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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서 칼럼] ‘오동잎’ ‘가을비 우산 속’의 가수, 최헌의 삶과 노래[2]
‘10주기 추모 콘서트’, 가수 최헌을 추억하다
2022년 11월 15일 (화) 14:05:53 박성서 webmaster@newsmaker.or.kr
▲ ‘최헌 10주기 추모음악회’ 포스터, 2022년 10월

‘오동잎’, ‘당신은 몰라’, 앵두’, ‘어찌합니까’, ‘가을비 우산 속’으로 1970~80년 대한민국 대중음악을 이끌었던 가수 최헌(1950. 3. 12 ~ 2012. 9. 10)을 추모하고 그의 음악을 재평가하는 ‘최헌 10주기 추모음악회’가 동료, 선후배 음악인들에 의해 지난 10월 8일 오후 3시부터 서울 대학로 한예극장에서 펼쳐졌다.

가수 최헌의 타계 10주기에 맞춰 열린 이 공연에는 미8군 시절부터 최헌과 함께 활동했던 가수 윤항기(키보이스, 키브라더스), 김홍탁(He5, He6)을 비롯해 그룹 데블스, 김진묵 밴드, 준(준시스터즈), 김광석(기타리스트), 김민홍(시인 가수), 권인하(가수), 김흥국(가수) 등이 함께했다.

또한 생전에 고인과 가깝게 지냈던 동료·선후배들이 무대에 올라, 최헌 음악에 대한 평가와 함께 그와의 추억담을 나눴다. 이야기 초대손님으로는 그룹 He6에서 함께 활동했던 김홍탁, 최헌의 매니저이자 그룹 ‘검은나비’ 멤버 이태현, 그리고 최헌이 발표한 노래 대부분을 편곡한 작곡가이자 그룹 검은나비에서 함께 활동한 김기표, 생전에 고인과 친했던 가수 김흥국 등이 출연했다. 공연 사회 및 토크쇼 진행은 필자가 맡았다.

매년 가을이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노래 ‘오동잎’, ‘가을비 우산 속’...을 남긴 채, 이 가을에 떠난 가수 최헌의 삶과 노래, 그 두 번째.

글 l 박성서(음악평론가, 저널리스트)

‘오동잎’에 이어‘앵두’, ‘구름 나그네’로 정상에 서다

‘믿어도 되나요 당신의 마음을/흘러가는 구름은 아니겠지요/믿어도 되나요 당신의 눈동자/구름 속의 태양은 아니겠지요/사랑한단 그 말 너무 정다워/영원히 잊지를 못해/철없이 믿어버린 당신의 그 입술/떨어지는 앵두는 아니겠지요. -앵두(안치행 작사, 작곡, 최헌 노래)’

1978년에 발표한 노래 ‘앵두’다. 앞서 발표한 ‘오동잎’, ‘어찌합니까’, ‘세월’에 이어 발표한 이 음반에서 ‘구름 나그네’와 함께 크게 히트하며 최헌은 최전성기를 구가한다.

‘가다 말다 돌아서서 아쉬운 듯 바라본다/미련 없이 후회 없이 남자답게 길을 간다/눈물을 감추려고 하늘을 보니/정처 없는 구름 나그네/어디로 가는 걸까 아무 말도 하지 않고/부는 바람 새 소리에 고개 너머 임 찾으러. -구름 나그네(서유석 작사, 안치행 작곡, 최헌 노래)’

당시 최헌씨의 인기는 어느 정도였을까. 당시 최헌의 매니저 일을 보았던 이태현씨에게 들어보았다.

“최헌씨가 솔로로 독립한 후인 1977년부터 당시 TBC 방송가요대상을 시작으로 방송 3사였던 KBS, MBC, TBC의 연말 10대 가수상을 모두 석권했지요. 거리에서나 술집에서 온통 최헌씨 노래였습니다.”

실제로 ‘오동잎’에 이어 ‘앵두’와 ‘구름 나그네’로 연타석 홈런을 날리던 이해(1978년) 9월, 세종문화회관 별관에서 열린 TBC 방송가요대상에서 최고가수상을 수상한 데 이어 다음 달인 10월, 서울문화체육관에서 열린 MBC 10대 가수 가요제에서 10대 가수들 중 최고 인기가수에게 주어지는 최고인기가수상(일명 가수왕상)마저 거머쥐었다. 명실공히 최헌의 시대였다.

1977년부터 시작된 이 10대 가수상 수상 행진은 ‘카사블랑카’가 크게 히트하던 1984년도까지 계속 이어졌다.

