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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서 칼럼] ‘긴 머리 소녀’ ‘밤배’의 둘다섯, 오세복의 삶과 노래[1]
‘오세복 추모, 헌정음악회’현장
2023년 04월 12일 (수) 12:44:56 박성서 webmaster@newsmaker.or.kr
▲ 오세복 추모, 헌정음악회 포스터

‘밤배’, ‘긴 머리 소녀’, ‘일기’, ‘얼룩 고무신’ 등의 포크 듀오 ‘둘다섯’의 오리지널 멤버, 오세복(1954년 ~ 2021년)을 추모하는 헌정음악회가 열렸다.

오세복 추모 1주기를 맞은 지난 2022년 12월에 열린 ‘오세복 헌정음악회’는 ‘둘다섯’ 객원 멤버로 활동했던 싱어송라이터 이철식씨가 주최하고 음악 동료 선후배들에 의해 진행되었다.

‘둘다섯’은 1974년부터 활동을 시작해 약 40여년 간 활동하던 남성 포크 듀오. 휘문중·고등학교와 동국대 선후배 사이인 이두진과 오세복이 결성한 팀. 팀명 ‘둘다섯’은 바로 이들의 이름에서 ‘이’씨와 ‘오’씨 성을 따서 지은 이름이다.

그동안 서정적이면서도 쉽고 아름다운 멜로디로 사랑받았던 ‘둘다섯’의 오리지날 멤버이자 마지막까지 활동했던 오세복을 추모하는 이번 헌정음악회에서는 미공개 유작도 발표되어 그 의미를 더했다. 제목은 ‘인생길(오세복 작사, 작곡)’. 노래를 부른 멤버는 오세복과 이철식.

이 노래가 만들어진 것은 지금으로부터 3년 전, 오세복씨 별세 2년 전에 취입된 노래로 신장염을 앓고 있던 오세복씨가 신장 이식수술을 앞두고 있던 시점이었다.

이 ‘오세복 추모 1주기 헌정음악회’를 통해 둘다섯 멤버 오세복의 삶과 노래를 돌아본다.

  글 l 박성서(음악평론가, 저널리스트)
사진 l 강신군, 백현구

 

▲ 라이브 레스토랑 ‘올리(Orly)’에서 열린 헌정음악회 무대에 오른 듀엣 마음과마음. 그리고 추모음악회를 통해 공개된 미공개 유작 ‘인생길’의 둘다섯(오세복(좌측)과 이철식)

1주기 추모 헌정음악회에서 공개된 오세복 유작 ‘인생길’

지난 2022년 12월 18일, 오세복을 기리는 헌정음악회가 추모 1주기를 맞아 용인에 있는 라이브 레스토랑 ‘올리(Orly)’에서 열렸다. 이곳은 싱어송라이터 이철식씨가 운영하는 곳이다. 둘다섯의 객원 멤버이기도 했던 이철식씨가 주최하고 동료 선후배 싱어송라이터들이 마련한 헌정음악회다.

이 음악회에는 가수 겸 작곡가 이철식(김연숙의 ‘그날’ 등 작곡)씨를 비롯해 ‘노래하는 작곡가’들인 싱어송라이터들이 대거 참여했다. ‘사랑 넋두리’의 강영호, ‘꽃 바람 여인(조승구 노래)’의 김영철, ‘천상재회(최진희 노래)’의 작곡가 김정욱, ‘하나의 사랑(박상민 노래)’의 작곡가 김지환, ‘그녀를 만나는 곳 100미터 전(이상우 노래)’의 작곡가 이남우,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광조 노래)’의 작곡가 이태열, ‘해운대 연가(전철 노래)’의 작곡가 정찬우(이상 가나다 순) 등.

또한 포크 듀엣 ‘마음과마음(임석범, 채유정)’, 포크 트리오 메모리즈(손유신, 이민구, 허충남), 소프라노 김지현, 가수 이솔 등도 함께 무대에 올랐다. 이날 헌정음악회 현장은 다음 호에서 보다 상세히 소개하기로 한다.

