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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서 칼럼] 60주년을 맞는 그룹, ‘키보이스’를 다시 듣다
2023년 03월 14일 (화) 22:27:49 박성서 webmaster@newsmaker.or.kr

우리나라 그룹사운드 최초 독집음반 ‘그녀 입술은 달콤해’

포크와 그룹사운드 음악이 주축을 이루는, 이른바 ‘7080 음악’이 새삼 붐이다. 아날로그 시대의 상징인 옛 레코드, 즉 LP 음반 가격 또한 천차만별로 심지어 ‘부르는 게 값’인 음반도 수두룩하다는 화제를 접하는 것 또한 이제는 더 이상 새삼스럽지 않다.
과연 음반으로 출시된 우리나라 그룹사운드 최초의 노래는 무엇일까. 정답은 키보이스가 발표한, ‘그녀 입술은 달콤해’다.

에드포, 코끼리 캄보와 더불어 우리나라 록그룹사운드의 효시를 이루는 5인조 그룹 키보이스의 ‘그녀 입술은 달콤해’가 처음 취입, 발표된 것은 1964년 7월 3일이다. 이 음반이 지금까지 알려진 한국 그룹사운드 최초(最初), 그리고 최고(最古)의 음반이다.

지금으로부터 60년 전 당시 키보이스의 멤버는 차중락(Singer), 김홍탁(First Guitar), 옥성빈(Rhythm Guitar), 차도균(Bass Guitar), 윤항기(Drum). 이 라인업이 갖춰진 것은 1963년 늦가을이었다.

이 음반의 실제 주인공들인 당시 키보이스의 멤버들, 김홍탁, 윤항기, 차도균씨을 차례로 만나보았다. 인터뷰 당시 이들은 하나같이 이 음반의 존재를 명확히 기억해내지 못했다. 그러나 당시 음반과 그리고 취입날짜가 기록된 마스터 카드, 그리고 음반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들을 통해 이들은 매우 놀라워했고 조금씩이나마 당시 상황을 하나둘 떠올리기 시작했다.

60년 전 기억과 기록의 조우, 5인조 그룹 ‘키보이스 60년’ 이야기.

글ㅣ박성서 (음악평론가, 저널리스트)

▲ ‘키보이스-그녀 입술은 달콤해’ 음반 재킷과 당시 취입 마스터 카드. 이 음반이 한국 그룹사운드 최초, 최고(最古)의 음반으로 우리나라 초기 그룹의 사운드를 평가할 수 있는 최초 기록이다. 사진 좌측으로부터 김홍탁(First Guitar), 차중락(Singer), 윤항기(Drum), 옥성빈(Rhythm Guitar), 차도균(Bass Guitar)

Surfin Sound를 주로 구사하는 이미테이션 그룹으로 출발

3.15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4.19로 막이 올라 5.16으로 이어지며 시작된 우리의 60년대. 영국에서는 리버풀 출신의 비틀즈가 요란스레 ‘I Wanna Hold Your Hand’을 외쳐대고, 롤링 스톤즈가 폭발적이면서도 괴상한 불협화음으로 다시금 대영제국의 깃발을 세계 젊은이들의 심장에 꽂고 있을 때, 우리의 60년대는 아직 ‘보릿고개’ 시절이었다.

작가 김승옥의 단편소설 ‘서울 1964년 겨울’에서 드러나 있듯 60년대 젊은이들은 현대에 동화되지도 못하고 전통에 대한 미련도 없는 우울한 세대였다.

대중음악사적 측면에서 보면 1964년은 이미자의 ‘동백아가씨’가 대히트한 해로 61년 한명숙의 ‘노오란 셔츠의 사나이’로 촉발된 새로운 조류가 다시 트로트로 급선회하는 기폭제가 된 지점이었다. 그러나 이때 미8군무대를 중심으로 우리나라 젊은이들로 구성된 그룹사운드가 고고한 탄성을 알리며 ‘또 다른 문화’를 형성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주목하는 이는 별로 없는 듯하다.

‘노래는 가수, 연주는 악단’이라는 공식이 당연했던 시절, 고작 네댓 명이 기타와 드럼만으로 노래와 연주를 겸한다는 건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었던 시절이었다.