이렇게 최헌 노래가 크게 히트한 이유를 당시 경음악평론가 최경식은 한 일간지를 통해 이렇게 분석했다.

‘우선 30~40년대의 복고풍 선율을 현대판 고고 리듬으로 편곡해 현대 감각에 맞춘 점, 그리고 가수의 창법, 이른바 그룹사운드에서 익힌 젊은 감각과 실력으로 감정을 잘 억제하며 노래해 효과를 거둔 점...’이라며 ‘한국적 멜로디에 현대적인 리듬, 그리고 대중적인 창법을 성공 원인’으로 보았다. 이어서 ‘누구나 쉽게 흥얼거리며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라는 점도 히트의 주요 요소’로 꼽았다.

매니저 이태현씨는, “오동잎은 빠르고 경쾌한 멜로디로 더욱 사랑을 받았는데, 실제로 당시 자전거로 배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짐을 가득 싣고 출발할 때 ‘오, 동잎~♪’ 하고 페달을 밟으면 힘들이지 않고 자전거가 잘 달렸다는 재미있는 얘기가 전국에 나돌기도 했다”고 전한다.

당시 우리나라에 트로트 고고 열풍을 일으키며 한순간 가요계 흐름을 바꿔놓은 이 노래는 이후 80년대 들어서 일본에서도 일본어로 번역되어 발표되었다. 1984년 일본 폴리돌레코드사가 발매한 ‘抱かれて眠れたい(오동잎)’, ‘星海峡(앵두)’ 음반이 그것.

▲ 장만영 시 ‘사랑’을 노래한 ‘순아’가 수록된 ‘최헌 4집/가을비 우산 속’ 음반과 일본 폴리돌레코드사가 발매한 ‘抱かれて眠れたい(오동잎)’, ‘星海峡(앵두)’ 음반, 1984년

 

장만영 시인의 시,‘사랑’을 대중가요로 노래한 ‘순아’

‘서울 어느 하늘 아래 낯 설은 주소엔들 어떠랴/아담한 집 하나 짓고 순아 단둘이 살자/깊은 산 바위틈 둥지 속에 산비둘기처럼/우리 서로 믿고 순아 단둘이 살자/낮에는 햇빛이 밤에는 달빛이/조그만 우리들 창을 비춰줄 거야/순아 우리 단둘이 살자/순아 순아 단둘이 살자. -순아(장만영 시, 최주호 작곡, 최헌 노래)’

TBC 방송가요대상 최고가수상에 이어 MBC 10대 가수 가요제 가수왕을 차지했던 1978년 9월에 발표된 4집 수록곡 ‘순아’다.

시인 장만영(張萬榮, 1914년~1975년)이 1950년에 발표한 시, ‘사랑’을 차용해 만든 노래다. ‘주소조차 없는 서울의 한 단칸방을 깊은 산 속에 있는 산비둘기 둥지에 비유, 햇빛과 달빛을 벗 삼아 둘만이 의지하며 살겠다’는, 젊은 남녀의 사랑을 그린 이 아름다운 시를 모티브로 했다. ‘비록 보잘 것 없을 지라도 둘이 함께라면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는 진실한 사랑을 그린 노래다.

‘가을비 우산 속’ 영화화되다

‘순아’와 함께 4집에 수록된 노래 ‘가을비 우산 속’은 발표 이듬해인 1979년, 석래명 감독에 의해 ‘가을비 우산 속에’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었다. ‘가을비 우산 속’의 노랫말 이미지를 모티브 삼아 제작된 이 영화는 두 여인 사이를 방황하는 젊은 화가의 사랑과 고뇌를 그린 멜로드라마.

‘1. 그리움이 눈처럼 쌓인 거리를/나 혼자서 걸었네 미련 때문에/흐르는 세월 따라 잊혀질 그 얼굴이/왜 이다지 속눈썹에 또다시 떠오르나/정다웠던 그 눈길 목소리 어디 갔나/아픈 가슴 달래며 찾아 헤매이는/가을비 우산 속에 이슬 맺힌다.

2. 잊어야지 언젠가는 세월 흐름 속에/나 혼자서 잊어야지 잊어봐야지/슬픔도 그리움도 나 혼자서 잊어야지/그러다가 언젠가는 잊어지겠지/정다웠던 그 눈길 목소리 어디 갔나/아픈 가슴 달래며 찾아 헤매이는/가을비 우산 속에 이슬 맺힌다. -가을비 우산 속(이두형 작사, 백태기 작곡, 최헌 노래)’

‘김자옥과 정윤희, 두 라이벌 간의 불꽃 튀는 연기 대결’로 화제를 모은 이 영화에서 주인공인 젊은 화가 역엔 신성일, 그리고 문정숙 등이 출연했다.

