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는 더 이상 SF와 현실 간의 경계가 의미가 없어졌다. SF에서나 등장했던 신기한 과학기술이 현실화되고, 더불어 SF의 주요한 사회적 문제들이 바로 우리들이 고민해야 할 의제로 부상한 것이다.

윤담 기자 hyd@

생명공학기술, 분자나노기술, 정보기술, 인지과학으로 불리는 이른바 NBIC(Nano, Bio, Information technology, Cognitive science) 기술들은 인간 이해의 변화를 넘어 인간 본성 자체를 변화시키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 기옥란 작가

거대한 안목으로 머무름에서 흐름을 읽다
“나는 오늘도 캔버스에 유목과 정착이 나은 아름답고 시적인 미래의 새로운 인간인 끝없이 진화하는 트랜스휴먼의 다양한 시각 이미지들을 그리고 모든 관계, 소통, 교감의 이야기들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간디의 ‘내 삶이 내 메시지다’라는 말을 가슴에 새기며 내 삶의 회화적 변주곡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작가 기옥란의 행보가 화제다. ‘한국의 피카소’, ‘한국의 장 미쉘 바스키아’라 불릴 정도로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기옥란 작가는 지난 2010년부터 ‘트랜스휴먼’을 주제로 다양한 오브제와 구조적 조형요소들을 활용하여 예술적 사유로 표현하는데 집중해왔다. ‘트랜스휴먼’과 ‘네오노마드’를 주제로 새로운 인간성은 무엇이며, 인간 윤리는 무엇인지 우리에게 끊임없이 화두를 던진 기 작가는 자연과 인간, 정신과 물질이 조화를 이뤄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자는 메시지를 담은 트랜스휴먼 연작 등을 선보여 왔다. 그의 주요 화두인 트랜스휴먼은 작가의 오랜 성찰과 탐구를 통한 예술세계의 결집이다.

기옥란 작가는 “트랜스휴먼은 과학기술과 유전공학 및 인공지능을 통한 인간과 기계의 중간적 존재, 인간의 신체적 정신적 한계를 넘어선 초월적 존재로 생물학적 한계를 극복한 21세기 진화된 신인류의 모습”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기옥란 작가의 조형방식은 절제된 구성으로 사물의 형태를 단순화시켜 재해석해 표현하기도 하며, 비대칭적 기하학적 표현과 상징적인 기호를 통해 새로운 실험정신으로 일정한 형식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재료와 미술 사조를 넘나들며 자유롭게 표현한다. 또한 삶의 변주곡처럼 전개되는 인간의 정착과 이동의 역사처럼, 기옥란 작가의 작품 세계는 머무름에서 흐름을 읽는다. 그는 억압된 삶의 경계를 넘어선 초월적 존재로서의 신문명인인 트랜스휴먼과 네오노마드를 통한 우주공간에서의 초신성의 폭발을 생각하고 사상, 경험, 지식, 관계들 외에는 아무것도 축적하지 않고 우주로의 시간여행을 떠난다. 우주에 대한 통찰과 소통,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기 작가는 문명의 다양한 상징적 예술적 기호를 통해 우리를 신비스럽고 심오한 우주의 세계로 이끈다. 미래에 대한 놀라운 예지와 직관력으로 시대정신을 표현하고 빠른 변화와 실천을 통해 거대한 안목을 아우르는 듯하다. 기 작가는 “인간은 지구에 가장 마지막에 온 존재다. 그런데도 현재 주인 행세를 하며 수없이 자연과 환경을 파괴하고, 서로 전쟁하며 싸우고 있다. 기후변화가 이제는 기후 위기로 다가오고 있다. 매년 우리는 510억 톤의 온실가스를 배출한다고 한다. 올해 채택된 IPCC 6차 보고서에서는 지구 온도가 1.5°C 상승하는 것을 막기는 사실상 어려워졌고 2.0°C 상승을 막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탄소배출 감축과 에너지 안보 등 수많은 문제들이 계속해서 부각 되고 있다”면서 “인간과 인간의 화해, 인간과 자연의 화해, 도시와 자연의 화해, 인간과 사물의 화해는 제가 항상 작업의 모토로 삼는 주제다”고 부연했다.

미래지향적 사유로 작품세계를 심화·발전시키다
구상과 추상, 그리고 오브제(콜라주) 미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낯선 것’을 향한 새로운 도전을 시도해온 기옥란 작가. 최근 기 작가는 ‘관계와 소통을 위한 변주곡’, ‘공간에 대한 사유’, ‘원형으로부터’, ‘에로스와 타나토스를 위한 변주곡’ ‘은하수와의 조우’ 등 유사한 작품세계를 더욱 심화,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며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 중이다. 특히 혁신적인 추상사진 작품으로 더욱 장르를 확장한 그는 다양한 코드로 여러 가지 기호, 은유와 상징들의 완결된 체계, 경계가 무너진 원초적인 우주적 에너지를 발산해 자신만의 시각적 언어로 고요히 비상하며, 미래지향적 사유로 ‘트랜스휴먼-공간에 대한 사유’를 표현한다. 기존의 평면적 추상 사진에서 벗어나 신비하면서도 역동적인 느낌을 주는 그의 사진은 입체감과 뛰어난 공간감이 매력적인 동시에 무한한 상상력과 시대정신을 엿볼 수 있다.

기옥란 작가는 “오브제의 다양성과 기하학적 조형성에 의한 내면의 피라미드이며 정형의 이탈이고 환원”이라며 “트랜스휴먼이라는 주제로 그림과 사진, 오브제 작업을 계속 탐구해 나갈 계획이다. 늘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창조 정신과 예술적 사유를 바탕으로 작업을 이어가는 동시에 시대정신을 잃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트랜스휴먼이라는 거대한 파고 속에서 인간을 특권화하지 않는 휴머니즘의 접근으로 소통의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시대성을 창조하고 예술의 본질을 찾고자 시공간을 뛰어넘는 또 다른 탐색과 창조의 공간인 자신만의 내면의 동굴 속에서 매혹적이고 영감이 넘치는 예술의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는 기옥란 작가의 향후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 4월 한 달간 진행된 전남대 치과대학병원 아트스페이스 갤러리 초대전, 5월 대한민국 미술전람회전을 성공리에 마친 기옥란 작가는 8월 서울 세텍 컨벤션센터 2023 뱅크 아트페어. 10월 한 달간 갤러리 트랜스휴먼전 등을 앞두고 있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