우리나라 록그룹사운드의 효시를 이루는 5인조, 키보이스의 최초 독집음반, ‘그녀 입술은 달콤해’가 처음 취입, 발표된 것은 1964년 7월 3일이다.

이 음반이 지금까지 알려진 한국 그룹사운드 최초(最初), 그리고 최고(最古)의 음반으로 우리나라 초기 그룹사운드의 기원과 더불어 초기 사운드를 평가할 수 있는 중요한 단초를 제공한다. 음반으로 발표되어 존재하는 국내 그룹사운드의 최초 기록이기 때문이다.

이 음반을 발표할 당시 키보이스의 멤버는 차중락(Singer), 김홍탁(First Guitar), 옥성빈(Rhythm Guitar), 차도균(Bass Guitar), 윤항기(Drum). 이 라인업이 갖춰진 것은 1963년 늦가을이다.

초호화 라인업을 갖춘 '한국의 비틀즈' 키보이스

미8군 무대를 통해 활동을 시작하는 키보이스는 '이미테이션(카피) 그룹'이었다. 비치 보이스와 비틀즈의 노래와 연주가 이들의 연습 테마였고 곧 무대에서의 주요 레파토리였다. 때문에 이 음반에서 보듯 이들의 초기 사운드는 ‘설핀 사운드(Surfin' Sound)’가 주를 형성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50년대 베이비붐 세대를 거쳐 풍요로운 60년대, 여유와 놀거리를 찾던 틴에이저들에 의해 캘리포니아 사운드, 즉 ‘웨스트 코스트(West Coast) 사운드’가 열광적 지지를 받는다. 이 세계적 조류는 한국에 온 젊은 미군들에게도 예외일 수 없어 이러한 영향은 미8군 쇼무대에 서는 키보이스의 주요 리퀘스트이자 레파토리로 자연스레 자리한다.

비치 보이스나 비틀즈 외에도 개인기가 출중했던 이들 멤버는 각각 엘비스 프레슬리(차중락), 레이 찰스(윤항기), 딘 마틴(차도균) 등을 이미테이션화 하면서 미군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음반 재킷에서는 이들 키보이스를 ‘한국의 비틀즈’라 명명하고 있다. 비틀즈의 등장이 각국의 록그룹들에게 끼친 영향력은 새삼 설명할 필요가 없을 만큼 절대적이었다. 그중에서도 오로지 기타 세 대와 드럼만으로도 노래와 연주가 가능하다는 것을 획기적으로 제시해주었고 이것이 곧 세계 그룹사운드의 형태를 순식간에 바꾸어놓는 계기가 되었다.

5인조 키보이스 역시 초기에는 기타 셋, 그리고 드럼과 보컬로 구성되었다. 후에 옥성빈은 전자오르간, 즉 키보드를 담당하지만 초기 그의 포지션은 리듬 기타(Rhythm Guitar, 앨범 재킷에는 2nd Guitar로 표기)였고 때문에 이 음반에서는 키보드가 등장하지 않는다.

▲ 키보이스 초기 음반들. 키보이스 두 번째 음반 ‘정든 배는 떠난다(1966년 7월)’ 재킷 사진은 그해 5월, 노량진 한강 백사장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여성용 수영복을 입은 윤항기의 익살은 부친인 ‘원맨쇼의 일인자’ 윤부길의 혈통을 이은 순간적 재치이기도 하다

키보이스 이름의 기원은 ‘...ky’라는 단어에서 시작

키보이스의 태동은 윤항기로 부터 시작된다. 일찍이 희극인으로서 ‘부길부길쇼’를 이끌었던 부친 윤부길과 동생인 가수 윤복희의 영향으로 자연스레 미8군 쇼무대에 첫발을 내디뎠던 그는 늘 록그룹 사운드 결성을 꿈꿔왔다.

해병대 군악대 복무 중에도 휴가 때면 친구들과 어울려 록그룹에의 꿈을 지폈다. 이때 함께 어울렸던 멤버들이 후에 키브라더스에 합세하는 김광정, 그리고 처음 키보이스 연습 시절을 거쳐 후에 ‘김치스’의 리더가 되는 유희백 등이다.