이 추모음악회를 주최한 이철식씨는 오세복과 한때 ‘둘다섯’ 멤버로 활동하며 미공개 유작 ‘인생길’과 ‘남자가 사는 이유’를 함께 취입한 인물. 이 노래는 오세복씨가 새롭게 둘다섯을 결성, 음반을 취입했지만 급성 패열증으로 갑자기 타계, 결국 공개되지 못한 노래다.

유작 중 오세복 작사, 작곡의 ‘인생길’ 음원이 이번 추모음악회를 통해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마치 자신의 운명을 예감한 듯한 노랫말이 새삼 와닿았다.

“타계 3년 전인 지난 2019년에 취입한 노래예요. 본인은 처음 이 노래 제목을 ‘밤배 2’로 하고 싶어했어요. 그러나 이미지가 너무 어둡다는 의견으로 인해 제목을 ‘인생길’로 바꾸었죠. 본인도 이 음반만큼은 꼭 내고 싶어 했는데 상당히 애석하죠. 막상 그가 떠난 뒤 이 노래를 다시 들어보니 마치 자신의 삶을 예감하고 있었던 것 같아 더욱 안타까웠습니다.” 이철식씨의 말이다.
 
‘인생길’ 무슨 말을 하면서 살아왔는지 알 수 없어도/들을 수가 없어도 바람결에 묻혀버렸어/무얼 보면서 살아왔는지 알 수 없어도/찾을 수가 없어라 사람 숲에 숨어버렸어/검은빛 바다 작은 밤배는 외로울 때도 많았어/이젠 안개밭 새벽이슬에 젖어 들고파/멀리 온 아주 멀리 온 곱고도 서글펐던/시린 어깨 짐들을 내려놓는 나 하나씩 둘씩. -‘인생길(오세복 작사, 작곡, 둘다섯(오세복 이철식) 노래)’

▲ 둘다섯(이두진·오세복) 데뷔 음반을 비롯한 둘다섯 발표 음반


대학가에 소문난 명물, 1974년 듀엣 ‘둘다섯’ 결성

오세복은 1954년 서울 장충동에서 부친 오인환, 모친 안옥숙 사이의 4남 5녀 중 일곱째로 태어났다. 피복공장과 빵 공장을 하는 사업가 집안에서 자란 그는 고등학교 때 처음 기타를 잡으며 음악에 심취했다.

휘문중·고등학교를 거쳐 동국대에 재학 중일 당시 1년 선배인 이두진과 함께 듀엣 ‘둘다섯’을 결성했다. 이들은 아마추어 시절부터 이미 대학가 명물로 명성을 날렸다. 대학 시절 한 신문 기사(일간스포츠 1974년 6월 9일자)에 의하면 ‘이들은 악기를 무려 대여섯 개씩 다루며 이미 자작곡인 ‘긴 머리 소녀’와 ‘밤배’ 등을 레퍼토리로 갖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이들은 대학가 인기의 여세를 몰아 1974년 8월, 데뷔 음반 ‘둘다섯 새 노래 모음(지구레코드)’을 발표하며 정식 데뷔한다. 타이틀 곡은 ‘긴 머리 소녀(오세복 작사, 작곡)’와 ‘밤배(오세복 작사, 이두진 작곡)’.

음반 발표와 함께 신곡 발표회도 갖는다. 종로 이브음악실에서 1974년 8월 23일 오후 다섯시부터 시작된 ‘둘다섯 신곡 발표회’에는 인기가수들이 대거 찬조 출연했다. 김인순, 서유석, 오세은, 윤항기, 윤형주, 이장희 등의 축하 무대도 곁들여진 것.

‘긴 머리 소녀’의 원곡은 ‘이제는’으로 이미 대학가에서 널리 불리던 노래

“‘긴 머리 소녀’는 정식 음반으로 나오기 전부터 이미 대학가와 다운타운가에서 ‘이제는’이라는 제목으로 널리 불리던 노래였어요. 이 노래를 ‘긴 머리 소녀’로 바꿀 때 개그맨 손철씨가 많이 도와주었다고 하더군요.” 이철식씨의 기억이다.