이 노래의 작곡가 백태기씨는 그룹 ‘검은나비’에서 한때 멤버로 활동했던 경희대 음대 출신의 재즈 피아니스트. 그가 홍콩에서 활동할 무렵 받아놓은 시인 이두형의 시에 곡을 붙여 발표한 노래로, 제15회 TBC 방송가요대상(1979년)에서 작곡상을 수상했다.

이 노래는 지난 2017년, 가수 최헌의 모교인 서울 대광중·고등학교 교정에 노래비가 세워졌다. 그의 대광고 동창들(19회)이 졸업 50주년을 맞는 2017년, 고희(古稀)를 기념해 세운 노래비다.

▲ 영화 ‘가을비 우산 속에’ 광고

‘황당한 유명세’ 속에 펼쳐진 첫 리사이틀 전국 순회공연

톱 가수 반열에 오른 만큼 유명세 또한 만만치 않았다. 1978년, 방송윤리위원회로부터 ‘TV 출연금지 장발 연예인 명단’에 이름이 오르기도 했다. 실제로 그에게는 장발과 관련한 일화가 많다.

“그룹 시절, 멤버들이 유독 TV에 출연하는 걸 싫어했어요. 머리를 잘라야 하니까” 매니저 이태현씨의 말이다. “일례로 검은나비 시절, ‘당신은 몰라’가 한창 뜨고 있고 TV에서도 출연 요청이 계속 오는데 멤버들이 절대 안 나가겠다는 거예요. 머리를 자르기 싫다고. 그래서 할 수 없이 고민 끝에 짧은 머리 가발을 어떻게들 구해서 그걸 쓰고 나갔어요. 그러니 몰골이 말이 아니었죠.”
 
그런가 하면 당시 모 연예잡지(명랑 79년 2월호)가 가십 기사로 ‘모 여성과의 동거설’을 허위보도하면서 느닷없이 한바탕 홍역을 치러야 했다. 속칭 ‘아니면 말고’ 식의 이 ‘카더라 통신’으로 어이없게도 곤혹을 치르게 된 그는 결국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법정 싸움까지 벌여야 했다. 물론 뒤늦게 정정되긴 했지만 이미 이때 받아야 했던 이미지 타격은 어느 정도 불가피했다.

이러저러한 황당한 유명세를 치러야 했지만, 그는 폭발적인 인기에 힘 입어 전국 리사이틀 순회공연에 돌입한다. 1979년 5월 30일, 부산 공연을 시작으로 대전, 수원, 광주, 전주를 거쳐 마지막으로 서울 단성사에서 리사이틀 대장정의 막을 내리는 두 달간의 일정이었다. 특히 서울공연은 근 20여 년간 영화만 상영해오던 극장, 단성사가 6. 25 이후 최초로 일반 가수에게 쇼무대를 제공했다고 해서 더욱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최헌 첫 리사이틀에는 가수 김추자, 조경수, 양희은, 최백호, 허참 등이 찬조 출연했고 또 5일 동안 펼쳐진 서울 단성사 피날레 공연은 재미 가수 한웅(He6 보컬)의 스테이지를 별도로 마련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무대 연출은 TBC-TV의 조용호, 이영식씨가 맡았다.

생전에 최헌씨와 소문날 정도로 함께 붙어 다닌 것으로 유명한 후배가수 김흥국씨가 처음으로 그를 본 것이 바로 이 리사이틀공연에서였다.

“그때가 1979년도였어요. 단성사에서 보았던 리사이틀 무대를 잊을 수가 없죠. ‘오동잎’을 부르는데 그 가수만이 할 수 있는 멋진 톤부터 그룹 생활을 오래 한 사람 특유의 매력, 저도 막둥이 보컬 그룹 출신이지만 그룹사운드 출신치고 그렇게 많은 인기를 얻은 분은 아마 최초가 아닌가 싶어요. 헌이 형님은 같은 가수로서도 존경할 수밖에 없는 정말 매력적인 가수였죠.”

사실 김흥국씨는 ‘오대장성’이란 밴드의 드러머로 활동을 시작했다. ‘오대장성’은 4대 장성인 준장, 소장, 중장, 대장과 함께 병장도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뜻의 이름으로 직접 지은 그룹명이다. 선배 가수 최헌을 가장 존경했다는 그. 그래서일까, 노래 부르는 스타일이나 창법에서 얼핏 비슷한 점도 느껴진다. 허스키한 보이스 칼라에 구수함까지...