윤항기는 63년 초, 제대 후 유희백, 옥성빈 그리고 차도균을 다시 만난다. 차도균은 이미 작곡가 손석우로 부터 곡을 받아 '타고난 팔자', '기다렸는데' 등 음반을 발표했던 인물로 당시 KBS 전속가수 제의를 마다하고 본인의 취향인 팝을 부르기 위해 미8군 스테이지로 나섰던 패기 넘치는 젊은 가수였다.

보컬을 강화하기 위해 차도균은 사촌동생 차중락을 가세시키고 연습 시절 함께한 First Guitar 유희백이 떠난 자리에 ‘한국 기타의 파이오니아’로 일컬어지는 김홍탁이 가세한다.
 
이후 한국 록의 역사에서 신중현과 더불어 '김홍탁가(家)'라는 확실한 계보를 구축하는 김홍탁의 가세로 키보이스는 한국 록그룹 사상 가장 개인기가 출중한 멤버들로 구성되었다는 평가를 받는 초호화 라인업을 갖춘다.

이 다섯 명의 젊은이들이 처음 모여 사용한 그룹명은 '더 키즈'였다. 당시 미 8군쇼에 출연하는 연예인들은 이름 끝에 '키'자를 쓰는 경우가 많았다. 작곡가 손목인의 아들인 가수 겸 MC 후랭키 손, 그리고 '재키’ '히키신'으로 통했던 신중현, 윤항기 역시 미 8군 무대에서 불리던 이름은 '항키'였다. 차도균은 '도키'... 해서 이들은 처음 그룹명을 '더 키즈'로 정했으나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면서 보다 분명한 뜻을 가진 'Key(열쇠)', 즉 '키보이스(Key boys)'로 이름을 바꾼다.

국내 최초의 패키지쇼 '록앤키(Lock & Keys)'로 활동

키보이스는 미8군 쇼 가수들을 공급하는 업체 '대영'에 소속되면서 비로소 미8군 무대에 진입한다. 그리고 송영란과 함께 '락앤키즈(Lock & Keys/자물쇠와 열쇠들)'라는 이름의 패키지쇼를 구성,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송영란은 '꿈에 본 내 고향'으로 잘 알려진 가요 1세대 가수 송달협의 딸로 이전에 동갑내기 윤복희와 '투 스쿼럴스(Two Squirrels/두 다람쥐)'라는 듀엣을 결성, 활동하기도 했었고 이후 솔로로 발표한 '굳바이 존' '황홀한 트위스트' 등을 히트시키며 일반 무대에서도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이들은 '송영란과 키보이스'라는 이름으로 무대에 오르기도 했지만 ‘락앤키(Lock & Keys)’ 외에 두 팀은 각자 별도로 활동했다. ‘락앤키즈쇼’의 주인공인 이들은 이 음반에서 유일하게 ‘귀여운 내 사랑(Little Darling)’을 함께 취입한다.

'락앤키즈'는 송영란을 시작으로 송영란이 일본으로 떠나자 김현아, 전미라 등이 그 자리를 잇게 된다. '한국의 카니 프란시스'라는 애칭으로 불리던 김현아는 블루벨즈와 함께 '일요일은 안돼요' 등 음반을 발표하기도 했으나 69년, 윤복희 부부가 주축이 된 '코리안 키튼즈'에 합류, 미국으로 건너간다.

록앤키 이전에 '사랑하는 마음' 등을 발표했던 전미라 역시 후에 이원호 등과 함께 '리전스(Leejuns)'를 결성, 활동하다가 다시 솔로로 독립, '조그만 이 가슴에' '푸른 잔디밭 위로' 등을 발표했다.