이 노래 ‘이제는’은 대학가에서 불리던 노랫말 그대로 이후 이연실 음반에 수록, 발표된다. 이 멜로디에 가사를 바꿔 ‘긴 머리 소녀’로 발표된 것. 노래 가사를 비교해보자.

 
‘긴 머리 소녀’ 빗소리 들리면 떠오르는 모습/달처럼 탐스런 하이얀 얼굴/우연히 만났다 말 없이 가버린/긴 머리 소녀야/눈 먼 아이처럼 귀 먼 아이처럼/조심조심 징검다리 건너던/개울 건너 작은 집의/긴 머리 소녀야/눈감고 두 손 모아/널 위해 기도하리라. -‘긴 머리 소녀(오세복 작사, 작곡, 둘다섯 노래, 1974년 발표)’

한편 대학가에서 불리던 ‘이제는’의 노랫말은 이렇다.
 
‘이제는’ 이제는 가야지 이 길을 가야지/떨리는 두 손을 뒤로 감추고/이제는 가야지 서둘러 가야지/다시는 오지 말아야지/눈 먼 아이처럼 귀 먼 아이처럼/다시 다시는 뒤돌아보지 말고/소낙비 내린 뒤에 무지개 보듯이/너와 나의 이야기는 이제는 모두 잊자. -‘이제는(오세복 작사, 작곡, 이연실 노래, 1975년 발표)’

▲ 오세복 기사 모음

오세복의 두 번째 음반 수록곡 ‘얼룩 고무신’, 그리고 ‘일기’...

오세복·이두진 멤버가 함께 했던 둘다섯의 두 번째 음반은 이로부터 4년 뒤인 1978년 3월에 발표된다. 타이틀 곡은 ‘얼룩 고무신’과 ‘순간들’. 이 음반에서 ‘얼룩 고무신(오세복 작사, 작곡)’과 ‘일기(오세복 작사, 작곡)’가 크게 사랑받았다. ‘일기’는 이전 1977년에 발표된 노래를 이두진·오세복 목소리로 재취입한 것. 그밖에 1973년경 어린이방송극 주제가로 쓰였던 ‘빨간 풍선(서활 작사, 작곡)’도 수록되어 있다.

‘얼룩 고무신’ 굽이굽이 고갯길을 다 지나서/돌다리를 쉬지 않고 다 지나서/행여나 잠들었을 돌이 생각에/눈에 뵈는 산들이 멀기만 한데
구불구불 비탈길을 다 지나서/소나기를 맞으면서 다 지나서/개구리 울음소리 돌이 생각에/꿈속에 고무신을 다시 보았네
허허허허 우리 돌이 우리 돌이 얼룩 고무신/허허허허 우리 돌이 우리 돌이 얼룩 고무신. -‘얼룩 고무신(오세복 작사, 작곡, 둘다섯 노래)’

이두진·오세복 멤버의 두 번째 음반이 시간이 걸리게 된 것은 오세복의 군 복무 때문이었다. 그는 1975년 입대해 1978년에 제대했다.

“세복이는 처음 소총수로 입대했어요. 그러다가 일병을 달면서 사진병으로 발탁되었죠. 문선대 등 공연에 참여하면서 참으로 적극적으로 근무했었죠.” 오세복 군대 동기인 강신군(사진작가)씨의 말이다. 가수 전영록이 뒤를 이어 후임 사진병으로 들어왔다고 덧붙인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둘다섯은 두 팀이다. 처음엔 원년 멤버 오세복과 이두진으로 출발했지만 곧 이들은 두 개 팀으로 나뉘며 각자 따로 활동했다.

처음 멤버가 바뀐 것은 오세복씨가 군에 입대하면서. 그 기간에 이두진씨는 새로운 멤버 이지민씨와 둘다섯 활동을 이어간다.

이지민은 후에 김영진과 듀엣 ‘사월과오월’을 결성, ‘장미(1979년)’를 부른 가수이기도 하다. 그 이지민씨가 ‘둘다섯’에 합류하면서 팀 이름을 유지하기 위해 이름을 ‘이’씨에서 ‘오’씨로, 그러니까 이지민에서 오영진으로 바꾼다.

