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레 앞에 앉은 장인은 사뭇 말이 없다. 이미 그의 눈빛은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깊고도 긴 내면을 빚어가고 있다. 하얗다 못해 끝없이 맑고 투명한 빛깔을 짚어가며 고집스런 외길을 걸어왔다.

이승연 기자 lsy@

도예명장 단아 박광천 선생의 행보가 화제다. 투철한 장인 정신으로 한국 전통 도자기의 명맥을 잇고 있는 그는 여주군 선정 제3대 도예명장으로, 자신만의 독자적 예술세계를 작품을 통해 펼치고 있다.

단 한 점의 작품을 건지기 위해 예술혼 불사르다
40여 년 도자기 외길 인생을 걸어온 단아 박광천 선생은 현재 경기도 여주에 위치한 전원도예연구소에서 도자기를 빚고 있다.

도예명장 단아 박광천 선생

그가 만드는 작품들은 첫 공정에서 마무리까지 모든 단계가 수공으로 제작되는데, 오늘날 대부분의 도예작업장이 자동화, 기계화로 표준화된 도자기를 만들어내는 것과 사뭇 대조되는 풍경이다. 대장에서부터 화공, 조각, 화부에 이르기까지 단아  선생의 손때와 혼은 온전히 도자기에 스며있다. 도공은 어느 작품 할 것 없이 모두에 혼을 불어 넣지만 장작가마를 거치면서 도자기의 운명은 극명하게 갈린다. 아무리 오랜 시간, 아무리 정열을 쏟아 부어도 가마 속의 불은 도공이 알지 못하는 실수까지도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단아 선생은 100개의 작품에서 단 한 점의 작품을 건지기 위해서라면 가차 없이 99개의 작품을 망치로 깨버리는 도공의 고집스러운 면모도 보인다. 아무리 아름답고, 아무리 흠잡을 데가 없다 하더라도 도공의 혼이 스며있지 않으면 그 작품은 불가마를 나오는 순간 생명을 다한다. 단아 선생은 “도자기에도 사주팔자가 있는 것 같다”면서 “망치를 맞고 깨질 것인지, 아니면 고귀한 자태를 뽐내며 세상 사람들에게 그 가치를 인정받을지는 가마를 나온 순간 운명이 정해지기 때문이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그의 손에서 탄생한 아름다운 작품들은 하나같이 우리 조상들의 숨결이 살아 숨 쉬듯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고고한 자태를 뽐낸다. 박광천 선생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생명의 근원 쌍태동호, 밤의 제왕 부엉이문 접시, 조선백자 천지호, 포도문호, 호리병 복도깨비, 상감철화화장토 투계, 청화백자 투계, 상감철화화장토 백호민화도용준, 상감철화화장토 십장생, 상감철화화장토 취매도, 백자청화 연문호, 백자투계용준, 백자청화 달마호랑이 등으로 작품에는 박 명장의 힘찬 붓놀림으로 살아 움직이는 듯한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특히 상감철화화장토는 박 명장이 수십 년간 연구해 온 소지와 상감, 철토를 사용하여 비색청자와 분청을 입체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오묘함과 백자, 청자, 분청을 한 작품에서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는, 오로지 박 명장만이 빚어낼 수 있는, 또 하나의 도자 장르를 개척한, 전통과 현대를 담은 시공의 역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깊은 산속과 여주 등 일원에서 채취한 태토와 철토 등을 재료로 삼아 상감기법과 산수화, 사군자 및 문인화 등 추상화된 초문, 죽문, 용문, 당초문 등이 자유분방하게 표현되어 있는 상감철화화장토는 단아 박광천 명장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유일무이한 작품이다. 

순수한 인간의 내면을 작품 통해 보여주다
“도자기는 흙과 물과 바람이 흙과 불의 오묘한 조화 속에 도공의 숨결에 따라 혼을 불사르며 색다른 흙맛과 함께 예술적 감각이 어우러진 인류 최고의 종합예술품이다.”

조선백자 천지호

1975년 고암도에 화공으로 들어가 본격적으로 도자기를 만들기 시작했던 단아 박광천 선생. 그는 이곳에서 기초적인 도예기법을 익힌 후 1979년 말 고향인 여주로 돌아와 해동도예에서 이인호 선생의 사사로 화공으로 10여 년 간 활동했으며 이후 전원도예연구소를 설립해 자신만의 독자적인 도자 예술세계를 구현해냈다. 단아 선생은 “도예명장의 위용보다는 순수한 인간의 내면을 작품을 통해 보여주려고 노력하고 있다”면서 “전통의 한편으로 전통과 현대를 담아내는 시공의 역작 개발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노력은 제12회 신미술대전 대상, 제13회 한국예술대제전 종합대상, 뉴질랜드의회 초대전, 한국우수작가 초대전, 96한국문화예술상을 수상으로 이어졌으며, 폴란드 대사 및 주한미8군 부사령관으로부터 감사패를 수여받기도 했다. 특히 고향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는 단아 선생은 여주도자기협동조합에서 이사직을 맡아 활동하며 지역 내 도자기 예술 발전에 기여하고, 조합 차원에서 운영해온 ‘도공제 행사’를 20여 년 동안 개최하는데 앞장서왔다. 이와 함께 한국희망연맹과 서초포럼 등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며 후학 양성에도 힘을 쓰고 있는 그는 “도자기는 손끝으로 빚는 것이 아니라 가슴 속 깊이에서 빚으려는 작품에 대한 철학이 담겨 있어야 좋은 작품이 나온다”면서 “향후 해외 판로를 확대해 우리 전통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널리 알리겠다”고 강한 포부를 밝혔다. NM