▲ '록앤키(Lock & Keys)'에서 활동했던 여성 멤버들, 좌로부터 송영란, 김현아, 전미라(사진 가운데) 음반

우리나라 최초의 그룹사운드 독집음반 ‘그녀 입술은 달콤해'

당시 국내 제작 음반으로서는 혁신적인 사운드를 들려주었던 키보이스, 이 음반엔 '1960년대의 가치'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이 음반은 당시 키보이스가 미8군 무대에서 즐겨 부르던 팝 레퍼토리를 중심으로 일반 무대로의 진출에 교두보 역할을 하는 국내 창작곡이 함께 수록됨에 주목할 만하다, 그리고 창작곡인 '그녀 입술은 달콤해'가 음반타이틀 곡으로 선정된 것 또한 획기적이라 할만하다.

이 앨범에는 타이틀곡 '그녀 입술은 달콤해'를 비롯해 '사랑이 싹틀 때' 그리고 '말괄량이 아가씨' 등은 이들이 팀 결성 후 처음 부르게 되는 국내 창작곡들이다. 당시 젊은 작곡가 김영광에 의해 마침내 우리나라에서도 록 스타일의 노래가 작곡되어 탄생되었다는 것 또한 이 음반의 가치를 더해준다. 아울러 이러한 시도는 그 자체만으로도 한국 록그룹사운드 역사상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 하겠다.

이 음반 뒷면에 표기되어있는 작사자 주리오, 김양히(이후 음반엔 김양희 혹은 김영광으로 표기) 등은 모두 이 음반의 작·편곡자인 김영광의 또 다른 예명이다.

당시 미8군 쇼무대에서의 이들의 실력을 알 수 있는 레파토리들, 즉 'Tie Me Kangaroo Down Sports'를 번안한 '캥거루 사냥'을 비롯해 '나의 보금자리(My Home Town)', '내 사랑 와줘요(Come Back To Me)', '그대 손목을 잡고 싶네(I Want To Hold Your Hand)', '미소(Washington Square)' 등은 미8군 무대에서 갈고 닦은 이들의 연주와 노래 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멤버 각각의 연주 실력은 물론 음반 곳곳에 유니송(Unison)으로 들려주는 차도균, 차중락의 보컬까지 매우 안정적인 하모니를 구사한다. '바람둥이 아가씨(Speedy Gonzales)' 등에서 윤항기 또한 그가 만능 엔터테이너로서 타고난 쇼맨십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이 음반은 64년 당시 장충스튜디오에서 녹음되었다. 당시 녹음기술상 편집(짜깁기)이 가능치 않아 노래와 연주를 동시에 진행, 원테이크 방식으로 녹음되었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이들의 실력을 라이브에 가깝게 들을 수 있다는 것도 일종의 덤이다.

그리고 이 음반에 참여했지만 음반 재킷에는 명시되어 있지 않은 가수가 바로 송영란과 송기영이다. 음반 A면 네 번째에 수록된 '귀여운 내 사랑(Little Darling)'은 송영란과 키보이스가 함께 취입한 곡으로 '록앤키'의 노래를 음반으로 접할 수 있는 유일한 곡이기도 하다.

▲ 키보이스에서 솔로로 독립한 가수들, 죄로부터 차중락, 차도균, 윤항기 음반

‘얼굴 없는 가수’ 송기영의 실체를 밝히다

또 하나 주목할 곡은 음반 마지막에 수록된 '정든 배는 떠난다'이다. 이로부터 2년 뒤인 66년 7월에 발표되는 '쟈니리/키보이스 공동음반'의 타이틀 곡으로 재발표되는 이 곡은 이 음반에서 2절로 불리고 있다. 말하자면 처음 만들어진 오리지널 악보 그대로 들을 수 있는 셈이다.

이 노래 역시 창작곡 '그녀는 갔지만', '연애는 0(제로)'와 함께 가수 송기영이 리드보컬을 맡는다. (이 중 '그녀는 갔지만'은 70년대 들어 차중광이 '오 그대(성음)'라는 앨범 타이틀로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이 음반 이전에 '나 혼자만의 밤(1963년)', '꿈속의 미소녀(1963년)' 등을 발표했던 가수 송기영이 리드 보컬의 주인공임이 밝혀지는 것은 이보다 후에 발매되는 '송영란 히트앨범-황홀한 트위스트(신세기 가-12074)'를 통해서다. 이 음반에서는 이 노래의 가수가 '송기영과 키보이스'로 표기되어 있어 당시 이 노래의 싱어가 송기영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가수 송기영은 이전, 혹은 이후 발표되는 음반 어디에도 얼굴 사진이 공개된 적이 없다. 이를테면 얼굴 없는 가수였던 셈이다. 해서 그가 누구였는지 가요 관계자들 조차 대부분 알 수 없었다.