둘다섯의 또 다른 팀은 바로 오세복씨가 주축이 된 듀오. 이때 파트너는 이철식, 그리고 우영철 등이었다. 우영철씨의 경우도 둘다섯에 합류하면서 성을 바꿔 이영철이란 이름으로 활동했다.

이두진·오영진(이지민)의 둘다섯은 오세복씨가 군 복무 중이던 1977년 3월에 결성, 그해 11월에 지구에서 ‘둘다섯 골든 앨범1’을 발표한다. 음반 타이틀곡 ‘일기(오세복 작사, 작곡)’. 그리고 ‘밤의 연가’를 제외한 나머지 곡들은 모두 둘다섯 데뷔 음반에 실린 노래를 재취입한 것이다. ‘밤의 연가’의 경우, 음반에는 이두진 작사, 작곡으로 표기되어 있지만 실제로 이 곡은 1968년에 박연숙의 목소리로 발표된 ‘밤의 찬가(황우루 작사, 김인배 작곡)’다. 가사만 약간 바뀌었다.

오세복, 제대 후 ‘둘다섯’ 활동 재개, 그러나...

오세복은 1978년 1월, 제대와 함께 다시 이두진과 재결합, 이들의 두 번째 음반을 발표한다. ‘얼룩 고무신’, ‘순간들’, ‘일기’, ‘내 님’ 등 12곡이 담겼는데 모두 오세복 작사, 작곡으로 여전히 코드가 쉽고 서정적인 멜로디의 노래들이다.
 
‘일기’ 물소리 까만 밤 반딧불 무리/그날이 생각나 눈감아 버렸다/검은 머리 아침이슬 흠뻑 받으며/아스라이 멀 때까지 달려가던 사람/나도 같이 따라가면 안 될 길인가/나도 같이 따라가면 안 되나/오늘 밤 일기에는 이렇게 쓴다/아직도 그 아침이 밉기만 하다고.
은하수 한편에 그려지는 얼굴/차라리 잊으려 눈감아 버렸다/싸늘한 새벽바람 흔들리는 잎새들/그 사람 가는 길에 대신해준 손짓처럼/나도 같이 따라가면 안 될 길인가/나도 같이 따라가면 안 되나/오늘 밤 일기에는 이렇게 쓴다/아직도 그 아침이 밉기만 하다고. -‘일기(오세복 작사, 작곡)’

그러나 오랜 공백 탓인지 팀웍이 예전 같지 않았다. 이들은 오랜만에 함께 음반을 발표했지만 이후 공연은 각각 따로 다니기 시작했다. 이 무렵 오세복과 함께 공연을 함께 다닌 파트너는 이철식씨였다.

▲ 둘다섯으로 활동하다가 솔로로 데뷔한 이철식 1-3집 음반

 

이철식이 기억하는 오세복...

“1979년 경이었어요. 한 번은 부산대와 이리(현 익산) 원광대 공연이 같은 날 잡힌 적이 있었지요. 거리가 거리였던 만큼 정말 아슬아슬한, 그야말로 빡빡한 스케줄이었지요. 세복이가 부산에서 차를 몰고 지름길로 달렸음에도 중간에 길을 잘못 들어서는 바람에 네 시간이나 늦었지요. 부랴부랴 공연장에 도착했는데, 놀랍게도 그때까지 학생들이 기다리고 있더군요. 자그마치 2천여 명이 모여 무려 네 시간 동안이나 둘다섯 노래를 합창하며 기다렸다고 하더군요. 그만큼 둘다섯의 인기는 정말 대단했지요.” 이철식씨의 회고다.

이 무렵 오세복씨는 가수 활동과 더불어 부업으로 양품점을 차린다.

“문화동(약수역 근방)에 ‘둘다섯 양품점’을 냈어요. 맞춤복과 기성복을 함께 취급했는데 운영은 세복이가 하고 저는 외판원을 했지요. 주문받아오라고 하면 나가서 주문받아 오고...” 처음 하는 사업인지라 크고 작은 에피소드도 많았다. “세복이가 수완이 좋다 보니 단골이 제법 많았어요. 그러나 처음 하는 거라 실수도 많았지요. 한 번은 차병원의 차박사님이 바지를 맞췄는데 완성된 뒤 보니 주머니가 앞으로 달린 거예요. 그래서 한참 웃었던 기억도 나고...” 예상한 대로 양품점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결국 1년 뒤 문을 닫는다.