▲ 그룹 검은나비. 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이태현(베이스), 최헌(리드싱어), 김기표(기타), 김인섭(트럼펫), 김영균(키보드), 손학래(쌕스폰), 문영배(드럼), 1974년. 아래 사진은 최헌이 몸 담았던 그룹, 히식스 멤버들과 함께

결혼과 함께 부업으로 오디오 대리점을 개업한 오디오광

1981년 3월, 드디어 34살 노총각 최헌씨가 결혼한다. 신부는 마산 출신으로 한양대 무용과를 졸업한 배영혜씨. 두 사람은 80년 10월, 지인의 소개로 처음 만났다.

아울러 이듬해 첫 딸을 낳아 겹경사를 맞는다. 그 딸(서윤)을 사람들은 ‘앵두’라고 불렀고, 부인은 당연히 ‘앵두 엄마’로 통했다. 당시 인기프로그램인 KBS-2TV ‘밤의 스타쇼’는 그의 신혼 가정을 찾아가는 특집을 내보냈을 정도로 최헌의 결혼은 세간의 화제였다.

결혼과 함께 그는 1981년 5월, 퇴계로 5가에 오디오대리점을 오픈했다. “헌이형(최헌)은 당시에 가수들 중에서도 유독 오디오에 관심이 많았어요. 당시 몰던 토요타(TOYOTA) 승용차에 고가의 오디오를 설치해서 주위의 부러움을 샀죠. 부업이었지만 오디오 사업이 꽤 잘 어울렸는데 워낙 가수 활동이 바쁘다 보니 오래 하지는 못했죠.” 작곡가 김기표씨의 말이다.

실제로 그는 누구보다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 무렵인 1981년에는 우리나라에 주둔하고 있던 외신기자클럽이 뽑은 ‘가장 좋아하는 한국가수’로 최헌씨가 선정되었다. 말하자면 국내는 물론 외국인들에게도 가장 인기 있는 가수였던 셈.

1981년 2월에는 군 위문공연을 3백 회 이상 펼친 공로로 군 사령부로부터 감사패를 받기도 했고 이어 미국 로스엔젤레스를 시작으로 뉴욕, 워싱턴 등 3개 도시를 순회하는 교포 위문공연을 펼쳤다.

▲ 1970~80년대 최헌 발표 음반들

‘헌이’를 ‘허니(Honey)’로, ‘한국의 케니 로저스’라 불린 로맨틱한 목소리

1981년에 발표한 ‘최헌 7집-가수의 어느 날’은 구수하고도 텁텁한 목소리가 주는 훈훈함을 잘 살린 음반이다.

‘아름다운 어느 날 노래하며 마주친 얼굴/우연히 늘 마음속에 그리던 조용한 미소에 아름다운 그녀를 나는 보았네//슬픈 노래 부를 때 또다시 마주친 순간/우연히 날 바라보는 두 눈에 흐르는/그녀의 반짝이는 눈물을 나는 보았네...(이하 생략) -가수의 어느 날(이태현 작사, Sweet Music Man 원곡. 최헌 노래)’

이 노래를 작사한 이는 당시 매니저 일을 보고 있던 이태현씨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그 무렵은 제가 최헌씨 매니저 일을 볼 때였는데 최헌씨 음색이 유독 케니 로저스(Kenny Rogers)와 흡사하다고 느꼈어요. 남성적 매력을 지닌 깊이 있는 음색..., 그래서 케니 로저스의 노래가 잘 어울리겠다는 판단에 당시 그의 최대 히트곡이었던 ‘스윗 매직 맨(Sweet Music Man)’과 ‘레이디(Lady)’를 번안해 음반에 수록했죠.”

‘스윗 매직 맨’은 ‘가수의 어느 날’로, ‘레이디’는 ‘헌이’라는 제목으로 각각 발표되었다. ‘헌이’의 작사가는 한정선.

특히 그의 이름 ‘헌이’를 ‘허니(Honey)’라는 발음과 같은 점에서 착안해 로맨틱한 노래로 만든 작사자의 재치가 돋보이는 노래이기도 하다.