(가수 송기영의 프로필에 대해서는 지난 2006년 2월 9일 자 서울신문 연재칼럼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을 통해 가수 송기영이 작곡가 김영광이었음을 본인의 허락을 받아 최초로 밝혔다.)

▲ 김홍탁이 이끌던 He5와 He6와 윤항기가 이끌던 키브라더스

절정의 인기를 뒤로 한 채 멤버들 하나 둘 흩어져

키보이스의 일반 무대에서도 인기가 대단했다. 디쉐네 등 음악감상실의 무대를 통해서 대중적 영향력을 과시했던 이들의 실력은 당시 자료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1964년 여름, KBS-TV를 통해 처음으로 TV에 출연했던 한국 최초의 록그룹 사운드였으며 그해 12월, 내한했던 영국의 5인조 록그룹 '리버풀 비틀즈(리버풀 5)'와 경복궁 합동공연 파트너로 선정되었던 주인공 역시 키보이스였다. 물론 이 공연은 프로모터가 오리지널 비틀즈가 내한했던 것처럼 홍보해 사기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그리고 국내 최초로 록그룹사운드 단독 야외공연이었다는 이정표를 남긴 '부산 야외공연' 무대의 주인공, 역시 이들이었다.

이 음반의 주인공들인 초기 키보이스 멤버들은 후에 쟈니리와 함께 한 스플릿 음반 '정든 배는 떠난다'와 '그 밤과 같이', 그리고 '화제의 총아(話題의 寵兒) 키보이스 히트 앨범' 등 음반을 남기고 67년, 하나둘씩 팀을 떠난다.

윤항기는 67년 초, 동남아로 떠남으로써 팀을 이탈한다. 이후 71년도 '키브러더스'를 결성하며 국내 가요계로 컴백했고 '키브러더즈' 해체 이후에도 솔로로 활동하며 많은 히트곡을 발표한다.

리드싱어 차중락은 66년, '그 밤과 같이' 앨범을 통해 발표하는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Anything That Part of You)' 이후 솔로로 전향, ‘사랑의 종말’, ‘철없는 아내’, ‘그대는 가고’ 등을 발표하며 이듬해 가수왕에 등극한다.

▲ 후기 키보이스 음반들

차도균 역시 67년 '가이즈 앤 돌스(Guys & Dolls)'에 잠시 몸담았다가 68년 12월, '꽃잎에 새긴 사랑'을 발표하며 다시 솔로로 전향하게 되고, 스텐더드 팝보다 헤비메탈 사운드를 추구하던 김홍탁 역시 68년 HE5, HE6 등을 거치면서 당대 최고 인기그룹으로 부상, 이후 전개되는 그룹사운드 황금기를 주도한다. 이들 초기 멤버들은 키보이스를 떠나서도 솔로로, 그룹으로 각기 가요사에 획을 그었다.

초기 멤버 옥성빈 만이 잔류하게 된 키보이스는 60년대 초 미 8군 무대에서 활동하던 최영훈의 '코끼리 캄보'에서 활동하던 조영조, 장영 등과 손잡고 제2기 키보이스로 결성, 활동하게 된다.

이들에 의해 굳건히 명맥을 이어온 키보이스는 이후로도 3기, 4기 등으로 이어지며 키보이스 계보를 계승한다. 이들 후기 키보이스에 관한 설명은 다음 기회로 넘기기로 한다.
우리나라 그룹사운드의 선구자, 키보이스의 첫 앨범 '그녀 입술은 달콤해'. 이 음반에는 당시 60년대 우리나라 젊은 음악인들의 열정은 물론이거니와 이후 화려하게 펼쳐지는 대한민국 그룹의 황금기를 연 에너지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계속)

[참고] ‘키보이스 독집/그녀 입술은 달콤해’ 복각 음반 해설(2003년. 박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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