이 둘은 새 음반 작업도 시작했다. “새롭게 둘다섯을 결성하면서 신세계레코드사와 음반 계약도 했죠. 음반 타이틀 곡이 ‘그날(이철식 작사, 작곡-후에 김연숙이 리메이크 히트)’이었어요. 그런데 그 과정에서 전속 계약금 문제로 관계가 틀어지면서 음반은 불발되었죠.”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음반사 측에서 약속을 어겼다며 소송을 걸어왔고 그 과정에서 이철식과 오세복의 관계는 더욱 소원해졌다.

“당시 계약금 문제로 감정이 상해 더 이상 둘이 화음을 맞춘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죠.”
결국 이듬해인 1980년, 이철식씨는 스스로 독립, 솔로로 데뷔한다. ‘사랑은 소리 없이’와 ‘기다리는 내 사랑(김연숙의 ‘초연’ 원곡)’이 수록된 데뷔 독집 ‘이철식/이제는 옛이야기’가 그것. 이 음반에서 ‘사랑은 소리 없이’가 제법 방송을 탔다. 활동은 ‘이철식 2집/꽃(1981년)’, ‘3집/철이의 일기(1983년)’로 이어졌다.

그러는 사이 오세복과의 관계는 더욱 꼬여만 갔다. 오세복과 준비했던 음반이 문제가 된 것은 그로부터 몇 년 뒤의 일이다.

▲ 포크 듀오 둘다섯의 오세복

‘그날’로 시작된 오세복과 이철식의 불협화음

“1982년도였어요. 둘다섯 음반이 불발된 후 그때 연습하던 노래 ‘그날’을 MBC 대학가요제 예선에 내보냈지요.”

예산농업전문대에 재학 중이던 혼성듀엣 ‘미리내(방희인, 허은선)’가 이 노래로 대학가요제 대전지역 예선에 출전, 1등을 차지하며 전국대회에 나가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어요. 이 노래가 이미 발표된 기성곡이라는 거예요. 해서 발칵 뒤집혔죠. 알아보니 그 사이에 세복이가 이 노래를 음반으로 이미 발표했더라고요, 물론 저는 까맣게 몰랐죠. 심지어 작자 명도 자신의 이름, 오세복 작사, 작곡으로 표기했다는 사실은 더더욱...”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그는, 피해 다니는 오세복씨를 3개월 동안 수소문한 끝에 찾아내 거칠게 항의, 몸싸움까지 벌인 끝에 자인서를 받아냈다. 뒤늦게 방송국 측과는 오해가 풀렸지만 오세복과의 우정에는 이미 금이 간 상태였다.

“처음 신세계레코드사에서 음반을 내기로 했다가 계약금 문제로 일이 틀어지면서 무산된 음반을 나중에 지구를 통해 발표한 것이었죠. 아마 위약금 등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신 지구에서 음반을 냈을 것...”이라는 게 이철식씨의 추측이다.

‘그날’은 ‘둘다섯 신곡 모음 3집(지구, 1980년 6월)’을 통해 발표되었다. 이 음반에서 오세복과 호흡을 맞춘 파트너는 우영철.

얼마 뒤 이철식씨는 세 번째 음반 ‘철이의 일기’를 발표한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못생긴 내 얼굴(한돌 작사, 작곡)’이 원곡이기도 한 이 노래 ‘철이의 일기’는 발표되자마자 운동권 가요로 분류, 낙인이 찍히면서 이로부터 5년간 활동이 금지된다.

“어쨌든 세복이 때문에 속앓이를 꽤 했죠. 싸우고 헤어지고 또 싸우고... 그런 와중에 5년 간 활동을 못하게 되니까 세복이와는 더 멀어지고... ”

한편 오세복씨는 1987년, 홀로 미국 LA행 비행기에 오른다. ‘둘다섯/달력 속의 생일’ 음반을 발표한 뒤 1년 후의 일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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