할 수 없는 것이 답이다”며 “앞으로도 전통과 맥이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