그룹 검은나비, 호랑나비... 서울앙상블 그리고 불나비

솔로 가수로 이미 최정상에 올랐음에도 그에겐 늘 그룹사운드 음악의 이미지가 붙어 다녔다. 그가 발표한 노래의 반주는 그가 몸담고 있던 그룹 검은나비와 호랑나비가 늘 함께 했고, 호랑나비에서 나와 솔로 활동에 전념했지만, 방송국마다 그룹사운드 음악을 조명할 때 반드시 최헌을 무대에 세웠다. 그때마다 최헌은 7인조 그룹, 서울앙상블 팀과 함께 무대에 올랐다.

개국 12주년을 맞는 MBC-FM의 10개 지방 FM의 개국 축하행사에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신중현과 뮤직파워 등 그룹사운드가 대거 출연했는데, 이때 최헌은 서울앙상블 팀과 함께 무대에 오른다.

물론 앞서 거론했듯 서울앙상블엔 최헌씨가 합류하지 않았다. 서울앙상블은 김기표씨가 호랑나비 이후 새롭게 만든 그룹으로 멤버는 리더 김기표(기타)를 비롯해 김문숙(보컬, 전 신중현과 뮤직파워), 김용성(기타. 전 호랑나비), 문영배(드럼), 손영규(보컬, 전 히식스), 이근수(키보드, 전 사랑과평화), 이남이(베이스, 전 사랑과 평화). 이들은 당시 영동호텔과 프레지던트호텔 나이트 등 주로 밤무대에서 음악 활동을 했다.

“당시 서울앙상블의 음악이 참 좋았는데, 아깝게 음반 내기 전에 해산했죠. 이들 중 몇몇은 다시 그룹 불나비에 합류하지만. 이때 이태현 형님의 소개로 재기를 노리던 나훈아씨를 만나 ‘울긴 왜 울어’를 서울앙상블의 반주로 녹음했죠. 이후 나훈아 음악이 전혀 새로운 방향으로 바뀌어 현재까지 이어지게 된 거죠.” 리더 겸 작곡가 김기표씨의 말이다. 김기표씨는 이 ‘울긴 왜 울어’를 시작으로 최근의 ‘테스형’까지 무려 40여 년간 나훈아 노래의 편곡을 도맡고 있다.

▲ ‘가수의 어느 날’이 수록된 7집 음반과 ‘카사블랑카’가 수록된 ‘불나비’ 음반. 사진 아래는 7인조 그룹 ‘서울앙상블’. 사진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리더 김기표, 김용성, 문영배, 손영규, 이근수, 김문숙, 이남이

최헌, 5인조 그룹 ‘불나비’의 리드싱어로 합류, ‘카사블랑카’ 빅히트

1983년에는 다시 5인조 그룹 ‘불나비’를 결성한다. 멤버는 최헌(리드 보컬), 김기표(기타), 조용남(베이스기타), 이근수(키보드), 문영배(드럼). 이들이 1983년에 발표한 음반 ‘불나비 1984’에 수록된 번안가요 ‘카사블랑카’가 크게 사랑받는다.

1942년, 2차대전을 배경으로 험프리 보가트와 잉그리드 버그만이 주연을 맡은 로맨스 스릴러 영화 ‘카사블랑카’를 감명 깊게 본 버티 히긴스(Bertie Higgins)가 영화에서 받은 영감으로 작곡한 노래다.

이 ‘카사블랑카(Casablanca, 1982년)’를 번안한 작사자는 최헌. 음반 연출은 이태현.

‘1. 그대와 같이 본 영화 카사블랑카/어둠 속에 두 손을 꼭 잡고/마음을 전하여주던 따스한 그대 손길이/살며시 떨리는 걸 느꼈네/사랑의 아픔을 본 영화 카사블랑카/희미한 불빛 그대 얼굴 스칠 때/슬픔에 젖은 눈동자 두 눈에 맺혀 흐르는/뜨거운 눈물 나는 보았네/우- 잊지 못할 영화 카사블랑카/아픈 이별의 입맞춤이 얼룩져 있는 카사블랑카/우리들의 마음을 슬프게 하네.

2. 사랑을 깨우쳐준 영화 카사블랑카/서러운 이별이 슬프게 했지만/우리의 사랑만은 변할 수는 없어요/상처는 남지 않을 거예요/우- 잊지 못할 영화 카사블랑카/아픈 이별의 입맞춤이 얼룩져 있는 카사블랑카/우리들의 마음을 슬프게 하네. -카사블랑카(최헌 작사, 원곡 Casablanca, 최헌 노래)

투박한 듯 애잔하면서도 애수에 젖은 목소리가 노래의 감성을 자극하는, 때문에 이 노래는 현재 또 하나의 번안가요 명곡으로 자리하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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