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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 넘는 오랜 시간 동안 인권운동 수호에 헌신하다
2022년 09월 05일 (월) 23:03:18 윤담 기자 hyd@newsmaker.or.kr

인간은 본능적으로 행복을 추구한다. 그 행복은 기본적 의식주를 포함하는 생존의 욕구와 더불어, 인간으로서 존중받으며 행복하게 살아갈 권리를 포함한다. 이것이 인권의 기본가치이며, 인권의 역사는 이 단순하지만 중대한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끝없이 투쟁해온 도전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다.

윤담 기자 hyd@

‘인권’의 사전적 의미는 ‘인간으로서 당연히 가지는 기본적 권리’이다. 하지만 ‘인권’이라는 표현은 주로 그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할 때, 그래서 ‘인권탄압’, ‘인권침해’ 등 부정적인 단어와 결합되며, 대개는 힘없고 억울하고 소외된 이들의 울부짖음과 함께 호소될 때가 많다.

차별 없는 사회 위해 헌신해온 대한민국 1호 인권운동가
이성원 희망원장의 행보가 재조명되고 있다.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이성원 원장은 대한민국 1호 인권운동가다. 50여 년을 훌쩍 넘는 오랜 세월동안 청소년 선도와 사회봉사에 헌신해온 그의 가장 큰 업적은 다름 아닌 ‘무적자 호적 만들어주기 운동’이다. 6.25 전쟁 이후 폐허가 됐던 우리나라에는 부모형제를 잃고, 굶주리며 방황하는 부랑자들이 수없이 많았다. 1960년대 당시 무적자 수만 해도 12만 명에 달했다. 무적자는 출생신고 이후 호적 등록 단계에서 행정 착오로 발생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경우로 ‘정치·사회적 지위’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이에 이성원 원장은 호적이 없어 인간취급을 받지 못하는 무적자들이 처참한 삶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1965년 12월10일 세계인권의 날에 ‘무적자 호적 만들어주기 운동’을 주창했다.

▲ 이성원 원장

당시 이 원장은 무적자들의 고통스러운 사연을 알리기 위해 대통령, 대법원장, 국무총리, 내무부장관, 보건사회부장관, 서울시장, 각 시?도지사 변호사협회장, 중앙청소년보호대책위원회, 새싹학회장, 서울대학교 사법대학원장 및 각 언론사에 호소문을 발송하고, 직접 플랜카드를 메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전국의 거리 캠페인을 선도했다. 이것은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위대한 업적이다. 민간이 시도하기에는 온갖 시련이 있었지만, 이성원 원장은 오직 무적자들에게 인권을 찾아주기 위한 일념으로 혼신을 다했다. 민간이 시도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지만 이 원장은 오직 무적자들의 인권을 찾아주기 위한 일념으로 혼신을 다했으며, 그의 불굴의 의지는 결실을 맺었다. 그가 무적자들을 사회 안전망에 들여놓고, 국민으로서 권리와 의무를 다할 수 있도록 노력한 결과, 법무부로 하여금 무적자들을 구제하는 방안이 발표된 것이다. 이성원 원장은 호적정리와 더불어 국내 주민등록증 도입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과거 서울사람들에게는 시민증, 타도민들에게는 도민증을 부여해 지역을 구분했으나 1968년 10월 말부터 이를 폐지하고, 전 국민들에게 12자리의 주민등록증이 발급되는 등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데 공헌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이 원장은 법무부로부터 ‘인권 옹호 대상’을 수상했다.

희망원 설립 후 사재 털어 청소년 선도에 총력
국내 최초로 인권의 중요성에 대해 경종을 울림으로써 사회적 의식을 제고하고,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숭고한 봉사의 삶을 실천해온 이성원 원장. 특히 우리사회를 이끌어 갈 미래의 인재인 청소년 선도에 심혈을 기울였던 그는 1960년대 조치원역에서 역무원으로 근무하던 시절부터 당시 보릿고개 시절 떠돌아다니는 아이들을 돕기 시작했다. 당시 이 원장은 청소년 선도 및 자립을 위해 조치원역 대합실에 ‘청소년 상담소’를 설립했고, 1963년 BBS연기지부를 조직해 불우 청소년들을 각 기관, 유지 등에 결연을 맺어 구두닦이, 신문팔이 등으로 청소년들의 자립을 도왔다. 1964년도에는 흑벽돌로 된 보육원인 ‘희망원’을 설립해 자립을 위한 구심점으로 삼았다. 희망원을 통해 아이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고 성장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그는 자신의 사재를 털어 희망원을 이끌어 왔다. 그렇게 이 원장은 아이들에게 구두닦이를 비롯해 농사, 토끼·돼지 키우기, 철사 수공품 만들기 등 각종 기술을 가르치며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고 토끼와 돼지, 닭 등을 무료 분양하기도 했다.

▲ 이성원 원장은 대한민국 1호 인권운동가다

4H구락부 운동과 가축보급 운동도 펼쳤으며 학교 순회 선도 교육에도 앞장섰던 그는 고아출신들이 장성해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었지만 돈이 없고 가난한 생활 때문에 결혼식을 올리지 못하고 어렵게 살다보니 이것이 한이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1970년대 국내 최초 민간인 주도 합동결혼식을 열어 1,500여명 하객들의 축하 속에서 희망원생들이 부부의 연을 맺도록 뜻 깊은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이러한 헌신적인 도움을 받았던 희망원생들은 훌륭하게 성장해 사회 일원이 됐고, 오늘날까지도 그를 아버지처럼 따르고 있다. 모든 인간은 존엄하지만, 그 존엄을 지키기 위한 현실은 평온하지만은 않다.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첨예한 입장 차이와 논란 속에서 인권의 가치를 올바르게 추구한다는 건, 이미 불화를 전제한다. 이러한 인권의 불화는 행정과 조화롭게 추구되기 어려운 것이다. 즉, 행정은 불화를 천천히 받아들이고, 시민은 행정의 보수성과 견고함을 만나 변화를 위해 하나씩 맞추어 나가야 한다. 지금껏 이성원 원장이 펼쳐온 인권운동의 의미가 남다른 이유다.

지난 2019년, 이 원장은 자신의 봉사 발자취를 담은 기록 사진집 <그늘진 곳에 희망을 보급한 58년의 찬란한 기록>를 출간했다. ‘인권의 날’을 기념해 출간한 이 사진집에는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시대별로 정리해 인간 이성원의 인생 전시장이 영화 필름처럼 펼쳐지듯 역사의 질곡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은 물론 나눔과 봉사로 아름다운 인생길을 걸어온 그의 봉사정신과 희망원생들을 향한 따뜻한 마음이 느껴진다. 지치지 않는 봉사 열정과 숭고한 인류애로, 희망의 새 시대를 여는 대한민국의 초석을 마련하고 있는 이성원 원장은 “지금도 그 시절을 회상하면 정말 힘들고 아프기도 했지만 이젠 다 큰 희망회의 우리 자식들을 보면 마음이 뿌듯하고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남은 일생도 이들과 함께 주위를 살피며 살아가고 싶다”고 전했다. 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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